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2화. 대면(3)
문체부 장관의 집 앞은 혼돈의 연속이었다.
미리 연락을 받고 달려 온 기자들은 좋은 위치를 선점했지만 뒤늦게 온 기자들은 조금이라도 앞자리에 끼기 위해 틈새를 비집고 기어들었다.
먼저 온 기자들과 싸움이 나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거기 자리 좀 남잖아요. 배경만 잠깐 땁시다.”
“저희 카메라 서 있는 거 안 보여요? 거기 서시면 구도가 가리잖아요!”
“아, 정말. 조금 일찍 왔다고 이러시는 게 어딨습니까. 저희 일간지에요. 사진만 찍으면 된다니까요?”
“집 사진만 찍으려는 거 아니잖아요. 이따 공무원들 도착하면 자리 잡고 사진 따갈 거면서!”
기자끼리 실랑이가 벌어졌다.
이번 건은 대한민국을 발칵 뒤집어놓을 특종이었다.
단독 기사는 못 내더라도 반드시 공무원들이 장관 집에 들어가는 장면은 찍어야 했다.
신문이라면 1면, 뉴스라면 9시 톱을 차지할 헤드라인이다.
한순간이라도 놓쳐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기자들이 예민해졌다.
같은 업종이겠다, 어딜 가든 얼굴을 마주칠 사람들이니 평소 같으면 조금씩 양보했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은 목숨을 걸고서라도 자리를 사수해야 했다.
“정보 빨리 따서 특종 잡는 게 기자 아닙니까? 조금 일찍 왔다고 이러는 게 아니죠. 그게 기자의 능력인데!”
“아이, 거 참. 조금만 양해해 주세요. 이거 놓치면 어떻게 될지 뻔히 아시잖아요. 저희도 꼭 장면 따야 합니다.”
“죄송한데 안 됩니다. 다른 때 같으면 어떻게든 배려해드렸을 텐데 오늘은 더더욱 안 돼요.”
“아니, 대체 이 사람들은 어디서 소식을 듣고 온 거랍니까? 같은 업계잖아요. 국세청에 정보원 있는 겁니까?”
결국 좋은 자리를 얻지 못한 기자가 분통을 터뜨리며 물었다.
일찌감치 포기한 카메라맨은 아예 뒷줄로 가서 길가에 있는 벽돌 위에 아슬아슬하게 올라서고 있었다.
딱 봐도 위험해 보였지만, 카메라맨의 의지는 꿋꿋했다.
먼저 와서 자리를 선점한 기자는 측은한 표정을 지었다.
“신재현 씨가 일부 언론사에 연락 돌렸습니다. 뭐, 웬만한 메이저에는 다 돌린 것 같은데.”
어디의 누군지 자세한 설명을 할 필요는 없었다.
단지 이름을 말한 것만으로도 일간지 기자는 바로 알아들었다.
어차피 카메라맨이 뒷줄에 자리를 잡았겠다, 일간지 기자는 조금이라도 더 정보를 얻어보겠다는 마음으로 눈앞의 기자에게 캐물었다.
“작년에 국회의원 하나 잡더니 너무 기고만장해진 것 아닙니까?”
뉴스 기자는 동종 업계에 대한 예의 반, 정보를 먼저 얻었다는 우월감 반으로 설명했다.
“신재현 씨가 어떤 생각이든 간에 우리야 특종만 잡으면 되는 것 아닙니까. 아마 이번 일 터지면 최소한 한 달은 시끄러울 겁니다. 무려 7급 공무원이 현직 장관을 치는 거예요!”
일간지 기자 역시 눈앞의 기자가 순수한 호의로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는 걸 알았다.
그러나 상대의 감정이 어떻든 간에 정보를 캐내는 것이 당장 급선무였다.
그래서 일간지 기자는 일부러 모르는 척 되물었다.
“보여주기 아니겠습니까? 우리는 자정작용을 할 수 있다. 수사권 어쩌구 하는 검경보다 국세청이 낫다, 이런 거?”
아무렇게나 생각나는 대로 주워섬긴 개소리나 다름없었다.
뉴스 기자 역시 별다른 지적은 하지 않았다.
“파워 게임이라기엔 너무 갑작스럽고, 정치적인 노림수가 있다고 보이지도 않아요.”
검찰과 경찰이 권한을 갖고 다투는 일이 잦다면, 국세청은 고고하게 혼자 노는 느낌이 강하다.
안 그래도 4대 권력기관이라는 소리를 듣는 곳인데, 괜히 힘을 과시할 필요도 없는 곳이다.
그렇다고 정치를 끼워 맞추자니 구도가 이상했다.
반정부 인사나 야당을 친다면 보복성 세무조사라고 생각할 만했다.
그러나 뜬금없이 현직 장관을 친다는 건 아무리 봐도 제 살 깎아 먹기였다.
“혹시 정부 기관끼리 무슨 알력싸움이라도 있습니까?”
“국세청이랑 문체부가요? 그거야말로 말도 안 되죠. 검경처럼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것도 아니고, 행정기관장끼리 무슨 일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싸워서 이득이 있습니까?”
“그건 아니죠.”
그렇게 하나하나 가능성을 지워 보니 남은 것은 하나뿐이었다.
제일 말도 안 되지만 유일하게 남은 것.
“그럼 정말로 문체부 장관에게 잘못이 있었고, 국세청이 그걸 포착해서 세무조사를 한다는 겁니까?”
“그것밖에 안 남죠.”
“에이, 말도 안 돼요.”
