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국세청 망나니-149화 (149/500)

149화. 연차 휴가(2)

다음 날 출근하자 사무실은 웃음바다가 되어 있었다.

내 자리에 앉았다가 팀원들이 워낙 즐겁게 웃기에 궁금해져서 물어보았다.

“무슨 일 있었습니까?”

“저희가 무슨 일 있던 게 아니라 팀장님이 무슨 일 있으셨던데요. 팀장님. 어제 재밌으셨나 봐요.”

“예? 저 말입니까? 별거 안 했는데요.”

돌아다니다 밥 먹고 또 돌아다니다 커피 마시고.

처음 해 보는 것이긴 하지만 남들과 비교해서 특이할 건 없었다.

그러나 강혜원은 씨익 웃더니 핸드폰을 만지작거렸다.

흉계를 꾸미는 듯한 표정이다.

“직접 보니까 존멋임. 연상이어도 괜찮지 않나? #신재현 #고위직킬러”

강혜원은 핸드폰을 보며 무언가를 읊어 내려갔다.

그런데 내용을 들어도 뭔 소린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내가 물끄러미 강혜원을 바라보자 그녀가 뒤이어 무언가를 읽었다.

“‘종로에서 신재현 만남! 같이 사진도 찍었다!’ ‘옆 테이블에서 커피도 마심. 사람들 몰려드니까 당황하는 거 귀여움.’”

“헙.”

나도 모르게 숨을 들이쉬었다.

잊고 있었던 어제의 일이 생생하게 되살아났다.

처음엔 노부부의 반갑다는 말이 시작이었다.

앞으로도 변하지 말고 열심히 해 달라는 말에 뭉클하는 마음이 들어 의욕적으로 알겠노라고 대답했다.

그것이 시발점이었다.

카페 안의 손님들이 인사해도 되겠냐, 사진 찍어도 되겠냐, 우르르 몰려들기 시작했다.

그 후에는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예, 감사합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이런 말만 반복했던 기억이 난다.

카페를 어떻게 나왔는지도 모르겠다.

한바탕 사진도 찍고 얘기도 하고, 각자 자리로 돌아간 후에 겨우 내 시간이 생겼나 했더니.

자꾸 찰칵 소리와 함께 시선이 느껴져서 허둥지둥 먹고 나왔다.

커피는 맛있었는데.

물론 이런 불타는 관심이야 또 몇 달 지나면 식을 거라고 생각한다.

반대로 생각하면 앞으로 몇 달간은 이렇게 관심을 받을 거라는 소린데.

연예인들은 대체 어떻게 일상생활 하고 다니는 거지?

내가 질린 표정을 하자 장세훈이 박장대소를 했다.

놀리는 것이 재밌는 모양이다.

“이야, 사진 보니까 너 엄청 긴장했더라. 기자회견 할 때랑 너무 달라.”

“저게 본모습 아닐까요?”

장세훈의 말에 안길진이 조심스럽게 말하자 강혜원이 쯧쯧, 하며 손가락을 흔들었다.

“사실 전 수십 명 앞에서 발표하시는 거 보고 어떻게 저렇게 안 떨지, 딱 무대 체질인가 보다 그랬거든요? 근데 지금 보니까 알겠네.”

“뭔데?”

“일 관련이면 눈에 뵈는 게 없는 거예요. 팀장님이 일 문제로 어디 가서 밀리는 거 봤어요? 국장 회의도 가서 큰소리치고 나오는 분인데.”

“하긴 그렇네. 청장님한테도 다이렉트로 가잖아. 난 과장님한테 보고하러 가는 것도 심장 떨리는데.”

“그러니까요.”

강혜원은 그렇게 말하며 핸드폰을 내밀었다.

언뜻 사진이 보인 것도 같다.

나는 궁금해져서 강혜원의 책상으로 다가갔다.

어느새 황민우도 은근슬쩍 뒤에 와 있었다.

“제가 보기엔 이 사진이 제일 잘 나온 것 같아요.”

강혜원은 무슨 검색어를 넣더니 요령 좋게 내 사진을 정렬했다.

족히 수십 장이다.

“이게 지금 어디 올라와 있는 겁니까? 무슨 사진이 이렇게 많아요?”

“온스타요. 사진 주로 올리는 SNS인데, 봐 봐요.”

강혜원은 솜씨 좋게 사진 하나를 띄워서 보여 주었다.

멀리서 찍은 사진이었다.

역광이 비추는 가운데 내가 창가에 앉아 쟁반을 빤히 노려보고 있었다.

“아, 저게 그때네. 자꾸 옆에서 시선이 느껴지는데 고개를 돌리지도 못하겠고, 그래서 제 앞만 뚫어져라 쳐다봤거든요.”

지금 봐도 웃기다.

삭제도 안 될 테고, 이런 사진이 두고두고 남는다고 생각하니 부끄러워질 지경이다.

지금이라도 지워 달라고 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두 번 보고 세 번 봐도 사진은 변함이 없었다.

마치 일생일대의 싸움이라도 하는 것처럼 커피를 뚫어져라 노려보고 있다.

그런데 강혜원의 반응은 달랐다.

