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국세청 망나니-145화 (145/500)

145화. 대면(6)

각 부처는 작은 왕국이다.

그 왕국에서는 무슨 짓을 해도 밖으로 새어 나가지만 않으면 상관없었다.

문제는 지금 내부의 일이 밖으로 새어 나갔다는 데 있었다.

정확히는 내부의 일도 아니다.

장관 개인의 일이다.

장관은 한 줄기 희망을 품었다.

원래는 이슈가 된 첫날에 대뜸 전화가 올 줄 알았다.

그런데 막상 전화는 이제 오지 않았는가.

장관은 눈에 동아줄이 아른거리는 환상을 보았다.

여기 올라오기까지 얼마나 힘들었는데, 반드시 잡고 말겠다는 의지로 장관은 수화기를 붙잡았다.

“대통령님! 안 그래도 제가 전화 드리려고 했습니다.”

-아, 그래요?

대통령의 목소리는 부드러웠다.

독대해 본 적이 없으니 대통령 개인에 대해서는 잘 몰랐다.

장관은 국무회의에서 봤던 대통령의 모습을 떠올렸다.

유약하고 부드럽기 그지없는 인상.

무척이나 평범해 보이는 사람이었다.

임기 내에 아무런 사고도 일어나지 않았고 특출 난 업적도 없다.

그저 대통령 자리에 앉아 있기만 한 사람.

그것이 장관이 느낀 대통령이었다.

그래서 장관은 전화 너머의 상대를 얕보았다.

“제가 다 설명 드릴 수 있습니다.”

-뭘 설명하겠다는 겁니까?

“항간에 나도는 소문은 다 가짜뉴스입니다. 제가 뇌물을 받았다는 것도 사실이 아니고, 소득을 탈루했다는 것도 거짓말입니다. 기자들이 원래 그런 걸 잘하잖습니까. 소설이죠.”

-네에.

대통령의 대답은 간결했다.

이번에 설득시키지 못하면 답이 없다.

장관은 더욱 입을 놀렸다.

“절 장관직에 지명해 주신 대통령님께는 항상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저희 가문의 영광입니다. 그런 제가 대통령님께 누가 될 행동을 할 리가 없잖습니까?”

-네에. 그렇군요.

장관은 눈앞에 대통령이 있는 것처럼 절실하게, 고개를 꾸벅거려 가며 말했다.

“국세청이 대체 왜 절 공격했는지 저는 도무지 모르겠습니다. 국세청이 무슨 꿍꿍이를 가졌는지 조사가 필요합니다. 부디 제가 누명을 벗을 기회를 주십시오.”

장관의 말을 끝으로 전화에는 침묵이 흘렀다.

처음엔 어떻게든 하고 싶은 말을 다 뱉어내려 열심이었다.

대통령이 조용히 들어주니 이때가 기회다, 하고 늘어놓았지만 막상 말이 끝났는데도 전화는 조용했다.

“……저, 대통령님?”

전화가 끊어진 건가 싶어 조심스럽게 불러 보자 옅은 한숨 소리가 새어 나왔다.

-끝났습니까?

“아, 예…….”

-미안합니다. 시간이 아까워서 중간부터는 흘려들었습니다. 제가 좀 바빠요.

“예, 예?”

뭔가를 읽는 중인지 전화 너머에서 종이가 팔락 넘어가는 소리가 들렸다.

장관은 불안함을 느꼈다.

-끝났으니 이제 제가 말하죠.

“경청하겠습니다.”

-최 장관, 정부 기관을 너무 무시하는 것 같네요. 의혹이 있든 없든 내 사람들이 검증할 겁니다. 모든 일은 증거로만 해결할 것이고 이번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니까 그 증거가 문제인 겁니다! 국세청이 아무 근거도 없이 무작정 모함하지 않습니까.”

-왜 근거가 없다고 생각합니까?

