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8화. 선을 넘었어(1)
권현아는 잔뜩 흥분한 상태였다.
얼마나 화가 났는지 말도 제대로 잇지 못했다.
요즘 꽤 불안해 보이긴 했는데 이렇게까지 감정을 드러내는 건 처음 봤다.
나와 장세훈은 멍하니 서로를 쳐다보았다.
잠깐, 근데 방금 권현아가 뭐라고 했지?
“2국장님이라고 하셨습니까? 조사 2국의 김상민 국장님이요?”
“네! 그 치사하고 치졸한 놈이요!”
윗사람에게는 깍듯하던 권현아가 놈이라고 부를 정도였다.
얼마나 화가 났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2국장님이 저희 팀 죽이려고 하시는 건 알고 있습니다. 그래도 그 정도는 이해합니다. 제 승진이 이례적이기도 하니까요. 그거야 제가 결과로 보여 드리면 국장님도 납득하실 테니…….”
세무서에 있을 적엔 대놓고 견제하는 놈도 많았고 아예 함정에 빠뜨린 놈도 있었다.
2국장의 왕따 정도는 귀여운 편에 속한다.
적어도 일에 방해는 안 하니까.
우리 팀에 훼방 놓는 것도 아니고, 함정을 파는 것도 아니다.
문제는 조사국에서 정보를 흘린 놈이지.
“아뇨, 그거 아주 개새끼예요. 방금 만나고 오는 길인데 그 새끼가, 그 새끼가……!”
와, 개새끼라는 단어까지 나왔다.
웬만한 나쁜 짓으로는 권현아 입에서 저런 말까지 나오진 않을 텐데.
이쯤 되자 대체 무슨 일인지 나까지 궁금해졌다.
아까까지만 해도 내가 권현아처럼 분노에 차서 조사국을 돌러 갈 생각이었는데.
어느새 내 화가 식어 있을 정도였다.
“천천히 말씀하세요. 혹시 민감한 얘기면 저와 따로 말씀하시겠습니까?”
권현아가 쉽사리 입을 열지 못하기에 혹시 수치스러운 얘기인가 싶었다.
그래서 꺼낸 말이었는데, 장세훈과 안길진이 알아서 자리를 피하려는 듯 문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러나 권현아는 둘을 만류했다.
“아니에요. 2팀 전체에 관련된 문제예요. 이 일이 밝혀지면 국세청 전체가 난리가 날 거고요.”
하긴, 수치스러운 얘기면 굳이 날 찾아올 필요가 없었다.
강혜원이나 다른 친한 직원을 찾아갔겠지.
그러면 대체 뭐지?
그 순간 내 머릿속에 혹시나 하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설마…… 아니, 이건 아니겠지.”
다른 누구도 아니고 국장이 그랬을 리가 없다.
나는 고개를 흔들었다.
권현아는 이를 으득 갈더니 물었다.
“짐작 가시는 게 있나 보네요. 지금 조사가 순탄하게 안 풀리시죠?”
권현아의 말이 끝나자마자 나는 내 우려가 사실임을 알았다.
권현아는 확인 사살하듯 캐물었다.
“조사 대상이 미리 정보를 알았다고 생각될 만큼, 일이 이상하게 흘러가시죠?”
나는 호흡이 가빠오는 것을 느꼈다.
애써 가라앉았던 불덩이가 가슴을 비집고 올라오는 기분이었다.
“그것도 일반 사업주가 아니라, 딱 유력자들만 골라서 뭔가 수를 써 뒀죠?”
권현아는 비교적 정확하게 우리의 상황을 꿰뚫었다.
직접 보고 들은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거기에 아까 2국장을 개새끼라고 부른 것을 합치면 답은 하나였다.
나는 권현아가 왜 욕까지 써 가며 분노에 가득 차 우리 사무실로 쳐들어 왔는지 절실하게 이해했다.
당장 내 뒷골이 뻐근하게 당기며 심장 부근에서 불덩이가 치밀어 오르는 느낌이었다.
그 불덩이는 내 척추를 타고 거슬러 올라가 머리끝에 다다랐다.
“이 개새끼가!!!”
***
30분 전.
실적은 쑥쑥 오르고 있었지만 권현아는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자신이라고 이 자리에 그저 올라온 것은 아니다.
서울 전역 28개 세무서를 통괄하는 지방청인 서울지방국세청은 본청으로 향하는 관문이자 그 자체로도 실력이 입증된 사람들만 모이는 곳이었다.
세무서에서 거르고 걸러 올라온 조사관들.
그리고 권현아는 그 서울청에서도 실력을 입증해 팀장의 자리를 따냈다.
그런 자신이 국장의 협잡에 놀아나는 것은 싫었다.
국장은 그저 가만히 있으면 된다고 했지만 현실은 파벌 싸움 이상으로 더러웠다.
