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국세청 망나니-148화 (148/500)

148화. 연차 휴가(1)

나는 특별한 목적 없이 도심을 걷다가 한 카페 앞에서 멈춰 섰다.

밖에는 화분이 무성하게 놓여 있어 안이 제대로 보이지도 않는 카페.

처음엔 영업을 하는 줄도 몰랐다.

그러나 카페 앞에 나와 있는 메뉴판에 OPEN이라는 글자를 보고 흥미가 생겼다.

-딸랑.

“어서 오세요.”

평일 낮의 카페였지만 자리는 반 정도 차 있었다.

이런 곳에도 사람이 많구나.

나는 감탄하며 카운터로 다가갔다.

“어!”

사장인지 점원인지는 모르겠다.

주문을 받으려고 돌아선 20대의 젊은 여성이 날 보더니 감탄사를 내뱉었다.

“……네?”

영문을 몰라 되묻자 여성은 어쩔 줄 몰라 하며 얼굴을 붉혔다.

내가 뭘 잘못했나?

차림새가 이상한가?

재빨리 내 스스로를 돌아봤지만 별다른 건 없었다.

평소에 입던 정장이 아니라 피부에 닿는 셔츠의 감촉이 어색했지만, 그건 내 사정이다.

겉으로 보기엔 멀쩡할 텐데.

내가 어리둥절해 하자 여성이 얼른 고개를 숙였다.

“아, 죄송해요. 당황해서. 주문은 뭘로 하시겠어요?”

나는 강혜원이 알려준 뭔가 어려운 이름의 커피를 말했다.

“아인슈페너요. 아이스로.”

“드시고 가시나요?”

“네.”

“5,500원입니다.”

와, 역시 생각보다 비싸다.

그러나 각오하고 온 터라 얌전히 카드를 내밀고 경광이 좋은 창가 자리에 앉았다.

-짹짹.

날씨가 좋아서 그런지 창문이 열려 있었다.

새소리가 기분 좋게 내 귀를 간지럽혔다.

나는 딱히 커피를 가려 마시지 않는다.

사무실에서는 주로 믹스 커피면 땡이었고, 간혹 카페에 갈 일이 있어도 아메리카노만 마신다.

애초에 커피 값이 너무 비싸다.

생활비까지 지출해야 하는 박봉인 나에겐 한 잔에 5천 원 넘어가는 이름 복잡한 커피는 사치였다.

그러나 오늘은 다르다.

무려 오랜만에 내 보는 연차 휴가였다.

올해 들어 처음 써 보는 것이니 아직도 많이 남았다.

집에서 잠이나 잘까 했는데 강혜원이 강력하게 추천했다.

‘에이, 이 정도는 사치도 아니에요. 고생 많이 하셨으니까 맛있는 것도 좀 드시고 해 보세요.’

그렇다고 카페만 가기엔 어색하길래 회사 근처를 돌았다.

종로는 의외로 볼 것이 많은 곳이었다.

서울청에서 출발에 안쪽으로 정처 없이 걸음을 옮겼다.

얼마 걷지도 않았는데 조계사가 나왔다.

이렇게 가까이 있는 줄도 몰랐는데.

점심시간에 조계사 한 바퀴 돌고 온다는 직원이 있었는데 그래도 되겠다 싶었다.

그렇게 한 번도 가 보지 않았던 조계사 안에도 들어가 보았다.

불교는 아니었지만, 남들이 향에 불을 붙여 잿더미 위에 꽂길래 나도 한번 해 보았다.

인사동도 돌았다.

공예품이나 악기도 있었고 희한한 간식거리도 있었다.

뭐가 뭔지 알고 도는 건 아니다.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무언가 신기한 것이 있으면 발길을 멈추고 구경했다.

그리고 또 새로운 골목을 걸었다.

그동안은 골목을 걸으면서도 주위에 뭐가 있는지 돌아볼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렇게 가까운 곳에 볼 것이 많았구나.

발길 닿는 대로 곳곳을 누비는 것도 꽤 재미있다.

