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6화. 세상에 이런 놈이(1)
남자가 자기소개를 했지만 나는 움직일 수가 없었다.
어떻게 이런 놈이 있을 수 있지?
보통 아무리 많은 돈을 탈세하더라도 숫자는 하나만 떠야 옳았다.
탈세 주체는 한 명이니까.
이름이 여러 개여도 내 눈앞에 있는 놈은 하나다.
탈세한 놈은 하나라는 뜻이다.
그동안 차명으로 분산해 탈세해 온 놈도 내 눈으로 보면 숫자 하나만 보였다.
그런데 저놈은 왜 숫자가 저렇게 많이 나오지?
도저히 내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었다.
애초에 탈세액이 보인다는 것 자체가 말도 안 되는 일이지만 그래도 나름의 규칙이 있었다.
내가 납득할 수 있는 선이었다는 말이다.
장부나 재무제표를 보면 그 법인의 탈세액이 보이는 건 재무제표가 그 법인의 골격, 몸체나 다름없어서 그런 거고.
재무제표를 봤을 때 스치듯 여러 숫자가 보였던 건 법인에 소속된 주주나 임원들의 탈세액들이 한 번에 보여서 그런 거고.
지금 눈앞에 있는 건 한 명의 사람인데, 대체 저 숫자들은 뭐냐고!
나는 소리를 지르고 싶은 심정이 되었다.
물론 아예 짐작 가는 바가 없는 건 아니다.
저 남자의 머리 위에 떡하니 자리 잡고 있는 건 저 남자의 탈세액이 분명하다.
그럼 나머진 남의 것이란 뜻인데.
“팀장님……?”
그러니까 남의 탈세를 해줬단 뜻인가?
도움을 주는 정도로 저렇게 뜬 경우를 본 적은 없으니, 본인이 주도적으로 하다시피 해서?
“신재현 팀장님.”
남자가 의아한 얼굴로 한 발짝 다가왔다.
나는 화들짝 놀랐다.
본능적인 거부감과 혐오감이 온몸에 내달렸다.
“당신, 누굽니까?”
“멍하니 서 계시길래 이미 절 알고 계신가 하고 깜짝 놀랐습니다. 유진환이라는 사람입니다. 경영 컨설팅과 자문을 맡고 있죠.”
나는 남자가 내민 명함을 받아들었다.
남자의 겉모습만큼이나 깔끔하고 심플한 명함이다.
유진환.
경영 컨설턴트.
미래 정책연구소 실장.
잠깐, 유진환이라고?
서롱 갤러리의 관장에게 찾아가 끈질기게 캐물은 적이 있다.
관장은 자신이 누구에게 누구를 알선했는지, 어떤 거래가 있었는지는 절대 말하지 않았다.
대신 내게 ‘유진환’이라는 이름 석 자를 알려주었다.
어디 사는 놈인지 몇 살인지, 세부 정보는 없었다.
전국의 동명이인을 다 뒤져야 하나 했는데, 이렇게 먼저 다가올 줄이야.
나는 명함을 받고 나서 뚫어져라 남자를 쳐다보았다.
말쑥한 차림새에 서글서글하게 웃는 모습이 호감이 가는 얼굴이다.
영업직이나 전문직은 첫인상이 굉장히 중요한데, 그런 거라면 이놈은 아주 적격이다.
하지만 저런 멀쩡한 겉모습 안에 무엇이 들었을까.
나는 벌레를 보는 기분으로 유진환을 바라보았다.
한편으로는 왜 내게 접근했는지 궁금하기도 했다.
아니, 오히려 알아내야 한다.
나는 애써 동요를 씹어 삼켰다.
“갑자기 정확하게 제 이름을 부르셔서 놀랐습니다. 처음 뵙겠습니다.”
내가 먼저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하자 그는 흥분을 감추지 못하며 양손으로 내 손을 붙잡고 흔들었다.
“만나 뵙게 되어 정말 반갑습니다. 어디 조용한 데 가서 얘기 좀 나눌 수 있을까요?”
***
유진환이 말한 대로 가까운 카페로 자리를 옮겼다.
그는 내 것까지 계산해주겠다고 했지만 나는 내 몫의 커피를 시킨 후 카드를 내밀었다.
요즘 세상이 어느 땐데 공무원한테 커피를 사겠다고 하지.
자리에 앉자 유진환은 커피에는 손도 대지 않고 나를 훑어보았다.
뭘 혼자 생각하고 납득했는지 고개를 끄덕이기도 했다.
그 모습이 왠지 면접 볼 때 면접관이 날 품평하던 장면이 떠올랐다.
기분이 나빠졌지만 나는 내색하지 않고 물었다.
눈앞의 이 남자가 어떤 놈인지, 캐낼 수 있는 만큼 캐내고 싶었다.
“유진환 씨는 정확히 뭘 하시는 분입니까?”