애들 싸움이 어른 싸움 된다는 말이 있듯, 이미 성실납세국장이 끼어든 시점에서 이것은 단순한 팀 죽이기가 아니었다.
같은 편이어야 할 청의 직원들끼리 소속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편이 갈리고 서로를 괴롭혔다.
당장 두 국의 직원들은 상사의 싸움에 휘말려 일이 늘어나고, 하지 않아도 될 야근까지 하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권현아가 있었다.
의도치 않게 휘말려 들었지만 점점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권현아가 특수팀장 자리를 꿰찬 것을 시기하는 작자들은 이상한 소문까지 퍼뜨리고 있는 상황이었다.
-권현아는 정당한 방법으로 특조팀 1팀장에 앉은 것이 아니다. 지금 2팀을 짓누르는 것처럼 윗대가리에게 들러붙어 따낸 것이다.
권현아 입장에서는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었다.
그래서 신재현과의 대화가 끝난 후, 마음을 정리한 권현아는 국장실을 찾았다.
“어, 권 팀장! 마침 잘 왔어! 앉아 봐.”
2국장 김성민은 권현아를 반갑게 맞았다.
권현아는 국장의 권유에도 앉지 않은 채 굳은 얼굴로 서 있었다.
권현아의 태도가 심상치 않음을 느낀 국장은 한차례 혀를 차고는 일어서서 권현아에게 다가갔다.
“권 팀장, 왜 또 그래? 지금 아주 잘하고 있잖아. 우리가 도와주니까 실적도 쑥쑥 올라가고 얼마나 좋아?”
“국장님. 더는 안 도와주셔도 됩니다. 저는 이 일에서 빠지겠어요. 국장님의 마음은 감사했습니다.”
길게 말을 나눠봤자 국장은 좋은 소리를 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권현아는 얼른 고개를 숙이고 돌아서려고 했다.
“어허! 권 팀장, 사람이 왜 그래? 위로 가고 싶지 않아? 내가 가게 해준다니까.”
“이런 방식은 아닙니다, 국장님. 청장님께서도 요즘 주시하고 계세요.”
아무래도 아랫사람이다 보니 직접적으로 말하는 것은 부담스러웠다.
그래서 청장을 팔아먹었는데도 국장의 반응은 냉담했다.
“상대는 지금까지 다퉈오던 라인의 칼이야. 지금 죽여놓지 않으면 나중에 어떻게 될 것 같아? 권 팀장, 자네랑 싸우게 될 수도 있어!”
“싸우게 되면 싸우는 거죠! 저는 청장님이 믿어주신 만큼, 정정당당하게 싸울 겁니다! 신 팀장에게 질 거란 생각은 하지 않아요!”
권현아가 울컥해서 말하자 국장은 한심하다는 눈초리로 내려다보았다.
“어이구, 권 팀장. 그렇게 순진해서 어떻게 승진할 거야? 청장님도 그렇게 깨끗하게 그 자리 가셨을 것 같아? 이 사회는 경쟁이야. 수백, 수천 명 되는 공무원 중에서 선택받은 소수만 위로 가는 거라고. 왜 쉬운 길을 마다하나?”
“저는 청장님께 제 능력을 보여드렸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럴 거고요.”
잠시 망설인 권현아는 신재현을 떠올렸다.
국장급 회의에도 들어가고, 거기서도 당당하게 장관을 치겠다며 소리쳤다고 들었다.
처음 청장에게 전해 들었을 땐 놀랐지만, 지금이 바로 그 같은 용기를 발휘할 때라는 생각이 들었다.
권현아는 주먹을 꾹 쥐고 목소리를 높였다.
“저는 제힘으로 싸우겠습니다. 그렇게 해서 떨어져 나가면 그건 제 능력이 부족해서겠죠. 청장님께서도 과한 싸움은 자중하라고 하셨습니다. 이제 그만하셔야 할 때예요!”
국장의 미간이 꿈틀했다.
“신재현 그놈도 따박따박 대들더니…… 권 팀장도 신재현 그놈한테 안 좋은 것만 배워왔어? 권 팀장은 내 말만 들으면 돼.”
노골적인 말에 권현아가 울컥했다.
처음부터 알고는 있었다.
권현아가 좋아서 밀어준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이용하기 좋은 위치에 권현아가 있었기 때문에 국장은 손을 내밀었을 뿐이다.
“저는 이 자리에서 확실히 말씀드렸습니다. 2팀에게 협조하지 않으실 거라면 저희 팀도 똑같이 대해주세요.”
“그 말 책임질 수 있어? 2팀이 당하는 거 보고도 무섭지 않나?”
“2팀은 고립된 상황에서도 충분히 제 할 일을 해냈습니다. 저희도 그에 뒤지지 않는 인재들이 모여 있어요. 할 수 있습니다.”
권현아의 결심은 단단했다.
