소설리스트

국세청 망나니-179화 (179/500)

179화. 제발 우리 당에!(2)

국회의사당의 제2 야당 사무실에는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하하, 우리 초선 의원이 진짜 해낼 줄은 몰랐어요. 이걸 잘 써먹어야 될 텐데. 기자들에게 슬쩍 흘려주세요. 그래야 슬금슬금 언론이 달궈지지.”

최고의원의 말이 떨어지자 말석에 앉아 있던 의원 하나가 슬쩍 사무실을 나갔다.

지나가듯 말했지만 명령은 명령이었다.

의원이 사무실에서 나오자마자 기자들이 우르르 몰려왔다.

“자, 일단 카메라는 치웁시다. 오프 더 레코드예요. 알죠?”

“넵.”

슬쩍 말을 흘려주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이 아니었다.

녹화, 녹음은 못 한다 해도 이것 또한 하나의 기사 소재였기에 기자들이 얼른 몰려들었다.

“오늘 오후에 신재현이 올 겁니다.”

“시, 신재현이요?”

“그 사람이 왜…….”

기자들이 대번에 술렁거렸다.

국정감사는 아직 멀었고 그렇다고 세무조사는 아닐 것이다.

“의원님, 어차피 녹음 안 하고 있으니 시원하게 까 주시죠.”

“알려 줄 게 있어서 나오신 것 아닙니까. 오늘 제2 야당의 분위기가 꽤 좋던데, 무슨 경사가 있습니까?”

의원은 표정 관리를 하며 목을 가다듬었다.

그리고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가슴을 쭉 내밀며 말했다.

폭탄선언이라도 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우리 당에서 조만간 파격적인 인사를 단행할 겁니다. 이렇게만 말해두죠.”

“파격적인 인사라는 게 혹시 신재현 팀장입니까?”

“공무원 그만두고 비상대책위원회 오기로 했습니까? 아니면 국회의원입니까?”

기자들의 열화와 같은 성원에 의원은 만족한 얼굴로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거의 대답을 해 준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기자들의 반응은 의원이 생각한 것과는 달랐다.

분명 잔뜩 흥분해서 각자 회사에 전화를 걸고 조금이라도 빨리 기사를 쓰기 위해 난리가 나야 하는데.

기자들은 뜨뜻미지근한 얼굴로 의원을 바라보더니 자기들끼리 누군가를 찾기 시작했다.

“나 기자 국회 출입증 있던가?”

“아냐, 나 기자 국회랑 청와대 둘 다 출입증 없어.”

“아오, 꼭 필요한 사람이 없네.”

“누가 전화할 거예요? 빨리 전화 넣어 봐요.”

“나 기자가 예전에 일하던 데 어디였죠?”

“한대일보 기자님! 여기 계시죠?”

“예! 접니다! 제가 전화해 보겠습니다. 잠시만요.”

뭔가 체계적이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의문이 들었다.

소재에 대한 검증은 필요한 법이지만, 의원의 발언을 다른 기자에게 전화해서 확인하다니.

처음 보는 광경이어서 괘씸하다는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아, 연결됐다. 나 기자님. 오늘 신재현 팀장님에 대해 들은 게 있는데요. 국회 오신다고…… 그건 사실이군요.”

전화를 건 기자는 몇 마디를 나누더니 금방 전화를 끊었다.

“딱 이렇게만 말하랍니다. ‘오늘 신 팀장님이 또 사고 치십니다.’라고. 한숨 푹푹 내쉬던데.”

“아.”

“오!”

바로 옆에 의원이 있어서 자세히는 말하지 않았지만 기자들은 대충 알아먹었다.

입당은 아니라는 것도.

오늘 또 9시 뉴스에 도배될 특종거리가 생길 것이라는 생각에 기자들이 손목을 이리저리 풀었다.

그리고 이 자리에서 한 사람만이 상황을 엉뚱하게 이해하고 만족스럽게 웃었다.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검증이 됐나 보군요. 어때요, 우리 당의 경사죠?”

기자들이 미친놈 쳐다보듯 의원을 바라보았다.

의원은 끝까지 눈치채지 못하고 오후에 벌어질 ‘입당 특종’을 기대하며 제2 야당 사무실로 돌아갔다.

