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7화. 세상에 이런 놈이(2)
이 나라 권력자와 손을 잡았다.
계획을 꾸밀 머리도 있으며 실행할 힘도 있다는 뜻이다.
권력자라는 게 대체 누굴까.
재벌? 국회의원? 정부 관계자?
“만약 팀장님께 힘이 쥐어진다면 어디까지 할 수 있을 것 같습니까? 상상만 해도 재밌어지죠?”
남자는 정말로 즐겁다는 듯이 웃었다.
하지만 남자도 모르는 것이 하나 있었다.
그가 권력자와 손을 잡았듯, 내게도 도와주는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그들은 조금이라도 바꿔보겠다며 아등바등 노력하는 사람들이었다.
내가 저지른 일로 압력이 내려오면 덮어주고 감싸주고, 내가 마음껏 날뛸 수 있게 힘을 주는 사람들이었다.
너에게도 힘이 있다면 나에게도 힘이 있다.
그러나 이 자리에서 그것을 말하지는 않았다.
이미 정보는 불균형하다.
남자는 나에 대해 많은 걸 알고 있지만 나는 남자에 대해 모른다.
최대한 나를 숨겨야 했다.
남자는 내가 동요한다고 생각했는지 주제를 돌렸다.
“제가 처음 팀장님의 존재를 알게 된 게 언제인지 아십니까?”
이거라면 대충 짐작이 갔다.
내가 본격적으로 알려진 건 작년 겨울, 국회의원 류석호를 친 이후였다.
당시 현직 국회의원을, 심지어 세무서에 격려차 찾아온 의원을 조사대상으로 삼은 건 이례적인 일이었으니까.
“류석호 의원 건으로 기자 회견했을 때 아닙니까?”
“그보다 훨씬 전입니다.”
그 전이면 무슨 일이 있었지?
용산 세무서와 삼성 세무서.
거기서 있었던 것 중에 외부의 관심을 받을 정도의 사건은 없었다.
물론 내부에서야 내 발령이 화제가 되긴 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내부의 일이다.
예를 들어 신설된 체납징세과에 2년 차가 들어갔다고 해서 누가 알아주겠는가.
“선우 건설과 선우 장학회. 기억하십니까?”
나는 눈을 크게 떴다.
단 한 마디였지만 그것이 의미하는 것은 컸다.
내가 맡은 일은 대부분 또렷하게 기억한다.
경력이 길지 않아서 그런 것도 있지만, 내가 남들 하기 어려운 것만 골라 맡은 이유도 있다.
그때는 내 짧은 경력을 커버하기 위해 남들에게 끊임없이 증명하려 애썼으니까.
그중에서 선우 장학회라면 장학금으로 장난질 치던 비영리 법인이었다.
내가 삼성 세무서 법인세과에서 처음으로 쳤던 곳.
비영리 법인으로 장난치는 곳이야 꽤 많지만 선우 장학회의 경우 누군가의 손이 닿은 곳이라 더 신경 쓰였던 기억이 난다.
선우 건설의 돈세탁에도 이용되고 있었으니까.
그 수법이 특출 난 것은 아니지만, 누군가 그런 머리를 제공했다는 것부터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예.”
지체 없이 짧게 대답하자 남자는 반가워하며 말했다.
“그거 세팅해 드린 게 접니다.”
나는 커피 잔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한 대만 치고 싶다.
그런 마음이 불쑥 솟아올랐다가 가라앉았다.
자기 것만 탈세해도 보고 있으면 열불이 뻗치는데, 남의 탈세를 도와줬다고 자랑스럽게 말하는 꼴이라니.
같은 공간에 있는 것도 싫었다.
애초에 탈세라는 것이 단순히 소득만 숨긴다고 되는 게 아니다.
나름 머리를 써야 하는 일이다.
내가 싫어하는 것과는 별개로 이 새끼는 그만한 머리는 된다는 뜻인데, 그걸 기껏해야 남 탈세하는 데 써먹었다는 거지?
나는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꾹꾹 눌러 참았지만, 험악해지는 말투마저 막을 수는 없었다.
“탈세를…… 도와줬다 이거죠?”
“탈세까지는 아닙니다. 경영상 어려움을 말씀하셔서 약간의 도움을 드린 것뿐이죠.”
“아까 말씀하신 컨설팅이라는 게 주로 그런 건가 보네요.”
“글쎄요?”
다 실토해 놓고 뭘 시치미를 떼고 있어.
나는 그제야 남자의 주위에 떠도는 숫자의 의미를 이해했다.
남의 탈세액.
이 새끼가 아주 요리하다시피 설계해 준 탈세액이다.