그 얼굴을 본 국장이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왜 멀리 보질 못 하나…… 지금 서울청이 다가 아니야. 2팀을 누가 노리는지 알고나 있나? 국세청은 말하자면 연못이야. 안에서 보면 바다처럼 넓어 보이지만 결국엔 연못이지. 권 팀장, 나는 바다를 봤어.”
국장의 눈동자는 권현아가 아닌 어딘가 먼 곳을 보는 것처럼 흐렸다.
권현아는 국장의 말투에서 이상함을 느꼈다.
“바다라니요. 무슨 말씀이세요? 외부 사람을 끌어들이기라도 하셨다는 말씀이에요?”
지금까지는 내부 싸움에 불과했다.
그렇기에 청장도 그저 지켜보고 있는 것이고.
심지어 국장은 서울청이 아니라 국세청을 연못에 비유했다.
국세청 외부의 유력자와 손을 잡았다는 말인가?
설마 하는 마음이 들었지만, 지금까지 국장의 행보를 보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었다.
“왜? 갑자기 관심이 생기나? 나는 국세청에서 만족하지 않을 거야. 더 큰 세계로 갈 거거든. 자고로 이런 포부를 갖고 살아야 위로 갈 수 있는 법 아니겠어?”
“국장님…… 지금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 2팀에 무슨 수작을 부리신 거냐고요!”
권현아는 두려움을 느꼈다.
국장이 다른 조사국까지 끌어들여 2팀을 누를 때도 치사하다는 생각만 들었다.
그런데 지금 국장은 서울청마저 가볍게 보고 있었다.
지금보다 더한 술수가 뭐가 있을지 상상조차 하기 싫었다.
“2팀이 얼마나 위험한지 내가 말했지? 장관에 국회의원에…… 아, 권 팀장은 지금 2팀이 뭘 조사하고 있는지 못 봐서 그런 말이 나오는 거군. 또 불구덩이를 건드렸어. 그러니 국세청이 뒤집히기 전에 내가 손을 쓰는 게 당연하지.”
“대체…… 무슨 짓을 하신 거예요?”
국장은 자신보다 한 뼘 정도 작은 권현아를 차가운 눈으로 내려다보았다.
그 눈빛이 너무나도 낯설어서 권현아는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2팀은 이번에도 유력자들 쳐서 주목받고 싶은가 본데, 절대 그렇게 안 될 거야. 조사에서 아무것도 얻지 못할 거거든.”
“어떻게 조사하는데 아무것도 안 나올…… 서, 설마 국장님.”
국장은 아무 대답도 없이 빙긋 웃기만 했다.
상상도 싫은 단어가 권현아의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권 팀장. 우리는 같은 편이야. 청장님은 곧 국세청 전체의 수장이 되실 거고, 나는 이번 기회에 얻은 연줄로 청장님을 바로 곁에서 도와드릴 수 있어. 그리고 그 왼쪽에는 권 팀장, 자네가 있는 거지. 어때, 기대되지 않아?”
국장은 번들거리는 눈동자로 손을 내밀었다.
그것이 너무나 두렵고 징그러워서 권현아는 슬금슬금 뒷걸음쳤다.
같은 공간에 있는 것 자체가 너무도 싫었다.
권현아는 인사도 없이 국장실을 뛰쳐 나왔다.
‘알려야 해, 국장이 미쳤다고!’
그러나 청장에게 바로 달려가는 것은 껄끄러움이 느껴졌다.
그 순간 권현아의 머릿속에 첫 번째로 떠오른 것은 한 청년이었다.
권현아는 온 힘을 다해 2팀으로 달렸다.
***
“정말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지 모르겠어요. 국장님은 권력에 미쳤어요. 할 짓 못 할 짓 구분을 못 한다고요!”
그래서 조사 대상에게 조사 들어갈 테니 대비하라는 얘길 흘렸단 말이지.
조사국장씩이나 되는 사람이.
-으득.
나는 한껏 목소리를 억눌렀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당장 뛰쳐나갈 것 같았기 때문이다.
“권 팀장님, 감사합니다. 어려운 결정이셨을 텐데.”
아무리 화가 나도 이 말은 해야 했다.
권현아는 인사를 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이었다.
“아뇨. 아무리 우리가 경쟁 관계라 해도 결국엔 국세청의 틀 안에서 싸우는 거예요. 반드시 그렇게 해야 하고요. 이건 절대 그냥 넘어갈 문제가 아니에요.”
권현아는 국장에게 경칭도 붙이지 않았다.
그만큼 화가 났다는 뜻이다.
나는 이를 악문 채 고개를 끄덕였다.
“맞는 말씀입니다. 국장님은 선을 넘었어요. 제 모든 걸 동원해서라도 2국장만큼은 이 국세청에서 숨 쉬지 못하게 할 겁니다.”
반드시 그렇게 만들 것이다.
나는 권현아와 내 스스로에게 다짐하듯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