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3화. 대면(4)
문체부 장관 최명운은 곧장 기자회견을 열었다.
한쪽에서는 사택이 털리는 것이 실시간으로 뉴스에 나오고 있고, 한쪽에서는 그 당사자가 억울함을 피력했다.
“안녕하십니까, 국민 여러분. 문화체육관광부의 장관 최명운입니다. 저는 오늘 제 자택이 긴급 세무조사를 받았다는 말을 듣고 경악을 금치 못했습니다. 저는 결단코 그 어떠한 탈세도 하지 않았으며 떳떳합니다. 국세청은 지금 당장 문체부에 대한 견제를 멈추기 바랍니다.”
장관이 땀을 뻘뻘 흘리며 하는 변명에 기자는 당연하게도 질문을 던졌다.
“국세청이 문체부를 공격한다고 보십니까? 이유가 뭡니까?”
“이유는 모릅니다. 하지만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나고 있지 않습니까.”
“정치적 이유가 있다고 보십니까? 장관님에게 어떤 혐의점이 있는 것은 아닐까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당신 어디 기자야! 지금 어디서 그런 망발을 내뱉는 거야! 지금 내가 탈세를 했다는 겁니까!”
난생처음 들어보는 폭언에 장관이 버럭 화를 냈다.
안내를 맡은 문체부 공무원이 다급하게 마이크를 잡았다.
“질문은 받지 않겠습니다. 기자님, 죄송하지만 브리핑 중입니다. 질문은 삼가 주십시오.”
중재하던 공무원이 말려보려 애썼지만 누구도 듣지 않았다.
기자들 입장에서는 차려진 밥상이나 다름없다.
장관에게 흠이 있다면 캐내야 할 것이고, 흠이 없다면 증명해야 한다.
그런 생각으로 기자들은 악착같이 달려들었다.
“세무조사를 맡은 팀이 어디인지 아십니까!”
“국세청과 그간 알력다툼이 있었습니까?”
“국세청과 문체부는 아무 상관이 없다고 여겨지는 부처입니다. 왜 국세청이 공격한다고 여기십니까!”
“짚이는 것이 정말 없으십니까?”
“조사를 진행 중인 팀이 가장 최근에 맡은 건이 모 갤러리였다고 합니다. 짐작 가는 것이 있으십니까?”
쏟아지는 질문에 한걸음 물러나 고까운 눈길로 기자들을 바라보던 장관이 퍼뜩 한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가장 최근에 맡은 건, 즉 갤러리에 대해 질문한 기자였다.
장관은 저도 모르게 잠시 시선을 준 것이었지만, 기자는 그것을 놓치지 않았다.
“갤러리와 미술품은 넓게 보면 문체부 관할입니다. 혹시 일전 갤러리 세무조사와 문체부가 연관이 있습니까?”
기자의 질문은 날카로웠다.
그리고 기자를 많이 대해보지 않은 장관이 흠칫한 순간, 다른 눈치 빠른 기자들이 눈을 번뜩였다.
먹잇감을 발견한 하이에나의 모습이었다.
“장관님! 해당 갤러리와 연관 있는 게 사실입니까!”
“특혜를 주신 겁니까?”
“개인적으로 갤러리와 거래를 하신 적이 있습니까?”
이제는 아예 장관과 갤러리의 관계를 중심적으로 캐물었다.
의혹 제기 수준이 아니었다.
점점 기자들의 질문이 표적을 좁혀가자 뒤늦게 장관이 소리쳤다.
“말씀하신 건과 문체부, 그리고 저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억측은 그만하시기 바랍니다!”
장관이 아예 마이크를 내려놓고 연단에서 내려왔다.
기자회견장을 빠져나가는 장관을 보며 진행을 맡은 공무원은 암담함을 느꼈다.
이건 무슨 안 하느니만 못 한 기자회견이다.
그러나 가만히 있을 수는 없는 일이다.
공무원은 얼른 장내를 정리하기 위해 마이크를 들었다.
“기자회견은 이것으로 마치겠습니다. 기자 여러분께서는 장내에 머물러주시기 바랍니다.”
공무원의 필사적인 만류는 소용없었다.
“찍어! 지금 찍어야 돼!”
“당황했다, 당황했어!”
기자들은 해일처럼 와르르 일어나 강당의 앞문과 뒷문으로 쏟아져 나갔다.
법무부나 국토부라면 몰라도, 문체부는 이런 소란에서 항상 동떨어져 있었던 부처다.
공무원이든 비서실이든 이런 일에는 단련이 되어 있지 않았다.
통제되지 않은 기자들이 복도로 몰려나가자 장관은 좁은 복도 한가운데에 발이 묶였다.
“비켜주세요!”
“찍지 마! 찍지 말라고!”
장관의 분노 어린 외침은 그대로 기자들의 카메라에 담겼고, 이것은 곧바로 뉴스의 오프닝이 되었다.
***
[‘찍지 마!’ 회견장을 빠져나가는 문체부 최명운 장관]
[문체부 장관, 뇌물수수와 탈세 혐의?]