“전 국민이 지켜보고 있습니다. 아무 입장 표명도 하지 않으니 기자들은 온갖 의혹을 쏟아내고 있고요. 보통 기자들이 날뛰는 걸 막기 위해서라도 현재 상황은 정기적으로 브리핑하지 않습니까?”

-기자들을 날뛴다고 표현하지 마세요. 당신은 문체부 장관입니다. 기자는 통제의 대상이 아니에요.

부드러운 말투였지만 내용은 그렇지 않았다.

난데없이 혼났다고 느낀 장관이 멍청하니 대답했다.

“죄송합니다. 실언했습니다.”

-지금부터 내가 딱 한 가지만 묻겠습니다. 사실대로만 대답하세요.

분위기가 이상했다.

조금씩 스멀스멀 가랑비에 옷이 젖어 들어오듯, 손끝에서 시작된 떨림이 장관의 몸 전체로 퍼졌다.

원래 이런 사람이었나 싶을 정도로, 대통령이 너무도 낯설었다.

-그림 받고 대가로 뭘 해 줬습니까?

그림을 받았냐는 질문이 아니었다.

받았다는 것을 기정사실로 여기고 하는 말이었다.

장관은 극구 부인했다.

“받다니요! 저는 남에게서 절대 무언가를 받은 적이 없습니다!”

-아, 거짓말을 하시겠다.

넘어가는 기색은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

미치고 팔짝 뛸 일이었다.

“절대 아닙니다, 대통령님! 누가 그럽니까? 제가 그림을 받았다고? 엄연히 제 돈 주고 샀습니다.”

-아까도 말했는데 최 장관, 정부 기관을 바보로 보지 마세요. 나는 바쁜 사람입니다. 받았네, 안 받았네. 이딴 실랑이 하고 싶지 않습니다.

장관은 침을 꿀꺽 삼켰다.

차라리 전화가 아니라 직접 만나는 게 좋을 뻔했다.

바닥을 기어서 바짓가랑이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었다.

모든 것을 알고 있다.

대통령의 말투에서 그런 자신감이 느껴졌다.

장관은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대, 대통령님. 비싼 것 아니었습니다. 딸 결혼 때 선물로 받은 겁니다. 경조사 때는 그럴 수도 있는 것…… 아닙니까?”

-장관과 통화한 시간이 5분을 넘어갑니다. 마지막으로 묻죠. 그림 받고 대가로 뭘 해 줬습니까?

말할까, 말까.

잠시 고민했지만 선택지는 하나뿐이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잡아뗀다.

대가성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사안의 심각성이 달라질 것이 분명했다.

“순수하게 선물로 받은 겁니다. 절대 무언가를 대가로 해 준 적 없습니다!”

-그렇군요. 장관이 내 사람들을 귀찮게 한다는 건 잘 알겠습니다.

“예?”

전화 너머에서 짧은 한숨이 흘렀다.

-다들 바쁜 사람인데, 장관 뒷조사나 하라고 시켜야 한다니 내가 다 안타깝습니다.

“대통령님, 잠시만요!”

-아, 사직서는 필요 없습니다.

사직서가 필요 없다는 말에 장관이 화색을 띄었다.

결국 자신의 허물을 감싸겠다는 말 아닌가!

-파면할 거니까 그렇게 알고 계세요.

그러나 차가운 목소리와 함께 전화가 뚝 끊겼다.

“대통령님! 기회를, 잠시만, 대통령님!”

다급하게 소리쳐 봤지만 이미 수화기에서는 뚜뚜, 하는 매정한 기계음만 들릴 뿐이었다.

***

보고서는 아침 일찍 청장실에서 건넸다.

서울청까지 일부러 찾아온 것은 경제수석실의 행정관이었다.

청와대 행정관일 정도면 행정고시를 통과한 인재다.

그런데 나이는 굉장히 어려 보였다.

나와 비슷하거나 조금 더 많은 정도.

아마 좋은 대학교를 졸업하고 행정고시를 합격해 순수하게 엘리트의 길을 걸어왔겠지.

