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국세청 망나니-166화 (166/500)

166화. 남은 3명(2)

“뭐야! 무슨 일이야!”

난데없는 비명 소리에 곳곳에서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차에서 내리던 팀원들이 놀라서 멈칫하고, 길 가던 사람들은 멈춰 서서 이쪽을 기웃거렸다.

그리고 무슨 일인지 나와 보던 근처 사무실의 사람들은…….

“흐억!”

“떴다, 떴어!”

“저승사자다!”

“뭐야, 누구 사무실에 뜬 거야?”

세무서 바로 건너편에 있는 골목이라 세무사 사무실이 밀집되어 있는 곳인 것도 문제였다.

문을 열고 내다본 사람들이 하나같이 세무사 사무실 직원들이었던 것이다.

그들은 내 얼굴을 보자마자 기겁하며 소리 질렀다.

“팀장님 인기 엄청나네요.”

승합차에서 박스와 카메라를 내리던 안길진이 웃으며 말했다.

지금 우리는 이 건물 3층의 한 세무사 사무실을 덮칠 계획으로 준비 중이었다.

그런데 그 사무실의 위치가 세무서 앞인지라, 이 골목 자체가 세무사사무실 밀집 구역이었다.

덕분에 알아보는 사람도 많았고 반응도 격렬했다.

“이런 인기는 반갑지 않은데요. 아까 눈이 마주치자마자 비명부터 질렀다니까요.”

“사무실 앞에 웬 차가 와서 서더니 네가 내려서 눈이 마주치면 그럴 만하지. 네가 그동안 한 짓을 떠올려봐.”

내가 그동안 한 짓이라고 해 봤자 예고 없이 쳐들어가서 싹 쓸어서 털고 과세한 것 정도?

아, 이렇게 말하니까 악당 같이 느껴졌다.

사실 오늘도 좋은 일로 온 것은 아니다.

조사 2국장 김상민이 유출한 바람에 미리 자료를 불태워 버린 세 명.

그 중 가장 시급하다고 생각한 국회의원 이양규라는 놈을 어떻게든 조사해 보기 위해 온 것이다.

자료만 불태우면 장땡이라 생각했나 본데, 오산이다.

납세자한테 자료가 없어?

그러면 세무사 사무실을 뒤지면 된다.

세무신고를 대신하는 곳이니 뭐라도 나오겠지.

내가 겨우 장부 없다는 이유 하나로 탈세범을 두 눈 뜨고 포기할 인간은 아니란 뜻이다.

그렇다고 내가 세무사 사무실에 쳐들어간 것이 알려지면 장부를 불태운 다른 두 놈들도 서둘러 남은 자료를 싹싹 뒤져 없앨 위험이 있다.

그래서 국회의원 이양규의 세무사사무실에는 우리 팀이 직접 왔고, 나머지 두 놈의 세무사사무실에는 조사 2국의 조사팀이 나갔다.

조사팀이 쳐들어가기로 한 시간도 우리와 거의 동시다.

이번에는 먼저 알고 세무사 사무실의 자료까지 파기하지는 못할 것이다.

곱게 접힌 박스를 내려 양손에 들고 주소를 확인했다.

그동안 좁은 골목이 점점 북적이기 시작했다.

우리가 자신들 사무실 앞에 선 것이 아니라는 걸 깨닫자마자 마음 놓고 구경하러 나온 것이다.

“와, 실물이다. 진짜 저승사자 팀 떴네. 누군지는 몰라도 조졌다.”

수군거리는 소리를 뒤로하고 우리는 목표한 3층 세무사 사무실로 향했다.

-드르륵.

사무실로 들어가자마자 나는 직원들의 수와 위치부터 살폈다.

사무실에 있는 직원은 총 4명.

그런데 그중 뒷자리에 앉은 두 명에게 눈이 갔다.

가장 안쪽의 자리에 앉아 있는 30대 정장 차림의 여성과 그 앞에 앉아 있는 가장 나이가 많은 중년 여성이었는데.

정장 차림의 여성이 더 젊은 데도 상석에 위치했다는 건 그녀가 근무세무사라는 뜻일 것이다.

그리고 그 앞에 앉은 중년 여성은 실장일 테고.

조금 더 자세히 말하자면, 세무사는 합격한다고 바로 사무실을 차리지 않는다.

아무리 영업에 자신이 있다고 해도 아무 기반도 없는 상태에서 사무실을 차리는 것은 맨땅에 헤딩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사업을 하는 사람들은 같은 돈 주고 세무 대리를 맡길 바에는 오래되고 경력 많은 세무사 사무실을 찾는다.

문 연 지 얼마 안 된 신참 세무사에게 맡길 리가 없는 것이다.

또한 이제 막 자격증만 딴 세무사는 이론에만 빠삭하다.

