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국세청 망나니-163화 (163/500)

163화. 내전의 끝

김상민은 지금 상황이 믿기지 않았다.

어째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사무실에서 억지로 끌려나와 타의로 복도를 걸으며 생각했다.

어디서부터 잘못되었을까.

정보를 유출한 건 당연히 자신의 잘못이다.

그러나 들킬 거라는 생각은 하지도 않았다.

정보가 유출되면 가장 먼저 의심받을 것은 특조 2팀의 팀원이었다.

김상민에게 의혹이 뻗치는 것은 먼 훗날이 될 것이라 생각했다.

의심이 든다 해도 함부로 국장급을 건드리지는 않는다

청을 엎어버릴 생각이 아닌 이상.

고위공무원이 의심을 받는다는 사실만 퍼져도 국세청에 대한 신뢰는 바닥을 칠 것이다.

거기다 혹시라도 결백하다면?

조사하는 입장에서는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그래서 확실한 증거를 잡고 나서야 비로소 자신을 잡으러 올 거라 생각했다.

그리고 증거가 모일 때쯤이면 자신은 국세청에는 없을 것이다.

위험부담은 없다.

그런 계산이었다.

‘대체 어떻게 안 거야…….’

자신은 멍청이가 아니다.

유력 대선주자와 라인을 만들었다고 해서 자랑스럽게 떠들지도 않았으며 현금을 받지도 않았다.

그렇다고 정보를 얻어간 유진환이 자신을 버릴 리는 없다.

적어도 아직은 쓸모가 있으니까.

그렇다면 어떻게 알아챘단 말인가.

‘2팀은 조사에서 아무것도 얻지 못할 거야.’

국장의 머릿속에 자신의 목소리가 스쳐 지나갔다.

권현아를 설득하기 위해 자신이 했던 말이었다.

권현아가 그 후에 뭐라고 했더라.

알아차린 눈빛이었나?

설마, 라고 외치며 국장실을 나갔던 것이 떠올랐다.

그렇다면 그 순간에 자신이 한 짓을 눈치챘단 말인가.

‘그 눈치 빠른 년이 나를 배신해? 조금만 참으면 되는데……! 이제 겨우 시작했는데!’

짚이는 것은 권현아뿐이었다.

김상민은 억울함과 배신감에 몸을 떨었다.

무엇이라도 누려보고 들키면 억울하지도 않다.

그런데 자신은 아직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앞으로 유진환이 요구했다면 국세청에 타격을 입힐 일도 서슴지 않고 했겠지만 지금은 아직 아니었다.

누린 것도 받은 것도 없는, 말 그대로 제2의 인생의 시작점이었다.

그렇게 생각하자 김상민은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아악! 놔!”

권현아와 신재현에 대한 분노가 비명이 되어 터져 나왔다.

온몸을 비틀어 보았지만, 양옆의 남자들은 조금도 속도를 늦추지 않았다.

이런 발버둥에 무척이나 익숙한 듯했다.

반대로 김상민의 무의미한 외침은 직원들의 주목을 끌었다.

“헉, 2국장님이다.”

“진짜인가 봐!”

“지금 잡혀 가는 거 맞지?”

직원들이 하나둘 나와 2국장을 가리켰다.

밖에서 수군대는 소리를 들은 직원들이 또 하나둘 사무실에서 나오기 시작했다.

어느덧 복도에는 경악한 얼굴의 직원들이 가득 찼다.

“말도 안 돼!”

“2국장님! 거짓말이죠!”

직원들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제각기 뭐라 외쳐대고 있었다.

“아니죠? 아니라고 말씀해 주세요!”

“공무원증 봐 봐, 검찰청이다.”

“그럼 빼박 진짜네? 와, 배신감 느껴지네. 완전 나쁜 새끼잖아.”

“야, 2국장님 들으셔!”

“듣든가 말든가! 이제 2국장도 아니야. 보직 해임이잖아.”

웅성대는 소리가 김상민의 귓가에 흘러들었다.

한꺼번에 많은 사람들이 두서없이 이야기하다 보니 정확한 문장이 들리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간혹 들리는 미친, 배신감, 새끼 같은 단어들은 송곳처럼 귀에 파고들었다.

오늘 아침까지만 해도 부하였던 익숙한 얼굴들이, 자신에게 고개를 조아리던 낯짝들이 상사인 자신을 향해 손가락질을 하고 있었다.

상상도 하지 못했던 사태에 숨이 가빠져 왔다.

저기 보이는 엘리베이터까지 열 걸음도 채 남지 않았는데도, 그 짧은 복도가 마라톤 풀코스라도 되는 것처럼 길게만 느껴졌다.

좌우에 늘어선 부하 직원들의 경악과 경멸 섞인 눈빛을 받으며 그 사이를 통과하는 건 맨정신으로 가능한 짓이 아니었다.

“이거 놔! 놓으라고! 신재현, 이 새끼! 가만 안 둘 거야! 이 개새끼 때문에 내가……!”