“명함에 쓰여 있는 그대로입니다. 컨설팅을 주로 하죠. 그런데 경영이라는 게 결국 법과 규제에 이리저리 휘둘릴 수밖에 없잖습니까. 그래서 정책 연구도 겸하고 있습니다.”
남자의 설명은 그럴듯했다.
실제로 경영 컨설팅은 그런 방향으로 이루어지기도 했고.
“예를 들어주실 수 있습니까?”
“구체적으로 말씀드리기는 곤란합니다. 회사 기밀은 유지해 드려야 하는 입장이니까요. 이해하시죠?”
의외로 남자의 방어는 단단했다.
그는 스스로에 대한 정보는 말하지 않았다.
“그럼 왜 절 보자고 하신 겁니까?”
결국 돌고 돌아 이 질문이다.
남자는 기다렸다는 듯 웃었다.
“이번 일은 정말 인상 깊었습니다. 팀장님은 다른 공무원들과 다른 방식을 쓰시더군요.”
그리고 질문에 대한 대답은 없이 새로운 질문을 던졌다.
내가 대답 없이 재촉하자 남자는 웃는 낯으로 말을 이었다.
“보통의 공무원은 말입니다. 생각이 꽉 막혀 있어요. 자료 가져와서 일일이 맞춰보고 체크하고 끝. 한 줄로 세워놓고 삐져나온 부분을 잘라내어 접시에 담아 놓는 것이 그들의 방식입니다.”
남자는 영수증을 테이블 가장자리에 세웠다.
그리고 테이블 밖으로 삐져나온 부분을 손으로 잡아 찢었다.
찢긴 부분은 칼로 자른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가장자리가 울퉁불퉁했다.
“여기서 공무원의 한계와 재량이 발생합니다. 어떤 식으로 자를 것인가. 누가 자르면 이 글자 부분까지 모두 잘라내고, 누군가에게 부탁을 받으면 일부러 작게 잘라냅니다. 이게 공무원이죠.”
남자가 영수증 조각을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
“재미있는 비유네요. 큰 권한을 가진 공무원일수록 조심해야 한다는 뜻입니까?”
“아니요. 그렇게 범생이처럼 받아들이지 마십시오. 아니면 일부러 그런 척하시는 겁니까?”
남자는 영수증을 구겨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제가 팀장님을 보고 관심을 가진 게 그겁니다. 남들이 보면 이리 뛰고 저리 뛰고 줏대 없이 눈에 보이는 대로 치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나름의 명확한 기준이 있는 것 같거든요.”
“그 말씀이 맞는데요. 저는 눈에 보이는 대로 칩니다.”
“흐음…….”
남자는 잠시 고민하더니 이렇게 운을 떼었다.
“팀장님은 공무원에 어울리지 않습니다.”
“…….”
그동안 나에게 차라리 검찰 공무원이나 세무사 시험을 보지 그랬냐는 조언을 한 사람은 꽤 있었다.
그러나 이 남자의 말은 조언의 종류가 달랐다.
“팀장님의 좋은 머리를 왜 이런 데서 낭비합니까? 팀장님의 일생일대의 목표가 겨우 탈세범 잡고 세금이나 때리는 겁니까?”
“탈세범 잡는 게 뭐 어때서 그렇습니까? 나라가 굴러가려면 꼭 필요한 일이에요. 그리고 좋게 말씀해주니 고맙긴 한데, 전 그렇게 똑똑한 사람 아닙니다. 저기 한국대 가면 원하는 인재상 많을 겁니다.”
아직 끌어낼 정보가 많은데도 절로 내 말투가 퉁명스러워졌다.
남자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아니요, 그런 종류의 똑똑함을 원하는 게 아닙니다. 천재들은 우리와 생각하는 것 자체가 다르다고들 하죠? 현실이 아닌 먼 곳을 보는 사람은 필요 없습니다.”
“저에게서 뭘 원하시는 겁니까?”
남자는 기다렸다는 듯 카페의 창밖을 가리켰다.
길가에는 수많은 사람이 바삐 오가고 있었다.
평일 낮의 종로 거리다 보니 놀러 나온 사람도 많았지만 직장인도 많았다.
“세상엔 두 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사회의 톱니바퀴가 되어 살아가는 사람과 그 톱니바퀴를 움직이는 사람. 팀장님은 명백히 후자가 될 수 있는 사람이에요. 그런데 왜 굳이 톱니바퀴가 되길 자처하십니까?”
이 말에서 나는 그의 사고방식을 짐작할 수 있었다.
이놈도 나처럼 세상을 두 그룹으로 나눈다.
다만 기준은 하나, 지배할 수 있느냐 없느냐다.
남을 움직일 수 있는 영향력을 발휘한다는 것은 곧 그만한 지배력이 필요하다는 뜻이니까.
기준이 간단한 사람은 행동 목적이 매우 명확하다.
이 남자의 경우에는 아마도 이것일 것이다.
“남을 지배하는 위치에 서길 원하시나 보군요.”
남자는 놀라지도 않았다.
