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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세청 망나니-162화 (162/500)

162화. 선을 넘었어 (5)

“이, 이 말이 진짭니까?”

“대답을 해 보세요, 2국장!”

국장들이 당혹과 분노가 섞인 얼굴로 김상민을 재촉했다.

그러나 김상민은 아무런 말도 없이 눈알만 데록데록 굴릴 뿐이었다.

‘섣불리 입을 열면 안 돼. 머리를 굴리자! 살아날 길을 찾아야 해!’

김상민은 눈알을 굴리는 속도만큼이나 머리를 회전시켰다.

당장 드는 생각은 매우 단순했다.

이제 겨우 날아오를 준비를 하는데 여기서 거꾸러질 수는 없다.

그다음으로는 이런 생각도 들었다.

국회의원들은 더한 의혹이 있어도 무조건 아니라고 잡아떼더라, 잡아떼기만 하면 이긴다.

증거가 나와도 잡아떼자.

TV에 나온 비리 국회의원을 보고 배운 것이 결국 그것이었다.

부정한다고 해서 당장 뾰족한 수가 생기는 건 아니다.

하지만 이미 일이 이렇게 된 이상 인정한다면 정말로 끝이었다.

차라리 증거고 뭐고 다 부정하면서 끝까지 버티는 것이 나았다.

김상민은 최대한 짧게 말했다.

말실수를 하지 않기 위해서였다.

“난 잘못한 것이 없습니다. 신재현이 날 음해하는 거예요!”

“허어!”

국장들이 침음성을 삼켰다.

“청장님은 바보가 아닙니다. 단순한 모함에 움직일 분이 아니지요. 더군다나 기자회견까지 한 상황이라면 더더욱.”

가장 먼저 이성을 회복한 3국장이 침착한 목소리로 말했다.

“2국장님, 정말 조사 정보를 유출한 겁니까?”

“아니라고 했잖습니까! 국장님들마저 나를 못 믿습니까! 놔, 이 새끼야! 이것 놓으라고!”

김상민은 거세게 팔을 움직여 신재현을 뿌리쳤다.

신재현은 활활 타오르는 듯한 눈동자로 한 발짝 다가섰다.

김상민은 저도 모르게 주춤거렸다.

“제가 궁금한 건 단 하나입니다. 김상민 국장님은 서울청에서 바라마지않는 직위에 계시잖아요. 아직 은퇴까지는 몇 년 더 남았으니 지방청장도 바라보실 때잖아요. 대체 뭘 더 얻고 싶어서 정보를 파신 겁니까? 뭘 얻으신 거예요?”

“얻길 뭘 얻어! 생사람 잡지 마!”

김상민의 거듭된 부정에 신재현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도 국장님이시니 조용히 가시게 하려고 했는데…….”

“보직 해임 얘긴가? 저리 비켜, 청장실로 갈 거다. 기자회견 끝나고 오시면 만날 수 있겠지. 내 억울함을 말씀드릴 거야! 너 따위 분란 거리를 팀장 자리에 앉힌 것부터가 잘못이었어!”

김상민은 악을 쓰듯 말했다.

몇십 년 간 국세청에 바쳐온 시간이, 그간 일궈온 모든 것이 날아갈 위기에 처하자 비명에 가까운 외침이 터져 나왔다.

“지금 이렇게 되신 건 모두 국장님의 선택입니다. 그리고 제 발로 걸어나가지 못하는 것 또한 국장님의 선택입니다.”

“뭐, 뭐야?”

김상민은 순간 귀를 의심했다.

도저히 공무원의 입에서 나올 소리가 아니었다.

국장실에 쳐들어왔을 때부터 곱게 나올 거란 생각은 안 했지만 제 발로 걸어나가지 못할 거라니.

“네가 무슨 깡패야? 뭐 이런 놈이 다 있어!”

“국장님은 지금 증거가 없다고 생각하시죠? 어떻게든 잡아떼면 혐의를 벗을 수 있다고 생각하시나 본데.”

신재현이 살짝 고개를 아래로 내렸다.

키 차이 때문에 주먹 하나 만큼 위에 있던 시선이 김상민의 눈높이만큼 내려왔다.

김상민은 저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왜 탈세범들이 이 청년 앞에 서면 꼼짝을 못 하는지 알 것 같았다.

그간의 실적과 명성 때문만은 아니다.

그동안 상사인 자신 앞에서 억눌러왔던 용암이 분출되고 있는 듯한 눈빛이었다.

열기 안에서도 눈빛만으로 사람을 찔러 죽일 수 있을 법한 서늘한 냉기가 퍼져 나와 자신을 옭아매는 듯했다.

까마득하게 어리고 낮은 직급의 7급 공무원에게서 느껴질 만한 눈빛이 아니었다.

‘이 새끼는 정말로 날 조질 작정인가!’

김상민을 차분히 노려보던 신재현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모든 희망을 버리시죠. 부정한다 해도 일이 늦어질 뿐, 국장님은 여기서 끝입니다. 수사의 전문가들이 국장님의 여죄를 모조리 파헤쳐 주실 테니까요.”

