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1화. 각자의 선택(1)
권현아는 작년까지 조사과에 있었다.
직속 상사는 아니었지만, 조사2국장이 어떤 사람인지도 알았다.
국세청장을 노리는 세 명의 후보 중 오낙현 서울청장을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서울청장을 따라 어떻게든 승진하고 싶어 하는 욕구가 매우 투명하게 보이는 사람이다.
권현아 역시 승진욕, 승부욕은 있기 때문에 조사2국장을 나쁘게 생각할 생각은 없었다.
그러나 이번 제안은 뭔가 꺼림칙했다.
둘 다 같은 라인이니 서로 돕고 사는 건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어감이 이상하지 않은가.
“제가 받아야 했을 관심이라뇨?”
“맞는 말 아닌가? 어디서 굴러왔는지 모를 7급 나부랭이가 청장 직속 TF 팀장 자리를 차지한 것도 모자라서 이제는 온 국민의 관심을 독차지하고 있는데.”
조사2국장의 말투는 신랄했다.
권현아는 국장의 표현에 껄끄러우면서도 마음 한쪽 편으로는 시원함을 느끼고 스스로 깜짝 놀랐다.
‘내가 많이 궁지에 몰려 있었구나.’
권현아는 스스로를 탓하며 쟁반 위로 시선을 내렸다.
그리고 아무렇지도 않다는 얼굴로 도로 숟가락을 들었다.
“제가 무슨 관심을 받을 필요가 있나요? 청장님이 분에 넘치는 권한을 주셨으니…….”
“권 팀장.”
국장은 답답하다는 듯 말을 잘랐다.
‘밥 먹을 때는 개도 안 건드리는데.’
권현아는 숟가락을 든 채로 국장을 빤히 바라보았다.
차마 국장에게 대들지는 못하겠고, 밥 먹게 좀 가라는 것을 온몸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2국장은 은근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이어갔다.
“지금 2팀은 폭주 기관차야. 지금이야 큰 건을 빵빵 터뜨리니 좋아 보이겠지만, 저게 얼마나 위험한 짓인지는 자네가 더 잘 알지 않나? 처음이 어려운 거지 다음은 쉬워. 신입 조사관들이 TV에서 나오는 화려한 면만 보고 안 좋은 걸 배우면 어떡하겠나?”
2국장의 표현은 이상했다.
권현아는 그 점을 지적하려 했으나 국장은 끼어들 틈을 주지 않았다.
“일단 들어봐. 우리 모두 어느 정도는 알고 있잖아. 그냥 공무원이 어떻게 장관을 쳐. 이건 누가 뒤를 봐주는 거야. 그런데 신입 조사관들은 그런 사정을 모르고 결과만 보고 나서 ‘와, 멋있다’ 이런 소리만 지껄이겠지. 그렇게 천지 분간 못 하고 무조건 들이받는 놈들이 늘어나면 국세청이 어떻게 될 것 같나?”
이미 지금도 국세청 내부에 그런 움직임은 있었다.
심지어 뒷배 없는 직원들마저 그랬다.
화제의 2팀장만큼은 못해도 되는 데까지 해보겠다며 조사에 열심이었다.
평소 같으면 고개를 흔들며 슬쩍 넘어갔을 조사도, 더 빡빡하게 해냈다.
“하지만 이건 순기능 아닌가요? 원래라면 국세청도 권력이나 정치 싸움에 아무 상관 없는 기관이어야 하잖아요.”
“자네가 뭘 모르는구만. 그러다 삐끗하면? 국세청 내부에 폭탄을 껴안고 있는 거나 다름없는데. 이러다 터지면 피해 보는 건 청장님이야. 자네, 청장님 사람 아니었나? 우리는 같은 편이라고, 같은 편.”
여기서 아니라고 하는 것도 모양새가 이상했다.
권현아는 입을 다물었다.
그것이 마음에 들었는지 2국장은 본인 뜻대로 결론을 내렸다.