톱니바퀴, 그 정도 언급이면 당연히 내가 알아들을 것이라 생각했나 보다.
“역시 알아들으시는군요. 표현이 좀 거친 편이시네요. 뭐, 그렇게 말해도 틀린 건 없습니다. 어차피 피지배계층은 인생에 아무런 선택지도 없습니다. 지배자들이 결정하는 대로 따라갈 뿐이죠. 그런 인생에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사람이라면, 생각이 있다면 당연히 지배 계층이 되어야 합니다.”
이런 종류의 인간은 꽤 보았다.
자신이 뭐라도 된 것처럼 생각하는 인간.
“그래서 저를 그 지배 계층에 편입시켜주겠다 이 말입니까?”
“네. 이 유리창 하나로 저 밖과 안이 갈리잖습니까? 어려울 것 없어요. 유리창 너머로 들어오기만 하면 됩니다.”
남자는 절대 직접적으로 설명하지 않았다.
워낙에 껄끄러운 일을 많이 해서 그런지도 모른다.
비유로 점철된 대화였지만, 그는 이 말투를 바꿀 생각이 없어 보였다.
아니, 일부러 그런 건지도 모른다.
자신과 대화하려면 이 정도는 되어야 한다는 뜻인가.
그러나 나는 선문답 같은 그 고상한 취미에 어울려 줄 생각이 없었다.
“유리창이니 뭐니 하며 세상을 나누는 놈들이 세상에서 제일 싫습니다.”
“역시 쉽게는 잘 안 되네요. 그게 더 재밌긴 하지만.”
“지금 이게 게임 같습니까? 재밌어요?”
“네. 즐거워요. 팀장님과 함께 일하고 싶지만, 그게 아니더라도 상관없습니다. 어차피 이 세상은 팀장님 같은 사람을 배척하게 되어 있어요.”
“제가 배척하는 건 탈세하는 놈 뿐입니다.”
“그렇게 몸 바쳐 뛴다고 해서 세상이 조금이라도 바뀌던가요?”
너 같은 놈은 없어지게 만들 수 있지.
나는 목구멍까지 올라온 말을 가까스로 삼켰다.
내가 대답하지 않자 남자는 기회를 잡았다 생각했는지 손을 펼쳤다.
“상상해 보세요. 여기 있는 모든 인간들이 내 손 위에서 움직이는 겁니다. 내가 원하는 대로. 예를 들어 저는 이 카페를 3개월 내로 망하게 할 수 있습니다.”
“스스로를 너무 과대평가하는 것 아닙니까?”
“그럼 팀장님은 불가능합니까? 아, 혹시 몰라 말하는데 위생법 위반 그런 걸로 신고 넣어서 영업정지 시키는 거 말고요.”
하필 예를 들어도…….
마음은 불편했지만 내 머리는 자동적으로 방법을 찾고 있었다.
이딴 놈에게 지고 싶지 않다.
그런 오기가 발동했다.
“불가능하진…… 않습니다.”
“어떤 식입니까?”
“제게 권한이 있다는 전제하에, 자영업자 세제 혜택을 받는 업종에서 카페를 제외합니다. 카페에서 쓴 금액은 근로자 신용카드 특별소득공제 대상에서 제외합니다. 대출 금리를 올리고 자영업 대출 연장 심사 시 카페는 엄격하게 심사하도록 지시합니다. 카페는 의제매입세액공제를 받지 못하도록 합니다. 이런 식으로 혜택을 없애고 부담을 늘리면 되죠.”
남자의 표정이 점점 밝아졌다.
반짝이는 눈빛을 하고 내 한 마디 한 마디를 귀담아듣고 있었다.
“하지만 이게 가능할 리가 없으니 이 모든 가정은 무의미합니다.”
“의미 없지 않아요.”
내가 일부러 딱 잘라 말했지만 남자는 기분 좋아 보이는 표정으로 내가 상체를 기울였다.
“여기서 곧바로 그런 생각이 나온다는 것 자체가 마음에 드는 겁니다. 팀장님, 아무리 생각해도 아까워요. 정말 저랑 일해 볼 생각 없어요?”
개소리하지 마라, 하고 받아치려다가 급히 생각을 바꿨다.
잘하면 끌어낼 수도 있겠다.
“일이라. 아까부터 말한 컨설팅 그겁니까? 정말 저와 일하고 싶다면 두루뭉술하게 뭉개는 건 그만두고 패를 보여주시죠.”
“흠. 그렇게 나오신다. 함정 같긴 한데 기꺼이 어울려 드리죠.”
이놈은 바로 내가 미끼를 놓았다는 것을 눈치챘다.
그런데도 굳이 발을 빼지 않는다는 건 자신감이 있다는 뜻이다.
“제가 흥미로울 만한 걸 말해보세요.”
남자는 창밖을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입을 열었다.
“앞서 말씀드린 건 거짓말이 아닙니다. 제가 하는 건 설계예요. 그것도 실현 가능한 설계. 이 나라 권력자와 함께 하고 있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