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4화. 내전의 끝 (2)
김상민 국장이 잡혀간 후.
청장이 직접 나서서 청을 다독였고, 그로 인해 사건은 일단락되었다.
적어도 겉으로는 그런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국장이 청을 배신하고 잡혀간 것은 쉽게 진정될만한 사건이 아니었다.
밖에서야 가족이나 친구가 물어보면 쉬쉬하고 넘기지만 아직도 청 내에서는 사람만 모이면 국장과 특조팀 이야기로 들끓었다.
당장 내부 싸움에 휘말렸던 당사자인 조사국과 성실납세국은 더했다.
업무 특성상 서로 얼굴을 안 볼 수도 없는 처지라 만나면 어색하게 웃고 지나가기 일쑤였다.
당장 지금만 해도 그랬다.
“모니터링 결과 이번 조사 대상자는 이쪽 10개 법인입니다. 여기 명단이요.”
“아, 네…….”
성실납세국의 법인세과 직원이 명단과 자료를 내밀자 조사 2국의 직원이 어색한 태도로 받아들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이렇게 바로 받지는 않았다.
‘이것만 주시면 안 되고요, 자료 정리해서 다시 주세요.’
‘여기서 뭘 더 정리해요? 원래 그동안엔 이렇게 줬잖아요!’
‘저희 방침이 바뀌었어요. 윗선에서 내려온 거라 저도 어쩔 수 없어요. 엑셀로 한번 돌려서 주세요.’
‘아니 우리 주 업무가 조사인 것도 아니고 이후는 조사국에서 하셔야 되는 거 아니에요? 국장님끼리 사이 안 좋다고 이렇게 물 먹여도 되는 겁니까?’
‘아, 그럼 어쩌라고요. 어쨌든 저희는 이거 못 받으니까 알아서 정리해서 갖고 오세요.’
‘저희 업무 아니니까 이 이상은 못 해드려요. 이대로 가져가시든지 말든지 알아서 하세요!’
이렇게 말싸움한 것이 바로 엊그제였다.
이들도 처음에는 정말 윗선의 방침에 따를 뿐이었다.
어차피 공무원인 이들은 계속 보직이 바뀐다.
올해는 납세국이지만 내년에는 조사국에서 일하게 되는 것이 공무원이다 보니 서로 너무 날을 세우지는 않으려 했다.
하지만 일이 늘어나고 안 해도 되는 야근까지 하게 되면서 서로 감정이 상하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아무리 이성으로는 윗대가리들 싸움이라는 걸 알고 있어도 당장 눈앞에 일이 몰아닥치니 감정적이 되는 것이다.
아마 일주일만 더 지속되었다면 조사국과 납세국 사이는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골이 깊어졌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청장이 싸움을 끝낸 것은 아슬아슬한 선이었다.
지금은 그나마 서로 어색한 표정만으로 지나갈 수 있으니.
“그…… 혹시 저희가 자료 다 받아다 정리해서 드려야 합니까?”
혹시나 싶어 납세국 법인세과 직원이 떠보듯 물었지만 조사국 직원은 손을 내저었다.
“아니요. 저희 쪽에서 수집하면 됩니다.”
“아, 예. 감사합니다. 덕분에 오늘은 정시 퇴근하겠네요.”
두 직원은 서로 명단을 주고받으며 멋쩍은 얼굴을 했다.
“앞으로도 원래 주셨던 것처럼 주시면 됩니다.”
“방침이 원래대로 돌아갔나 보죠?”
“예, 뭐…….”
두 직원은 어색함이 가득한 대화를 이어가다 이내 피식 웃고 말았다.
자리에 앉아 있던 조사과 직원이 책상 위에 있던 병 음료수 하나를 내밀었다.
화해의 의미였다.
“솔직히 말해서 우리끼리 싸울 필요도 없잖아요. 서로 협력해서 일해도 부족할 판에.”
