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7화. 세무직 공무원이 하고 싶다
가문대학교에 다녀온 후.
수정이에게서 연락이 온 것은 일주일이 지나서였다.
그간 단 한 번도 연락이 없던 수정이는 말문 터진 아이마냥 끝없이 문자를 쏟아냈다.
대충 요약하자면, 어문학과 모든 학생들이 이 사건을 알게 되었고, 상경대 학생들의 도움으로 어찌 저찌 검토를 끝마쳤다는 얘기였다.
다음 학기에는 교양으로 회계 원리를 들을 거라는 잡담 끝에 수정이는 나를 불러냈다.
-도와줘서 고마워ㅋ 링크 보낼 테니까 카페로 나와라
-귀찮은데.
-친구들이 고맙다고 인사하고 싶대.
-인사만 받을게
-아 나오라고! 그날 내 친구가 너 보겠다고 벼르고 있었는데 그냥 갔잖아!
-하.
사촌 동생인데도 어떻게 이렇게 친동생 같은지 모르겠다.
당연하지만 칭찬이 아니다.
그렇게 귀찮음을 무릅쓰고 카페로 나가자 신수정과 두 명의 학생이 기다리고 있었다.
한 명은 학생회실에서 봤던 여학생이고, 다른 한 명은 남자인데 처음 보는 얼굴이다.
“안녕하세요! 수정이 친구 박은하예요. 오빠 팬이에요!”
여학생은 먼저 손을 내밀며 악수를 청했다.
이 나이 대의 학생들이 악수로 인사하는 건 드문 일이라 조금 놀랐다.
“감사합니다. 신재현입니다.”
그리고 악수한 후에 굉장히 소중하게 손을 바라보는 걸 보고 더욱 놀랐다.
나는 애써 박은하라는 학생을 외면한 후에 남학생에게 시선을 돌렸다.
“국문학과 2학년 백경재입니다. 사실 실례인 건 아는데 제가 궁금한 게 많아서 따라오게 됐습니다.”
“궁금한 거요?”
“네. 저도 세무직 공무원이 하고 싶어졌거든요.”
***
백경재는 국문학과를 온 것을 후회하지는 않았다.
문학이 좋았고 그 안에 담긴 작가의 뜻을 읽는 것이 좋았으니까.
시대를 막론하고 역사에 남은 문학은 읽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풍요로워진다 싶을 정도로 아름다웠다.
물론 음운론이니 통사론이니 하는 소리를 듣다 보면 이러려고 대학교 왔나 싶어질 때도 있다.
하지만 국문학과에는 이런 것보다 더 큰 문제가 하나 있었다.
바로 취직이다.
대학원 진학은 생각도 안 했고, 연구소는 꿈도 못 꿨다.
동기들 중에는 출판사나 언론 쪽으로 가는 학생들도 많았는데, 요즘엔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학생도 의외로 늘고 있었다.
공무원 시험의 필수 과목인 국어를 쉽게 통과할 수 있는 데다 한자와 영어도 어느 정도 배운다.
겹치는 과목이 많은 것이다.
백경재 역시 공무원 시험을 보기로 결심하고 틈틈이 공부를 하고 있었다.
직렬은 당연하게도 행정.
그런데 어느 날 머리도 식힐 겸 틀어놓은 TV에서 신재현을 보고 말았다.
상대를 가리지 않고 족치는 시원함.
사회에 발을 들여놓은 적 없는 대학생 백경재에게는 자신의 꿈이자 미래가 거기에 있었다.
잘난 척하는 엘리트들의 사무실을 뒤지고 그들에게 호통 친다.
세무조사 나간 공무원 백경재 앞에 꼼짝도 못하는 엘리트들의 모습이 눈에 선했다.
더군다나 그 소문의 주인공 신재현은 무려 고졸이었다.
자신이 공무원이 된다면 그보다 더 잘할 자신이 있었다.
“형님 보고 제 꿈을 정했습니다. 저도 세무직 공무원이 될 거예요. 형님은 제 롤모델입니다.”
백경재의 이야기를 들은 신재현은 처음엔 놀라더니 곧 반갑게 웃었다.
“이야, 어려운 길을 가려고 하시네요.”
백경재는 왜 신재현이 이렇게 말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그저 일이 많고 힘드니 그런 거라고 막연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신재현은 잠시 이야기를 멈추고는 자신이 마실 커피를 주문했다.
백경재가 사겠다고 했지만 신재현은 극구 거절했다.
‘되게 주의 깊네. 아무리 김영란 법이 있어도 겨우 4천 원인데. 공무원은 다 그런가?’
여러모로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 많았다.
금방 커피를 가져온 신재현이 자리에 앉자마자 입을 열었다.