김상민의 고함은 오히려 직원들에게 힌트가 되었다.

“특조 2팀이 까발린 게 맞구나.”

“그럼 그렇지. 우리 청에서 국장을 조사할 깡이 있는 건 딱 한 사람밖에 없잖아.”

“진짜 얄짤 없구나…… 근데 저렇게까지 모가지 날리니까 어쩐지 좀 무섭지 않아요?”

한 직원이 소름이 돋는다는 듯 팔뚝을 쓸어내리자 옆에 있던 직원이 등을 세게 내리쳤다.

“우리가 걱정할 게 뭐 있어요? 아무나 찌르는 것도 아니고. 국장이라도 징계감은 맞죠.”

“그래도 국세청에 징계위원회가 있는데…… 이건 너무 나간 거 아닌가 싶습니다.”

“글쎄요. 좀 과한 면은 있는데, 아마 본보기 아닐까요?”

“본보기요?”

“예. 국장 위에는 이제 청장밖에 없잖아요. 국장도 잘못하면 모가지가 날아가는데 이제 어느 공무원이 함부로 행동하겠어요?”

“그건 맞네요. 봐주기 하던 놈들은 몸 좀 사리려나.”

“국장이 저 꼴 됐는데도 허튼짓 하는 놈이 있겠어요? 만약 있다고 하면…… 그건 그거대로 난 놈이지.”

국장은 뒤늦게 발걸음을 빨리하며 얼굴을 가리려 했지만 이미 볼 사람은 모두 본 후였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는 국장을 본 직원들이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었다.

“내려갔네. 이제 일하러 갑시다.”

“일이 손에 안 잡히는데요.”

“야근하기 싫으면 지금 해야 돼요. 국장이 없어진다고 일까지 없어지는 게 아니라서.”

혼란스러운 마음으로 직원들이 각자 사무실로 흩어지기 시작했다.

직원들이 제 자리를 찾아가자 복도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침묵에 휩싸였다.

그러나 이들 또한 알고 있었다.

일단락된 것처럼 보이지만 앞으로도 계속 폭풍에 휩싸일 것임을.

***

오후 늦게 국장급 회의가 열렸다.

긴급히 모이라는 청장의 명령에 단 한 명도 빠짐없이 헐레벌떡 달려온 참이었다.

“커흠…….”

회의에 참석한 국장들은 침음성을 흘리며 핸드폰으로 연달아 터져 나오는 기사를 읽었다.

어떻게 된 상황인지 파악하려는 생각에서였다.

[서울지방국세청, 엄단의 의지 밝혀]

[신재현이 또 해냈나? 국장의 탈선 밝혀내다]

[공공기관의 자정작용은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가]

그러나 아무리 기사를 읽어도 갑작스레 터져 나온 이 사태를 받아들이긴 어려웠다.

하루아침에 청이 쑥대밭이 되었다.

낮은 직급의 직원들도 아니고 무려 국장의 잘못이었다.

“1국장님. 어떻게 된 일인지 말씀을 좀 해 주세요. 그 자리에 계셨다면서요?”

송무국장이 답답한 얼굴로 테이블을 두드렸다.

그러나 조사 1국장도 답답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우연히 그 자리에 있었을 뿐, 그도 아는 바는 없었다.

“청장님 오시면 여쭤보십시오. 저도 이게 무슨 영문인지 모르겠으니까.”

“청장님이 뭘 착각하신 것 아닙니까? 어떻게 2국장이 그런 바보 같은 짓을 저지른단 말입니까.”

“허, 청장님이요? 송무국장님은 그게 말이나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이 난리를 피워놓고 착각이요? 그거야말로 대형사고인데요.”

“끄응…….”

말문이 막힌 송무국장은 애꿎은 테이블을 노려보았다.

“정말 이 중에 아시는 분 아무도 없습니까? 납세국장님은 어때요?”

조사국과 성실납세국의 싸움이 시작된 후로, 국장들 사이에서도 알게 모르게 서로를 배척하는 기류가 생겨 있었다.

둘 중 세력이 큰 것은 조사국장이다.

자연히 다른 국장들도 성실납세국장을 은근히 따돌리는 분위기였다.

그런데도 먼저 말을 건다는 것은 그만큼 마음이 급하다는 증거였다.

“납세국장님이 신재현 팀장이랑 친하잖습니까. 뭔가 얘기 들은 것 없으십니까?”

가만히 눈을 감고 청장을 기다리던 납세국장이 천천히 눈을 떴다.

“저는 신 팀장의 일을 도와줬을 뿐입니다. 전혀 들은 바가 없군요.”

“그러니까 그 조사를 도왔으니 알고 있었던 것 아닙니까?”

따지듯 묻는 송무국장에게 납세국장이 눈을 흘겼다.

“중요한 조사 내용을 타 국에 흘렸겠습니까? 신 팀장은 어디의 누구와는 다르게 보안이 철저한 사람이라서요.”

“허어, 말을 해도 그렇게…….”

