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8화. 남은 3명(4)
이양규는 서둘러 봉투를 찢다시피 하며 열었다.
안에 들어있는 것은 간단했다.
정말로 자신의 이름이 적힌 고지서 한 장이었으니까.
“이, 이게 왜…….”
“고지서입니다. 이것만 보고는 납득이 안 되실 것 같으니 결정통지서는 추후에 보내드리겠습니다. 아니면 청으로 직접 찾아오시던지요.”
“아, 아니. 그러니까 근거도 없이 이렇게 막 과세해도 되는 겁니까!”
이양규는 고지서에 찍힌 여덟 자리 숫자를 보고 소리 질렀지만, 청년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너무나도 대수롭지 않은 태도여서 국회의원에게 고지서를 주러 온 것이 맞는지 갸우뚱할 정도였다.
“자료 있는 대로만 과세했습니다. 마음 같아서는 전액 다 과세하고 싶은데…… 반액밖에 못 해서 아쉬울 따름입니다.”
청년은 정말로 아쉽다는 얼굴로 이양규의 얼굴을 훑었다.
“어쩔 수 없죠. 법이 그러니. 대신 다음에도 탈세하시면 그땐 꼭 전액 과세하겠습니다.”
“이, 이 사람이 지금 무슨 소릴 하는 거야?”
두 공무원은 용건이 끝나자 정말로 미련 없이 사무실을 휙 나갔다.
“정말 이렇게 끝이라고? 잠깐, 잠깐만요!”
이양규가 헐레벌떡 자신의 방을 뛰쳐 나갔다.
그리고 비서의 공간인 의원 사무실을 나섰을 때 쏟아지는 플래시 세례에 멈칫하고 말았다.
“이양규 의원님! 방금 탈세한 세금 고지서 받으신 게 사실입니까!”
“이, 이게 무슨!”
“의원님, 지금 손에 드신 게 고지서입니까? 탈세한 건 사실입니까?”
이양규는 엉겁결에 들고나온 고지서를 재빨리 주머니에 넣었지만 이미 늦었다.
바로 옆에 있던 고성능 카메라가 그 과정을 전부 찍고 있었다.
“아니, 이건……!”
기자들은 미리 알고 대기하고 있었던 것이 틀림없다.
이양규는 저 멀리 계단을 내려가는 두 공무원의 뒷모습을 보고 불러세우려 했다.
그러나 비좁은 복도를 기자들이 꽉 메운 통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다.
‘망했다! 크게 보도되면 초선은 감싸주지도 않을 텐데!’
작년 전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국회의원 류석호 사건이 번쩍 떠올랐다.
그때도 이런 식이었다.
언론에 대서특필되고 당 지도부는 의원을 보호하는 것과 쳐내는 것 중 좀 더 유리한 쪽을 선택했다.
그리고 자신이 소속된 제2야당과 하동문 모두 여론이 나빠지면 자신을 가차 없이 버릴 놈들이었다.
제명당하던 류석호의 비참한 모습 위에 자신의 얼굴이 덧씌워져 보였다.
“아, 아닙니다. 저는 국민의 대표인 국회의원으로서 결코 위법을 행한 일이 없으며…….”
정신이 없는 와중에도 국회의원으로서 갈고닦아온 주둥아리술은 자동으로 변명을 시전했다.
물론 자동으로 핵심만 뽑아먹는 필터가 장착된 기자들에게는 꼬투리 잡히기 딱 좋은 말이었다.
“탈세는 위법이 아니란 말씀이십니까? 혹시 탈세를 가볍게 여기시는 건가요!”
“저는 탈세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럼 방금 그 고지서는 뭔가요? 분명히 가산세까지 적힌 걸 봤는데요. 신재현 씨가 일부러 왔다간 걸 봐서는 혹시 특별 조사 대상 아니신가요?”
이양규는 기자들의 끈질긴 질문에 절규했다.
국회의원 배지를 반납하는 자신의 미래가 눈에 선했다.
***
나는 국회의원 사무실을 뒤로 하고는 한껏 기지개를 켰다.
정말 긴 조사였다.