“저는 일부러 노린 줄 알았는데요? 역광에 옆모습 비치니까 되게 운치 있어 보이잖아요. 옆에 나무는 카페 거 맞죠? 분위기 엄청 좋아요!”

“이야, 댓글 봐봐. 장난 아니네. 허억, 팬 진짜 많은데? 읽어 줄까?”

나는 서둘러 장세훈을 밀쳐냈다.

강혜원의 핸드폰을 보지 못하게 하기 위함이었다.

“뭡니까! 사람 수치사 시키려고 작정하셨어요?”

“아니, 가만있어 봐. 진짜로 나는 식당가서 밥 먹고 그래도 아무도 아는 척 안 해 준다니까?”

장세훈은 나를 놀리는 데 재미 들린 모양이었다.

내가 장세훈을 필사적으로 막아내는 동안 황민우가 멋쩍어하며 보탰다.

“저는 식당 갔더니 이모님이 알아보시던데요.”

“뭐야, 진짜야?”

안길진마저 놀라워하며 황민우를 바라보았다.

“저는 팀장님하고 자주 같이 다니니까요. 작년에 류석호 때도 그랬고, 같이 있는 장면이 좀 많이 찍혔나 봅니다. 계란후라이 하나 서비스로 해주시더라고요.”

“아! 부럽다! 야, 저게 진짜 실속있는 서비스야. 식당에서 계란후라이! 나도 먹고 싶다!”

굉장히 현실적인 희망 사항이었다.

“‘화보 같다. 역광 받으니까 실루엣 겁나 눈부심. 광고 찍어도 될 듯ㅋㅋㅋㅋㅋ.’ ‘오빠가 탈세하지 말랬으니까 너네 탈세하지 마라.’ ‘세금 내는지부터 물어보는 게 예의 아니냐?’”

“아악! 읽지 마세요! 혜원 씨까지 왜 그러십니까!”

“크하핫! 팀장님 지금 이 모습도 찍어서 올리면 사람들 되게 좋아할 것 같은데. 서울청 특조 2팀 공식 SNS 해 볼 생각 없어요?”

강혜원이 박수를 쳐가며 웃었다.

나는 정색하며 말했다.

“없습니다. 절대 안 해요. 사진은 이제 안 찍을 겁니다.”

“에이, 아쉽다. 어! 팀장님 아인슈페너 드셨구나!”

눈물까지 닦아 가며 웃던 강혜원이 사진을 가리켰다.

“강혜원이 그렇게 노래를 부르더니 결국 팀장이 먹었네.”

“아, 추천 감사합니다. 맛있더라구요.”

비싸긴 했지만 꽤 마음에 드는 맛이었다.

당분간은 카페에 안 갈 생각이라 못 먹겠지만 나중에라도 더 먹어 보고 싶은 맛이다.

“나도 커피 좀 추천해 줘. 요즘엔 뭐가 맛있어?”

“음, 장세훈 주사보님은 더위를 많이 타시니까 자바칩 프라푸치노요!”

“자바…… 뭐?”

이제 주제는 커피로 넘어갔다.

굉장히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한 발짝 뒤로 물러섰다.

확실히 강혜원이 있을 때와 없을 때의 사무실 분위기가 확 달랐다.

장세훈과 죽이 잘 맞기도 하고, 안길진과 잘 어울리기도 한다.

저 셋이 같이 있으면 걱정 없이 사무실을 비울 수 있었다.

“아, 고지서는 발송했죠?”

“네. 어제 바로 발송했습니다. 혹시라도 실수가 있을까 봐 마지막으로 각자 세 번씩 확인했고, 자택으로 부쳤습니다.”

이 사무실에서 몇 달 며칠이 걸렸든 결국은 한 장의 얇은 고지서로 귀결이 된다.

우리의 고생이 집약된 한 장이다.

때문에 내가 본 숫자와 일치하는지 나도 몇 번씩 확인했고, 팀원들도 검토에 검토를 거듭했다.

뉴스에서는 곧 문체부가 수장 자리를 잃을 것이라고 했다.

청와대의 공식 발표다.

저번에 보고서를 가져간 이후로 별다른 이야기가 없길래 나는 나대로 평소처럼 과세를 진행했다.

그리고 어제 내가 기자회견을 하자 기다렸다는 것처럼 청와대 역시 파면을 발표했다.

일부러 그런 건가 싶을 정도의 타이밍이었다.

“장관까지 잡았는데 이제 누굴 치실 생각입니까? 바로 유진환을 치시겠습니까?”

황민우가 향후 방침을 물어왔다.

유진환에 대해서는 그와 만난 바로 그다음 날 팀원을 모아놓고 얘기했다.

숫자가 보이네 어쩌네, 이런 얘기는 하지 않았지만 그 외로 할 이야기는 많았다.

나 혼자서 조사한다고 될 놈이 아니다.

당연히 팀원들의 도움을 받을 생각이었다.

내가 마음껏 치고 싶어서 만든 팀이니까.

혼자 조사하다 애먹는 결말은 사절이다.

