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1화. 보이지 않는 뒤에서(3)
-탁.
고기를 뒤집던 이선균 과장의 젓가락이 우뚝 멈췄다.
지글거리는 소리와 함께 주변 소음이 시끄럽게 귀를 괴롭혔다.
이선균은 고개를 돌리지도 않은 채 눈동자를 굴려 주변을 살폈다.
내가 물어보지 말아야 할 것을 물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예전 같으면 이런 화제는 일부러 모르는 척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이정도는 공유할 수 있는 신뢰 관계가 형성되어 있지 않을까?
적어도 내 생각에는 그랬다.
그러니 이번 질문은 내가 그들의 뒷사정에 한 발 들여놓음과 동시에, 내게 어디까지 알려줄까 하는 실험이었다.
이선균은 술을 따르는 척하며 가게 안을 꼼꼼히 살핀 후 목소리를 낮췄다.
이런 대화를 많이 해봤는지 주위를 살피는 모습이 굉장히 익숙했다.
“아직 정하지 않으셨습니다.”
한껏 집중해야 들릴 정도로 작은 목소리였기에 나는 테이블에 팔을 괴고 상체를 앞으로 기울였다.
“곧 임기가 끝난다는 소문이 있던데요.”
장관이나 청장은 법적으로 임기가 보장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권력자의 한숨 한 방에 직위가 날아가곤 한다.
하지만 다른 곳은 몰라도 국세청은 과세 혼란을 방지하기 위해 암묵적으로 2년은 청장직을 수행했다.
사건이 없는 한 적어도 2년은 보장이 되고, 현 청장은 벌써 2년을 넘겼다.
곧 3주년이 다가오고 있었으니 언제 교체되어도 이상하지 않은 수순이었다.
그런데 아직까지도 후보 내정조차 하지 않는다는 것은, 둘 중 하나였다.
현 국세청장이 눌러앉길 원하는 것이든가, 후계자를 결정하지 못해서.
다만 전자는 가능성이 부족하다.
그 자리는 앉고 싶다고 앉을 수 있는 자리가 아니니까.
“이번 청장님의 임기는 후보자가 결정되는 순간 끝날 겁니다. 이미 청장님은 내려오실 준비를 마치셨어요. 남은 건 후임인데…….”
이선균은 복잡한 얼굴로 잔을 비웠다.
“지금 과세관청 권력구도는 매우 단순합니다. 차기 청장에 서울, 중부 둘 중 하나가 앉는 건 확실한데 문제는 이 둘의 힘이 매우 비등하다는 거예요. 독보적으로 ‘이 사람이 청장감이다!’하는 게 아니거든요.”
“그럼 한쪽이 완벽하게 승복하지 않으면 다음 국세청은 갈기갈기 찢어지겠군요.”
“예. 그래서 고민하고 계십니다. 섣불리 누구를 밀어줄 수가 없어요. 국장님이 원하는 건 권력 싸움으로 피바다가 된 국세청이 아니에요. 한마음이 되어도 전진할까 말까인데 둘로 쪼개진다면 정말 답이 없죠. 서울청에서 겪어봐서 잘 알 겁니다.”
그 말대로다.
제대로 된 내부 싸움을 겪어본 건 처음이었다.
2국장이었던 김상민의 수법만 해도 더럽고 치사했는데, 여러 이해관계가 얽히면 더욱 치졸한 싸움이 오가겠지.
“두 분 중 누가 더 그 자리에 어울린다고 보십니까?”
“그것도 고민 중이십니다. 어느 누구든 겉모습을 걷어내면 밑바닥이 드러나죠. 그게 얼마나 깊고 추할지는 걷어보기 전에는 모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누군가를 믿고 맡기기 전에 나름의 방법으로 시험한다.
나 역시 민치호 국장의 시험을 통과했으니 이 자리에 있고.
“민치호 국장님은 남의 손에 들기 버거울 정도의 힘을 쥐여 주고 그 그릇을 보는 방법을 주로 쓰신다고 들었습니다. 서울청장님은 밑바닥까지 떨어뜨려 본다고 하셨구요.”
처음 서울청에 온 날, 서울청장이 했던 말이다.
벼락 출세한 사람이 갑자기 돌변한 것처럼 주변인을 무시하는 건 종종 있는 일이다.
벼랑 끝에 몰린 사람이 범죄를 저지르는 것도 흔한 일이고.
“하지만 이번엔 두 경우 모두 쓰기 어렵지요.”
“그렇네요. 두 분 다 이미 지방청장의 자리에 계시니 더 큰 힘을 주는 것도 힘들고, 그렇다고 힘겨워할 만큼 큰 사건을 만드는 것도 어렵겠네요.”
“그 두 분이 힘겨울 정도의 사건이면 국세청이 휘청거릴 테니까요.”
민치호의 고심하는 얼굴이 눈에 그리듯 선했다.
“고민이 많으시겠군요.”