김상민은 멍하니 신재현을 바라보았다.

신재현은 김상민에게서 눈을 돌리지 않은 채 밖을 향해 소리쳤다.

“들어오셔도 됩니다!”

김상민은 삐걱대는 목을 힘겹게 움직여 문 쪽으로 향했다.

국장들의 고개도 일제히 한쪽으로 돌아갔다.

-벌컥.

국장실 안으로 들어오는 것은 한두 명이 아니었다.

예닐곱 명쯤 되는 남자들이 한꺼번에 들어오자, 넓어 보였던 국장실이 한 번에 꽉 찼다.

가장 선두에 섰던 남자는 목에 걸고 있던 공무원증을 내밀었다.

[검찰청]

“서울중앙지검의 지현석 검사입니다. 얘기는 대충 끝나셨습니까?”

“기다리시게 해서 죄송합니다.”

신재현은 김상민에게서 한 발짝 물러나며 말했다.

검사는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 정도는 충분히 기다릴 수 있지요. 다른 누구도 아닌 신재현 씨 부탁인데.”

신재현이 서울청으로 올라왔듯 서부지검에서 중앙지검으로 이동한 지현석은 배턴을 터치하듯 김상민 앞에 섰다.

“대충 들으셨겠지만 서울청에서 중앙지검으로 고발장이 접수됐습니다. 자세한 사정은 지검 가서 마저 하시죠.”

멍하니 지현석을 바라보던 김상민이 이제야 정신이 든 듯 번쩍 고개를 들었다.

주위를 휘휘 바라보던 그가 발작적으로 소리 질렀다.

“검찰이라니! 말도 안 돼! 어떻게 국장을 검찰청에 넘길 수가 있어!”

“내부 감사를 통해 징계위원회로 끝날 거라 생각하셨나 본데요. 아까 청장님 기자회견 제대로 안 들으셨습니까?”

신재현은 수사관들에게 자리를 비켜주기 위해 소파 쪽으로 물러나며 말했다.

대수롭지 않다는 말투였으나 김상민에게는 청천벽력이었다.

“이럴 순 없어! 지금은 안 돼! 청장님께 말씀드리고……!”

“그러니까 그건…….”

“김상민 국장!”

신재현이 안 된다고 하려는 찰나, 사무실에서 노호성이 터져 나왔다.

창가 쪽으로 비켜 서 있던 1국장이었다.

그는 배신감과 허탈함이 점철된 복잡한 얼굴로 소리쳤다.

“지방청의 국장이라는 작자가 끝까지 추하게 굴 겁니까! 억울함이 있으면 검찰에 가서 밝히고 잘못한 것이 있으면 처벌을 받으세요!”

“1국장님…….”

김상민이 중얼거리는 사이 지현석의 지시를 받은 수사관 둘이 양옆에 섰다.

그리고 김상민의 팔을 잡고 밖으로 끌고 나가기 시작했다.

김상민은 뒤늦게 거부해 보았지만 수사관들의 팔은 풀 수가 없었다.

“이래 봬도 국장이야! 직원들 다 보는데 이렇게 범죄자처럼 끌고 가기 있는가! 이거 놔! 놓으라고!”

김상민의 고함이 국장실에서 비서실로, 그리고 복도로 서서히 멀어져 갔다.

“허…….”

침음하던 1국장이 주인 없는 국장실을 멀거니 훑어보다가 비틀거리는 발걸음으로 문으로 향했다.

막 국장실을 빠져나가려던 1국장은 활짝 열린 문을 잡고 기대 서더니 돌아섰다.

“신 팀장, 하나만 물읍시다.”

“예, 국장님.”

“신 팀장이 오늘 보여주고 싶은 건 뭐였습니까? 건드리면 이렇게 된다, 하는 시위입니까?”

국장실 안에 다른 수사관도 있기에, 이 자리에서는 해서는 안 되는 질문이었다.

그러나 1국장은 반드시 지금 듣고 싶었다.

신재현은 조금의 주저함도 없이 즉답했다.

“제 기준은 항상 똑같습니다. 제가 아닌 다른 직원이 조사하던 정보를 유출했어도 저는 똑같이 행동했을 거예요. 국장님은 공무원으로서 선을 넘었습니다. 법을 어기셨어요. 하지 말아야 할 짓을 하면 누구든 벌을 받는 게 당연합니다. 저는 그걸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신재현의 말을 들은 1국장은 잠시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그 말이 진심이기를 바랍니다. 만약 아니라면, 국세청은 너무도 큰 적을 안고 있게 될 테니까.”

만약 신재현의 기준이 변한다면, 사욕을 위해 움직이기 시작한다면…….

1국장은 상상도 하기 싫었다.

신재현은 염려를 이해 한다는 듯 싱그럽게 웃었다.

