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8화. 제발 우리 당에!(1)
신재현이 집 앞에서 뜻밖의 대치를 하고 있기 하루 전, 제2 야당의 사무실에서는 침통한 분위기 속에 회의가 한창이었다.
“대선이 얼마 안 남았습니다. 이대로는 안 돼요. 뭔가 대책을 세워야 합니다.”
“여당은 쟁쟁한 후보들이 경선을 치르네 마네 하고 있고, 제1 야당은 하동문이 독주하고 있습니다. 그에 반해 우리 당은 뾰족한 인물이 없는 상황이에요. 이러다 아무것도 못 하고 제1 야당에게 지지율만 상납하게 생겼습니다.”
“지금 대선이 문젭니까? 당장 내년 4월에 있을 총선이 문제인데. 미니 대선 소리가 나오고 있어요.”
“그러니까 총선에서 확 치고 나가서 눈길을 끈 다음에 대선까지 파바박 달려야죠.”
“그걸 그렇게 쉽게…….”
단순하게 말하는 의원에게 한심하다는 눈빛이 모였다가 떨어졌다.
자세하게 말할 기분도, 여력도 들지 않았던 것이다.
“영입할 사람 없습니까? 인터넷에서 유명하고 인기 많고 이미지 좋은 사람.”
“백중원이요.”
“그 사람은 안 한다고 엄포를 놨잖아요.”
“그럼 그닥 없는데…….”
대답은 역시나였다.
예상을 빗나가지 않는 단순함에 의원들이 통탄했다.
“아이고…….”
“의원님, 말 좀 너무 쉽게 하지 마십시오!”
의견을 낸 의원은 당당했다.
“뭐가 문젭니까? 그런 사람이 우리 당 지지한다는 말 한 마디만 해 봐요. 얼마나 지지율이 올라갈지 상상이 갑니까? 50%도 꿈이 아니라니까요?”
“의원님, 상대는 공무원입니다. 공무원은 정치적인 발언을 할 수 없어요.”
“공무원은 평생 공무원이랍니까? 우리 중에 공무원 출신 많잖아요. 국민의 부름을 받고 국회의원이 되면 해결되는 문제입니다.”
이들 중에서도 어릴 적부터 정치에 뜻을 두고 정치 인생을 걸어온 사람은 많지 않았다.
오히려 어느 분야에서 스카우트되어 온 사람, 지역에서 나름 잘나가던 사람이 구의원, 구청장, 시의원을 거쳐 의원이 된 사람 등 출신이 제각각이었다.
“저렇게 말하니까 맞는 말 같긴 한데…….”
“맞긴 뭘 맞아요! 이 생각을 다른 당은 못 했을 것 같아요?”
“그러게요. 왜 다른 당은 신재현을 가만히 놔뒀답니까.”
“뜨거운 감자라서 그렇습니다. 작년에 신재현이 막 뜨기 시작했을 때 유명세 좀 이용하겠답시고 류석호가 직접 세무서 찾아간 적 있었죠? 그래서 어떻게 됐습니까. 오히려 의원석이 1석 줄어드는 결과가 나왔죠.”
“그건 류석호가 병신이라 그렇지요. 내가 봐도 사람이 좀 얍삽하고 어리석었어요. 다른 사람이 선수 칠까 봐 새벽같이 기자들 몰고 나갔잖아요.”
“그게 문제가 아니에요. 신재현이 류석호 뒤가 구린 걸 어떻게 알고 쳤겠어요?”
“글쎄요. 누가 알려줬나?”
“그때 우리 추측도 그랬습니다. 누가 귀띔해줬거나, 류석호가 대놓고 이용하려는 모양새니까 캐봤더니 정말 뒤가 구리길래 터뜨렸거나. 둘 중 하나인가 했죠.”
“그래서 그게 뭐가 문젭니까?”
“아이고…….”
의원들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이럴 시간이 없는데…… 간단히 알려드리겠습니다. 누군가 신재현에게 류석호의 뒷사정을 귀띔했다면, 그건 분명 류석호를 못마땅해 하는 상대 당이었겠지요? 우리 당은 아니니 분명 제1 야당일 겁니다. 제1 야당 하동문의 손길이 닿은 사람이 우리에게 오겠습니까?”
“하동문 사람이 아닐 수도 있잖습니까.”
“그걸 모르니 섣불리 건드리지 않는 거지요.”
“정치인의 손이 닿지 않은 사람이면요? 직접 확인해 보고 끌어들입시다!”
다시 단순한 결론을 내리는 의원에게 사람들이 기겁하며 소리쳤다.