“권 팀장은 걱정할 것 하나도 없어. 내가 알아서 다 할 테니까. 나는 권 팀장이야말로 청장님 곁에 어울리는 인재라고 생각해. 설마 내가 권 팀장을 불리하게 하겠어?”
“국장님, 아까 국장님도 말씀하셨다시피 2팀장 뒤엔 뭔가 있어요. 그쪽의 분노를 사면 어쩌려고 그러세요.”
“기껏 해봐야 민치호 국장 아니면 국세청장님이야. 민 국장은 아직 날아오르기 전이고, 국세청장님은 지는 해야. 권 팀장은 그냥 모르는 척하고 있으면 돼.”
권현아의 대답도 듣지 않고 국장이 일어섰다.
떠나가는 국장의 뒷모습을, 권현아는 심란한 마음으로 바라보았다.
대체 무슨 짓을 하겠다는 건지 불안하면서도 기대가 되기도 했다.
‘일단 두고 보다가 정 이상하면 빠져도 되는 것 아닌가?’
독이 있음을 알면서도 끌리는 기분이었다.
지금이라도 가서 말려야 하나, 아니면 두고 볼까.
밥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모를 정도로 식사 내내 고민했지만 답은 나오지 않았다.
권현아는 결국 아무런 선택도 하지 못한 채 식사를 마쳤다.
***
특수조사 1팀의 직원들은 사무실로 들어오자마자 팀장의 자리로 시선을 보냈다.
창가에 있는 널찍한 책상은 아직 비어 있었다.
오늘도 팀장은 혼자 텅 빈 구내식당으로 간 것이리라.
직원들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잠시 책상을 바라보던 젊은 직원 하나가 내내 궁금했던 것을 물었다.
“팀장님 왜 혼자 드신답니까?”
“우리 불편할까 봐 그러시지. 배려심이 많은 분이라.”
“에이, 저희가 왜 팀장님을 불편해합니까? 우리 팀에 그럴 사람 아무도 없어요.”
“옆 팀 유명해지면서 덩달아 팀장님도 시선 받으시니까. 이 근처에 식당이라고 해 봤자 그게 그거인데, 마주치면 비웃는 놈들이 꼭 있단 말이야.”
“예? 어떤 놈들이 그런 짓을 합니까?”
젊은 직원이 기분 나쁜 얼굴을 했으나 다른 직원들은 그저 씁쓸하게 웃을 뿐이었다.
“다른 청에서 와서 잘 모르나? 옆 팀장 오기 전에는 우리 팀장님이 딱 옆 팀장 포지션이었어.”
“예? 무슨 뜻이에요?”
“이 사무실 주인이 정해지는 과정도 많이 치열했어. 지금도 이 자리 탐내는 사람이 많다. 팀장님 견제하는 놈이 많다는 뜻이지.”
“우리 팀장님도 대단하신 분이네요.”
“당연하지. 저 나이에 이런 특수팀 팀장 달기 쉽지 않아. 일도 깔끔하고 함부로 모험을 안 해. 안정적으로 일하는 스타일이야.”
젊은 직원은 아,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한 방에 큰 걸 터뜨리느냐, 안정적으로 묵직하게 가느냐 선택이라면 당연히 안정적인 게 낫겠네요.”
“그래. 안 그래도 시선이 집중된 곳인데 작은 실수 한 번이라도 있으면 바로 구설수 오르기 딱 좋아. 실력 검증된 사람이 최고지.”
“혹시 팀장님이 저희랑 같이 밥 먹기 싫어서 그런 건 아니죠?”
“그건 아닐걸. 작년에 조사과에 있을 때 멀쩡하게 팀원들이랑 먹으러 다녔는데.”
“그러면 내일부터는 같이 식사하자고 해도 됩니까?”
선배 직원들이 서로 얼굴을 마주 보았다.
“팀원을 과하게 신경 쓰는 분이라 오히려 부담 가지실 것 같은데.”
