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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세청 망나니-169화 (169/500)

169화. 보이지 않는 뒤에서(1)

특조 2팀의 이야기는 온 청을 떠들썩하게 했다.

당사자인 조사국은 물론이고 내부 싸움에 휘말린 성실납세국도 그 여파에서 벗어나지는 못했다.

다만, 직접적으로 휩쓸린 것은 성실납세국에서도 법인세과였다.

소득재산세과는 본격적으로 싸움에 뛰어들지는 않았고, 비교적 온건한 태도를 유지했는데 그것은 바로 과장 때문이었다.

성실납세국 소득재산세과의 과장 이선균.

그가 본청 조사국장인 민치호의 오른팔인 걸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때문에 같은 납세국의 법인세과장은 함께 식사하는 자리에서 그에게 묻기도 했다.

“신재현 팀장은 이선균 과장이 애지중지하던 부하 직원 아니었습니까? 직접 돕지는 않으십니까?”

이선균과 신재현은 같은 세무서에서 같은 과에서 근무했고, 같은 라인이다.

그렇기에 이선균이 조용히 관망하는 것은 법인세과장에게는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신재현이 위기에 처하면 당연히 이선균이 가장 먼저 들고 일어날 줄 알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조사 2국장의 유치한 괴롭히기가 시작되었을 때 이선균은 움직이지 않았다.

“제가 섣불리 도우면 안 좋은 말이 나올 겁니다. 저와 신 팀장이 민치호 국장님 사람인 건 다들 알고 있으니까요. 자칫하면 서울청 내에서 민치호 국장님과 서울청장님 파벌 간의 대리전이 일어나게 됩니다.”

“아무리 그래도 상황이 힘들어 보이지 않습니까. 조사국 그 큰 덩치를 어떻게 이깁니까. 일방적으로 두드려 맞는 꼴인데.”

“신 팀장이 그렇게 쉽게 좌절할 거라 생각하진 않습니다. 특히 지금은 그의 역량을 보여줄 아주 좋은 기회예요.”

이선균은 그렇게 말하고 말 뿐이었다.

그 얘기를 듣고 있던 법인세과장의 질린 듯한 반응은 덤이다.

며칠 후, 조사 1국과 3국까지 가세해 본격적으로 권현아와 특조 1팀을 돕기 시작했을 때는 법인세과장이 먼저 이선균을 찾아왔다.

“이 과장은 화나지도 않아요? 국장이라는 작자가 저렇게 치사하게 구는데?”

“상황은 저도 주시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은 거뜬히 버티는 것 같은데요.”

“이 과장님 부하를 얼마나 강하게 키우려는 겁니까?”

“스스로 강하게 크는 기특한 직원이죠, 아하핫!”

이선균은 걱정 하나 없는 표정으로 맑게 웃었다.

그 모습에 답답해진 것은 법인세과 과장이었다.

“도저히 두고 볼 수가 없어요. 사실 이게 처음 있는 일이 아니에요. 이 과장님이 작년엔 서울청에 안 계셨으니 잘 모르시나 본데, 우리 국장님이 비고시 출신이라 알게 모르게 조사국에서 무시당한단 말입니다.”

“아직도 그런 일이 있군요.”

“예. 대부분의 고위공무원은 행정고시 출신이니까요. 그쪽 국장님들끼리만 친하게 굴고 정보 공유 한다니까요.”

“조사국끼리 친한 건 어쩔 수 없잖습니까.”

법인세과 과장은 잠시 생각하더니 결심한 듯 말했다.

“이번 기회에 한 번 들이받아 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습니다.”

“법인세과에서 나서주시는 건 감사하지만 신재현 팀장을 돕기 위해 무리하시는 거라면 마음만 받겠습니다. 저희야 이런 상황을 각오했지만 과장님까지 같이 휘말릴 필요는 없어요.”

“아니요! 이 과장님은 입장 상 나서기 어렵다는 건 알겠습니다. 그렇다고 불합리한 상황에서 그냥 두고만 보는 것도 웃긴 일 아닙니까! 지금 조사국이 발 벗고 나서서 특조 1팀을 도와주고 있으니 저라도 2팀을 도와주면…….”

“대놓고 도와주시게요? 직원들이 밉보여서 고생할 텐데요.”

“으음…….”

법인세과 과장이 고민하고 있자 이선균은 엷은 미소를 띄고는 쥐고 있던 펜을 내려놓았다.

“좀 더 상황이 심각해지면 제안을 드리려 한 것이 있습니다.”

“방법이 있어요?”

“국장님께 협조를 구하는 겁니다. 과장님이 가서 들이받는 것보다 국장님이 한번 나서시는 게 더 효과적일 겁니다.”

“우리 국장님이요?”

“예. 납세국장님이 다른 국장님께 치이는 모습이 안타깝다고 하셨잖습니까. 가만히 있으면 더더욱 우습게 볼 겁니다. 한 번쯤은 강하게 나가시는 것도 나쁘지 않아요.”