“아뇨. 바로 치는 건 무리입니다. 빠져나갈 구멍은 마련해뒀을 거예요. 사실 우리가 조사한다고 해 봤자 유진환 본인에게 세금 때리고 끝 아닙니까?”

“그걸로는 부족하죠. 팀장님 말씀으로는 여기저기 탈세할 수 있도록 컨설팅 해 준다면서요? 앞으로 그런 짓 못 하게 해야죠.”

안길진이 분개하며 말했다.

그러나 분노와는 별개로 나머지 세 팀원의 얼굴은 어두웠다.

“조사가 많이 필요하겠어요. 굉장히 어려운 싸움이 될 거예요.”

“유진환이 어떤 탈세에 개입했는지 밝히는 것부터가 먼저입니다.”

“아니, 그보다 먼저 유진환 뒤에 있는 놈부터 끌어내야 돼.”

황민우가 의견을 말하자 장세훈이 드물게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솔직히 말해서 우리도 굉장히 많은 권한 받고 있는 거 다들 알잖아. 그런데도 못 이기는 상대는 분명히 있어. 적을 알아야 붙든 말든 할 거 아냐?”

“맞아요. 그 뒤에 누가 있든 분명히 센 놈일 거란 말이에요.”

강혜원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다들 아시겠지만 이 일은 외부에 절대 유출되어서는 안 됩니다. 유진환이라는 인간에 대해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으로 조사합시다. 수상한 세무신고가 있으면 무조건 알려 주시구요.”

“넵!”

의욕에 가득 찬 외침이 울려 퍼졌다.

“그럼 유진환은 단서가 나올 때까지 찾는 걸로 하고, 다음 조사대상 가야죠?”

유진환은 단기간에 승부를 볼 수 없는 대상이다.

장기 프로젝트가 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지금의 우리에게는 서롱 갤러리의 거래자들이 수두룩하게 쌓여 있다.

갤러리 원장은 유진환과 알고 있었다.

유진환에게 조언도 받았다.

그리고 내가 뽑은 갤러리 거래자 명단 중에는 유명인사가 꽤 많았다.

지금 당장 칠 수 없는 사람을 제외하더라도 꽤 된다.

그 갤러리 거래자 중에서 유진환을 아는 사람이 있을지도 몰랐다.

어찌 되었든 이들 갤러리 거래자 명단은 다들 한 번쯤 조사해야 할 대상이었다.

“명단 주신 것 중에서 반 정도는 조사 해 놨습니다. 여기요.”

황민우가 누런 파일철을 건넸다.

한두 개가 아니었다.

“총 여섯 명이네요. 아마 서롱 갤러리가 세무조사 당한 걸 이미 알고 있을 겁니다. 뉴스 안 보고 사는 사람이라도 이 정도 화제가 되면 귀에 들어갔겠죠.”

주목을 받으면 이게 문제다.

상대가 쉽사리 날 건들지 못하는 방패도 되지만, 상대에게 일방적으로 정보가 흘러가기도 한다.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최대한 숨길 것은 숨겨야 했다.

“기업인도 있고 연예인도 있네요? 그럼 아직 조사 중인 인원은 16명이겠군요.”

“네.”

많다면 많고 적다면 적은 숫자다.

저렇게 많은 숫자가 탈세했다니, 하는 면에서는 당연히 많지만.

사실 전체 명단은 더 길다.

그중에서 지금 우리가 잡을 수 있는 것이 총 22명일뿐이다.

“정리된 순서대로 칠까요?”

황민우가 물었지만 나는 고개를 저었다.

“시간이 중요한 건 맞지만 이건 동시에 쳐야 한다고 봅니다. 갤러리 세무조사 후에 장관이 잡혔어요. 장관과 갤러리의 직접적인 연관은 없으니 잠시 시선은 돌린 셈입니다. 하지만 관련자들끼리 연락할 수도 있습니다.”

“한 명씩 치면 경계할 수도 있단 뜻이군요.”

“네. 그러니까 한꺼번에 칩시다.”

결론은 났다.

이제부터는 또다시 시간 싸움이었다.

우리는 각자 조사대상을 나눠 맡은 뒤 각자의 자리로 흩어졌다.

그리고 막 내 자리에 앉아 컴퓨터를 켰을 때였다.

-부우웅.

책상 위에 놓아 두었던 핸드폰이 울렸다.

청장님이 부르시나?

그렇게 생각하며 핸드폰의 액정을 본 순간, 나는 숨을 들이켰다.

[임현승 경제수석님]

나는 얼른 통화 버튼을 눌렀다.

“안녕하십니까.”

-오랜만에 통화해 보네요. 그간 잘 지낸 것 같아서 더없이 기쁩니다.

수석의 목소리는 무척 밝았다.

무슨 좋은 일이 있는지 신난 것이 느껴질 정도였다.

“전화 자주 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바쁘신 분을 방해하기 죄송스러워서요.”

-무슨 그런 말씀을. 나야말로 바쁜 신 팀장한테 미안하죠.

“보고서는 어떠셨습니까?”

-아주 좋았습니다. 그래서 말인데…….

수석의 목소리에 장난기가 섞였다.

-청와대로 한번 놀러 오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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