“걱정 마세요. 그런 걱정은 국장님께만 맡겨두면 됩니다. 우리가 필요하면 따로 말씀이 있으실 테니. 반대로 말하면 아직은 신경 안 써도 된다는 뜻입니다.”
이선균은 부드럽게 웃으며 분위기를 환기시켰다.
그런 모습을 보자 문득 둘은 서로를 너무 잘 아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국장의 오른팔.
오랜 기간 합을 맞춰 왔고 그 기간 동안 배신하지 않을 정도로 깊은 신뢰 관계가 형성된 사람.
게다가 국장은 하나의 파벌을 형성할 정도로 패도적인 길을 걸어온 사람이다.
내가 본 둘은 권력에 욕심이 있는 것처럼 보이지 않았는데.
물론 나는 둘의 밑바닥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모른다.
그러나 상대를 가리지 않고 들이대는 나 같은 놈을 원했을 정도면 적어도 그만한 계기가 있었을 것이다.
“과장님. 국장님과 알게 되신지는 오래 되셨습니까?”
슬쩍 묻자 이선균은 무엇을 떠올렸는지 피식 웃으며 말했다.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됐네요. 15년…… 16년인가?”
“오래 알고 지내셨군요.”
나는 이선균의 잔에 술을 채우며 머릿속으로 대충 계산했다.
이선균 과장의 나이가 지금 44세이니 28살 때 국장을 만났다는 뜻이 된다.
16년 전이라고 했을 때는 몰랐는데 지금 내 나이대라고 생각하니 실감이 확 들었다.
“당시엔 IMF를 극복하고 경제계에서도 막 이런저런 시도가 있던 때였죠. IMF 하니 생각나네요. 우리나라 회계가 2000년도를 기준으로 확 발전했는데 왜 그런지 아십니까?”
“……더는 IMF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가 아닙니까? 맑고 투명한 기업 체계를 유지하려구요.”
자신 없게 대답하자 이선균이 웃음을 터뜨렸다.
“이야, 오랜만에 순수한 대답을 들으니 머리가 맑아지는 느낌이 듭니다. 신 팀장은 이런 쪽으로는 아직 깨끗하군요. 어떻게 보면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가르침을 주시면 경청하겠습니다.”
“그렇게 대단한 건 아니에요. 그때 기업들이 줄도산했잖습니까. 가까스로 연명하던 기업조차 살아남기 위해 사업부를 잘라냈죠. 그때 수많은 인수합병이 이루어졌습니다.”
IMF 때 나는 겨우 4살이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나중에 부모님에게서 그때는 지옥이었다는 말만 들었을 뿐이다.
“기업의 가치를 재기 위해서입니다. 어느 부분을 잘라 팔면 나머지가 살 수 있을까. 어느 기업을 살리고 어느 기업을 죽일까. 어느 기업을 사야 이득일까. 회계는 기업의 몸값을 매기는 도구였습니다.”
나는 그만 입을 다물고 말았다.
기업도 사고파는 대상이 되는 것은 알았지만 저런 식으로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그 이후 정부도 노력을 많이 했습니다만 여전히 부정부패는 끊이질 않았습니다. 국세청에는 아주 단단한 파벌이 하나 있었거든요.”
사람이 모이면 서로 이해관계가 달라지니 파벌이 생기는 것도 당연하다.
나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지만 이선균의 말투는 그렇지 않았다.
“학연, 혈연, 지연. 이 셋은 부패하기 딱 좋은 요소입니다. 그중 국세청에는 학연이 지배하고 있었어요. 바로 대학교죠.”
“설마 국세대…….”
“네. 경찰은 경찰대와 비경찰대로 나뉘고, 판사조차 서울대와 비서울대로 나뉩니다. 국세청은 국세대와 비국세대 출신으로 나뉘어 주요 보직은 국세대가 차지하고 있었죠. 저와 국장님은 둘 다 비국세대 출신이었기 때문에 당시 지방을 돌고 있었습니다.”
“지방의 세무서에서 만나신 겁니까?”
이선균은 먼 곳을 바라보는 듯한 초점 없는 눈으로 불판을 바라보았다.
“당시 국세대 출신 세무법인 하나가 어느 기업의 인수합병을 진행 중이었는데, 그때 부정이 있었어요. 조사할 겸 나갔더니 그 기업이 식당에 데려가서 조사관 전원에게 돈을 찔러주지 뭡니까.”
“도, 돈을요?”
“그때 돈을 내던지고 나온 사람은 딱 둘이었어요. 저와 국장님.”
이선균은 피식 웃었다.
“상사고 부하고 자연스럽게 돈다발을 받아 챙기는 모습을 보며 정신이 얼마나 혼미해지던지. 동료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이 모르는 사이에 바꿔치기 당한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갑자기 구역질이 나서 방을 뛰쳐나왔더니 신발을 신고 있던 국장님하고 눈이 마주쳤습니다. 그 길로 둘이 줄행랑을 쳐서 깡소주를 깠지요.”