22명을 대상으로 삼고 나서도 과세까지는 우여곡절이 있었다.
중간에 내부 싸움이 발발하질 않나 국장이 조사 대상자에게 정보를 흘리질 않나.
그래도 이제는 정말로 막바지였다.
22명 중 자료가 있는 19명은 오늘 전부 고지서 발송을 마쳤다.
조사국장의 정보 유출로 장부를 불태워 버린 셋 중 하나는 방금 그 국회의원이었고.
“나머지 둘 중 재벌 3세 놈은 아직 출입국관리사무소에서 연락 없었죠?”
“네. 그래도 비자 문제도 있으니 언젠가는 들어올 겁니다.”
모 그룹의 재벌 3세 놈은 외국으로 튀더니 아직도 안 들어왔다.
체납세액이 있으면 출국금지가 가능하긴 한데, 말 그대로 세금을 체납해야 한다.
게다가 5천만 원 이상을 체납해야 출국금지가 가능하고.
그래서 따로 출입국관리사무소에 협조 공문을 보내뒀다.
그놈이 입국하면 바로 연락이 올 것이다.
“고지서 보내놨으니 체납하면 바로 요청해서 출국금지 걸죠.”
체납세액이 억 단위라 낼지 안낼지 확률은 반반이다.
일부러 여론전으로 끌고 가고 있긴 한데, 기업 역시 이미지가 중요하니 그냥 내고 끝낼 수도 있고 끝까지 안 내고 버틸 수도 있다.
그들에게 억 단위 세금이래 봤자 푼돈일 테니까.
“일단 두고 봅시다. 끝까지 안 내면 받아 내러 가면 되죠, 뭐.”
과세하기까지가 문제지.
재벌 3세면 집에 쳐들어가서 차 몇 대랑 수표 조금만 압수해도 체납세액 정도는 금방 채워질 것이다.
나야 재벌이고 뭐고 무서울 게 없으니 쳐들어가는 건 일도 아니고.
“그럼 이제 남은 건 공기업 임원이네요. 이분은 어쩌려나.”
공기업은 철밥통이라 국회의원보다 눈치를 덜 보는 놈들이다.
그래서 어떻게 구워삶을지 고민 중이었다.
그래도 국회의원을 먼저 날려줬으니 슬슬 반응이 오지 않을까?
“어, 팀장님! 마지막 대상자가 기자 회견합니다!”
황민우가 얼른 핸드폰을 건넸다.
속보에는 막 우리가 가려던 공기업을 배경으로 임원이 기자회견 하는 사진이 찍혀 있었다.
[속보]한국광물자원공사 임원, 탈세 혐의에 대하여 국민께 사과
나와 황민우는 마주 보고 소리쳤다.
“됐다!”
“끝났네요!”
***
-안녕하십니까. 한국광물자원공사의 이사 이찬예입니다. 저는 탈세 혐의에 대해 국민께 사죄드리고자 이 자리에 섰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대국민 사과는 장장 30분간 이어졌지만 내용은 간단했다.
나는 세법을 잘 모른다.
세무사한테 맡겼다.
부인 명의로 미술품을 사들였다가 팔긴 했는데 그게 탈세인 줄 몰랐다.
그 외에 소득을 탈루한 것도 인정하겠다.
모두 몰라서 한 일이다.
공사의 이사 자리를 내려놓고 자숙하겠다.
대충 이런 내용이었다.
누가 써줬는지는 몰라도 억울함을 피력하는 모양새였다.
딱 봐도 사과문보다는 4과문에 가까웠다.
일단 불이 번지니 나는 피하고 보겠다는 속셈이 뻔하게 보였다.
게다가 전적인 항복의 표현인지, 이찬예는 직접 서울청에 찾아오기까지 했다.
서울청 앞에 서서 건물을 배경으로 서서 ‘진정성 있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서울청에 출석했다’ 등의 이야기를 떠벌리고 있었다.
“와, 뻔뻔하네요. 어떻게든 피해보겠다는 건가?”
“그러게요. 처음엔 기자회견이라길래 다 인정하고 뉘우치는 줄 알았더니 자기는 잘못 없다고 변명하고 있잖아요.”
