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9화. 선을 넘었어 (2)
특수조사 1팀의 설립 과정은 복잡했다.
신재현에게 힘을 실어주려는 윗선의 움직임에, 가만히 앉아서 신재현의 병풍이 될 수는 없다는 생각을 가진 서울청장이 대항마로 신설한 팀이었다.
신재현의 실적이 곧 서울청의 실적이 되는 것은 맞지만 아는 사람은 다 안다.
그 뒤에 본청의 조사국장 민치호가 버티고 있다는 것을.
자칫하면 서울청장은 민치호보다 한 수 아래인 것처럼 보일 위험성이 있었다.
그렇기에 서울청장은 자신이 키워 온 유능한 직원들을 모았다.
‘민치호에게 신재현이 있다면 나에겐 이들이 있다. 나 역시 인재를 키웠다.’
자기 세력의 약화를 막고 경쟁자인 중부청장에게 보이기 위함도 있었다.
그런 중요성을 띈 부서가 바로 특수조사 1팀이다.
일부러 신재현에게 2라는 숫자를 주고 권현아에게 1팀을 준 것도 그래서였다.
서울청 특수팀의 대표는 권현아이며 힘을 실어주겠다는 뜻으로.
그런 1팀과 2팀이 손을 잡았다.
서로 경쟁 관계에 있는 두 파벌의 실무자들이 힘을 합친 것이다.
오로지 공공의 적 하나만을 위해서.
이것은 알려지면 큰 화제를 불러올 일이었다.
그렇기에 두 팀은 모든 조사를 은밀히 진행했다.
서울청 내부 사람들은 절대 두 팀이 손을 잡았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파벌도 다르고 경쟁하는 사이인 데다, 겉으로는 1팀이 조사국을 등에 업고 2팀을 엿 먹인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2팀은 대외적으로 탈세자 22명을 조사하고 있었으니 두 팀이 또 다른 누군가를 조사하고 있을 거라는 생각은 하지도 못했다.
그렇게 특수조사 2팀의 소환 조사에 모든 관심이 쏠려 있을 때, 서울청장 오낙현은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국세청장 정상훈.
지는 해라지만 아직은 세무공무원의 정점에 있는 사람이다.
청장 자리에서 내려온 후에 권력을 잡으려 한다는 소문이 도는 사람.
‘신재현이 자꾸 정계를 건드리는 게 신경 쓰이는 건가.’
오낙현 서울청장은 작게 눈살을 찌푸렸다.
‘설마 이제 와서 압박인가?’
그러나 오낙현은 바로 고개를 저었다.
작년에 국회의원을 쳤을 때도, 올해 장관을 쳤을 때도 아무 말이 없던 사람이다.
신재현이 날뛰도록 허락해준 당사자가 겨우 정재계 인사 몇 건드린다고 압박 전화를 할 것 같지는 않았다.
결국 오낙현은 불안한 마음과 함께 전화를 받았다.
“예, 청장님.”
-오 청장, 아랫사람 관리 안 하나?
국세청장의 말투는 싸늘했다.
오낙현은 찰나의 순간 머리를 굴렸지만 짚이는 것은 하나밖에 없었다.
조사국과 신재현의 싸움, 거기에 성실납세국까지 끼어들어 내전이 일어난 것.
이쯤이면 슬슬 국세청장 귀에도 들어갈 법 했다.
오낙현은 즉시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내가 뭘 말하는지는 알고나 있나?
“서울청 내부에서 잡음이 있는 것은 제가 내버려 두고 있는 것입니다. 외부에 퍼지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쯧. 자네 아직 파악 못 했구만?
오낙현은 입을 다물었다.
이 청 내에서 수장인 자신이 파악하지 못하는 것은 있어선 안 되는 일이었다.
-시간을 줄 테니 수습해. 대신 빨리 해야 될 거야. 이 치부가 드러나면 나도 곤란하고, 무엇보다 중부청장이 눈치챘어. 자네를 치려고 준비 중이야.
치부, 그리고 중부청장이 칠 거라는 말까지 나왔다.
오낙현은 오랜만에 등골이 당기는 것을 느꼈다.
“무엇 때문인지는 말씀 안 해주실 거죠?”
-당연하지. 그 정도는 자네가 파악해야 하지 않나?
파벌 싸움에서 철저하게 중립을 지키는 국세청장이 이렇게 전화한 것만으로도 이미 오낙현에게는 큰 힌트였다.
그것을 감수하고서라도 전화했다는 것은, 국세청의 위신이 흔들릴 정도로 거대한 일이 서울청 내부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빠르게 처리하겠습니다.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여전히 말귀가 빨라서 좋아. 깔끔하게 처리해. 외부에 퍼지지 않게, 뒷말 안 나오도록. 아니면 내가 처리해야 하니까.
“예, 청장님.”