“오, 그것도 괜찮네요. 우리 국장님도 못마땅해 하셨으니까. 제가 한번 가서 의중을 여쭙겠습니다. 이 과장, 고마워요!”

“뭘요, 제가 감사해야 할 일이죠.”

법인세과장은 그 길로 납세국장을 설득하러 나갔다.

이선균은 등만 살짝 밀었을 뿐인데, 벼르고 있었던 납세국장은 본격적으로 조사국과 싸움을 시작했다.

그리고 이선균은 그 모든 것을 민치호에게 보고했다.

민치호와 이선균은 신경을 곤두세우고 서울청 내부의 일을 지켜보았다.

신재현이 이윽고 조사 2국장의 배신행위를 이선균에게 알려주었을 때 민치호 역시 바로 보고를 받았다.

“국장님, 신재현 팀장이 서울청의 조사 2국장을 쳐도 되냐고 물었습니다. 서울청장의 손발 중 하나라서요.”

-신 팀장이 치겠다고 마음먹은 거면 그럴만한 놈이라는 뜻이지?

“조사 정보를 흘렸답니다.”

-그럼 죽일 놈이 맞네. 잠깐, 그쪽 오낙현 청장님은 이걸 알고 계신가?

“가장 먼저 알게 된 것이 권현아 1팀장과 신재현 팀장입니다. 권현아 1팀장이 서울청장님의 사람이니 보고가 올라갔을지는 모르겠습니다.”

-음, 오낙현 청장님이 어떻게 나오시는지 보고 싶군.

“2국장을 어떻게 처벌할지 궁금하신 겁니까?”

-그분 아니면 중부청장님, 둘 중 한 분이 장차 국세청 수장이 되실 텐데, 배신자를 가차 없이 쳐내실지 아니면 끌어안으실지 궁금해. 일단 이 사실은 청장님께 보고 올리지 말아봐.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이쪽 국세청장님을 움직여 보려고.

민치호 국장은 강수를 뒀다.

국세청장에게 서울청의 내부 사정을 알린 것이다.

국세청장은 곧바로 오낙현 서울청장을 추궁했다.

돌아온 결과는 실망적이었다.

-오낙현 청장님도 그 자리에 앉으시니 다른 생각이 드시는 건가…….

“그래도 봐주겠다는 말은 없으셨답니다. 지방으로 보내서 조용히 옷을 벗기겠다고 하셨다지요. 그 점에선 아직 희망이 있지 않습니까.”

-중부청장님보다는 오낙현 청장님이 수장 자리 앉으시는 게 여러모로 좋은데.

“중부청장님은 아직도 물밑에서 작업 중이시랍니까?”

-그분은 원체 권력욕이 강한 사람이어서. 조금만 위험하다 싶으면 빠져나가는 눈치도 빠르고.

“그래도 아직 서울청 쪽에는 중부청장님의 손길이 느껴지지는 않습니다.”

-그건 다행이군. 눈길을 돌린 보람이 있어. 혹시라도 청 내에서 이상한 낌새가 느껴지면 바로 알려주게.

“예, 국장님.”

-그건 그렇고, 신재현 팀장은 김상민이 조용하고 명예롭게 퇴직하는 건 마음에 안 들어 하지?

“그야 그렇습니다. 김상민 국장님이 명예롭게 가선 안 되는 분이기도 하죠.”

-그럼 내가 도와줘야지. 오랜만에 서울청 나들이나 가볼까.

“모시러 가겠습니다.”

-이 과장은 하던 일이나 해. 이번 건은 내가 혼자 가야 맞아. 내가 가는 것만으로도 화제가 될 텐데 이 과장까지 끼면 진짜로 싸움 나.

민치호는 그가 했던 말대로 평일 낮에 혼자 와서 서울청장과 담판을 지었다.

그리고 이선균과 신재현, 그 누구도 만나지 않고 바로 세종시로 돌아갔다.

일반 직원들은 알 리도 없고 알아서도 안 되는 물 밑에서 있었던 일이다.

신재현에게도 자세한 내막은 알려주지 않았다.

가뜩이나 신경 쓸 것이 많을 텐데 뒤에서 벌어지는 일까지 알려줘서 고민거리를 안겨주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랫사람이 편하게 일할 수 있도록 돕고, 지붕이 되어 준다.

그것이면 족했다.

그리고 한국광물자원공사의 임원이라는 작자가 서울청 앞에서 기자들을 모아놓고 소란을 피우던 날.

이선균은 오늘도 책상 앞에 앉아 결재서류를 검토하고 있었다.

“어허이, 이 과장! 지금 1층에 난리 났네!”

이제는 반쯤 말을 놓게 된 법인세과장이 어김없이 놀러 왔다.

납세국장과 함께 본격적으로 특조 2팀을 도와준 이후로 부쩍 친하게 구는 과장이었다.

“얘기는 들었습니다. 스스로 무덤 파고 있더군요.”

“안 그래도 1층 로비에 특조 2팀이 내려가서 간을 보고 있는 모양이에요. 밑에 와 있는 공사 임원 건만 마무리하면 이번 특조 2팀 일은 끝나는 건가요?”