“일단 말은 해 보자. 막내도 저렇게 말하는데. 옆 팀 보니까 거기는 아주 단체로 몰려다니더만.”
“하긴 우리 팀장은 우리가 챙겨야지.”
직원들끼리는 합의가 끝났다.
이제 팀장이 돌아오길 기다리는 일만 남았다.
“근데 옆 팀 좀 너무 하는 거 아니에요?”
“뭐가? 장관 잡은 거?”
젊은 직원은 핸드폰을 열며 투덜거렸다.
“지금 며칠이 지났는데도 난리잖아요. 일부러 화제 되는 것만 골라서 하는 건 아니겠죠?”
“너 같으면 주목받고 싶다는 이유로 장관을 치겠냐?”
“아니요. 그건 미친 짓인데요.”
“응. 그러니까 우리 청 내부에서도 아무도 그런 트집은 못 잡잖아. 그냥 쟤네는 탈세에 미친개들이야. 아니지, 미친개는 하나지. 어쨌든 그렇게 생각하는 게 편해.”
직원들은 달관한 표정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해할 수 없는 영역을 굳이 이해할 필요는 없다.
그런 반응이었다.
“우리 팀장이 걱정이지. 요즘 청장님한테 자주 불려가는데.”
“옆 팀 때문에 그런 건 아니겠죠.”
“글쎄. 청와대까지 끼어들어서 청장님이 좀 붕 뜬 것 같긴 하더라. 다음에 국세청장 되고 싶어서 몸이 단 분인데.”
“야, 그런 말 하지 마라.”
“그러니까 사무실에서만 얘기하잖아. 왜, 너 나가서 얘기하게?”
“뭔 소리냐? 너 입조심 하라는 얘기…….”
티격태격하던 직원들이 갑작스레 입을 다물었다.
사무실 문 쪽에서 보안이 해제되는 특유의 알림음이 들렸기 때문이다.
“다녀오셨습니까, 팀장님.”
“네.”
권현아는 짧게 대답하며 빠른 걸음으로 사무실을 가로질렀다.
젊은 직원이 말을 걸려는 순간, 선배 직원이 제지했다.
왜요? 하고 입 모양으로 물었지만 선배 직원은 날카로운 눈으로 팀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팀장의 모습이 뭔가 평소와는 달랐다.
점심 맛있게 먹었냐며 묻던 안부 인사도 오늘은 없었으며, 무엇보다 안색이 어두웠다.
그동안 무슨 일이 있어도 사무실에서는 티를 내지 않았던 팀장이다.
이렇게 표정 관리가 안 된다는 것은 무언가 심각한 일이 있다는 뜻이나 다름없었다.
직원들의 분위기도 덩달아 가라앉았다.
“팀장님, 결재 좀 부탁드립니다.”
“…….”
“팀장님……?”
“아, 예.”
어디에 정신을 놓고 왔는지 멍한 모습의 팀장에 직원들이 서로 얼굴을 마주 보았다.
자기 관리 철저한 팀장이 이렇게 얼빠진 모습을 보여주는 건 처음이었다.
‘물어봐야 되나?’
‘청장님한테 깨진 거 아냐?’
‘우리 팀이 뭐 실수한 게 없는데 왜 깨져.’
직원들이 소리 없이 입 모양으로만 대화했다.
결국 선배들의 성화에 떠밀린 막내 직원이 엉거주춤 자리에서 일어섰을 때였다.
-똑똑.
노크 소리에 직원들이 고개를 들었다.
딱히 올 사람이 없는데 무슨 일인가 하는 표정들이었다.
문에서 가장 가까운 자리에 앉은 직원이 다가가 문을 열자 중년 남성들이 귀찮다는 얼굴로 서 있었다.
“과장님……?”
권현아가 놀란 얼굴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사무실로 걸어들어오는 그들은 조사2국의 과장들이었다.
“아니, 과장님들이 여기까지 무슨 일들이세요?”