“저를 롤모델로 하겠다는 말은 상대가 누구든 다 치겠다는 거죠?”
“네! 법이라는 무기를 들고 개새끼들을 때려잡는 거요!”
백경재의 말에 신재현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법은 우리 편이 아닌데요…… 아니 그건 둘째 치고 백경재 씨가 기준을 잘 잡고 과세한다면 당연히 환영이죠.”
“기준이라고 해 봤자 세법 아닌가요? 국회에서 법을 만들어 둔 건데 어려울 게 있나요?”
신재현은 잠시 난감한 얼굴을 했다.
자신의 질문이 뭐가 그렇게 이상한지 백경재는 이해하지 못했다.
“음, 예를 들어 줄게요. 1세대 1주택 비과세라는 말 들어봤죠?”
“한 가정에 집 한 채만 가지면 세금 안 물리는 거 말씀이죠?”
“맞습니다. 어떤 사람이 2층짜리 건물을 갖고 있다고 봅시다. 1층은 슈퍼고 2층은 집으로 쓰기로 했는데, 2층에 세입자가 좀처럼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이 사람은 2층을 공실로 두었습니다. 그리고 양도했어요. 비과세일까요, 아닐까요?”
백경재는 수능 문제가 떠올라 피식 웃었다.
어렵게 꼬아 놓은 것 같지만 답은 문제 속에 숨겨져 있었다.
“형님이 TV에서 강조하신 거 봤습니다. 실질과세원칙에 따라서 실제 용도는 집이니까 비과세죠.”
백경재는 자신 있게 대답했다.
법은 명백하고 거기에 끼워 맞추는 것은 쉽기 때문이다.
신재현은 맞았는지 틀렸는지는 얘기하지 않고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
“실제로 국세청은 이렇게 했습니다. 그 건물에 찾아가서 2층에 드러누워 봤어요. 가구를 가상으로 배치해서 살 수 있을지를 봤습니다. 동선이 무리였습니다. 그리고 가스와 전기 배관이 주택용이 아닌 상업용이었어요. 국세청은 집이 아니라고 판단하고 과세했습니다.”
“어…….”
백경재의 눈빛이 흔들렸다.
자신이 생각한 법은 객관적이고 명료한 하나의 법칙이었다.
“법은 현실과 동떨어져 있어요. 항상 그래요. 그래서 개정이 자주 이루어지는 겁니다. 현실과 조금이라도 발맞추기 위해서.”
“그, 그래도 그건 명확하게 하기 위한 과정이잖아요. 조사하고 과세하고. 어차피 회계로 장부 작성하잖아요. 거기에 어긋나는 것만 잡아내면 되는 거 아닌가요?”
“실제 과정은 이렇습니다. 통장을 펼쳐요. 입금이 있고 출금이 있죠? 통장에 기록된 모든 입출금 내역에는 증명이 있어야 해요.”
“통장이 가짜일 리는 없고, 돈이 들어오고 나갔으니 그게 곧 증명 아닌가요? 뭘 검증하는 거예요?”
“통장에서 1일 100만 원이 나갔습니다. 이 중 세금계산서가 40만 원, 카드 영수증이 40만 원, 현금영수증이 5만 원 있습니다. 나머지 15만 원은 비죠?”
“네.”
“일단 그 15만 원은 전부 용도 불분명입니다. 따로 체크해 두고 끝까지 밝혀지지 않을 경우 과세 대상이죠.”
“생각보다는 쉽네요.”
신재현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렇게만 되면 편한데, 사람들은 생각보다 통장을 깨끗하게 쓰지 않습니다. 실제 약속보다 돈이 늦게 나가고, 들어온 돈이 환불되고, 채무를 상품과 퉁치기도 하고, 관계 회사 네다섯 군데에 돈을 돌리기도 합니다. 그 모든 것을 일일이 확인해야 하는데, 그런 거래가 수만 건에 달합니다.”
백경재는 흠칫했다.
“컴퓨터는 둬서 뭐에 쓰고요?”
“엑셀로 정렬해도 확인은 사람이 해야죠. AI가 해 주는 것도 아닌데.”
백경재가 눈에 띄게 시무룩해하자 아차 한 신재현이 화제를 돌렸다.
“그래도 말씀하신 것처럼 과세하는 건 보람 있습니다. 해 보시면 그간의 고생이 싹 날아가는 기분이에요.”
“역시 그런가요?”
백경재가 흥미를 보이자 신재현은 이때다 하고 이야기를 풀었다.
세무직 지망자가 겁먹고 도망갈까 봐 열심이었다.