아까 김상민에게 했던 것과는 정반대의, 그 나이대의 청년에게 어울리는 밝은 미소였다.

“제 기준에는 변함이 없을 겁니다. 만약 아니라면 윗분들이 지금 절 가만 놔두시겠습니까?”

신재현이 날뛸 수 있는 것은 모두 위의 허락이 있기 때문이다.

힘을 실어주는 것 또한 신재현의 정직함과 행동력을 믿기 때문이다.

그만큼 실력과 행동으로 증명해온 것이다.

1국장은 작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사무실을 나섰다.

3국장과 4국장이 복잡한 얼굴로 신재현을 바라보았지만 아무것도 묻지는 않았다.

국장들이 모두 나가자 신재현은 지현석에게 말했다.

“조사 잘 부탁드립니다. 조금의 의혹도 없이 깔끔하게요.”

“걱정 마세요. 믿고 맡겨준 건이니 확실하게 끝내 드리죠.”

지현석의 그 말을 신호로, 수사관들이 국장실을 뒤엎기 시작했다.

***

-조사 2국장의 정보 유출 혐의가 확인되었습니다.

갑작스러운 청장의 기자회견에 뒤집어진 것은 국장실만이 아니었다.

대체 무슨 일로 회견을 하는가 궁금했던 서울청의 모든 직원들은 핸드폰으로 뉴스를 켰다.

그리고 충격에 빠지고 말았다.

“지, 지금 우리 청장님이 뭐라고 하신 거예요?”

“정보 유출? 진짜로?”

“조사 대상자한테 유출했다는데? 미친 거 아냐?”

“아니, 잠깐만요. 국장님이 대체 왜요? 우리가 유출해도 모가지인데, 다 아시는 분이 왜?”

“원래 윗대가리가 헛짓거리 하면 아무도 못 말려. 뭐 거금이라도 받기로 했나 보지.”

“아오, 저런 사람이 국장 자리에 앉아 있었던 거야? 화딱지 나네.”

서울청의 직원들은 단순한 세무공무원이 아니었다.

조사를 주 업무로 삼는 조사관이었다.

당연히 조사의 어려움을 온몸으로 겪어서 알고 있었다.

납세자와의 힘겨루기, 그리고 과세 증거 확보를 위한 조사관의 분투.

그 모든 것을 한순간에 날려 먹는 것이 바로 정보 유출이었다.

“혹시 이번에 우리 조사 엎어진 것도 2국장님 때문인 거 아냐?”

“나도 1달 전에 과세 못 한 건 하나 있었는데. 거기 세무사가 귀신같이 내 전략을 꿰고 있더라고. 설마…….”

직원들은 긴가민가하며 기억을 뒤졌다.

그리고 뭔가 미심쩍었던 것들을 떠올리고는 배신감을 느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국장님이?”

“근데 진짜 국장님이 유출한 거 맞아? 국장님 실드 치는 게 아니고, 설마 국장씩이나 되는 분이 정보 유출을 하겠냐고.”

어느 직원의 냉정한 의문에 다른 직원들이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러나 그 의문은 한 직원의 말에 흔적도 없이 날아갔다.

“아까 청장님 기자회견에서 그랬잖아. 신재현 팀장이 조사했다고.”

“앞으로 조사한다는 거 아니었어?”

“한 점 의혹 없이 조사하겠다는 건 기자회견 끝부분이었고, 처음에 의혹 잡은 게 신재현이라고 말씀하셨어. 나중에 뉴스 나오면 봐라.”

“와, 신 팀장님 진짜 빠꾸 없구나…….”

직원들이 감탄사를 흘렸다.

“국장님까지 날려 버릴 줄은 상상도 못 했네요.”

“설마 사적인 복수는 아니겠지? 2국장님이 특조팀 괴롭힌 건 이 청에 있는 사람들이 다 아는 사실이잖아.”

“멍청아, 아무리 사이가 안 좋아도 혐의 없는 사람을 날릴 수 있냐?”

“맞는 말이네. 뭐야, 그럼 진짜로 2국장님이 유출했다는 소리잖아!”

“아까부터 그 말 하고 있었잖아.”

“미친…….”

직원들은 일거리를 내려놓고 웅성대기 시작했다.

도저히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그럼 우리 조사국은 어떻게 되는 거지? 2국장님 때문에 내전 치르고 있었잖아.”

“그건 없던 일이 되는 게 아닐까요? 지금 상황에서 설마 국끼리 사우겠어요?”

직원들이 혼란스러워하며 각자 의견을 나누고 있을 때, 복도에서 웬 중년 남자의 고함 소리가 들렸다.

세무서와 달리 지방청은 방문증이 있어야 들어오기 때문에 함부로 복도에서 소리 지르는 사람은 없었다.

“아악! 놔! 놓으라고!”

“김상민 씨, 이러신다고 좋을 거 없습니다.”

“이놈들이 지금 날 협박해?”

복도 쪽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직원들이 서로의 얼굴을 마주 보았다.

“설마 2국장님?”

“가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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