집과 회사, 집과 회사를 반복하던 나에겐 이런 경험 자체가 새로웠다.

잠시 자리에 앉아 멍하니 카페 안을 둘러보았다.

친구끼리 왔는지 비슷한 또래의 여성들도 보였고 무언가 종이를 꺼내놓고 설명 중인 두 남자도 보였다.

노트북으로 한참 작업 중인 사람도 보였고.

그리고 카페 한쪽 구석에 달린 조그마한 TV에서는 내 얼굴이 나오고 있었다.

“커헉!”

나도 모르게 고함을 지를 뻔했다.

[서울청 특조2팀, 최 장관 조사 브리핑]

보아하니 어제 서울청 로비에서 했던 기자회견 장면이다.

자막은 이런 식으로 나왔구나.

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내가 한 말은 단신 자막으로 바뀌어 화면에 노출되었다.

[엄정한 조사 결과 혐의 입증]

[최 장관 자택으로 고지서 발송]

[부재 시 최 장관 집무실로 발송]

[고지서 수령 거부 시 공무원이 직접 전달]

[조세범처벌법 적용 검토 중]

[뇌물수수에 대해서는 검찰에 고발 예정]

화면 안의 내가 뭐라 말할 때마다 밑의 자막이 새롭게 바뀌었다.

사실 자막은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어차피 다 아는 내용이고.

그보다는 화면에 정신이 팔렸다.

카메라가 정말 좋구나.

내가 눈동자를 굴리는 모습까지 선명하게 찍혀 있었다.

지금 저 얼굴이 전국적으로 방송되는 거야?

앞으로 며칠이고 내내 자료화면으로 저게 나올 텐데.

왠지 흑역사를 새로 적립한 기분이었다.

부끄러움에 몸서리를 치고 있는데 화면 속의 내가 잠시 말을 멈춘 사이 카메라가 줌아웃 했다.

그리고 단상 옆에 서 있던 네 명의 팀원들 얼굴이 보였다.

다들 하도 야근에 시달려서 얼굴이 많이 초췌했다.

그중 유일하게 화사한 것이 바로 강혜원이었다.

어쩐지 기자회견 직전에 풀메이크업을 하더라.

우리 팀에서 유일한 홍일점이기도 하고 다른 팀원에 비해 화사하다 보니 카메라도 유독 강혜원을 집중해서 잡았다.

강혜원은 자료를 넘겨 가며 장세훈과 뭐라 대화를 하고 있었다.

안길진이 호기심을 못 이기고 슬쩍 넘겨다 보자 강혜원이 꺄르르 웃었다.

내가 브리핑하는 동안 앞에서는 이런 일이 있었구나.

사실 보통은 브리핑을 하더라도 팀원들 전부를 데리고 나오지는 않는다.

과장과 팀장, 그리고 실무자 한 명 정도.

하지만 나는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항상 팀원들을 데리고 나왔다.

이유는 간단했다.

우리 팀은 일단 내가 대표를 맡고는 있지만 입장이 거의 동등했다.

당장 나와 같은 7급인 장세훈도 있었고, 용산에서부터 함께해 온 황민우도 있다.

내가 일을 물어오고 분배하긴 해도 보통은 자발적으로 맡았다.

작년부터 계속 함께해오다 보니 분위기도 수직보다는 수평에 가까웠다.

그래서 카메라 앞에 나설 때면 팀원 모두 스포트라이트를 받게 해 주고 싶었다.

다만 브리핑하는 것은 나 혼자만이라 혹시 꿔다놓은 보릿자루처럼 생각할까 봐 걱정이었는데, 기우였던 모양이다.

카메라는 네 명의 팀원을 순서대로 훑었다.

찍히는 줄도 모르고 웃고 있는 팀원들을 보자 뿌듯한 기분이 들었다.

다시 화면이 나에게로 돌아오자 나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돌렸다.

어쩐지 더 보기 부끄러웠다.

나는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짹!

작은 참새 한 마리가 종종거리며 그 짧은 다리로 화분 위를 오르고 있었다.