탈세한 본인을 보면 아마 이놈 주변에 떠다니는 금액과 일치하는 숫자가 보이겠지.
“지금…… 선전포고하러 온 겁니까?”
그렇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그 외의 어떤 이유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러나 남자는 화들짝 놀라며 손을 내저었다.
“그럴 리가요! 저는 팀장님과 친해지고 싶은 사람입니다. 작년 류석호 때도 그 전조를 느꼈지만 이번 건으로 확신을 가졌습니다.”
남자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이 자리에서 내 팬이라고 해도 반박할 수 없을 정도로 진심인 얼굴이었다.
“훌륭한 설계였습니다. 저랑은 방식이 약간 다른데, 그래서 더욱 감탄했어요. 나학진 기자에게 기사를 쓰도록 하신 건 일부러였죠? 작년에 미디어 활용법을 깨우친 겁니까? 이야, 다른 곳에 눈을 돌리게 하고 목표를 치다니. 절대 정상적인 공무원이라면 할 수 없는 방식이에요.”
유진환의 말투는 이상했다.
감탄했다는 건 진짜인 것 같지만 그 방식이 좀 달랐다.
마치 내가 간계를 꾸민 것처럼 말하고 있다.
“목표를 위해 효율적인 방법을 취했을 뿐입니다.”
남자는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요. 효율적이고 필요한 수단이었죠. 하지만 제게는 이렇게 보였습니다.”
남자의 눈빛이 매서워졌다.
“사냥이요. 먹잇감을 몰아넣어 피할 수 없는 증거를 들이밀며 결국엔 그 목덜미를 물어뜯는, 맹수의 사냥을 보는 것 같았습니다.”
남자는 작게 박수를 치는 시늉을 했다.
내가 이런 새끼한테 사냥이네 뭐네 하는 평가를 들을 정도는 아닌데.
수단이 불법인 것도 아니고 과했던 것도 아니다.
나는 지금껏 내가 했던 일에 후회는 한 점도 없었다.
“아, 사냥이라 해서 기분이 나쁘십니까? 하지만 인정할 건 인정하시죠. 탈세범을 사냥하고 계신 건 맞잖습니까.”
나는 심호흡을 하고는 눈앞에 놓인 커피를 들이켰다.
차가운 음료가 들어가자 속이 가라앉았다.
“어떤 식으로 표현하시든 상관없습니다. 저는 할 일을 한 것뿐이니까요.”
“물론이죠. 저는 아까부터 팀장님께 찬사를 보내고 있는 겁니다. 그런데 팀장님, 일하면서 그런 생각은 안 드시던가요?”
“안 듭니다.”
“일단 듣고 말씀하시지.”
남자가 시무룩하게 말했지만 나는 차갑게 대답했다.
“무슨 소리를 할지 듣지 않아도 알겠습니다. 허황된 얘기겠죠.”
탈세를 돕고 다니는데 내게 감탄했다며 슬쩍 운을 떼는데 눈치를 못 채면 바보다.
공무원 그딴 거 왜 하냐는 거겠지.
이런 놈한테 들으면 화만 날 뿐이다.
그래서 쳐냈는데 남자의 얼굴에 곧 화색이 돌았다.
“역시 제 예상을 빗나가네요. 이렇게 단호할 거라곤 생각 못 했는데. 그럼 저 혼자 얘기하죠. 탈세가 무조건 나쁘다고 생각합니까? 세법은 현실과 동떨어진 점도 많습니다. 어느 정도 융통성은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으세요? 법은 어기지 않으면서 납세자에게 더 큰 이윤을 추구해주는 것도 하나의 사회 기여입니다. 팀장님의 능력이라면 충분히 가능한데, 관심 없으십니까?”
역시 개소리다.
이런 놈에게 설명해 봤자 소용없겠지만 지금 잘라 두지 않으면 계속 귀찮게 굴 것 같았다.
나는 남은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들이켜고 차분히 답했다.
“세법이든 형법이든 민법이든 당연히 현실과 안 맞는 부분은 있죠. 그게 어때서요? 그렇다고 불법이 용서되는 건 아닙니다. 제 가치는 굉장히 간단합니다. 세금은 고지한다, 탈세는 잡는다. 여기에 그 어떤 불순물도 낄 여지는 없습니다.”
너의 제안은 불순물이다.
그런 뜻을 담아 말하자 남자가 안타깝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쉽네요. 같이 일하면 정말 재밌을 것 같았는데. 가치관이 이렇게까지 다르면 어쩔 수 없죠. 다음 기회를 노리겠습니다.”
“다음 기회는 없을 겁니다.”
나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어차피 더 듣는다고 해서 정보가 더 나올 것 같지는 않았다.