법인세과 직원은 음료수병을 받아들고는 그 자리에서 뚜껑을 땄다.
한 모금 마시더니 아예 옆에 있던 의자를 끌어다 앉았다.
이 주제에 대해서라면 하루 종일 떠들어도 될 정도로 할 말이 많았다.
“그야 그렇죠. 우리끼리 무슨 원한이 있겠어요. 위에서 까라니까 까는 거지. 에휴,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진다고 이게 무슨 짓인지 모르겠습니다.”
“청장님 명령도 있으니 이제 우리끼리 날 세울 필요는 없겠죠?”
“아마 그럴 겁니다. 저희 쪽에서는 아예 국장님 선에서 엄명이 내려왔어요. 우리는 모두 서울청 식구니 무조건 서로 돕고 살아야 한다고요.”
“납세국도 그랬습니까? 저희는…….”
조사국 직원이 말하다 말고 헛기침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현재 직원이 속한 조사 2국은 국장이 공석이었다.
잠시 머뭇거리던 그는 주위를 바라보더니 한껏 목소리를 낮췄다.
“우리 과에서도 지금 난리에요. 어떻게 인간이 그럴 수 있는지.”
법인세과 직원 역시 의자를 당겨 앉으며 목소리를 낮췄다.
“애초에 이 모든 일 시작이 2국장님이었잖아요. 혹시 청 내부싸움 한 것도 어디서 사주 받고 한 일 아닐까요?”
“아, 그런 음모론이 돌긴 하죠. 개인적으로는 그럴듯하다고 생각합니다. 굴러온 돌이 좀 맘에 안 들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국장이 팀장 밟겠다고 나서는 것도 웃기잖아요.”
청 내에 여러모로 떠도는 이야기는 많았다.
이번 내부싸움은 국장이 일개 팀장의 버릇을 고쳐주려다 역공당한 것이다.
아니, 청장끼리 대리전이었다.
사실은 국장이 몇 년 전부터 정보를 팔아먹고 있었다.
국장은 어딘가로 영전하기로 결정되어 있었다더라, 등등.
그중에선 사실과 가까운 것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음모론이었다.
그만큼 이번 사건이 충격적이었다는 뜻이다.
“어찌 되었든 더 심해지기 전에 끝나서 다행이네요. 청장님이 좋은 타이밍에 끊어주셨어요.”
“그러게요. 내년에 같은 과 되면 서로 어색해질 뻔했잖아요.”
둘은 서로 한결 편해진 얼굴로 웃었다.
“그러고 보니 특조팀은 어때요? 이번에 1팀하고 2팀하고 손잡고 국장님 골로 보냈다는 소문이 돌던데. 요즘에 조사국 오나요?”
“아, 그런 소문도 있었죠. 근데 제가 듣기로는 청장님이 수상한 걸 느끼고 비밀리에 조사를 맡긴 거라고 하던데요?”
“아, 그래요? 그럼 내부싸움은 청장님이 알고서 방치한 걸 수도 있겠네요.”
“아…… 깊은 뜻이 있으셨구나. 그럼 특조팀도 처음부터 알고 조사국하고 대립각 세운 건가?”
법인세과 직원의 말에 곰곰이 생각하던 조사국 직원이 고개를 저었다.
“에이, 설마요. 싸움은 조사국에서 먼저 시작했는데. 그리고 아무리 난다 긴다 하는 신재현 팀장님이라지만 설마 국장의 일탈을 알고 있었겠어요?”
“그건 그렇겠죠? 근데 어쩐지 신재현 팀장님이라면 그럴 법도 하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아, 하긴 신재현 팀장님 정도라면 알아서 캐치하고 내사했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죠. 가끔 보면 우리랑 다른 세계에 사는 것 같아요.”
“다른 세계라기보다는…….”
법인세과 직원이 알맞은 단어를 찾으려 머리를 쥐어짜다가 손가락을 튕겼다.