나뭇가지 위를 올라갔다가 바닥에 내려왔다가.

고개를 갸웃하기도 했다.

귀엽군.

자그마한 갈색 날개를 펼치고 푸드덕거리는 참새를 보고 있는데 문득 테이블 옆으로 다가온 인기척을 느꼈다.

깜짝 놀라 고개를 드니 카운터 안에 있던 여성이 쟁반을 들고 서 있었다.

“죄송합니다. 제가 가지러 갔어야 했는데 못 들었나 봅니다.”

당황하며 테이블 위의 진동벨을 보았다.

응?

진동벨이 안 울렸는데.

“쉬시는데 방해될까 봐서요. 어차피 다른 주문도 없는데 가져왔어요.”

“배려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나는 얼른 쟁반을 받아들었다.

그런데 쟁반 위에는 내가 주문한 커피 말고도 다른 것이 놓여 있었다.

“어? 주문이 잘못 들어간 것 같습니다.”

뭔가 푸짐한 쟁반 위를 보고 묻자 여성이 수줍게 고개를 숙였다.

“아뇨, 제가 서비스로 드리는 거예요. 이건 스콘인데 딸기잼 찍어 드시면 되고, 이건 마들렌이에요. 아인슈페너랑 드시면 잘 어울릴 거예요.”

서비스를 챙겨 주는 걸 보니 점원은 아니고 사장인가 보다.

편의점 알바 해 본 경험으로는 알바생은 절대 자기 맘대로 이렇게 서비스를 풍족하게 줄 수 없다.

“저, 마음은 감사하지만 이렇게 많이…….”

내가 알기로 이런 디저트류는 굉장히 비싸다.

아마 이 작은 조각 하나만 해도 천원에서 이천 원 정도 하지 않을까?

서비스만 해도 내가 시킨 커피 가격과 맞먹을지도 모른다.

사장은 내 얼굴을 보더니 오히려 당황했다.

“앗, 너무 부담스러워하지 않으셔도 돼요. 그냥 제가 팬이어서…….”

“패, 팬이요?”

예전에 특조 1팀인 권 팀장도 이런 얘기를 했던 것 같은데.

그땐 장난이라고 생각하고 넘겼는데 정말 팬이라는 게 있을 수 있는 건가?

“저도 회사에서 알아요. 내가 맞고 윗사람이 틀렸어도 윗사람한테 맞장구 쳐야 하는 게 회사인데, 팀장님은 그런 거 신경 안 쓰시고 다 잡으셨잖아요. 저는 살면서 그런 광경 처음 봤어요. 어떻게 국회의원도 잡고 장관도 잡지? 너무 멋있었어요!”

사장의 얼굴이 붉어졌다.

“제가 연예인한테 선물도 보내봤는데, 공무원이시니 그런 건 안 될 것 같고. 이거 가격으로 치면 정말 얼마 안 돼요. 맛있게 드셔 주시면 진짜로 좋을 것 같아요.”

나는 습관적으로 사장의 머리 언저리를 훑었다.

아무 것도 없다.

며칠 전에는 유진환이 커피 한 잔 사준다는 것도 기분이 나빴는데, 오늘은 정반대였다.

정말 순수한 호의로 받는 것은 오랜만이었다.

“아! 청탁이 있긴 있어요!”

“네?”

여기서 청탁이?

나는 당황해서 되물었다.

사장은 배시시 웃더니 두 손을 불끈 쥐어 보였다.

“맛있게 드시고 앞으로도 힘내서 탈세하는 놈들 잡아 주세요! 절대 지지 말고요!”

마음이 울컥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서 사장에게 90도로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해 주신 말씀 절대 잊지 않겠습니다.”

“앗, 이렇게까지는 안 하셔도 되는데.”

사장은 어쩔 줄 몰라 하더니 다시 한번 화이팅 포즈를 해 보였다.

“그럼 편하게 계시다 가세요.”

사장이 카운터 너머로 돌아갔다.