남은 기자들이 수군댔다.

“뭔가 단단히 착각하고 계신 것 같은데 알려드려야 할까요?”

“아뇨, 재밌는 일이 벌어질 것 같으니 내버려 둡시다. 여기 있는 모든 분이 함구하시는 겁니다. 아시죠? 이따 제2 야당 중진들 당황한 얼굴만 찍어도 두고두고 뉴스거리가 될 겁니다.”

“신재현에 대해 조금만 조사하면 그 사람이 뭐에 목숨 거는지 알 텐데. 왜 저렇게 일을 쉽게 보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런 삶을 살아서 그렇죠, 뭐. 명령하면 다 해결되고 안 되는 일은 협박과 회유로 해결이 되니까요.”

“하루 이틀 일입니까. 자기 뜻대로 안 되면 온갖 소리 다 할 텐데 벌써 귀가 아프네요.”

“그런 게 다 우리 기삿거리 아니겠습니까.”

몇 시간 후 국회에서 벌어질 일을 상상하며 기자들이 히죽 웃었다.

***

오늘은 국회 임시회가 있는 날이다.

그리고 오늘을 약속의 날로 잡은 이유는 별것 아니었다.

다수의 의원이 모이기 때문이었다.

제2 야당은 총선과 대선이라는 마라톤을 위해 남들보다 더욱 주목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다.

그러니 이왕이면 좀 더 큰 효과를 내는 것이 노림수였다.

자고로 모든 발표는 무대와 연출이 중요하다.

그래야 두 배, 세 배의 효과를 누릴 수 있는 것이다.

다선 의원들은 그런 효과에 일가견이 있는 사람들이었다.

신재현과 함께하겠습니다, 라는 선언만으로는 부족하다.

장소는 국회, 청중은 타 당의 의원과 기자들.

발표하는 순간 닭 쫓던 개처럼 눈을 부릅뜨고 바라볼 여야 중진들의 모습이 눈에 선했다.

“연락 왔어?”

“본관 쪽에 보좌관 대기시켜 놨는데 아직 안 왔나 봅니다. 보이면 바로 연락하라고 했는데.”

어차피 회의 중엔 일반인은 못 들어온다.

그래서 의원 소개를 통한 방청으로 해 두었는데 정작 본인이 나타나질 않고 있었다.

제2 야당 의원들이 슬슬 불안해졌다.

그때 보좌관의 전화를 받은 의원 하나가 다급히 다가왔다.

“사무처 알아봤는데 이미 들어왔답니다!”

“뭐야, 언제 왔어! 왜 말도 없이!”

본회의장에 앉아 있던 의원들이 뒤를 돌아보았다.

방청석은 반 정도 차 있는 상태였다.

관련 법안 때문에 의견을 내러 온 국민들이 대부분이었다.

“어디 앉아 있는 거야.”

“우리보다 더 서프라이즈를 좋아하는 사람이네.”

그래도 왔으니 다행이다.

의원들은 허허 웃으며 보좌관을 방청석으로 올려 보냈다.

신재현의 출현을 눈치챈 것은 그로부터 겨우 20분이 지나서였다.

하나둘 보좌관의 보고를 받은 의원들이 수런거리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의원들이 본회의에 제대로 집중하지 않는 것을 본 의장이 의사봉을 두드렸다.

“잠시 집중이 흐려진 것 같네요. 15분 휴식했다가 다시 진행하겠습니다.”

국회의장의 선언이 끝나기가 무섭게 몇 의원이 달려 나갔다.

그리고 아래층이 소란에 휩싸이기 시작했을 때 방청석의 신재현은 무엇을 하고 있었냐 하면, 느긋하게 의자에 앉아 다리를 꼬고 구경하고 있었다.

“팀장님. 마침 휴정했으니 곧 의원님들이 나오실 겁니다. 나가시죠.”

옆에 다가온 보좌관이 신재현을 재촉했다.

우르르 몰려나가는 의원들을 보며 신재현은 재밌다는 표정을 지었다.

“생각보다 개판이네요. 우리나라 국회가 이랬구나. 그래도 반은 깨끗할 줄 알았는데. 기대가 너무 크니까 실망도 매우 크네요.”