“정치랑 연관이 없는 사람이면 더 무섭지! 작년 신재현은 지금처럼 유명하지 않았어요. 일 열심히 하는 공무원 A였다고. 뉴스에서 미담 취급으로 몇 번 보도하다 말 사람이었단 말입니다. 그런 공무원이 느닷없이 세무서에 찾아온 국회의원을 보자마자 ‘저 새끼 구린지 확인해야겠다’라고 결심했다는 뜻이 됩니다. 이게 정상으로 보입니까?”
그제야 의원은 입맛을 쩝쩝 다셨다.
“그래도 시도해 볼 만은 하지 않나요? 찔러 보기만 하는 거라면 상관없고, 만약 일이 잘돼서 넘어오면 최고인데. 우리는 지지율만 올리면 되는 것 아닙니까. 평소 하던 대로 단물만 쪽, 이거 안 됩니까?”
“갔다가 뒷조사 당해서 털리면 당이 휘청거리는데요.”
“끄응…… 다루기 어렵긴 하네.”
의원은 어지간히 아까운지 신음을 흘렸다.
그에게 설명하던 의원이 달래듯 말했다.
“그래서 이렇게 다들 슬슬 눈치만 보고 건드리지를 못하는 겁니다. 화약고 같은 놈이에요. 장관 모가지 날리는 거 봤죠? 다음엔 어디로 튈지 몰라!”
의원들이 일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처음 의견을 냈던 의원은 포기할 줄을 몰랐다.
“근데 이랬다가 다른 당에서 낼름 먹으면요? 총선하고 대선 둘 다 그 당이 독식할 텐데. 내가 요즘 인터넷을 봤는데 일개 공무원 인기가 장난이 아니에요. 대통령 피선거권 나이를 내려야 한다는 글도 봤다니까?”
“에잉, 쯧쯧. 요즘 젊은이들은 왜 그렇게 가벼운가 몰라. 우르르 몰려갔다가 우르르 몰려오고.”
“우르르 꺼지기 전에 이 틈에 지지율을 흡수해야지요!”
“아까운 건 여기 있는 모두가 마찬가집니다. 하지만 누가 건드릴 겁니까?”
“걸릴 것 없는 떳떳한 분이 가시면 되지 않습니까? 아무리 조사해봤자 아무것도 안 나오면 장땡 아닙니까? 이야, 내가 생각해도 굿 아이디어인데!”
단순, 그 자체인 의원은 스스로의 의견이 맘에 드는 듯 껄껄대며 웃었다.
그러나 자리에 모인 의원들의 표정은 썩어들어 가고 있었다.
“응? 왜들 그러십니까?”
“거참, 말을 해도…… 크흠.”
의원들은 서로 눈길을 피했다.
깨끗하고 당당한 사람이 가라니, 말은 쉽다.
문제는 대전제부터가 잘못 되었다는 것이다.
깨끗하고 당당한 사람.
적어도 이들 중에는 한 명도 없었다.
그렇다고 자기들 입으로 ‘우린 안 됩니다’라고 말할 뻔뻔한 의원은 없었다.
“그럼 의원님이 가시지 그러십니까.”
한 의원이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단순한 의원에게 폭탄을 떠넘겼다.
“같이 가 주실 거라면 제가 가겠습니다.”
“크흠.”
폭탄은 가볍게 불발되었다.
꼽사리 끼어 따라간다고 해도 신재현 눈에 띄는 것부터 사절이었다.
떠넘기려던 의원이 도로 입을 다물었다.
“우리 당에 이렇게 인재가 없습니까? 다음 총선에는 우리가 제1 야당 해봐야 할 것 아닙니까! 하동문이한테 아예 다 갖다 바칠 거예요?”
“아, 그럼 어쩌라는 겁니까?”
의원들이 버럭 화를 내자 단순한 의원이 해결책을 내놓았다.
“초선, 초선 중에서 찾아봅시다. 아직은 깨끗한 사람이 있을지 모르잖습니까. 그리고 신재현을 끌어들이는데 성공하면 당 수뇌부에서 한 자리 준다고 합시다.”
“어? 그건 괜찮은데요. 초선이면 어차피 버림 패여도 상관없고 끌어들이면 금상첨화고. 수뇌부 준다고 해도 한 자리쯤은 의사결정에 지장 없으니.”
“좋죠?”
“의원님이 이런 잔머리는 아주 비상하십니다.”
“하하하. 세상은 단순하게 살아야 눈에 보이는 것도 있는 법입니다. 자, 그럼 누굴 보낼지 초선들 명단부터 검토합시다.”
그렇게 시민단체 출신의 초선 의원 하나가 제물로 선택되었다.
“제가 반드시 해내겠습니다!”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러 가는 줄도 모르는 초선 의원은 의욕에 넘쳐 일을 받아들였다.
***
신재현은 가만히 눈을 깜빡였다.
갑자기 튀어나온 남자의 말이 잘 이해가 되질 않았기 때문이다.
정확히는 뜬금없이 이게 무슨 말인가, 하는 심정이었다.
