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국세청 망나니-165화 (165/500)

165화. 남은 3명(1)

김상민은 자신이 처한 상황을 믿을 수가 없었다.

집에 배달되는 신문에는 대문짝만 하게 자신의 얼굴이 실렸다.

모자이크되긴 했지만, 서울지방국세청의 조사국장 김 모 씨라고 표기된 이상 내부자라면 모두 자신이라는 걸 알게 되었을 것이다.

신문만이 아니었다.

TV를 틀어도 서울청장의 기자회견이 흘러나왔고, 어느 방송국은 패널을 초대하여 심도 깊은 토론을 나누기도 했다.

답답한 마음에 핸드폰을 켜면 번호를 어떻게 알아냈는지 득달같이 기자들의 전화가 왔다.

간간이 지인이나 친인척의 전화다 싶어서 받아보면 ‘요즘 TV에 난리던데 너랑 같이 일하는 놈이냐?’ 하는 식의 질문이 날아왔다.

결국 요 며칠간은 아예 핸드폰도 꺼놓고 살았다.

어차피 보직 해임되어서 출근도 못하겠다, 업무상 연락 올 사람도 없었기 때문이다.

누군가 알아볼까 무서워서 밖에 나가지도 못했다.

결국 김상민이 취한 행동은 하나였다.

집에 틀어박히는 것.

“씨발! 내가 왜 이런 꼴을……!”

도로 한쪽에 차를 세워둔 김상민은 저 멀리 보이는 중앙지검 건물을 보며 중얼거렸다.

처음 억지로 검찰에 끌려갔을 때, 반쯤 제정신이 아닌 상태였기 때문에 절대 입을 열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또다시 출석 요구서가 집으로 오고 말았다.

이번엔 무시할 수 없었다.

이미 혐의까지 특정한 상태에서 도망칠 수도 없거니와 그랬다간 이번에야말로 구속될 것이 분명했다.

“개새끼들…….”

출두하는 자신을 찍기 위해 기자들이 몰려와 있을 것이 뻔했다.

그래서 일부러 담당 검사실에 연락해 주차장을 통해 출두하겠다고 말했건만 바로 묵살 당했다.

자신만 특혜를 줄 수는 없으며 그럴 이유도 없다는 답변이었다.

“제길!”

시간이 다가오면 다가올수록 김상민은 애꿎은 핸들만 내리쳤다.

지난 며칠간 집에만 처박혀 있었지만 바깥 돌아가는 사정은 알았다.

집에 처박힌 김상민과는 달리 바깥출입을 하던 그의 아내는 생생하게 밖의 상황을 전달해 줬기 때문이다.

‘밖에 어떤지 알아? 기자들이 잔뜩 몰려왔어. TV고 신문이고 안 떠드는 곳이 없다고. 정말 당신이 그런 짓을 한 거야? 정말이냐고!’

악을 쓰듯 소리를 질러대는 아내의 목소리가 귓가에 생생하게 들려왔다.

아내의 추궁을 들을 때마다 자신이 짜증을 내며 뿌리쳤던 변명도.

‘기자들이고 나발이고! 분명히 그땐 그게 최선이었어. 자신도 있었고 완벽했다고. 대체 왜 이렇게 된 거야…….’

김상민의 술 냄새 섞인 푸념에 아내는 어처구니없는 목소리로 답했다.

‘그러니까 뉴스에 나온 말이 맞다는 거네? 당신이 정보를 흘리긴 흘렸다고?’

‘그래! 정보 좀 줬다! 겨우 그거 갖고 사람을 이렇게 전국적으로 망신을 주는 법이 어디에 있나!’

‘당신 국장이었잖아. 앞으로 5, 6년이면 은퇴였잖아. 대체 뭐가 부족해서 그런 짓을 한 건데? 당신 그렇게 멍청한 사람이었어?’

답답해진 아내는 김상민의 팔을 연신 때렸다.

