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국세청 망나니-150화 (150/500)

150화. 초청

“청와대요?”

팀원들의 시선이 내게 쏠렸다.

내가 너무 크게 말했다는 것을 깨닫고 목소리를 낮췄다.

그러나 시선은 떨어지지 않았다.

목소리 크기의 문제가 아닌지도 모른다.

“수석님, 이해가 잘 안 가는데요.”

-시간 오래 안 뺏을 겁니다. 잠깐 와서 구경하고 가세요.

청와대가 동네 사랑방도 아니고.

말투도 가벼웠다.

사거리 피씨방에 있으니까 잠깐 나와서 놀다 가라.

딱 그런 느낌이다.

-청와대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하지 않아요?

그야 궁금하긴 하다.

아무나 들어갈 수 없는 곳이니까.

그런데 애초에 청와대가 놀러 갈 수 있는 곳이던가?

“초대해 주신다면야 감사하겠습니다만, 그렇게 쉽게 가도 됩니까?”

-청와대 입주자가 공무상 초대하는 건데요. 괜찮습니다.

청와대 주인이라고 표현하는 건 봤어도 입주자라는 말은 처음 들었다.

물론 경제수석이 주인은 아니지만.

그 표현이 어이없어서 웃고 있으니 수석이 따라 웃었다.

그보다 공무상이라는 말이 신경 쓰인다.

정말 놀러 오라는 뜻은 아닌 것 같았다.

-공문이 하나 갈 건데 갑자기 오라고 하면 놀랄 것 같아서요.

그러면 그렇지.

공문이라면 정말 공무가 맞다.

“저번 보고서 때문에 그러십니까? 자세한 설명이 필요하시면 기꺼이 가겠습니다.”

-보고서 때문은 맞는데 그렇게 부담 가질 필요는 없어요. 팀원 전부와 함께 가벼운 마음으로 오시면 됩니다.

나는 사무실 안을 슥 훑어보았다.

호기심과 기대감 어린 눈빛이 나를 향하고 있었다.

“전부라면 혹시…….”

-네. 이번 일에 대한 감사의 뜻, 그리고 격려의 뜻으로 VIP께서 초청할 겁니다.

갑자기?

보고서 가져갈 때만 해도 이걸로 끝일 줄 알았는데.

내가 입을 떡 벌리자 강혜원이 장세훈의 어깨를 툭툭 치는 것이 보였다.

-바쁜 상황에 부를까 말까 고민 많이 했습니다. 하지만 민 국장의 생각이에요. 지금 신 팀장은 너무 위험하다고 했습니다. 조금이라도 힘을 실어 주려면 이제 자기만으로는 안 된다고요.

민치호 국장의 아이디어라는 말에 나는 눈이 번쩍 뜨였다.

요즘 각자 일이 바쁘다 보니 민치호는커녕 이선균과도 대화할 틈이 없었다.

그런데도 여러모로 보이지 않는 곳에서 챙겨주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든든함을 느꼈다.

그러나 일말의 걱정도 들었다.

“제가 혹시 많이 나갔습니까?”

내가 하는 일은 아슬아슬한 줄타기다.

마음 같아서는 다 엎어 버리고 싶은데.

그래도 아직 막지 않는다는 건 윗선에서 커버가 가능하다는 뜻이리라.

-아뇨. 괜찮습니다. 괜찮게 하려고 마련하는 자리입니다. 서울청에 TF 자리 만들어 놓으면 될 줄 알았는데, 신재현 씨가 마음 놓고 일하기엔 서울청도 좁더군요.

“죄송합니다. 이번 건 때문에 여론도 안 좋아진 것 같아서…….”

장관은 대통령이 임명했다.

장관이 무언가를 잘못했다면 당연히 사람을 잘못 본 대통령의 책임이다.

그래서 민치호가 ‘쳐도 된다’는 뜻으로 명단에 초록색을 칠해서 줬을 때 놀랐다.

장관의 이름이 떡하니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장관이라고 사정 봐줄 내가 아니다.

높으신 분이라 첫 번째로 쳐 줬다.

-그런 생각 하실 필요 없습니다. 오히려 고마워요. 우리는 턱밑에 그런 놈이 있는 줄도 몰랐거든요. 내버려 두면 다 썩습니다. 발견했으면 도려내야죠.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마음이 편합니다.”

-정치고 여론이고 절대 신경 쓸 필요 없습니다. 신재현 팀장은 원래 그런 사람이잖아요.

당연하다.

내 기준은 딱 하나니까.

여론에서도 내가 국회의원에 이어 장관까지 건드린 것을 보고 이런저런 추측을 내놓던데, 다 틀렸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정치고 나발이고 내 알 바 아니다.

오히려 정치네 뭐네 하며 나와 엮지 말았으면 싶다.

“예. 앞으로도 눈에 보이면 칠 겁니다.”