“……예?”

“혼잣말입니다.”

신재현의 말에 보좌관이 눈썹을 치켜 올렸다.

말이야 보좌관이지 원래라면 7급 공무원이 쳐다보지도 못할 사람이었다.

그가 뭐라 한 마디 하려 할 때 신재현이 핸드폰을 열었다.

-회의장 앞으로 나가면 기자들 있을 겁니다. 살살 좀 하세요.

어느 기자의 걱정 어린 문자를 확인한 신재현이 피식 웃으며 일어났다.

보좌관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야 말을 듣는군.’

보좌관들은 신재현을 방청석 밖으로 이끌었다.

그리고 의원들이 시킨 대로 데리고 가려는데 신재현이 문득 방향을 바꿨다.

“어, 그쪽은!”

신재현은 몰려 있던 기자들에게 걸음을 내디뎠다.

약속한 것처럼 기자들이 다가왔다.

“어! 거기 잠시만! 신재현 팀장!”

뒤늦게 올라오던 제2 야당의 의원들이 당황하며 말렸다.

그러나 신재현은 기다리지 않았다.

“요즘 제게 눈독 들이는 분들이 꽤 많은 것 같습니다. 감사한 일이죠.”

이제 모든 시선은 신재현에게 쏠렸다.

이때까지만 해도 제2 야당의 의원들은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끄흠, 사람 성격 정말 급하네. 우리 좀 기다리지.”

제멋대로인 신재현에게 불만을 느낄 뿐이었다.

지금이야 지지율이 필요해서 손을 잡지만, 오래 함께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는 생각도 들었다.

신재현은 뒤에 모인 의원들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물론 제게 손 내미는 국회에 드리는 감사가 아닙니다. 저를 믿고 기대하며 지켜보시는 국민 여러분께 감사한다는 말씀입니다.”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의원들은 잠자코 들었다.

“신문기사에서도 제가 정치에 뛰어들지 모른다는 이런저런 예측이 나오고 있더군요. 하지만 저는 국세청이 천직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런 예측이 더는 나오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공손한 말투였지만 의원들의 귀에는 이렇게 들렸다.

(정치 안 해. 헛소리 좀 하지 마.)

의원들은 혼란에 빠졌다.

‘우리랑 같이 가기로 한 거 아니었나?’

신재현의 말은 거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의원님들 주 업무는 법 제정 아니겠습니까. 저 같은 공무원 하나에 관심 가져 주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만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법을 만들어 주시면 저절로 지지율이 오르지 않을까요?”

(지지율 때문에 손 뻗은 거 다 알고 있다. 헛짓하지 말고 너희들 일이나 잘해.)

“저를 응원하고 싶으시다면 제 업무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귀찮게 하지 말라고.)

“더욱이 국회는 국민의 부름을 받은 분들이 모이는 신성하고 청정한 곳입니다. 어떻게 저같이 부족한 사람이 발을 딛겠습니까.”

(너희 정치판이 얼마나 더러운지 아는데 왜 가냐. 내가 그런 데서 놀 사람으로 보이냐?)

“그럼 국회 견학은 이 정도로 하고 업무로 복귀하겠습니다. 공적이든 사적이든 저와 마주칠 일이 없었으면 좋겠네요. 사적인 일이라면 제가 거절이고 공적인 일이라면…… 그닥 좋은 일은 아닐 테니까요.”

(탈세하다 걸리면 뒈진다. 나 보는 일 없도록 알아서 처신해라.)

정중한 인터뷰였지만 곧이곧대로 듣는 사람은 없었다.

비꼬기와 돌려 말하기의 달인인 국회의원이다.

이들은 자동으로 필터링 되어 꽂히는 환청 같은 협박에 허망한 표정을 지었다.

인터뷰가 끝났지만 아무도 다가가는 사람은 없었다.

“허, 이렇게 뒤통수를 치다니.”

판을 깔아 줬더니 판을 엎어버렸다.

“에잉, 좀 유명해졌다고 거들먹거리는 건가?”

제2 야당 의원들이 헐뜯기 시작하자 눈치 빠른 다른 당의 의원들이 슬그머니 다가왔다.