김상민은 술기운에 손에 들고 있던 술병을 냅다 집어던졌다.

‘이 여편네가 미쳤나!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는데!’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네, 아직도 못 차렸어! 밖에 보기나 했어? 틀어박혀 있으니까 아무것도 모르지!’

김상민은 비척거리는 걸음으로 일어나서 거실의 커튼을 살짝 걷었다.

그리고 보게 되었다.

아파트 입구에는 카메라를 든 기자들이 몇몇 지키고 서 있었다.

그들은 아파트 주민을 붙잡고 말을 걸거나 아파트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기도 했다.

‘이웃들이 내 얼굴만 보면 수군대. 내가 못 산다…… 퇴직 몇 년이나 남았다고 그 지랄을 해서…… 우리 딸 해선이 지금 부끄럽다고 기숙사에서 얼굴을 못 들고 다닌다더라. 몇 십 년 일한 거 다 말아먹고 말년에 이게 무슨 짓이야!’

신경질적인 목소리가 오가고 그다음은 정해진 수순이었다.

바보 같은 짓으로 직위와 명예를 날리고 술병을 던져대는 남편을 참아 줄 아내는 없다.

그 길로 아내는 짐을 싸서 친정으로 향했다.

“씨발!”

김상민은 목이 터져라 소리쳤지만, 들어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요란하게 울리는 핸드폰 벨소리에 자신의 고함에 섞이자 그는 소리 지르는 것을 멈추고는 숨을 골랐다.

이번 일이 터진 후 바로 고용한 변호사였다.

“예, 변호사님.”

-지금 어디 계십니까? 출두 시각 10분 전입니다. 슬슬 들어오셔야 해요.

“지금 앞입니다. 금방 가겠습니다…….”

버텨봐야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김상민은 무거운 마음으로 차를 몰고 중앙지검으로 향했다.

입구에서부터 각진 중계차가 보였다.

왜 이렇게 많이 왔는지 원망할 기력도 남아 있지 않았다.

김상민은 건물 앞에 차를 세우고 후들거리는 걸음으로 차에서 내렸다.

쏟아지는 플래시 세례.

한 방 한 방이 자신에 대한 칼질 같았다.

“김상민 국장님! 정보 유출이 몇 건이나 있었던 겁니까!”

“서울청의 세무공무원들에게 미안한 마음은 없으십니까!”

“정보 유출을 대가로 무엇을 받으셨습니까!”

건물로 들어가는 한 걸음마다 질문이 하나씩 쏟아졌다.

그 질문들은 하나같이 자신이 유죄임을 확신한 상태에서 나오는 것들이었다.

질문을 들을 때마다 정말 자신의 미래가 사라졌구나, 하는 실감이 들었다.

젊은 날 처음 세무공무원이 되어 한 계단씩 차근차근 밟아 올라왔던 것.

고위공무원에 속하게 되었던 것.

지방청에서 국장이 되어 하나의 국을 통솔하게 되었던 것.

서울지방국세청의 국장으로 이동한 것.

사람이 죽을 때에 보이는 것이 주마등이라면, 지금 인생이 송두리째 파멸하려 하는 순간 머리에 스쳐 지나가는 나날들 역시 주마등이라 불러야 옳을 것이다.

서울청의 조사 2국의 국장이라는 자리에 오기까지의 그 모든 일들이 단 몇 걸음 만에 머릿속을 맴돌았다가 허상처럼 사라졌다.

눈앞에 놓인 것은 이제 계단이었다.

분명히 자신은 계단을 밟아 올라가고 있는데, 한없이 아래로 추락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국장님! 이런 정보 유출이 몇 년간 이어진 겁니까! 협조한 다른 직원도 있습니까?”

바로 옆에서 따라오며 떠들어대는 기자들의 목소리가 멀리서 들려오는 것처럼 웅웅댔다.

눈앞이 빙글 돌고 발이 후들거렸다.