우리 팀은 로비에 내려와서 이찬예를 구경하고 있었다.
로비가 크다 보니 건물 앞에서 열변을 토하는 이찬예의 목소리가 웅웅 거리며 들렸다.
“조사팀의 팀장님을 직접 뵙고 사과드리고, 지금이라도 성실하게 조사에 임하겠습니다. 또한 앞으로는 실수로라도 탈세하는 일이 없도록 저 또한 관심을 기울이겠습니다.”
이찬예의 얘기를 듣고 있는 것은 우리만이 아니었다.
로비 한쪽에 서서 구경하던 다른 과 직원들이 떠들었다.
“뭐야, 웬 개소리야. 탈세는 다 세무사 책임이라 이거야?”
“내가 탈세 돕는 세무사들 안 좋아하긴 하는데 이건 대놓고 세무사한테 책임 덮어씌우는 것 같네. 모르긴 뭘 몰라?”
“애초에 여긴 왜 온 거래요? 특조팀에서 고지서 다 보낸 거 아니었어요?”
“몰라요. 저도 그쪽에서 고지서 발송 작업 끝나서 이제 징세만 남았다고 들었는데. 웬 조사?”
“근데 저 사람 뭐가 대단한데 기자회견까지 해요? 어디 공사 이사라고 하지 않았나?”
“글쎄요. 다음에 어디 지방 선거라도 나오려고 했었나? 행동이 좀 과장스럽긴 하네요.”
직원들이 대화하는 사이 이찬예의 회견은 점입가경으로 접어 들었다.
“서울청의 조사관님들 역시, 고의적인 탈세와 선량한 시민의 실수를 구분하시어 현명하게 판단하여 한 점 억울함이 없도록 과세하여 주실 것을 믿습니다.”
왜 저러는지 이해는 갔다.
가만있자니 고의로 장부 파기한 악질 탈세범 3명 중 하나로 엮여서 처벌 받게 생겼으니 자신의 무고함을 어필해보겠다 이건데.
마음이 조급해서인지 기자를 써먹는 방법도 꽤 하수였다.
“기자는 이렇게 써먹는 겁니다, 성실하고 싶다는 납세자님.”
“응? 팀장님 어디 가세요?”
나는 로비를 가로질러 정문으로 향했다.
유리문을 열고 나가자마자 안쪽과 온도가 확 달라졌다.
날씨 때문이기도 하지만 사람들에게서 느껴지는 열기가 사뭇 달랐다.
“신재현이다!”
“직접 나왔네.”
이찬예에게 쏠렸던 시선이 일제히 내가 모여들었다.
“아, 조사관님. 마침 나오셨네요. 잘 됐습니다. 공명정대한 조사 부탁드립니다.”
40대 후반은 되는 중년 남자가 애써 미소를 지으며 내게 손을 내밀었다.
나는 그 손을 마주 잡고 악수한 후 말했다.
“제가 그리 반갑지 않으실 텐데요. 방금 공명정대한 조사 말씀하셨는데, 조사는 이미 끝났고 고지서가 전부 발송된 상태거든요. 이사님께서도 고지서 받으셨죠?”
이찬예는 마른침을 삼켰다.
“고지서가 발송됐다고요? 몰랐습니다. 저는 아직 조사 중인 줄 알고…… 아이고, 죄송합니다. 그래도 어떻게 구제 방법이 없겠습니까?”
이찬예의 간절한 표정이 무색하게도 내 시선에 들어온 숫자는 9자리였다.
대놓고 탈세해 놓고 서울청까지 찾아오다니 뻔뻔하기 짝이 없다.
“구제라…… 구제라는 건 억울할 때 쓰는 말 같은데요. 이사님께서는 억울한 점이 있으십니까?”
“저는 정말 선량한 시민입니다. 법이 워낙 어려워서 아마 저 말고도 모르는 사이에 탈세범이 되어 버린 사람들이 많을 겁니다.”
법을 모르고 신고를 못 하거나 누락하는 사람이 있긴 하다.
그렇다고 당신은 아니지.
은근슬쩍 묻어가려 하기에 나는 똑똑히 짚었다.