현실이 교과서처럼 딱 떨어지는 것도 아니고 이런저런 판단이 필요한 실무경험은 중요하다.

이런저런 이유로 세무사 역시 세무사 사무실에서 월급쟁이로 고용되어 일한다.

그런 경우 아무리 어리고 경력이 없다지만 당연히 직원보다는 윗급이다.

비유하자면 근무세무사는 육사를 졸업하고 임관한 소위, 실장급은 주임원사라고 볼 수 있겠다.

근무세무사가 실장을 무시할 수 없지만, 실장은 어디까지나 근무세무사의 하위 직책이다.

그렇다면 이 사무실은 순수한 직원은 셋이란 말인데.

거래처는 150개에서 200개쯤 되겠군.

짧게 사무실 안을 훑어보는 것으로 파악을 마친 나는 실장으로 보이는 직원을 향해 말했다.

“안녕하십니까. 하던 일 멈추시고 잠시 이쪽으로 나와 주시겠습니까.”

실장이 뭐라 대답하기도 전에 뒷자리에 앉아 있던 30대 여자가 자리에서 일어나 나왔다.

“다짜고짜 들어와서 무슨 소리예요?”

뒤늦게 일어선 실장이 근무세무사를 말렸다.

그러나 근무세무사는 고깝다는 얼굴로 실장을 뿌리쳤다.

그것만 보고도 이 사무실의 권력 구도를 대충 파악할 수 있었다.

여기 근무세무사는 실장과 힘겨루기 중이구나.

별것 아닌 일이었지만 재밌어 보이길래 가만 놔둬 봤다.

그랬더니 정말로 둘이서 말싸움을 하기 시작했다.

“세무사님, 저분 누군지 모르세요? 여기는 제가 얘기할게요.”

“누구든 간에 우리는 세무대리인이거든요? 왜 그렇게 겁먹은 거예요?”

“상대를 보고 덤벼야죠! 무조건 공무원하고 싸운다고 능사가 아니에요. 세무사 사무실에 조사 나오는 일은 거의 없단 말이에요.”

“실장님, 의뢰인 편에서 싸우는 건 결국 공무원하고 싸우게 된다는 뜻이거든요. 실장님이 그렇게 지고 들어가면 어떡해요.”

근무세무사의 나무라듯 하는 말에 실장이 답답한 표정을 지었다.

“실무에서 공무원이랑 싸워도 되는 때는 우리한테 명백하게 잘못이 없다는 증거가 있을 때뿐인데요.”

“그럼 지금은 싸워도 되겠네요.”

“아니, 세무사님!”

내가 팔짱을 끼고 구경하고 있자 장세훈이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공무원 앞에 두고 공무원이랑 싸우는 얘기 하는 세무사 사무실은 처음 보네.”

“그러게요. 부른 게 아니라 직접 와서 그런가? 원래 홈에서는 어드밴티지 먹고 들어가잖아요.”

“구경하는 게 재밌긴 한데, 냅두면 정말 싸우게 생겼어.”

“안 그래도 슬슬 개입하려고 했어요.”

나는 한 발짝 다가서며 박수를 쳐서 주의를 끌었다.

“실장님, 세무사님. 아직 저는 누굴 조사하러 나왔는지 말씀을 안 드렸습니다. 그것부터 물어보셔야 하는 것 아닌가요?”

그렇게 묻자 실장과 근무세무사가 동시에 대답했다.

“어딥니까?”

“조사 대상이 뭐예요?”

말이 겹치자 둘은 또 서로를 바라보았다가 고개를 휙 돌렸다.

예전에 세무사 사무실에서 알바할 적에, 근무세무사랑 힘겨루기 하는 사무실이 몇 군데 있다고는 들었는데 실제로 눈으로 보니 참 바보 같다.

나는 고개를 흔들며 공문을 꺼내 보여주었다.

“제2야당 국회의원 이양규. 여기서 세무대리 하시죠? 관련 자료 좀 보러 왔는데요.”

그 순간, 중간 자리에 앉아 있던 30대 여직원이 무언가를 두드렸다.

나는 양옆에 서 있던 팀원들에게 손짓했고, 장세훈과 강혜원이 재빨리 뛰쳐나갔다.

“컴퓨터에서 손 떼세요. 고의로 자료 은닉하시는 거면 조세범처벌법에 의해서 처벌될 수 있습니다.”

“조, 조처법까지요?”

“지금 딱 적용하기 좋은 상황인 것 같은데요. 거기 분들도 어서 나와 주시죠.”

장세훈과 강혜원의 안내에 따라 두 직원이 불안한 얼굴로 캐비닛 쪽으로 나왔다.

잘하면 정말 자료가 남아 있을 수도 있겠다.

“실장님과 근무세무사님도 잠시 이쪽으로 나와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공문도 있겠다 거리낄 것은 없었다.