“우리랑 다른 걸 보는 거죠. 왜, 그런 사람 있잖아요. 같은 걸 봐도 우리가 보지 못하는 다른 걸 캐치해내는 사람.”
“역시 뭔가 있으니까 그 나이, 그 경력에 TF팀장 자리까지 앉은 거겠죠.”
법인세과 직원이 고개를 끄덕이다가 뭔가 생각났다는 듯 입을 열었다.
“조사국은 신 팀장님 별로 안 싫어하나 보네요?”
“저희가요? 왜요?”
“그동안 싸우기도 했고, 국장님 골로 보낸 장본인이잖아요.”
“아…….”
조사국 직원은 달관한 얼굴로 웃었다.
“싸운 거야 신 팀장님이 잘못해서가 아니라 우리 국장님, 아니 대가리가 뭔가 꿍꿍이가 있어서 그런 거고, 정작 그 대가리가 골로 간 건 자업자득이잖아요.”
조사국 직원의 파격적인 언사에 법인세과 직원이 감탄을 터뜨렸다.
“오, 그렇게 말씀하셔도 돼요?”
“배신자잖아요. 솔직히 그동안 우리 죽어라 뺑이치는 동안 정보 빼돌리고 있었을 거 생각하면 배신감에 치가 떨립니다. 우리 야근하는 거 알면서도 훼방 놓은 거잖아요. 사람을 뭘로 보는 거야, 대체.”
조사국 직원은 분노를 터뜨리며 책상 위에 있던 물을 벌컥벌컥 마셨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법인세과 직원이 남은 음료수를 마시며 말했다.
“신 팀장님 아니었으면 지금도 정보 팔아넘기고 있었겠네요.”
“그렇죠. 그러니까 더 열 받는 겁니다. 우리는 몇 달이 지나도 눈치 못 챘을 테니까요. 그러면 얼마나 많은 정보가 흘러나가고 우리는 얼마나 생고생을 했겠어요. 후, 생각할수록 열 받네.”
“그런 의미에서는 신 팀장님이 큰일 하긴 하셨어요. 근데 저는 신 팀장님이 어떻게 나올지도 궁금하네요. 그동안 고위직 잡긴 했는데 대부분 외부였잖아요. 근데 이번엔 상사를 쳐냈으니 과연 어떻게 나올까요?”
“어떻게 나오다니요? 하던 대로 일하지 않을까요?”
조사국 직원이 어리둥절해 하자 법인세과 직원은 손사래를 쳤다.
“만약 저라면 까마득하게 높은 상사를 내 손으로 쳐낸 후에 그 과에 뭘 부탁하기엔 껄끄러울 것 같은데요.”
“음, 저라도 멋쩍을 것 같긴 한데 상대는 신재현 팀장님이잖아요. 아무렇지 않을걸요? 그리고 조사 넘기면서 굳이 팀장이 올 필요 없잖아요. 직원이 오고 말겠…… 응? 진짜 왔네.”
조사국 직원이 저 멀리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한 청년을 보며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더니 화제의 인물이 모습을 드러내자 사무실 곳곳에서 직원들이 파티션 너머로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음료수를 마시던 법인세과 직원은 호기심 가득한 표정으로 신재현을 응시했다.
시선이 집중되면 떨릴 만도 한데, 그는 스윽 사무실 내부를 훑어보더니 차분하게 책상 사이를 걸었다.
법인세과 직원과 이야기를 나누던 조사국 직원은 신재현이 바로 옆을 지나가자 말을 걸어 멈춰 세웠다.
“팀장님, 혹시 조사 요청 때문에 그러십니까?”
“네. 도움이 필요해서요.”
청년은 티 없이 웃었다.
그 얼굴에는 일말의 거리낌도 없이 당당했다.
이야기를 나누던 두 직원은 자기도 모르게 서로를 쳐다보았다.
‘거봐요, 아무렇지도 않을 거라고 했죠?’