나와는 정반대다.

그런데도 그는 조금의 거부감도 없이 내게 손을 내밀었다.

“이야기 많이 들었습니다. 꼭 만나보고 싶어서 제가 가겠다고 했어요.”

어리둥절한 내가 얼결에 손을 잡자 그는 위아래로 흔들며 웃었다.

경제수석실에서 왔다고 했으니 임현승 수석과 일하는 사람일 것이다.

임현승 경제수석이라…….

못 본 지 꽤 되었다.

워낙에 높은 곳에 있는 사람이다 보니 나와 엮이는 일 자체가 없긴 했다.

먼저 전화하긴 그렇고, 명절에 안부 문자 정도는 남기는 사이다.

“수석님 잘 계시죠?”

“그럼요. 신 팀장님하고 일하고 싶어서 근질근질해 하십니다.”

“예……?”

이게 무슨 소린가 싶어 고개를 들었지만 행정관은 곧바로 주제를 돌렸다.

“보고서는 이건가요?”

청장이 책상 위에 놓여 있던 것을 내밀었다.

청와대는 어떤 양식을 쓰는지 몰라서 그냥 평소 우리가 보던 대로 작성했다.

다만 제본한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종이가 각이 잡혀 추려져 있었는데, 이건 청장의 솜씨다.

공무원들이 글자 크기, 글자체, 여백 등에 굉장히 민감한 건 사실이다.

청장은 거기에 한술 더 떠서 보고서를 받자마자 집게를 빼낸 후 촤르륵 종이를 펼쳤다.

그리고 종이를 세워 책상 위에 몇 차례 두드렸다.

그 결과가 저렇게 삐져나온 곳 없이 각 잡힌 보고서다.

나는 아무리 해도 꼭 종이 어느 한 부분이 삐져나오게 되는지라 보자마자 감탄했다.

행정관은 두 손 모아 공손하게 보고서를 받아든 후 가져온 봉투에 넣어 테이프를 붙였다.

내용은 들여다보지도 않았다.

“그럼 이만 가 보겠습니다. 무척이나 기다리는 분들이 계셔서요. 원래는 직접 오시려고 했는데 제가 극구 말렸거든요.”

행정관은 청장에게 깍듯하게 인사를 건넨 후 내게 돌아섰다.

“수석님이 안부 전해 달라고 하십니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조만간 또 뵙길 고대하겠습니다.”

내게 눈인사를 하고 얌전하게 나가는가 싶더니 청장실 문을 열자마자 행정관의 걸음이 빨라졌다.

문이 닫히기 직전에 본 것은 헐레벌떡 달려서 비서실을 빠져나가는 행정관의 뒷모습이었다.

청장은 행정관이 있던 자리와 나를 번갈아 바라보더니 아무것도 묻지 않고 짧게 말했다.

“고생했다. 오늘은 이만 들어가. 팀원들도 퇴근시키고. 내일 보자고.”

청장의 표정은 굉장히 혼란스러워 보였다.

나는 말없이 청장실을 나왔다.

그리고 나는 말을 굉장히 잘 듣는 사람이다.

즉, 사무실에 들어가자마자 직원들을 독촉해서 퇴근시켰다는 뜻이다.

“하던 일 다 내려놓으시고 나가시…….”

“이거 어디서 많이 본 구도인데, 혹시 우리 사무실 세무조사 하세요?”

진지한 얼굴로 농담하는 강혜원을 무시하고 사무실 문을 가리켰다.

“퇴근하라십니다.”

“진작 말씀하시지! 장세훈 주사보님, 쓰던 거 다 저장하세요. 가요!”

고지서를 보내야 하는 일이 남았지만 어느 정도 일단락 된 거나 다름없다.

상쾌한 기분으로 청 밖으로 나오니 내리쬐는 햇빛이 강렬했다.

“우와, 이게 며칠 만에 보는 햇빛이에요?”