제대로 계단을 딛고 있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조사국의 수장인 내가 왜 이렇게까지 추한 꼴을…….’

김상민이 가까스로 몇 개 안 되는 계단을 올라서자 기자들이 더는 따라오지 않고 멈춰 섰다.

“특수조사 2팀의 신재현 팀장에 의해 전모가 드러났다고 들었습니다. 사실입니까? 어떤 경로로 본인의 일탈이 들켰다고 생각하십니까?”

앞에 위치한 유리문을 멍하니 바라본 김상민이 문득 뒤를 돌았다.

다른 질문은 그의 귓가를 무의미하게 맴돌았다 사라질 뿐이었지만 유일하게 그의 뇌까지 도달한 단 하나의 단어가 있었다.

신재현.

자신의 모든 것을 빼앗아간 놈.

자신을 이런 꼴로 추락시킨 놈.

김상민은 자신을 찍는 카메라를 쳐다보며 실성한 듯 웃었다.

“아, 하하하…….”

우는 것도 아니고 웃는 것도 아니다.

기자들은 김상민의 반응을 보며 서로 눈길을 교환했다.

여기서 조금만 더 밀어붙이면 되겠다 싶은 것이다.

“신재현 팀장에게 하고 싶은 말씀 있으십니까?”

김상민의 이상함을 캐치한 기자 하나가 재빨리 물었다.

다른 기자들이 일제히 숨을 죽이며 김상민의 입을 주시했다.

뭐라 대답하든 상관없다.

굳이 말이 아니어도 된다.

김상민의 행동 하나하나가 모두 반응이 되어 기사화될 것이니까.

그런데 김상민의 대답은 의외의 것이었다.

“나는 처음부터 그놈이 마음에 안 들었어.”

첫마디부터 심상치 않다.

기자들이 약속이라도 한 듯이 조용해졌다.

카메라 셔터음도 나오지 않을 정도였다.

김상민의 목소리는 작았지만, 집음력 뛰어난 고가의 마이크는 그의 숨소리까지 잡아냈다.

“공무원은 특출 난 인재를 원하는 게 아냐. 명령하면 잘 듣고 주어진 일만 잘하면 된다고. 그런 놈이 들쑤시고 다니면 조직은 금방 붕괴할 거야…….”

너무 작아서 혼잣말 같았던 김상민의 말은 거기서 끝이었다.

가장 앞줄에 있던 기자는 조금이라도 더 대답을 끌어내기 위해 질문을 던졌다.

“그럼 신재현 팀장이 국장님의 불법을 밝힌 것은 잘못되었다는 말씀입니까?”

김상민은 홀린 듯이 기자를 바라보았다.

눈이 마주친 순간 기자는 혀를 찼다.

쌓아 온 모든 것이 일순간에 무너져서인지, 정상인의 눈빛이 아니었다.

하지만 사람은 보통 이럴 때 말실수를 하게 마련이다.

평생을 떠받들어지며 살아오던 사람이 발가벗겨져 길바닥에 내던져진 것이나 다름없으니.

기자는 눈을 빛내며 김상민을 주시했다.

“그놈이 조금만 숙여 줬으면 나도 이럴 일은 없었어! 딱 3명, 겨우 3명만 손댔을 뿐인데…… 신재현, 그놈은 분란의 씨앗이야. 그놈은 공무원을 하면 안 될 놈이라고!”

“3명의 정보를 유출한 건 맞으신 거네요! 방금 자백하신 건가요!”

기자가 신이 나서 되물었다.

몇 명은 검찰청 유리문 안쪽을 클로즈업해서 찍기도 했다.

로비에서 기다리며 서 있던 정장 차림의 남자 하나가 한 손으로 얼굴을 감싸 쥐고 있었다.

그의 옷깃에 변호사 배지가 달린 것으로 보아 김상민이 고용한 변호사임이 분명했다.