팀장이 과장을 찾아가면 몰라도 과장들이 일부러 행차하다니 있을 수도 없는 일이다.
역시나 과장들은 불편한 얼굴로 들어와 테이블 앞에 대충 걸터앉았다.
“국장님 지시예요. 권 팀장도 알고는 있어야 할 것 같아서.”
“조사2국장님이요?”
권현아는 직감했다.
식당에서 헤어지자마자 조사2국으로 돌아간 국장이 과장들을 불러 무언가 지시를 내린 것이다.
이것이 청을 깎아 먹는 일은 아니길, 권현아는 마음속으로 빌었다.
그러나 과장들이 여기까지 온 이상 절대 좋은 일은 아니었다.
“앞으로 특조 2팀의 요청은 그 무엇도 들어주지 말라는 국장님의 명령입니다.”
“예?”
2팀의 인원은 겨우 다섯.
인력 부족은 직원들의 힘으로 해결하기 힘든 문제다.
그래서 일전에 2팀의 요청으로 법인세과와 조사과가 협력했던 것이다.
그런데 그 모든 지원을 거절하겠다는 것은 뻔했다.
업무적으로 괴롭히겠다는 거다.
치졸하기 그지없었다.
“국장님이 정말 그러셨다고요?”
권현아가 믿기지 않는다는 듯 물었지만 과장들은 어두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진짜입니다. 아마 조사1국하고 3국도 비슷할 거예요. 2국장님이 다른 국에도 요청했다고 하셨으니.”
“이건 좀…….”
권현아는 저도 모르게 치졸하다고 얘기하려다가 급히 입을 다물었다.
앞에 있는 과장들은 오죽하겠는가.
“한 가지 더 있어요.”
쓴웃음을 지은 과장이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온갖 감정이 뒤 섞인 한숨이다.
“오늘부터 적극적으로 1팀에 협조하랍니다. 조사국은 급한 일만 처리하고 1팀의 조사를 도울 거예요. 명목상은 2팀을 도운 적 있으니 1팀도 도우라는 거죠.”
권현아는 얼굴이 화끈거리는 것을 느꼈다.
자신이 잘못한 건 없지만, 결국 조사국의 밀어주기에 자신이 이득을 보는 구조다.
그것도 2팀은 왕따를 시켜가며.
물론 과장들의 표정도 밝지는 않았다.
“내부 싸움 정말 싫어하는데.”
대놓고 짜증을 내는 과장도 있었고.
“권 팀장이 2국장님한테 요청한 건 아니죠? 뭐 돕는 거야 상관없는데 조사국 전체가 나서서 팀 하나를 죽이는 건 좀…….”
고개를 젓는 과장도 있었다.
그러나 직속 상사인 국장의 명령이 떨어진 이상 과장들에게는 선택권이 없었다.
권현아가 필사적으로 부인했다.
“저는 절대 국장님께 그런 요청을 드린 적이 없습니다.”
“권 팀장이 그럴 사람이 아니라는 건 알긴 하는데…….”
과장들이 불쾌한 얼굴을 하고 있을 때, 가장 끝자리에서 조용히 앉아 있던 젊은 과장 하나가 피식 웃었다.
“최 과장, 뭐가 그렇게 재밌어요? 앞으로 분란 일어날 거 생각하니까 머릿속이 갑갑한데.”
지목당한 최 과장은 웃음기를 지우지 않으며 말했다.
“지금 조사국 전체가 돌아선 상황인데, 여기서 2팀이 일 저지르면 어떻게 될지 궁금하지 않아요?”
“어떻게 되긴 뭐가 어떻게 돼요. 조사국이 개망신당하는 거지.”
“그러니까요. 이런다고 2팀이 끝날 것 같지는 않거든요.”
최 과장이 계속 피식거렸고, 과장들의 얼굴이 싸늘하게 굳었다.
아무도 헛소리라고 일축할 수 없었다.
과장들은, 그리고 1팀은 무거운 침묵으로 불길한 예감을 대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