오낙현은 전화를 끊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청 내에서 무언가가 일어나고 있다.
그리고 국세청장과 중부청장은 알았는데 자신은 모른다.
무슨 일인지는 모르지만 해결하지 못하면 개망신이었다.
‘일단 사태 파악이 급선무야.’
오낙현은 누구를 부를까 고민하다 전화기를 들었다.
가장 적합하다 생각되는 사람 둘이 머릿속에 바로 떠올랐다.
그때였다.
-똑똑.
“나중에 와.”
지금은 모든 것을 제쳐놓고도 불러야 할 둘이 있었다.
“청장님. 권현아 팀장과 신재현 팀장입니다.”
오낙현은 당장 전화기를 내려놓고 외쳤다.
“당장 들어오라고 해!”
그 어느 때보다 반가운 얼굴이었다.
그러나 무거운 발걸음으로 들어오는 두 팀장의 얼굴을 보는 순간 오낙현 청장은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직감했다.
그래서 자신의 용건을 말하기 전에 둘이 말하기를 기다렸다.
먼저 입을 연 것은 신재현이었다.
“청장님. 김상민 국장을 쳐내셔야 합니다.”
“조사 2국장을? 갑자기 왜.”
오낙현은 본능적으로 아까 국세청장이 전화한 이유와 두 팀장이 말하는 국장이 연관되어 있음을 느꼈다.
오낙현의 질문에 권현아가 말없이 자료를 내밀었다.
제목에는 1팀과 2팀의 합동 조사라고 쓰여 있었다.
“원래는 명확한 증거를 찾아서 청장님께 보고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역시 국장님이시라 그런지 아무리 뒤져도 정황증거뿐이더군요.”
권현아는 아쉬운 얼굴로 입술을 깨물었다.
신재현이 말을 이었다.
“어떻게 하면 걸리는지 아주 잘 아는 사람입니다. 조사할 만한 것들은 다 피해놨어요. 어떻게든 걸어 보려고 저희가 조회 가능한 모든 것을 뒤졌습니다. 그런데 은행 기록은 별다른 게 없고, 최근 값비싼 부동산이나 귀금속을 산 기록도 없으며 해외 송금한 기록도 없습니다.”
“수색을 하면 나올 것 같은데 그 전에 청장님 허락을 받으러 왔습니다. 더 늦어지면 안 될 것 같아서요.”
두 팀장이 번갈아 가며 말하자 오낙현이 둘을 진정시켰다.
아까부터 둘의 말에는 무언가가 빠져 있었다.
“잠깐, 순서대로 얘기해. 너희 둘이 지금 나란히 2국장을 조사했다 이 말이야?”
“예. 미리 말씀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왜? 2국장이 뇌물이라도 받았어? 아까부터 2국장을 쳐야 한다 말이 많은데 이유가 대체 뭐야? 둘이 웬만한 이유로 이럴 리가 없잖아!”
오낙현은 답답한 마음에 목소리를 높였다.
두 팀장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이구동성으로 외쳤다.
“조사 2국장이 조사 대상에게 정보를 유출했습니다!”
“조사가 들어올 것을 미리 안 대상자들은 장부를 태워 버렸고요.”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오낙현은 두 눈을 질끈 감았다.
국세청장의 말이 맞았다.
이것은 중부청장이 칼을 갈고 당장 쳐들어와도 할 말이 없는 치부였다.
“청장님, 저희가 공식적으로 2국장을 조사하게 해주십시오.”
신재현이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오낙현을 바라보았다.
그 눈과 마주친 오낙현은 순간 고개를 돌리고 싶은 충동이 들었다.
그 정도로 살기등등했다.
오낙현의 머릿속에 신재현의 그간 행적이 물 흐르듯 스쳐 지나갔다.
여기서 허락한다면 당장 쳐들어가서 2국장의 모가지를 분지르고도 남을 놈이었다.
그리고 그 여파가 국세청을 얼마나 뒤흔들 것인가.
질질 끌려나가는 2국장과 서울청 앞에 모여든 기자들, 그리고 신재현 손에 뒤집힌 국장실까지.
그 모든 것이 그린 듯 눈에 선했다.
뒤이어 국세청장의 당부가 떠올랐다.
-깔끔하게 처리해. 외부에 퍼지지 않게, 뒷말 안 나오도록.
오낙현은 결정을 내렸다.
“내부적으로 은밀하게 조사해야 해. 아무도 알아선 안 되고 이 일이 밖으로 퍼져나가서도 안 돼.”
청장으로서 오낙현의 의도는 명확했다.
치부가 외부로 퍼져나가는 걸 원치 않는다.
믿을만한 사람끼리만 조사하여 조용히 처벌하고 넘어가겠다는 뜻이었다.
“예, 청장님.”
“청장님, 설마…….”
권현아는 바로 고개를 끄덕였으나 신재현은 반발했다.