‘좋은 장면을 찍었다!’

이 자리에 모인 기자들이 공통적으로 떠올린 생각이었다.

“청장님, 후회하실 겁니다. 그놈을 거둔 걸 후회할 거라고요! 주머니에서 송곳이 튀어나온다고 좋은 게 아냐! 찔리는 게 당신이 될 수도 있어!”

“국장님, 이만 들어가시죠. 국장님!”

헐레벌떡 뛰어나온 변호사가 김상민을 안으로 이끌었다.

김상민의 힘없는 뒷모습이 건물 안쪽으로 사라질 때까지 카메라를 끈덕지게 뒤를 쫓았다.

***

덜컹거리는 승합차 안에 김상민 국장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원래는 사무실에서 느긋하게 출두 장면을 보고 싶었다.

불행히도 저 목소리의 주인공 덕분에 우리에겐 시간 여유가 없었고, 그래서 조사 대상의 집으로 가는 도중에 생방송을 보게 된 것이다.

-서울지방국세청의 김 모 국장의 검찰 출두 현장이었습니다. 김 국장은 마지막에 청장이 후회할 거라고 일침을 날렸는데요. 김 국장이 검찰청 본관 앞에서 한 말을 다시 한번 들어보시죠.

앵커의 말이 끝나자마자 증폭된 김상민 국장의 목소리가 나왔다.

다시 들어도 어이없는 변론이다.

뭐?

공무원은 명령만 잘 들으면 된다고?

그놈이 조금만 숙여줬으면 된다고?

겨우 3명?

그게 자신의 범죄를 정당화한다고 생각하는 건가?

들을수록 어이가 없어서 나는 그만 속마음을 육성으로 내뱉고 말았다.

“지랄하네.”

그러자 승합차에 함께 타고 있던 팀원들의 시선이 일제히 내게 모였다가 흩어졌다.

그들에게 있어서는 나의 이런 점도 꽤 익숙해진 것 중 하나였다.

“2국장은 끝이네요.”

“국세청장님도 파면 결정하셨다면서요. 검찰에서 증거만 잘 찾아 주면 깔끔하게 끝나겠네요.”

팀원들이 한 마디씩 주고받았다.

사실 검찰에 요청한 것은 하나 더 있다.

바로 국장이 누구에게 정보를 유출했는가다.

아무리 나를 엿 먹이기로 작정했다지만 국장이 직접 조사 대상에게 전화했다기에는 석연치 않은 구석이 많았다.

물론 국장이 직접 전화했을 수도 있다.

탈세까지 한 조사 대상자라면 국장을 신고할 리도 없고, 얼씨구나 하고 정보를 받아먹었을 테니까.

하지만 국장은 반대로 약점을 잡히고 만다.

향후 조사 대상자가 ‘나한테 정보 준 걸 불어 버리겠다. 싫으면 압력을 넣어서 조사를 대충 끝내.’라고 요구할 수도 있는 것이다.

이 부분은 내가 직접 확인할 수 없는 것이라 지현석 검사에게 따로 부탁한 것이다.

그렇게 국장 건은 내 손을 떠났고, 이제는 22명에 대한 과세가 남았다.

정확히는 국장이 흘린 정보 때문에 자료를 소실해 버린 세 명에 대한 조사다.

“도착했습니다.”

황민우의 말에 승합차에서 내린 나는 바로 앞의 5층짜리 건물을 올려다보았다.

세무서 앞이라 그런지 건물에 입주한 사무실은 전부 세무사 사무실이었다.

건물을 올려다보며 승합차에서 팀원들이 내리길 기다리고 있는데 문득 문이 활짝 열린 1층 사무실 안의 직원과 눈이 마주쳤다.

내가 빙긋 웃어주자 안에 앉아 있던 직원의 얼굴이 급변했다.

“끼아아악!”

아무리 그래도 비명은 아니잖아.

나는 시무룩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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