조사국 직원이 그것 보라는 눈빛을 보내고는 청년에게 물었다.
“국장님 안 계시니 팀장님하고 얘기를 나누셔야 하는데, 지금 잠시 자리 비우셨어요. 제가 대신 들어도 되겠습니까?”
“그러면 이것 좀 부탁드릴 수 있겠습니까?”
청년은 몇 개의 이름을 내밀었다.
“지금 조사 중인 사람들인데 추가 자료 수집이 필요해서요.”
“아, 그 소환해서 조사한 사람들이요?”
“정확히는 소환에 불응한 사람들입니다.”
“소환에 불응한 사람들이요? 아…….”
조사국 직원은 헙, 하고 입을 다물었다.
잡혀간 조사국장이 특조 2팀의 훼방을 놓기 위해 조사 대상에게 미리 자료를 빼돌렸다는 것은 이미 다 퍼진 사실이었다.
즉, 조사 2국장으로 인해 망친 일을 조사 2국에 도와달라는 것이다.
“들고 오면서 이걸 어디에 요청해야 할지 조금 망설였습니다. 고민한 결과, 역시 조사 2국에 말씀드리는 것이 맞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 국장님이 망친 일이기 때문입니까?”
조사국 직원의 날카로운 질문에 신재현은 말하기 어려운 표정을 지었다.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그렇습니다. 아, 상사가 저지른 일을 수습하라는 뜻은 아닙니다. 청장님이 내부싸움을 억지로 끝내셨지만 아직 실무진끼리는 해답이 안 나온 상태지 않습니까. 싸움의 시작은 저희 팀과 조사 2국이었습니다. 당사자인 우리가 힘을 합치는 모습을 보여주면 청 내의 다른 소문은 금방 수습될 거라 봅니다.”
설득하기 위해서인지 긴 설명을 마친 신재현은 자세를 바로 하더니 조사국 직원에게 고개를 숙였다.
“안 좋은 일이 있었지만 탈세를 조사하고 정당하게 과세하려는 노력은 어느 과나 똑같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함께 협력해서 조사해 나갔으면 합니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파티션 너머로 고개를 내밀어 그 모습을 지켜보던 다른 직원들이 숨을 들이켰다.
신재현에게 직접 인사를 받은 직원의 경악은 더 했다.
“아니, 일어나세요. 팀장님이 잘못한 게 뭐가 있다고 이러십니까! 당연히 협력해야죠!”
조사국 직원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신재현을 일으켰다.
그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던 법인세과 직원은 혀를 내두르며 감탄했다.
‘와, 직원들간의 골을 봉합하는 건 국장이나 과장급이 시간을 들여서 해야 하는 일인데. 오히려 조사국이 안절부절못하게 만드네.’
단순히 앞으로의 관계가 불편해서 이런 말을 꺼낸 건지도 모른다.
하지만 만약 이 모든 걸 계산하고 한 거라면 청 내의 삐그덕 거리는 구도까지 파악하고 있다는 뜻이 된다.
“주, 주세요! 저희가 최선을 다해 돕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이들은 아시겠지만 사회에 이름이 알려진 사람들입니다. 이미 조사 들어가기 전에 장부까지 모두 불태웠구요. 그래서 집과 사무실을 모두 뒤질까 하는데 조사국의 노하우로 도와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저희 일정 바로 잡아보겠습니다. 이리로 오시죠.”
조사국 직원은 지극히 정중한 몸짓으로 신재현을 안쪽으로 안내했다.
‘생각보다 빠르게 해결됐네. 이제 진짜 원래의 서울청으로 돌아가겠구나. 얼른 법인세과 가서 알려줘야겠다!’
혼자 남은 법인세과 직원은 남은 음료를 모두 털어 넣고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제 진짜로 무의미한 야근은 끝이다!’
서둘러 조사국을 벗어나는 법인세과 직원의 발걸음은 더없이 가벼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