[발칵 뒤집힌 문체부, 국세청에게 책임 떠넘겨]
-문체부 장관 최명운의 자택이 기습적인 세무조사를 받았다. 최 장관은 탈세 혐의를 전면 부인하며 국세청에게 화살을 돌렸다. 최 장관을 조사한 것은 일전에 류석호 전 의원의 혐의를 밝혀낸 조사관이 이끄는 특수조사팀으로, 최 장관이 주장한 대로 행정기관끼리의 싸움으로 보기엔 근거가 희박하다.
현직 장관의 사택이 조사를 받은 사상 초유의 사태에 국민들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인터넷 기사들은 속속 장관에 대한 기사를 쏟아냈다.
랭킹을 눌러 들어가면 나오는 정치, 경제, 사회 모든 분야에서 장관의 이야기가 도배하다시피 하고 있었다.
그리고 대부분의 기사는 ‘의혹을 추궁받는 장관’, ‘당황한 장관’이라는 식의 소제목을 붙여 가장 자극적인 사진을 올렸다.
인파를 헤치고 나가며 찍지 말라고 고함치는 사진 말이다.
“으아악!”
장관은 사진을 보자마자 책상 위의 서류를 냅다 집어 던졌다.
“하고 많은 것 중에 왜 하필 이 사진이야! 찍지 말라는 게 뭐가 그렇게 잘못인데!”
이것은 최명운이 생각지도 못한 사태였다.
갑작스러운 가택 조사에 마음이 조급해져 판단이 흐려진 것은 인정한다.
하지만 기자들의 행동은 예상외였다.
장관은 한 부처의 수장이다.
말 그대로 문체부에서는 장관이 최고라는 뜻이다.
권한을 준 사람인 대통령이 거둬가기 전까지, 무소불위의 왕이나 다름없었다.
자신이 명령하면 휘하의 공무원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듯, 기자 역시 마땅히 그럴 것으로 생각했다.
당연하지 않은가.
기자는 기사를 써서 나르는 존재다.
그간 장관이 봐온 기자회견은 다들 그랬다.
입장을 말하면 기자가 받아 적고. 기자가 질문을 해도 불리한 질문이면 넘기면 그만이다.
입장을 발표하고 그대로 기사가 나가면 여론은 자신에게 동정표를 던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뭐든 부인하면 그만이다.
증거가 나와도 모른다고 잡아떼야 한다.
그렇게 어영부영 시간이 흐르면 당연히 살아남는 것은 장관인 자신이다.
그렇게 생각했다.
-똑똑.
“들어와!”
수행비서가 조심스럽게 장관실로 들어섰다.
그는 장관실 바닥에 널려 있는 서류를 보더니 눈을 질끈 감았다가 떴다.
“알아봤어?”
“네. 기사가 맞았습니다. 작년 국회의원을 잡아먹은 그 조사관입니다.”
장관은 답답하다는 듯 소리쳤다.
“대체 나한테 무슨 억하심정이 있어서 날 조사하냐고! 혹시 그동안 국세청에서 무슨 요청 온 거 있었어?”
“알아본 바로는 전혀 없었습니다.”
국세청과 문체부는 업무 협조를 하는 사이도 아니다.
업무 자체가 너무 동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장관은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다.
“기사는 어때, 내릴 수 있어?”
“안 될 것 같습니다. 오히려 언론 탄압이라고 역효과가 날 수 있습니다.”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해? 대변인실은 뭐하고?”
“장관님, 차라리 처음부터 직접 기자회견을 하지 마시고 대변인실을 통해 입장 발표를 하셨으면…….”
직언을 올렸던 비서는 장관의 표정을 보자마자 입을 다물었다.
괜히 입을 놀렸다는 후회가 비서의 얼굴에 감돌았다.
“지금 내가 잘못했다는 거야? 너 지금 누구 편이야?”
“아닙니다. 죄송합니다.”
비서는 얼른 눈을 내리깔았다.
다행히 장관은 최소한의 이성의 끈을 놓지 않았다.
심호흡 몇 번으로 분노를 가라앉힌 장관을 바라보던 비서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저, 장관님. 법적인 자문은 받아보시는 편이…….”
“너 약 올리냐? 내가 뇌물 받은 것 같아?”
“아, 아닙니다.”
비서는 정말로 뭐가 날아오기 전에 서둘러 장관실을 나갔다.
‘알아보니까 진짜 혐의 있는 사람만 때리는 놈 같던데, 설마 장관님이…….’
비서의 머릿속에 의혹이 가득 찼지만 입 밖으로 꺼내진 않았다.
곁에서 수행하는 비서인 자신도 이런 의심이 드는데 기사만 읽어본 사람은 오죽하겠는가.
비서는 어려운 싸움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
서울청으로 들어오는 길은 갈 때보다 훨씬 힘들었다.
“허억! 저거 뭐예요! 어떻게 저 무거운 걸 얹고 따라와요?”