내가 다가가자 실장이 뭐라 하려는데 잽싸게 근무세무사가 끼어들었다.

“제 거래처예요. 근데 거기 자료 없는데요?”

“국회의원 사무실에서 실물 자료가 소실되었다는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그래서 세무사사무실 컴퓨터를 좀 보러 왔죠.”

“저희 사무실에도 자료는 하나도 없어요.”

“왜 없죠?”

내가 느긋하게 묻자 근무세무사는 팔짱을 떡 하니 꼈다.

대놓고 적대감이 느껴졌다.

이렇게까지 공무원을 적대하는 세무사는 흔치 않은데.

1년 차? 2년 차?

합격하고 나서 일 좀 배워 보니 슬슬 자신감이 붙어서 뭐든 만만해 보일 때인가?

“없는 걸 없다고 하지 제가 거짓말을 하겠어요?”

“설마 세무사님이 거짓말하실 거란 생각은 안 합니다. 그래도 저희가 여기까지 나온 건 직접 확인하기 위해서예요. 협조 좀 부탁드립니다. 컴퓨터 좀 보여 주시고 결산서나 부속서류 있으면…….”

“아, 없다니까요?”

다짜고짜 말을 끊네.

원래 세무사사무실 직원들은 우리들과 함부로 대립하지 않는다.

웬만하면 잘 협조해 주고 그 이후에 대화로 풀어서 조금이라도 세금을 깎으려 한다.

그런데 아예 자료조차 주지 않으려 한다는 것은 대놓고 찔리는 게 있다는 말이다.

이러면 협조를 구하는 건 바보 같은 짓이다.

이런 상대에게는 강하게 나가야 한다.

나는 실장이 비킨 자리에 앉아서 세무 프로그램을 살폈다.

다행히 알바할 때 써 본 프로그램이다.

“지금 뭐 하는 거예요!”

“협조하지 않으시겠다는 뜻으로 말씀하신 거 아니었습니까? 하지만 안심하세요. 제가 세무 프로그램은 다뤄봤습니다. 제가 알아서 보고 가겠습니다.”

“그게 아니라! 왜 마음대로 보냐고요!”

“협조를 안 해 주시니 어쩔 수 없습니다.”

“그, 그치만 지금 여기에는 이양규 의원님 것 말고도 다른 납세자의 자료도 섞여 있어요. 함부로 열어보면 안 된다고요!”

“그러게 아까 보여 달라고 할 때 보여 주시지 그러셨습니까.”

자꾸만 쳇바퀴를 도는 대화는 치워두고 나는 세무 프로그램에서 회사목록을 열었다.

검색기능을 써서 이양규, 그리고 그의 주민등록번호를 넣어 보았다.

검색되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바로 옆까지 다가와 지켜본 근무세무사가 의기양양하게 허리에 손을 올렸다.

“그것 봐요. 없죠?”

나는 의자의 등받이에 기댄 채로 생각에 잠겼다.

옆에서 근무세무사의 ‘들은 척도 안 해요? 이봐요!’ 하는 목소리가 들렸지만 가볍게 무시했다.

“서버 컴퓨터 자리가 어딥니까? 아, 저기구나.”

직원은 없이 덩그러니 컴퓨터만 켜져 있는 곳으로 잽싸게 자리를 옮기자 근무세무사가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지금 뭘 열어보는 거예요? 안 된다니까…….”

아무리 자신감에 차 있고 공무원이 만만하게 보여도 이건 아니지.

“여기 세무사님 좀 잠시 막아 주세요.”

내가 말을 꺼내자마자 황민우와 안길진이 달려와 나와 세무사 사이를 막아섰다.

여자 힘으로 밀어내려 해봐도 소용없었다.

“뭐 하는 거예요! 비켜요!”

“세무사님. 지금 착각하시는 것 같은데 저흰 지금 조사 나온 겁니다. 세무사님이 보여 주기 싫다고 안 보여줘도 되는 게 아니에요.”

나는 세무 프로그램이 깔린 폴더를 뒤지기 시작했다.

납세자에 대한 전산 자료를 입력하면 이 폴더 안에 하위 폴더가 생성된다.

그리고 그 하위 폴더의 이름은 숫자로만 이루어져야 한다.

만약 폴더 이름을 바꿔두면 세무 프로그램이 인식을 못하기 때문에 프로그램에서 봤을 땐 없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래서 세무 프로그램의 폴더 중에서 이름에 알파벳이나 특수문자가 섞인 것을 모두 순수한 숫자로 바꿔 보았다.

프로그램을 켜고 회사코드 재생성을 누르자 납세자 목록이 갱신되었다.

다시 검색을 누르고 이양규라는 이름 석 자를 넣자, 이번엔 단번에 나왔다.

“세무사님. 고의로 자료 숨기셨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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