“크흠, 왜 그렇게 화내시나? 어차피 못 먹을 감 아니었습니까? 아니면 먹어볼 생각이었나?”

“거, 뭐가 그렇게 궁금합니까?”

“제가 알아보니까 신재현이 허가증 나온 게 제2 야당 의원이 손 써 준 거던데. 혹시 끌어들이려다가 실패한 거예요?”

“어허! 지금 무슨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맞는 것 같은데. 제2 야당에서 기자들 모은 거 모르는 사람이 없어요. 으허허! 개망신이구만, 개망신이야! 그러게 누울 자리를 보고 발을 뻗었어야지! 우리는 뭐 몰라서 가만 놔뒀나!”

사방에서 비웃음이 들려왔다.

울컥한 제2 야당의 의원들이 소리쳤다.

“우리가 총대 메서 이 지경이 된 거지, 당신들이 우리 입장이 될 수도 있었어!”

“재밌냐? 재밌냐고!”

의원들끼리의 다툼은 흔한 일이었다.

지나가던 보좌관도, 기자도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갈 길을 갔다.

신재현은 멀찌감치 떨어진 곳에서 싸움을 지켜보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자리를 떠났다.

“어허, 저 하룻강아지 놈! 그냥 조용히 들어왔으면 우리가 알아서 비례대표 시켜 주고 잘 띄워 주고 했을 텐데.”

“제2 야당에 뭐 먹을 게 있다고 기어들어 가나, 그래? 우리 당이라면 몰라도.”

“입 다무세요!”

의원들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안 그래도 국회 임시회에서 여러 의견 충돌로 서로 감정이 안 좋던 차에 신재현 인터뷰까지 겹친 상황이었다.

불난 집에 기름 부은 듯 분노가 퍼져나갔다.

싸움에는 남녀노소가 없었다.

유서 깊은 국회 드잡이질이 일어나기 직전, 한 초선 의원이 신재현의 뒤를 쫓아 달렸다.

***

“팀장님, 잠시만요!”

막 1층을 나서던 나는 한 남자의 목소리에 돌아섰다.

나를 영입하러 왔던 제2 야당의 초선 의원 한진호였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저 사람은 붙잡을 거라 예상하고 있었기에 나는 의사당 밖으로 나가며 눈짓했다.

숨을 몰아쉰 한진호가 잔뜩 화난 목소리로 따졌다.

“저 엿 먹이려고 일부러 그런 겁니까? 저 속인 거예요?”

“아닙니다.”

“그럼 무슨 생각으로 그런 얘길 한 겁니까? 국회 오겠다고 했다가 막상 와서는 우리 당을 개망신시키고. 당신 때문에 앞으로 내가 어떻게 될지 알긴 알아요?”

한진호는 핏발 선 눈으로 노려보았다.

“초선 의원 설 자리는 더더욱 없어질 거고, 어떻게든 당을 깨끗하게 해 보려던 계획은 다 어그러졌어. 당신 때문에!”

나는 한진호가 말을 마치기를 기다렸다.

그동안 습관적으로 안주머니를 더듬었다가 소득 없이 빈손을 꺼냈다.

여기는 흡연 금지 구역인 데다, 지금 나는 금연 중이었다.

“뭐라 말 좀 해 보시죠!”

내가 별 반응이 없자 한진호가 씩씩거렸다.

나는 그의 머리 위를 슬쩍 올려다보고는 입을 열었다.

“애초에 저를 찾아오셨을 때, 국회의원이 될 생각은 없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국회에 가 보고 싶다고도 했구요.”

“지금 말장난하시는 겁니까?”

“의원님이 듣고 싶은 대로 들으셨다는 겁니다. 그리고 솔직히 의원님 얘기 듣고 혹시나 하는 마음은 있었어요. 저는 그래도 썩은 놈은 일부일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일부입니다!”

“그래서 오늘 직접 와 본 겁니다. 희망이 있지 않을까 하고.”

“그래서요? 어땠습니까?”

한진호가 긴장된 얼굴로 물었다.

아직도 내 마음을 돌릴 수 있을 거라 생각하는 걸까.