반면 초선 의원은 신재현의 반응에 흡족했다.
다짜고짜 본론을 던진 보람이 있었다.
누구든 국회의원이 될 기회가 주어지면 놀라고 믿기지 않을 테니까.
그래서 의원은 재차 물었다.
“국회의원이 되실 수 있다는 소립니다.”
그러나 신재현의 반응은 예상외였다.
“이게 무슨 개소리죠?”
“……예?”
의원은 당황했다.
국회의원은 명실상부 최고의 권력자다.
그런데 저런 반응이라니.
의원이 주춤하는 사이 신재현의 질문 공세가 시작되었다.
“어디서 오셨습니까?”
“제2 야당입니다.”
“왜 오셨죠?”
“말 그대로 국회의원으로 영입하기 위해서죠.”
“그러니까 왜 국회의원으로 영입하냐구요.”
의원이 상정하지 못한 질문이었다.
보통 영입 의사를 밝히면 처음엔 믿지 못하다가 나중엔 뛸 듯 기뻐한다.
신재현도 그럴 것이라 생각했다.
“왜 국회의원이냐니. 당연한 것 아닙니까. 신 팀장님의 꿈을 펼치기 위해서죠.”
“제 꿈이 뭔데요.”
“이 나라를 더 나은 모습으로 바꿔가기 위해서 아닙니까?”
초선 의원 특유의 목표와 패기였다.
그러나 신재현은 듣자마자 입을 떡 벌렸다.
“무척 원대하시네요. 저는 당장 오늘내일 먹고사는 것하고 눈앞에 보이는 탈세범 다 족치는 게 목표인데. 나름 저도 목표를 높게 잡았다고 생각했는데 이건 못 이기겠습니다.”
“절대 아닙니다! 국회의원은 법을 제정하고 다른 기관을 견제할 수 있는 힘을 지녔습니다. 저는 신 팀장이야말로 국회로 오셔야 한다고 생각해요! 공무원으로 일하시면서 탈세범 몇 명을 잡으셨습니까? 모든 사람들이 팀장님처럼 열성적인 건 아니에요. 팀장님 눈에 띄는 바퀴벌레를 족친다 해도 숨어 있는 바퀴벌레는 얼마든지 많습니다!”
의원은 매우 진지했다.
더군다나 그에게서 보이는 숫자도 없었다.
때문에 적당히 대꾸해주고 쫓아 버리려 했던 신재현은 생각을 바꿔 진지하게 대답했다.
“국회의원 한 사람의 힘으로 뭘 할 수 있습니까? 더군다나 제가 지금 들어가면 초선이죠. 당 수뇌부가 요구하는 대로 움직일 뿐이잖습니까.”
“초선일 때는 그렇지만 2선, 3선이 되면 힘이 실립니다. 그때는 목소리를 낼 수 있어요.”
“그때까지 언제 기다립니까? 나중에 힘을 얻는다고 해도 당정 싸움에 모든 의도가 희석될 것 아닙니까. 저는 더러운 정치판에 끼어들 생각이 없습니다.”
신재현의 확고한 대답에 의원이 폭발하듯 소리쳤다.
“더럽기 때문에 들어와야 하는 겁니다! 물갈이하고 정화하려는 노력을 해야죠!”
의원은 달래듯 말했다.
“와 주십시오. 뜻있는 사람들이 필요합니다.”
신재현은 잠시 의원을 바라보다가 한숨을 쉬었다.
‘국회를 한 번쯤 보고 싶기는 했는데. 이걸 기회라고 봐야 하나.’
국회의원 중 몇이 깨끗하고 몇이 더러운지는 모른다.
그러니 자신의 눈으로 보고 싶었다.
지금 당장은 치지 못하더라도 어떤 놈이 적인지는 알고 싶었으니까.
“먼저 말해 두는데 국회의원이 될 생각은 없습니다. 제가 하고 싶은 건 탈세범 잡는 것이지 정치질이 아니니까요. 하지만 국회는 가 보고 싶군요. 의원님들을 만날 수 있습니까?”
신재현은 순수하게 국회의사당이라는 장소를 말한 것이었지만 초선 의원은 비유적인 뜻으로 알아들었다.
반은 넘어온 것이라고 생각한 초선 의원이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입니다! 설득할 기회를 한 번 더 주셔서 감사합니다. 조만간 당사로 모시겠습니다.”
“당사 말고 국회요. 국회의사당.”
오해를 풀 두 번째 기회였지만 초선 의원은 그것 역시 미래의 직장을 보고 싶어 하는 것이라고 알아들었다.
“그럼 일정 알아보고 연락드리겠습니다.”
“네. 부탁드립니다.”
초선 의원은 신나서 당사로 돌아갔다.
이 일이 얼마나 큰 파문을 불러올지도 모른 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