이제 내 앞에는 커피와 디저트가 남았다.

강혜원이 아인슈페너 노래를 부르길래 대체 뭔가 궁금했는데 까만 커피 위에 하얀 크림 같은 것이 올라가 있었다.

조심스럽게 한 모금 마시자 달콤한 크림 뒤에 씁쓸한 커피 맛이 느껴졌다.

첫맛은 달지만 끝 맛은 깔끔하다.

추천할 만 하네.

나는 피식 웃으며 오늘 처음으로 핸드폰을 꺼냈다.

아직 먼 거리를 돌아다니지 못하는 어머니에게 사진으로 찍어 보여 드릴 생각이었다.

음식이고 풍경이고 사진을 찍어 본 적이 없어서 그런지 실물을 그대로 담아내지 못했다.

생각해 보니 집 근처에서 하나 사가는 게 낫겠다.

그렇게 생각하며 핸드폰을 집어넣을 때 귀에 자그맣게 셔터 소리가 들렸다.

-찰칵.

또 들렸다.

이건 분명 사진을 찍는 소리였다.

무심코 고개를 돌리자 안쪽 테이블에 있던 한 무리의 여성들이 나를 뚫어져라 바라보는 것이 보였다.

왠지 수배범이 된 기분이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핸드폰은 얌전히 테이블 위에 놓였다.

대신 그 옆 테이블에 앉아 있던 60대 정도 되어 보이는 아저씨가 성큼성큼 내게 다가왔다.

함께 앉아 있던 60대 아주머니가 얼른 뒤따라오며 말렸다.

“아이고, 이 양반아! 갑자기 뭐 하는 겨!”

“잠깐 가만있어 봐, 이 사람아.”

60대 아저씨는 나를 빤히 내려다보았다.

“무슨 일이십니까?”

긴장한 내가 묻자 아저씨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내 등짝을 텁 내리쳤다.

“잘했구만, 잘했어. 내가 살면서 이런 날이 오나 싶었는데.”

“아이고, 죄송합니다. 이 양반이 궁금한 건 못 참아 가지고. 그, 신재현 씨 맞죠? 국세청 양반?”

이번에는 어째 작년보다 반향이 큰 것 같다.

나는 얼른 커피를 앞에 내려놓고 고개를 끄덕였다.

“예. 맞습니다.”

얼떨떨한 마음으로 답하자 아저씨가 손을 턱 내밀었다.

“악수 한 번만 해줘. 우리 아들내미가 재수하거든. 기 좀 받아가게.”

나는 공부를 잘하는 건 아니었는데 내 기를 받아도 되나?

잠시 고민했지만 아저씨의 성화에 손을 맞잡았다.

“내가 작년엔 기자회견 보고 이게 뭔 쇼를 하나 했거든? 근데 이번에 장관 새끼 조진 거 보고 내가 딱 알아봤잖아.”

“그런 말 밖에서 함부로 하고 다니면 안 된다니까.”

아주머니는 주위를 둘러보며 아저씨를 말렸다.

그러나 아저씨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진짜 물건이여, 물건. 그 뭐냐, 국세청 저 높은 사람 돼서 변하지 말고 나랏돈 빼먹는 개새끼들 팍팍 좀 때려주고 그래.”

거친 말이었지만 어떤 마음인지는 이해했다.

나는 아저씨의 손을 붙잡으며 대답했다.

“앞으로도 변함없을 겁니다. 탈세하는 놈은 무슨 일이 있어도 칠 거예요.”

“그래! 그거야!”

아저씨가 호탕하게 웃었다.

그때 아저씨 뒤에서 한 무리의 여학생들이 조심스럽게 끼어들었다.

“저어, 사진 좀 같이 찍어도 돼요?”

사진까지?

작년 류석호 때도 이렇게까지는 아니었는데.

유진환과 만났을 때도 느껴보지 못한 긴장감이 식은땀이 되어 흘렀다.

“많이는 말고 한 장만요!”

나는 좁은 공간을 비집고 들어오는 여학생들을 보며 다급하게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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