“물론 억울하게 가산세를 내는 분은 계실지 모르겠지만 이사님께서는 아닙니다. 첫째, 저희는 이사님께서 신고납부하셨어야 하는 세금을 세법에 근거하여 본세 및 가산세를 계산해 고지서를 발부하였습니다. 둘째, 이사님께서 조세범처벌법에 해당이 되는 건 순전히 이사님께서 고의로 자료를 은닉하였기 때문입니다.”
“조, 조세범이라니요! 제가 무슨 범법을 했다고!”
“세무사사무실에서는 제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무실에서 이사님께 자료를 택배로 보냈는데 택배가 중간에서 사라졌다고요.”
“그, 그렇습니다. 제가 파손한 게 아니라 택배회사에서 잃어버린 거예요!”
“그래서 알아봤습니다. 택배를 보냈으면 송장이 남았을 것 아닙니까? 해당 세무사사무실에서 이사님의 자택, 또는 사무실로 보낸 등기와 택배를 모두 조사했는데 올해는 보낸 택배가 하나도 없더라구요.”
“송장을 잃어버린 거겠죠!”
“세무사사무실은 송장도 모조리 보관합니다. 그것 자체가 그들에게는 자료니까요. 아니면 어느 택배 회사인지 알려주시죠. 제가 직접 협조 요청해서 발송 내역 뒤져보겠습니다.”
이찬예의 목소리가 기어들어 갔다.
“그걸 제가 어떻게 알겠습니까. 직접 받았어도 기억을 못 할 판인데.”
“예. 그래서 저희 서울청 조사팀이 세무사사무실에 가서 자료를 찾아왔습니다.”
이찬예의 얼굴이 당황으로 물들었다.
“아니 그걸…… 저는 분명히 몰랐습니다. 그쪽 세무사가 다 숨긴 거예요.”
“세무사 탓은 하지 마시죠. 어느 세무사가 납세자 동의 없이 자료를 은닉합니까? 자격증 날아가는데. 이미 증언도 다 받았고, 저희는 이미 근거에 따라 과세했습니다. 장부 은닉은 조세범처벌법에 따라 고발했구요. 부당하다고 느껴지신다면 불복 절차를 밟아주십시오. 이상입니다.”
나는 이찬예와 카메라를 향해 고개를 숙여 보인 후, 도로 로비로 들어왔다.
남겨진 이찬예의 멍한 얼굴에 신난 기자들이 카메라를 들이밀었다.
“방금 대화가 사실입니까! 고의로 은닉하신 게 맞나요!”
“기자회견은 왜 자청하신 건가요! 의도가 뭡니까!”
이 정도면 헛소리는 더 못 하겠지.
이제 드디어 과세가 끝났다.
나는 후련한 마음으로 로비의 개찰구를 통과했다.
***
이양규와 이찬예를 끝으로 특조 2팀이 목표로 했던 22명의 세무조사가 마무리되었다.
이후 이들 22명에 대한 탈세 사실이 대대적으로 언론을 타며 국내를 다시 한번 뒤흔들었다.
특히나 장부를 은닉했던 최후의 3명에 대해서는 집중 취재와 함께 비난이 뒤따랐다.
‘빙산의 일각이다! 더 파헤쳐라!’
‘국세청 잘한다! 신재현, 너만 믿는다!’
국민들은 이번 사건을 밝혀낸 국세청과 나에 대해 깊은 신뢰를 보내는 한편, 아직도 사회에 만연한 부패와 비리에 대해 더 강도 높은 조사를 요구했다.
하지만 이번 사건은 국장까지 쳐낸 초유의 사태인 만큼 국세청은 당분간은 조용히 지내기를 원했다.
내가 그 스탠스를 따라갈지 또 사고를 칠지는 아직 모르지만, 나 역시도 이번 사건이 힘들고 오래 걸렸던만큼 며칠 긴장을 풀어볼 생각이다.
돌이켜보면 무려 3달이 걸린 조사였다.
민치호 국장까지 끌어들였고.
이선균 과장도 본지 꽤 오래된 것 같다.
감사 인사도 전할 겸, 슬슬 찾아 가볼 때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