강혜원의 말에 승합차 창문 너머를 바라보니 오토바이에 두 명의 남자가 탄 채 우리를 쫓아오고 있었다.
그중 뒤에 탄 남자는 무거운 카메라를 어깨에 얹은 채 용케 균형을 잡고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승합차 바로 뒤에는 ‘취재’라는 종이를 앞 유리창에 단 차량 수십 대가 줄지어 쫓아오고 있었다.
무슨 호위대가 생긴 느낌이다.
“수배자가 된 느낌이네요.”
황민우의 감상은 나와는 달랐다.
운전대를 잡은 그는 사이드미러를 바라보며 질린 표정을 지었다.
운전하는 입장에서는 그닥 탐탁지 않은 기분이었나 보다.
“기자들 무섭네…….”
이미 작년에 기자들의 집요함은 겪어볼 대로 겪어봤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 생각을 수정했다.
기자의 취재 욕구는 상상을 초월한다.
“어차피 서울청 안에는 못 들어올 겁니다. 각오했던 것 아닙니까. 그보다 아까 거실에 있던 게 그거 맞죠?”
“네. 갤러리의 거래 목록에 있었어요.”
강혜원은 카메라를 꺼내 장관의 사택에서 찍은 사진을 찾아 보여주었다.
서롱 갤러리의 거래 장부에는 ‘봄이 녹아내리는 호수’라는 그림이 있었다.
나는 팜플렛 묶음을 꺼냈다.
과거 전시회 팜플렛은 갤러리에 대부분 남아 있었기 때문에 현장 조사 때 수거해온 것들이다.
“이거였나요?”
나는 팜플렛 묶음 중에서 테마가 봄인 것들을 몇 개 꺼냈다.
하나하나 열어보자 분홍 꽃이 흐드러지게 핀 나무가 늘어선 호숫가의 그림이 나타났다.
“아, 찾았습니다.”
팜플렛과 강혜원이 내민 사진을 꼼꼼히 비교했다.
잘 모르는 내가 봐도 틀린 그림 찾기 수준으로 똑같아 보였다.
장관의 거실에 있던 그림이 위작이라면 몰라도, 진품이라면 서롱 갤러리를 거쳐 간 물건이 맞다.
이것만 갖고는 별문제가 없어 보인다.
장관도 취미 생활이 있는 법이고, 그림 좀 산다고 해도 이상할 것 없으니까.
문제가 있다면 이거다.
[‘봄이 녹아내리는 호수’ - 구매자 이전성]
이전성이 누구인지는 아직 조사하지 못했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세무서에 신고 들어온 내용 중에 ‘이전성이 다른 누구에게 그림을 판매했다’는 기록은 없었다.
이전성이라는 사람이 산 그림이 장관의 집에서 발견되었다?
답은 하나다.
뇌물.
“돌아가면 이 이전성이라는 사람에 대한 조사하고 세금 신고 내역 쭉 뽑아 보죠. 그리고 장관 사택에 있던 다른 그림들도 조사해봅시다.”
과연 문체부 장관의 사택이라는 감탄이 나올 정도로 장관은 많은 예술품을 보유하고 있었다.
거실에도 침실에도, 계단에도.
화장실에도 손바닥만 한 그림이 하나 걸려 있을 정도였다.
“넵. 사진 찍은 거 크게 뽑아올게요.”
“저는 그러면 일단 팜플렛하고 갤러리 홈페이지에 있던 전시기록 쭉 뽑겠습니다.”
이제는 내가 말하지 않아도 뭘 할지 짚어냈다.
승합차가 서울청에 들어서고 뒤따라온 기자들도 서둘러 차에서 내렸다.
좁은 골목이 기자들의 차로 주차장처럼 변할 정도였다.
미리 도착한 기자들이 우리가 서울청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찍었다.
공무원증을 꺼내 찍고 들어간 후에야 우리는 카메라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었다.
“기자들은 봐도 봐도 익숙해지지가 않네요.”
작년에 크게 시달려본 안길진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우리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사무실이 있는 층으로 향했다.
사무실에 들어가 짐을 풀기가 무섭게 전화벨이 울렸다.
지켜본 게 아닐까 싶을 정도의 타이밍이었다.
아니, 기자들이 따라붙었으니 속보로 지켜보고 있었을 수도 있겠다.
“예, 청장님.”
-지금 들어갔지?
어쩐지 청장의 목소리가 떨리는 것처럼 느껴졌다.
장관 친 것도 이미 허락 받았는데 무슨 사고일까, 나는 의아하게 물었다.
-공문이 내려왔어. 최명운 장관에 대한 상세 보고서를 받아보고 싶어 하신다.
“예? 누가요? 국세청장님이요?”
청장의 목소리에 감정이 섞였다.
-VIP다. 보고서 완성되는 대로 서울청에 사람이 올 거야.
아, 이건 흥분할 만 하네.
청장의 흥분과 긴장이 전염된 것처럼, 내 몸도 덩달아 떨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