오늘따라 유독 담배가 생각났다.

나는 자꾸만 안주머니를 뒤지고 싶은 것을 참으며 바지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었다.

“제가 뭘 해야 할지는 확실히 알았죠.”

“돌려 말하지 말고 속 시원하게 말씀해주세요!”

한진호의 재촉에도 나는 입을 열지 않았다.

대부분의 국회의원이 개판이었다, 다 털어버리고 싶더라, 이런 말을 하면 누가 믿을까.

아니, 내 말이 새어나가도 곤란하다.

특히, 언젠가 저놈들 싹 엎어버릴 거다, 이런 말은 절대 못 한다.

당장 오늘 일만 해도 적을 많이 만들었다.

“그보다 의원님, 제가 궁금한 게 있습니다. 제게 하신 말씀 진심입니까? 진심이 아니라면 배우 뺨치는 연기라는 소리거든요.”

“당연히 진심입니다. 절 얼마나 놀려야 직성이 풀리겠습니까?”

“그렇다면 더욱 무서운 일입니다. 입으로는 정화를 얘기하면서 한쪽 발은 늪에 담그고 있거나, 아니면 정말 스스로 의식 없이 그런 짓을 했다는 거니까요.”

“대체 무슨 소릴 하는 겁니까!”

한진호가 불안한 표정을 지었다.

저 반응을 봤을 때, 모르고 한 건 아닌 것 같았다.

“의원님, 조만간 고지서 한 장 날아갈 겁니다.”

“고지서요……?”

한진호가 이를 악물었다.

“금액이 크지 않고 제게 하신 말씀이 진심인 것 같아서 일 크게 안 만들고 조용히 고지서만 보낸 겁니다.”

“제가 뭘 얼마나 해 먹었다고 그런 것까지…….”

“금액이 작으니까 탈세해도 된다는 겁니까? 작다는 기준이 뭡니까? 처음엔 일이백에서 시작해서 억까지 가는 사람들, 많이 봤습니다.”

“그래도…….”

“나중에 거액의 탈세로 저와 마주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네요. 그땐 정말 의원님의 진심을 의심하게 될 것 같으니까.”

한진호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

세상에 칠 놈이 너무나도 많다.

나는 심란한 마음으로 서울청 사무실에 들어섰다.

“다녀왔습니다.”

“어, 팀장님!”

쌍수를 들고 환영하던 팀원들이 내 표정을 보자마자 손을 내렸다.

“뉴스 봐서는 팀장님이 또 사고 치신 줄 알았는데, 왜 사고를 당한 얼굴을 하고 계세요?”

“국회가 너무 개판이라서요.”

“왜 새삼스럽게 그런 얘기를 해? 몇 년 전엔 국회에서 망치 들고 싸우던데.”

장세훈이 낄낄대며 웃었다.

저렇게까지 시원하게 웃는 걸 보니 고민했던 내가 바보처럼 느껴진다.

그래, 뭐 별거 있냐.

어떻게든 해 보자.

손발부터 잘라내면 되겠지.

그럼 어디부터 시작할까.

자리에 앉아 고심하고 있을 때 황민우가 조용히 다가와 웬 서류봉투를 전달했다.

“응? 이게 뭔가요?”

“권현아 1팀장님께서 전달해 달라고 하셨습니다. 열지 말고 전달하라고 하셔서 내용은 저도 모르겠습니다.”

서류봉투의 발신인에는 아무것도 쓰여 있지 않았다.

수신인 란에 ‘서울지방국세청 특수조사 2팀 신재현 팀장님 앞’이라고 쓰여 있을 뿐이다.

주소가 없는 것치곤 직함이 매우 구체적이었다.

권 팀장이 준 건데 설마 이상한 건 아니겠지.

풀로 단단히 붙어 있는 입구를 가위로 잘라내고 안에 든 것을 꺼냈다.

몇 장의 서류였다.

자료인가 싶어 서류를 들여다보던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이걸 진짜 권 팀장이 줬다구요?”

“네. 아마 지금 1팀 사무실에 계실 겁니다.”

의아해 하는 팀원들을 남겨두고 나는 헐레벌떡 옆 팀의 문을 두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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