“네. 며칠 쉬었다가 또 새로운 조사 들어가겠죠.”

“이 과장 닮아서 그런가 그쪽 팀도 참 일 중독이야.”

법인세과장은 대화를 하면서도 결재서류를 검토하고 있는 이선균을 보며 고개를 저었다.

“그래도 청 내부 분위기도 그렇게 나쁘진 않아요. 그만한 일이 있었는데 말이지.”

“그렇군요.”

섣불리 말했다가 와전될 수 있으니 이선균은 말을 아꼈다.

법인세과장 역시 그것을 알기 때문에 억지로 대답을 들으려 하지는 않았다.

대신 자신이 보고 온 것을 늘어놓았다.

“우리 납세국하고 조사국 사이도 거의 예전으로 회복됐어요. 직원들끼리 감정의 골이 깊어지지도 않았고. 신 팀장이 직접 조사국에 가서 화해했다고 하던데 그게 좀 효과가 있었나 봅니다.”

거의 법인세과장 혼자서 말하고 이선균은 듣기만 했다.

“권현아 팀장이 좀 의기소침한 상태인데, 그쪽도 곧 털고 일어나겠죠.”

“청장님이 아끼는 직원이라고 들었습니다. 젊고 능력 있다고요.”

“오, 아시는구만. 맞아요. 신 팀장하고 딱 비슷하지. 내가 보기엔 조사국에서 1팀을 돕네 마네 하는 건 오히려 방해였어. 권 팀장도 제 앞가림은 알아서 하는 사람인데.”

“그런 인재는 얼른 털고 일어났으면 좋겠군요.”

“이 과장이 아끼는 신 팀장하고 라이벌인데도?”

법인세과장의 장난스러운 목소리에 이선균이 고개를 들더니 부드럽게 웃었다.

“그러니 더더욱 제자리에 있어 줘야죠. 서로 자극 받으면 얼마나 열심히 일하겠습니까.”

“아니…… 이 과장 가끔 보면 참 무서워요. 그 둘은 지금도 과하다 싶을 정도로 조사해 가는데 여기서 더 열심히? 허어, 괴물이라도 만들려고 하나?”

“어느 순간, 지금 가진 것만으로는 부족한 때가 올 테니까요.”

이선균의 말에 법인세과장은 잠시 말을 멈췄다.

지금 가진 지위, 경력, 힘, 그리고 뒤에 있는 민치호의 존재.

그것마저 부족할 정도면 얼마나 먼 곳을 바라보고 있단 말인가.

입에 담기도 무서울 정도였기에 법인세과장은 일부러 그 화제를 넘겼다.

이선균이 자신을 믿고 해준 말이다.

모르는 척하는 것이 옳았다.

“근데 뭐 기다리는 소식이라도 있나 보네.”

법인세과장은 책상에 놓인 핸드폰을 가리켰다.

이선균은 결재서류를 넘기면서도 힐끔힐끔 핸드폰을 곁눈질하고 있었다.

“네. 끝나길 기다리고 있습니다.”

“으응? 뭐가 끝나는데요?”

그 순간 이선균의 핸드폰이 부르르 진동했다.

이선균은 진동이 끝나기도 전에 핸드폰을 움켜쥐었다.

지금까지 법인세과장과 대화하면서도 단 한 번도 놓지 않던 결재서류까지 책상 위에 내던져 가면서.

“뭐, 뭐야. 이 과장이 그렇게 반가워하는 건 처음 보네. 누구예요?”

이선균은 활짝 웃으며 펜 뚜껑을 닫았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나 재킷을 챙겨 들었다.

“아래층 상황이 다 정리됐나 봅니다. 이제야 드디어 얼굴이라도 보겠군요.”

“아, 신재현 팀장 소식 기다렸나 보구만. 그러면 가셔야지.”

둘이 손잡고 수작을 부린다는 괜한 오해를 살까 봐, 조사 중에는 일부러 마주치지도 않았다.

이제 조사가 끝났으니 겨우 기회가 난 것이다.

그것을 아는 법인세과장은 얌전히 길을 비켜 주었다.

“감사합니다. 나중에 찬찬히 얘기 나누시죠.”

“그래, 그래. 지금은 신 팀장이 우선이지. 어서 가봐요.”

이선균은 서둘러 엘리베이터를 잡고 특수조사팀의 사무실로 향했다.

복도에서 기다린 것도 잠시, 한 무리의 일행이 저 끝에서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그중 가장 가운데에 선 청년을 향해 이선균이 환하게 웃었다.

“다들 고생 많았습니다. 오늘은 일찍 들어가시겠네요. 그럼 신 팀장, 같이 밥 한 끼는 되겠습니까?”

피로가 많이 쌓였을 테니 오늘은 칼퇴하고 싶다고 해도 할 말이 없다.

그러나 신재현은 기다렸다는 듯이 답했다.

“밥이 아니라 술도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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