그동안 달을 보며 출근하고 달을 보며 퇴근하는 생활이 일상이었는데, 못 보던 사이에 어느새 해가 이렇게 뜨거워졌다.

좀 있으면 재킷도 벗어야 될 듯싶었다.

“어, 나왔다!”

그리고 어디에 숨어 있었는지 기자들이 우르르 달려왔다.

분명히 청에서 나올 땐 아무도 없었는데.

“식사하러 가시는 겁니까?”

“현재 진척은 어떻습니까? 장관의 탈세와 뇌물 수수는 사실입니까?”

그동안은 계속 피해왔지만 그럴 필요가 없다.

자리에 멈춰 서자 기자들이 녹음을 켠 스마트폰을 들이밀었다.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다 끝냈습니다. 이제 기다릴 뿐입니다.”

“그게 무슨 뜻입니까? 결론이 났다는 말씀입니까?”

일부러 청와대에서 보고서를 받아갈 정도니까 무언가 조치가 있겠지.

징계든 파면이든…….

상대가 한 부처의 수장인 데다 뇌물도 얽혀 있으니 절대 조용히 넘어가진 않을 것이다.

“곧 어떤 식으로든 조치가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한 말씀만 더 부탁드립니다!”

기자들이 끈질기게 달라붙기에 나는 걸음을 멈추고 진심을 담아 말했다.

“이제 진짜 제가 더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기자분들도 일하느라 열심이신 건 압니다만, 오늘은 그동안 고생한 저희 팀원들 오랜만에 퇴근하는 길입니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말씀드리겠습니다. 오늘은 여기까지만 부탁드립니다.”

기자들이 주춤거리며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곧 조금씩 길을 터주기 시작했다.

마지막까지 길을 막고 서 있던 기자는 동료 기자의 손에 뒤로 물러났다.

“감사합니다.”

나는 진심으로 감사 인사를 건네고 대로변으로 향하는 길을 걸었다.

“고생하셨습니다! 다음에 기자회견 한번 꼭 해 주세요! 기사 잘 써 드릴게요!”

뒤에서 기자들의 왁자지껄한 목소리가 들리기에 나도 뒤돌아 대답했다.

“기자님들도 고생하셨어요! 오늘은 출근 안 할 거니까 들어가서 쉬셔도 됩니다!”

“네!”

확실히 국회의원 때와는 기자들의 대우가 달랐다.

그때는 어떻게든 약점을 물어뜯기 위해 달려드는 하이에나 같았는데.

지금은 매일매일 출퇴근 때마다 인사와 농담을 건네는 기자도 있었다.

“팀장님, 버스 타시죠? 저희는 지하철이라…….”

“네. 들어가세요. 고생 많았습니다.”

“내일 봬요!”

큰길에서 팀원들과 헤어지고 난 후 요란하게 오가는 차도 앞에 서서 멍하니 횡단보도 신호를 기다렸다.

그동안 사무실에 틀어박혀 있을 때는 몰랐는데 긴장이 풀리니 온몸이 쑤시고 피곤이 몰려왔다.

오늘은 푹 자야겠다.

그런 실없는 생각을 하고 있을 때였다.

“안녕하세요, 신재현 씨.”

옆에서 누군가 내 이름을 불렀다.

TV에서 날 본 사람인가?

대답만 해주고 얼른 집에 가야겠다, 하고 고개를 들자마자 나는 굳고 말았다.

횡단보도의 신호가 초록색으로 바뀌었지만 나는 발을 뗄 수 없었다.

대체 무엇을 해야 저런 숫자가 나올 수 있을까.

[3,51-,413]

[15,621,--8,100]

[5,2-6,12-]

[-6,-7-,-64]

정장을 말쑥하게 차려입은 남자의 몸을 수십, 수백 개의 숫자가 휘감듯 맴돌고 있었다.

어지럽게 널려 있는 숫자의 향연에 멍해진 내게 남자가 명함을 내밀었다.

“유진환이라고 합니다. 잠시 얘기 좀 나눌 수 있을까요?”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