신재현의 불신 어린 눈초리가 오낙현 청장을 향했다.
“그냥 넘기실 생각은 아니시죠?”
“누구와 손을 잡았든 한번 흘린 놈은 앞으로도 계속 흘리고 다닐 거야. 절대 함께할 수는 없지.”
“제 말뜻을 아실 텐데요. 함께하지 못하는 건 당연합니다. 문제는 2국장의 처우지요. 청장님께서는 2국장을 고발하실 생각이 없으신 겁니까?”
신재현은 따지듯 물었다.
아무리 다른 라인이라 해도 신재현과 청장이 대놓고 날을 세운 적은 없었다.
그렇기에 권현아는 슬쩍 신재현의 재킷 자락을 잡아끌었다.
“신 팀장님. 처분은 어디까지나 청장님께서 정하시는 거예요. 우리는 조사만 해서 드리면 되고.”
“권 팀장님. 우리는 판사나 검사는 아니더라도 나름 법의 최전선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이걸 그냥 넘어갑니까?”
“신 팀장님! 말씀 삼가세요! 청장님이 언제 그냥 넘어간다고 하셨나요?”
권현아와 신재현이 티격태격하고 있자 오낙현 청장이 가만히 손을 들었다.
“넘어가진 않는다. 당연히 처리는 해야지. 그래도 지금은 안 돼. 당장 청에 기웃거리는 기자가 몇인 줄 알아? 그게 다 네가 끌어들인 놈들이야. 기자들이 알게 되면 단순히 우리만 얻어맞는 걸로는 안 끝나.”
“구더기 무서워서 장 못 담그진 않습니다.”
오낙현은 신재현을 노려 보다가 이내 짧게 한숨을 쉬고는 테이블을 두드렸다.
“정말 다루기 힘든 놈이군. 내 결론을 말해주지. 김상민 국장은 내부 조사 후 지방청의 실권 없는 직위로 발령 낸다. 그리고 내년이나 내후년쯤 퇴직하게 될 거야. 아무도 청에서 이런 불미스러운 일이 있었다는 걸 모른 채 국장은 국세청에서 사라질 거다. 깔끔한 결말이지.”
오낙현의 설명에도 신재현은 납득한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신재현이 무언가 말하려 하자 오낙현은 손을 들어 막았다.
“신재현. 정의감에 날뛰는 건 좋은데, 대상을 잘못 골랐어. 여긴 서울청이고 서울청의 청장은 나다. 여긴 내 방식대로 해결해.”
더는 반론하지 말라는 뜻이었다.
신재현은 불만이 가득한 얼굴이었지만 입을 열지는 않았다.
“좋아. 권 팀장, 필요한 것 요청해. 바로 결재 내줄 테니. 그리고 둘 다 팀원들 입단속은 말 안 해도 알겠지?”
“네.”
“……네.”
결연하게 답한 권현아와는 달리 신재현은 마지못해 대답하는 기색이었다.
오낙현은 무언의 항의를 깔끔하게 무시했다.
“나가 봐.”
***
며칠간 서울지방국세청은 잠잠했다.
세간의 관심을 받고 있는 팀이 조사에 착수했다는 기사가 떴을 때와는 정반대의 분위기였다.
기자들의 기대감과는 달리 2팀의 행보는 의외로 조용했다.
조사 과정이라 그런 것인가?
기자들은 고개를 갸웃하면서도 긴장의 끈을 놓지 않았다.
폭풍전야.
그야말로 그 말이 어울리는 고요함이었다.
그리고 언제나 그랬듯 폭풍의 전조는 예고 없이 찾아왔다.
-끼이익.
서울청 정문 앞, 한 남자가 차에서 내렸다.
굳은 얼굴의 50대 남자는 매우 익숙하게 서울청 로비를 가로질렀다.
“허억!”
“저, 저분이 서울청에 왜…….”
로비 한쪽에 있던 직원 몇이 알아보고는 숨을 들이켰다.
접수처 직원은 그 반응에 어리둥절했다.
“저 사람이 누군데? 어디 청장님이야? 아, 이쪽으로 온다.”
남자는 묵직한 발걸음으로 접수처에 다가가 방문객 명단을 작성했다.
“방문 목적을 말씀해주십시오.”
접수처 직원의 질문에 남자가 생긴 것만큼이나 무뚝뚝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청장님 뵈러 왔습니다.”
“아, 그렇군요. 청…….”
방문 목적을 적던 접수처 직원이 손을 멈추고는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설마 하는 마음에 물었다.
“야, 약속은 하셨습니까?”
“따로 약속은 잡지 않았지만 거절하진 못할 겁니다. 본청의 조사 1국장 민치호가 왔다고 전하세요.”
“보, 본청의 1국…….”
로비에 있던 직원들은 폭풍의 예감에 일제히 몸을 떨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