면박을 들은 송무국장이 입맛을 다셨다.

“저는 몰랐습니다. 설령 알았다 해도 제가 국장님들께 뭘 말할 수나 있었겠습니까? 눈만 마주치면 으르렁거리기 일쑤였는데.”

“크흠.”

되로 주려다 말로 받은 송무국장이 찔끔해서 시선을 돌렸다.

납세국장의 날 세운 말투에 누구도 함부로 말을 꺼낼 수가 없었다.

회의실 내에 흐르던 불편한 침묵은 두 남자의 등장으로 깨졌다.

앞문을 열고 성큼성큼 들어온 청장 뒤에는 희한하게도 신재현이 따라 들어오고 있었다.

국장급 회의에 신재현이 참석한 것은 처음이 아니다.

그러나 청장과 함께 들어온 것은 문제였다.

보통 한 기관의 수장의 뒤에 따라 들어오는 것은 오른팔이나 주요인물일 때나 가능하기 때문이다.

쏠리는 시선을 알았을 텐데도 청년은 주눅 드는 일 없이 가장 말석으로 향했다.

이제 아예 제 자리구나 싶을 정도로 어울리는 것이 국장들의 눈에 거슬릴 정도였다.

“앉지. 할 말이 많은데.”

청장은 털썩 자리에 앉은 뒤 인사도 생략하고 본론을 꺼냈다.

“갑작스러운 기자회견으로 많이들 놀랐을 거다. 김상민에게 얘기가 흘러가면 곤란해서 말이지. 누구에게도 말을 할 수가 없었어.”

국장들이 눈동자를 데록 굴렸다.

청장은 지금 이들을 믿을 수 없었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청장님, 2국장의 혐의가 진짜입니까?”

“2국장이라고 볼 만한 정황이 있었어. 검찰 쪽에서 명백하게 밝히겠다고 약속했으니 곧 결과가 나오겠지.”

“저, 청장님…… 그렇다면 굳이 이렇게 크게 만드실 필요가 있었습니까? 징계위 거치시는 게…….”

송무국장이 말하다 말고 말끝을 흐렸다.

청장의 날카로운 눈빛이 송무국장을 향했기 때문이다.

청장은 씁쓸한 표정으로 슬쩍 어느 한쪽을 바라보았다.

“이것은 자정이 가능하다는 증거이자, 우리 청의 청렴을 나타내는 것이기도 해. 그리고 다른 공무원들에 대한 경고다.”

국장들은 역시나 하는 얼굴로 시선을 떨구었다.

“잘못을 하면 국장도 예외는 없이 처벌한다. 그게 내 뜻이야.”

청장의 눈빛이 점점 강렬해지고 있었다.

여기서 눈이 마주치면 대표로 호통을 들을 것 같았다.

“그리고 자네들은 나를 우습게 아는 것 같아.”

“예에? 청장님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당황한 국장들이 고개를 들었다가 청장의 서릿발 같은 눈빛에 도로 시선을 피했다.

“그동안 청 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내가 모를 것 같았나? 가만히 두고 보니까 더 강하게 나가도 될 것 같았어?”

“처, 청장님.”

“이 청에서 일하는 직원들은 자네들 부하기도 하지만 그 전에 이 나라의 공무원이야. 나랏밥 먹고 일하는 인재들을 낭비해? 자네들 제정신이야?”

청장의 묵직한 목소리가 회의실을 가득 채웠다.

이 사태를 처음 시작한 것은 이 자리에 없는 조사 2국장이었으나 참가한 국장들도 잘못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안 해도 되는 일을 하게 하고, 애써 구축한 협력 체제가 깨지고. 청을 아예 둘로 쪼개 놓을 생각이었어? 자네들 그렇게 내부 싸움 좋아하면 아예 청장 후보로 나가보지 그러나? 나하고도 한번 싸워 봐.”

청장의 호통에 국장들이 화들짝 놀라 손을 내저었다.

“아닙니다! 결코 그런 생각은 아니었습니다! 저희는 그저 질서를 지키기 위해서…….”

“대체 어느 질서길래 청을 둘로 쪼개 놔! 그게 질서야?”

“죄, 죄송합니다.”

내부 싸움을 시작한 장본인이 없어진데다, 싸움이 조직에 악영향을 미치는 이상 청장으로서는 두고 볼 이유가 없었다.

“자네들끼리 무슨 앙금이 있든 여긴 직장이야. 사적인 감정은 퇴근하고 나서 주먹다짐을 하든가 해. 앞으로 내 귀에 싸움이 어쩌구 하는 소리가 들리지 않도록. 알겠나?”

“예, 청장님!”

국장들이 일제히 고개를 숙였다.

장장 1달에 걸친 내부 싸움이 청장의 말 한 마디에 완벽히 정리되는 순간이었다.

‘아무리 봐도 저쪽의 승리 같은데.’

김상민의 편에 섰던 국장들에게 일말의 찜찜함을 남기고, 서울청의 내전이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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