“아까 말했듯이 세법이라는 게 적용에 대한 싸움이 있잖아요. 어떻게 보면 국세청은 공격이고, 납세자는 방어거든요. 왜냐면 한쪽은 과세하려고 하고 한쪽은 과세 취소하려고 하니까.”
“변호사들이 법정에서 싸우는 거랑 비슷하네요.”
“네. 그래서 상대방이 부인할 수 없도록 과세에 필요한 근거를 긁어모으는 겁니다. 발품 팔아서요.”
백경재의 눈이 반짝였다.
“사무실을 뒤집어서요?”
“무조건 뒤집는 건 아니구요. 절차에 따라야죠. 국세기본법에 보면 세무조사 전에 미리 안내문을 보내라고 쓰여 있거든요.”
“미리 세무조사 안내문을 보낸다구요? 그런 법이 어디 있어요?”
“장부를 은닉, 파기할 것 같다는 범죄의 냄새가 나면 예고 없이 조사 가능합니다만, 10번 중 9번은 미리 알려요. 안 그러면 민원 들어오거든요.”
“국세청에 민원이요?”
“엄청나게 들어와요. 그뿐 아니라 불복이라고 해서 세금 고지서에 불만을 품고 소송을 거는 경우도 있어요. 이러면 좀 골치가 아파지죠.”
백경재는 점점 무언가 자신이 생각한 것과 거리가 멀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도 세금은 모든 국민의 의무고, 공평하게 적용되는 거잖아요? 그럼 저도 대기업이든 뭐든 다 털 수 있는 거죠?”
백경재가 가장 하고 싶은 것이 그것이었다.
신재현이 했던 것처럼 멋있게 유명인들을 털어 사회 정의를 구현하는 것.
그러나 의외로 신재현은 쉽게 대답하지 않았다.
“그게 진짜 어려운 문제긴 한데…….”
“형님은 하셨잖아요.”
“……하긴 했죠. 그러려고 다만 반대하는 상사의 목을 날리고, 납세자와 드잡이질하고, 필요하면 딜을 하고…… 뭐 그렇게 했죠.”
“상사의 목을, 뭐라고요?”
신재현이 거짓말을 한 것은 아니었으나, 백경재가 받아들이기에는 충격적인 것이었다.
“저는 아무래도 까다로운 사람들을 상대하니까 남들보다 철저하게 조사하는 편이거든요. 나중에 불복 들어와서 고생하느니 제가 구르는 게 나으니까.”
그 말에 백경재는 홀린 듯이 물었다.
“보통 몇 시에 퇴근하세요?”
“빠르면 9시, 보통은 10시엔 퇴근해요. 조사할 게 많을 땐 밤샐 때도 있고.”
가만히 듣고 있던 신수정이 끼어들었다.
“오빠 주말에도 자주 나가. 요즘엔 사건 끝나서 한가한 거지, 저번엔 한 달에 3번 쉬었어.”
백경재가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어려운 직업이었군요.”
“예? 아니에요! 좀 힘들긴 한데 보람 있고 재밌다니까요? 과세 근거 찾는 것도 어떻게 보면 틀린 그림 찾기…….”
신재현의 말이 이어질수록 백경재의 표정은 어두워졌다.
“웬만한 각오로는 안 되는 거였군요. 깊이 고민해 보고 제게 맞는 길이라 생각되면 각오하고 뛰어들겠습니다.”
백경재는 굳게 끄덕였다.
***
“진짜 이상하네.”
카페에서 수정이 일행과 헤어진 후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나는 의문을 떨칠 수 없었다.
헤어지기 직전까지도 겁먹은 백경재의 얼굴이 펴질 줄을 몰랐기 때문이다.
-각오하고 뛰어들겠습니다.
하지만 생각보다 나쁜 결과는 아니다.
공무원 시험 때는 좋은 점만 바라보고 공부했다가, 막상 세무직 들어오고 나서 생각했던 것과 현실이 달라서 그만두는 경우가 굉장히 많으니까.
각오하겠다면 나야 고맙지.
좋은 공무원이 될 것 같다.
나는 기분 좋은 기대감과 함께 골목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집 앞까지 다가갔을 때 느닷없이 전봇대 뒤에서 나타나는 그림자를 보고 화들짝 놀랐다.
훤칠하게 큰 키의 중년 남자가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고 있었다.
기자? 아니다.
공무원? 더더욱 아니다.
월급으로 충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비싸 보이는 정장과 내려다보는 듯한 눈빛으로 봐서는 일반 회사원도 아니다.
“누구시죠?”
남자는 내 질문을 무시한 채 나를 꼼꼼히 살피더니 입을 열었다.
“신재현 팀장님. 국회의원이 되어보실 생각 없으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