그렇게 말한 이선균은 소주병을 하나 더 깠다.
꼴꼴꼴, 하는 소리가 처량하게 들렸다.
“그래도 저는 안심했습니다. 두 분이 당당히 뒷돈을 거절할 수 있는 분이어서.”
“하이고, 말도 말아요. 그 후에 둘 다 계장님한테 혼나고 해남으로 날려갈 뻔했으니까.”
이선균은 지나간 일이라며 미소 띤 얼굴로 말했지만 나는 그 웃는 낯 속에서 끓어오르는 분노를 느꼈다.
긴 시간이 지나서 듣게 된 나 역시 화가 날 정도니 당시는 오죽했을까.
“둘이 나란히 서서 혼나고 있는데 당시 옆과의 과장이셨던 현 국세청장님이 오셔서 구해주셨습니다. 한국대에 행시 출신이라 젊은 나이에 과장이셨거든요.”
“오오, 청장님이…….”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느낌이었다.
나는 상체를 기울이며 물었다.
“국세청장님, 서울청장님, 그리고 민치호 국장님 세 분이 한 팀이셨다면서요. 어쩌다 한 팀을 만들게 된 겁니까?”
“파벌을 깨 보려고 했습니다. 세 분이 뭉쳐서요.”
“꽤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요…….”
인맥이라는 것이 얼마나 단단한지는 나도 안다.
꽤 깨끗해졌다는 지금의 국세청도 어느 정도 그 흔적이 남아 있는데.
잠깐, 서울청장과 민치호 둘 다 살아남았다는 것은…….
“결국 성공하셨군요?”
“완전한 성공은 아니었지만 견제는 해냈죠. 지금만 해도 세 파벌이 균형을 이루고 있잖습니까. 여기까지 오는 데도 오래 걸렸습니다.”
혼자 독주하던 파벌 하나를 끌어내려 셋 중 하나로 만들다니.
나는 감탄사를 터뜨렸다.
“대체 어떻게 하신 겁니까?”
그러나 이선균의 얼굴에는 씁쓸함이 감돌았다.
“신 팀장도 알 겁니다. 힘없는 정의는 무능일 뿐입니다. 그래서 국세청장님이 한국대 출신이라는 점을 이용했습니다. 힘이 있어야 목소리도 낼 수 있거든요.”
그건 이미 나도 뼈저리게 느꼈다.
내부 고발?
힘없는 내가 외쳐 봤자 나는 배신자일 뿐이다.
내가 이렇게 앞뒤 안 가리고 칠 수 있는 것도 뒤에서 힘을 실어주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순수하게 내 힘으로 정의를 실현한다?
불가능한 말이다.
“정치질도 좀 하고, 파벌의 부정과 비리를 파헤쳐서 와해시키고. 그렇게 미움을 사서 국장님이 계시던 팀이 폭파됐지요. 그러고도 기어 올라와서 또 파헤치고…… 지금의 세 파벌은 오랜 기간 싸워온 결과입니다.”
쓴웃음을 짓는 이선균을 보자 나는 울컥하는 마음이 들었다.
“과장님. 설마 자책하시는 건 아니죠?”
“자책이라…… 비슷합니다. 물밑에서 싸워가면서도 완전히 끝내진 못했으니까요. 결국 세 파벌이 남았습니다. 지금이야 균형이 맞으니 괜찮지만 어느 한쪽이 득세하게 되면…….”
민치호가 쉽사리 다음 청장을 지지하지 못하는 이유는 이것이었구나.
예전처럼 돌아갈까 봐.
고이고 고여 썩을까 봐.
“과장님. 절대 그렇게 되지는 않을 겁니다. 국장님과 과장님이 두 눈 뻔히 뜨고 계시지 않습니까. 견제하기 위해서 싫어하면서도 파벌을 만드신 것 아닙니까.”
“……당시엔 최선이었습니다. 언제까지고 이렇게 놔둘 생각은 없습니다.”
나는 굳게 고개를 끄덕였다.
“저 역시 돕겠습니다. 부정이든 비리든 다 쳐 버릴 겁니다.”
내내 쓰게 웃던 이선균이 그제야 환하게 미소를 지었다.
그는 반쯤 꼬인 말투로 내 잔에 넘칠락 말락 가득 소주를 부었다.
“든든합니다. 정말로 해낼 수 있을 것 같아요. 아니, 해내야죠.”
함지박만 한 웃음과 함께 우리는 잔을 부딪쳤다.
또 다른 목표가 생긴 날이었다.
민치호를 도와 국세청 내부를 깔끔하게 정리하는 것.
“이왕이면 전국 청렴도 1위를 노려보죠.”
“좋네요! 투명, 공정, 조세 정의! 크하핫!”
이날은 결국 각각 소주 3병씩 비우고 새벽 1시가 되어서야 택시를 타고 집에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