그때 남자가 깜빡했다는 듯 가벼운 말투로 내게 말했다.
“아까 이 카페 3개월 안에 망하게 만들 수 있냐는 말에 팀장님이 예를 들어 주셨잖습니까? 저는 사실 다른 방법을 생각했습니다.”
저절로 내 발걸음이 멈췄다.
듣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내용이 궁금해 어쩔 수 없었다.
남자는 그것 보라는 듯 웃었다.
“저라면 카페 주인인 척하고 반사회적 커뮤니티를 할 겁니다. 그리고 사람을 고용해 이 앞에서 1인 시위를 시킬 거예요. 사장의 추악한 모습, 미성년자 성추행, 이런 식으로 말이죠.”
“당신……!”
“아니면 이 방법도 있습니다. 사장과 종업원이 전염병에 걸리면 됩니다. 결핵, 감염병, 피부병이 있으면 매장 운영이 제한되거든요. 이건 처음 들으시죠?”
역시 이놈이 서롱 갤러리 원장에게 귀띔한 놈이다.
날 폭행으로 고소하라고.
수법이 더럽고 치졸하기 짝이 없었다.
내가 주먹을 꾹 쥔 채 못 박힌 듯 서 있자 남자가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었다.
“걱정 마세요. 실제로 할 것도 아니니까. 제가 귀찮게 이런 카페에 왜 신경 씁니까?”
“그런 뜻이 아니라, 당신의 그 수단을 말하는 겁니다.”
그러나 내 지적에 남자는 손가락을 흔들었다.
“팀장님도 만만치 않으신데요. 제가 처음 내건 조건은 ‘이 카페를 3개월 안에 망하게 할 것’이었습니다. 제 방법은 이 카페만 망하게 하는 거예요. 그런데 팀장님은 어떻죠? 이 카페가 아니라 ‘카페’라는 업종 전체를 망하게 하는 방법을 말씀하셨지 않습니까?”
나는 순간 말문이 막혔다.
“지금은 붙잡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오늘 일이 언젠가 불현듯 머릿속에 떠오르셨으면 하네요. 팀장님은 본인이 생각하시는 것보다 훨씬 저희 업계에 어울립니다.”
굉장히 찝찝하다.
내게 강렬한 첫인상을 남기기 위한 것이라면 성공이라고 말해 주고 싶었다.
그의 말이 맞나?
정말 나는 올바른 대답을 한 것일까?
물론 저놈의 말이 옳다는 것은 아니다.
톱니바퀴?
그게 뭐 어쨌다는 말인가.
누구나가 주인공이 될 수는 없다.
화려한 인생을 사는 사람이 있는 반면, 수수하고 평범한 인생을 사는 사람도 있는 법이다.
톱니바퀴라고 무시할 자격은 아무에게도 없다.
그 톱니바퀴가 없으면 사회가 돌아가지 않으니까.
나는 아까 남자가 그랬듯이 유리창 밖을 바라보았다.
여전히 뭐가 그리 바쁜지 오가는 사람이 많았다.
저들 모두가 이 사회의 중요한 구성원이다.
그래, 흔들릴 필요 없다.
무슨 이야기가 오갔든 결론은 하나다.
나는 탈세범을 잡는다.
“생각보다 정리가 빠르네요. 역시 재미있어요.”
나를 관찰하던 남자는 감탄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첫인사는 이걸로 마치겠습니다. 팀장님, 다음 기회를 기약하겠습니다.”
남자는 자리에서 일어서서 정중히 인사했다.
“다음에도 기회는 없을 겁니다.”
나는 그 인사를 뿌리치듯 카페를 나왔다.
햇빛이 뜨거웠지만 온몸에 흐르는 한기는 쉽게 가시지 않았다.
저놈 때문에 소름이 돋았다거나 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질척한 진탕에 신발이 빠진 것처럼 기분이 나빴다.
“설계라…….”
지금까지 나름대로 많은 사람을 만나보았다.
권력을 앞세워 찍어 누르던 놈, 함정을 파던 놈, 구슬리던 놈…….
그러나 지금까지 만나 본 놈 중에서 가장 위험도가 높다고 느껴졌다.
비단 내게 보이는 현상 때문만은 아니다.
자신이 한 짓에 죄책감은 일체 없는 놈이다.
사고방식이 보통 사람과는 아예 달랐다.
저런 놈이 실행력을 갖춘 데다가 권력까지 등에 업었다니.
기분 나쁜 만남이었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저놈은 반드시 잡아야 한다는 것.
그리고 저놈이 손댄 모든 것들을 들여다봐야 한다.
나는 유진환이라는 이름을 머릿속에 새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