-그겁니다. 그걸 바라는 거예요. 다만 앞으로 상대가 얼마나 커질지 모르니 힘을 실어 주는 게 좋을 것 같아서요. 물론 신 팀장은 자질구레한 거 신경 쓸 필요 없고, 그냥 와서 악수만 하고 사진만 찍고 가면 됩니다. 오래 안 걸릴 거예요.

나는 정치에 대해 잘 모르다 보니 순수하게 궁금해져서 질문했다.

“그것만으로도 됩니까?”

-예. 서 있는가 앉아 있는가, 몇 초 쳐다보았는가. 무슨 색의 옷을 입었는가. 겨우 이런 것에도 메시지를 담는 것이 정치권입니다. 이 시점에 청와대에 초대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못 알아듣는 놈은 정치할 자격도 없지요.

수석은 으하핫, 하고 시원하게 웃었다.

-나머진 우리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공문 띄우면 한가한 날짜 적어서 회신해주세요. 그럼 다시 볼 날을 고대하고 있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나중에 뵙겠습니다.”

나는 기습과도 같았던 전화를 마치고 멍하니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예상하지 못했던 제안이라 조금 정리할 생각이 필요했다.

밖에 나갔다고 알아보는 것도 그렇고 당장 청와대에서 관심을 갖는 것도 그렇고.

내가 거물을 건드리긴 했구나.

쓸데없는 주목을 사서 귀찮아지는 건 별로였지만, 잘하면 이걸 이용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년 류석호가 언론을 이용하려고 했듯이.

적은 많고 여론은 아직 뜨거운 관심을 보내고 있다.

이 관심이 식기 전에 칠 수 있을까?

천장의 무늬를 세는 기분으로 생각을 정리하고 있는데 왠지 사무실이 조용했다.

슬쩍 시선을 내리니 팀원들이 궁금해 미치겠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전화 내용은 궁금한데 내 얼굴이 심각해 보이니 차마 말을 걸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문득 국밥집에서 청장이 해준 말이 떠올랐다.

팀장이 밥을 안 먹으면 팀원도 못 먹는다고.

내가 심각하면 팀원들도 영향을 받는 것이다.

나는 대수롭지 않은 투로 말했다.

“우리 팀이 청와대에서 초청을 받았습니다. 다 함께 가서 인사 좀 하고 사진 찍고 오면 된다네요.”

팀원들이 할 말을 잊은 얼굴로 입을 떡 벌렸다.

잠시 후 강혜원이 가까스로 말을 꺼냈다.

“그걸 지금 그렇게 간단히 얘기해요?”

음, 공지 전달은 아직 내게 너무 어렵다.

***

“그러면 이쪽 과세 건은 마무리하겠습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권현아는 회의가 끝나자 옅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번 건도 별 사고 없이 성공적으로 끝냈다.

그런 안도의 한숨이었다.

권현아는 여태껏 수많은 조사를 이끌어왔지만 단 한 번도 마음 편히 과세권을 행사해 본 적이 없었다.

세무서에 있을 적엔 조사하다 법에 어긋나는 점이 있으면 납세자를 불러 해명을 들었다.

그리고 과세하면 끝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또 상황이 다르다.

서울청, 특히 특수 조사팀이라는 TF의 이름을 건 이상 남들보다 무언가 특출난 것을 보여 주어야 했다.

만약 5천만 원 과세할 수 있는 것을 3천만 원만 과세한다면 조사를 게을리 한 것이 되어 버린다.

그렇다고 너무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서 5천만 원 넘어가는 금액을 과세하면 이쪽의 실수다.

불복 청구나 소송이 들어오게 되는 것이다.

어느 선까지 과세를 할 것이냐.

팀원들과 회의는 거치더라도 결론은 팀장인 권현아가 내려야 한다.

큰 건일수록 그 선을 가늠할 때는 심력을 소모했다.

납득하지 못하는 금액을 과세할 경우 납세자는 소송전을 불사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이번에는 꽤 깔끔하게 해결했다고 자부한다.

그러나 팀원들의 분위기는 꽤 어두운 편이었다.

원인은 뻔하다.

바로 옆 사무실 때문이다.

처음엔 웬 미술관을 조사하나 했더니 그다음엔 무려 장관을 쳤다.

열심히 해서 2팀을 이겨 보겠다며 의욕을 불태우던 1팀의 팀원들이었지만, 뉴스에서 세무조사 대상의 이름을 본 순간 다들 포기했다.

장관을 치는 미친놈을 어떻게 이긴단 말인가.

2팀을 이겨 먹으려면 국무총리 정도는 쳐야 한다는 말이 나오는 판국이었다.

“식사하고 다시 모이죠.”

그러나 권현아는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옆 팀은 따라 할 수도 없고 따라 할 필요도 없는 팀이었다.

1팀 역시 지금까지 잘해 왔다.

2팀처럼 눈에 띄는 활약은 못 해도 안정적이고 경력 많은 팀원들이 있으니 꾸준히 실적을 낼 것이다.

그렇게 생각한 권현아는 팀원들을 재촉하지 않았다.

지금은 믿고 지켜봐야 할 때였다.

복잡한 것을 싫어하는 권현아는 팀원들을 내보내고 보고할 자료를 정리했다.

그리고 슬슬 사람이 없겠다 싶은 시점에 구내식당으로 향했다.

“응?”

예상대로라면 이미 사람들이 빠져서 한산해야 할 구내식당에 아직도 수십 명이 남아 있었다.

밥은 다 먹은 것 같은데 뭘 구경하는지 시선이 한쪽에 고정되어 있었다.

권현아도 그들을 따라 고개를 돌리자 천장에 매달린 TV가 들어왔다.

거기에는 뉴스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익숙한 얼굴, 자신의 옆 사무실의 주인인 신재현 팀장이다.

요즘 TV만 켜면 신재현의 얼굴이 나오는지라 TV를 안 본 지 오래되었다.

또 장관에 대한 내용인가 싶어 고개를 돌리는데 뭔가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이야, 이건 대놓고 밀어주겠다는 소리네. 어떻게 직접 만나냐.”

“그만한 일을 했잖아. 근데 진짜 젊은 피다. 팀장이 7급이고 제일 나이 많은 놈도 30대 중반 아냐?”

“진짜 역사에 길이 남을 일이다…….”

권현아는 목에서 우두둑 소리가 날 정도로 고개를 돌렸다.

자세히 보니 TV 속의 배경이 달랐다.

서울청이라고 보기에는 너무 밝고 화려했다.

[LIVE] 신재현 팀, 청와대 초청

-앞으로도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직무에 힘 써 달라.

권현아는 고개를 돌린 그대로 굳고 말았다.

“와,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지금 저렇게 말한 거 맞지?”

“소리 좀 키울 수 없나?”

“호랑이 등에 날개를 달아주네. 지금 청와대 부른 것도 보여 주기식 아냐?”

“좀 의외긴 한데. 자기 사람 모가지 자른 거잖아. 아무리 봐도 정권에 손해 아냐?”

“내가 저쪽 생각을 어떻게 아냐.”

“근데 내가 대통령이어도 신재현은 밀어줄 것 같은데? 신 팀장 난 놈은 난 놈이잖아.”

“세상에 저런 놈이 많으면 좋긴 하지. 워낙에 드러운 놈들이 많아서. 그렇다고 내가 손대긴 싫거든.”

뉴스 앞에 모인 직원들은 식당을 떠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권현아는 순간 쟁반을 내려놓고 식당을 나가고 싶은 충동에 휩싸였다.

신재현과 그의 팀원이 활짝 웃는 얼굴로 사진을 청와대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 모습이 보이자 속에서 무언가가 치밀어올랐다.

스스로는 2팀을 인정했다고 생각했는데, 자신은 자신의 길을 가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저런 광경을 보자 도저히 밥이 넘어가질 않았다.

그러나 여기서 일어나고 싶지는 않았다.

그랬다간 정말 자신의 속마음을 인정하게 될 것 같았다.

어디까지나 당당하게, 선배로서 동료로서 축하하는 모습을 보여 주고 싶었다.

그러나 평온을 가장한 권현아의 다짐은 무참히 깨졌다.

밥을 욱여넣고 있는 권현아의 앞자리에 조사2국장이 앉았기 때문이다.

“국장님.”

“늦게 먹네. 관심이 싫지?”

다 안다는 투로 넘겨짚는 말에 권현아가 인상을 찌푸렸다.

같은 조건인 데다가 1팀인 이상 2팀과 비교당할 수밖에 없다.

알고는 있지만 이렇게 대놓고 말하면 기분이 나쁜 건 당연하다.

그러나 상대는 국장이다.

권현아는 음식을 삼키고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어쩔 수 없죠. 신 팀장이 워낙에 잘해 주고 있으니까요.”

“아니지. 원래는 자네가 받았어야 할 관심 아닌가.”

갑자기 무슨 말인가 싶어 권현아가 입을 다물었다.

이럴 땐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이 현명했다.

괜한 말을 했다가 오해를 살 수도 있었다.

한 번 퍼진 소문은 주워 담기도 힘든데, 여기서 1팀장이 2팀장을 질투한다는 말까지 나도는 건 싫었다.

“우리 서울청의 얼굴은 바로 자네야, 1팀장.”

“무슨 말씀이신지 모르겠습니다.”

불안해진 권현아가 딱 잘라 말하자 조사2국장이 의뭉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자네가 받았어야 할 관심, 내가 되찾아 주지. 나쁜 일은 아냐. 내가 설마 자네에게 이상한 일을 시키겠나? 자, 어떤가? 내 도움을 받아 보겠나?”

2국장이 내민 손을, 권현아는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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