기자들은 서로 얼굴을 마주 보며 웃었다.
그러나 머릿속 한편에서는 정말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멀스멀 피어오르고 있었다.
“근데 메이저에 연락을 돌렸다는 건 또 무슨 말입니까? 신재현이 직접 돌렸어요?”
“네. 희한하게도 직접 연락했더라고요. 엠바고 조건과 함께요.”
“그래서 정말로 엠바고 지킨 겁니까?”
“보시면 알잖아요. 엠바고 깨졌으면 장관이 절대 출근 안 했을걸요. 이 난리 날 줄 알고 어떻게 출근을 해요.”
뉴스 기자는 어깨너머를 가리켰다.
차 두 대가 널찍하게 지나갈 만한 고급 주택가의 골목은 속속들이 도착한 기자들로 꽉 차 있었다.
어디서 이렇게 많은 기자가 몰려왔는지 발 디딜 틈도 없다.
현장에 동원되는 장비의 수준과 기자 숫자를 보면 특종의 질을 알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는 지금 이 상황만 보면 대한민국이 발칵 뒤집히고도 남아 보였다.
“대체 무슨 조건이었는데 이 많은 언론사가 철저하게 엠바고를 지킨 겁니까?”
촉박한 시간에 물어볼 정도로 꼭 필요한 정보는 아니었다.
하지만 기자는 궁금했다.
그 누구보다 특종과 독점에 목마른 기자들 입에 대체 뭘 물려줬길래 고분고분 말을 듣는단 말인가.
그러자 뉴스 기자가 고개를 설레설레 내저었다.
“그게 참 대단합니다. 이쪽 생리를 아주 잘 아는 건지, 조련하는 솜씨가 노련해요.”
뉴스 기자는 구체적인 조건은 말하지 않고 말을 돌렸다.
정보를 얻을 수 있을까 하고 캐물어 보려던 일간지 기자는 입맛만 다셨다.
“언론을 이용할 줄 아는 겁니다.”
“그렇게까지 고평가하십니까?”
뉴스 기자는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왜 기자들을 불렀겠습니까? 상대가 크니까 그래요. 작년에 언론의 뭇매를 맞으면서 언론의 힘이 얼마나 강한지 깨달은 걸 그대로 써먹는 겁니다. 이렇게 지켜보는 와중에 장관이 공식적으로 할 수 있는 건 입장표명밖에 없습니다.”
“작년에 기자들 좀 상대하면서 터득한 걸까요?”
“한두 번 봤다고 터득할 것 같으면 다른 공무원들은 왜 못합니까. 청와대든 국회든 괜히 대변인 직책이 따로 있는 게 아닌데요.”
“누가 언질을 주지 않았겠습니까? 당장 장관을 치겠다고 하는데 국세청에서 도움은 줬을 것 아닙니까.”
“근데 주체가 국세청이 아니고 서울지방청이란 말이에요. 대체 무슨 생각인지를 모르겠어.”
뉴스 기자가 생각에 잠겨 있는 동안 골목은 더더욱 복잡해졌다.
그때 20대 중반으로 보이는 한 기자가 골목을 누비기 시작했다.
“선배님들! 마이크 주세요! 마이크 합치겠습니다!”
“아, 저희 마이크 부탁합니다!”
젊은 기자는 복잡한 골목을 요령 좋게 빠져나가 마이크를 테이프로 둘둘 감았다.
이제 저 기자가 맨 앞에서 대표로 소리를 잡아 줄 것이다.
“아이쿠, 벌써 시간이 다 됐나 봅니다. 저희 쪽은 스튜디오랑 연결해야 해서요. 나중에 뵙겠습니다.”
그 말에 사전 연락을 받지 못한 기자 역시 부산해졌다.
약속한 시간이 다 되어 간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카메라맨이 손가락을 접어가며 숫자를 세고, 곳곳에서 실시간 방송이 시작되었다.
속보로 내보낼 장면들을 찍고 있는 것이다.
“저는 지금 문화체육관광부 최명운 장관의 사택 앞에 나와 있습니다.”
스튜디오와 현장을 연결하는 기자들의 멘트가 시작되었다.
“……최명운 장관은 일단 문체부에 출근해 업무를 보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습니다.”
“아! 왔다!”
“카메라, 카메라!”
기자들의 고함이 들려왔다.
저 멀리서 승합차가 골목을 돌아 들어오고 있었다.
‘살다 살다 7급 공무원 한 명의 말에 기자 수십 명이 움직이는 건 처음 본다.’
그러나 기자는 저 공무원의 말 한마디에 대한민국이 뒤집힐 수도 있음을 느꼈다.
이 자리에 모인 그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지금 승합차에서 내리는 청년은, 일개 7급 공무원이라기엔 영향력이 너무도 커져 있었다.
‘그렇다면 나는 이용해 줘야지.’
국민들이 보고 싶어 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도 기자의 일이다.
특히 요즘 국민들은 자극적인 것과 사이다를 좋아했다.
아마 살기가 점점 팍팍해져서 그럴 것이다.
‘정말로 장관이 개쓰레기 새끼여서 일개 7급 직원이 그걸 잡아낸 거면 아주 멋진 그림이 되겠네.’
아니어도 상관없다.
국회의원을 쳐낸 세무 공무원이 혈기로 일을 그르치는 것도 재밌어 보였으니까.
아까 마이크를 가져간 젊은 기자가 재빨리 승합차로 다가가는 것을 보며, 뉴스 기자는 사적인 감상이 들어간 멘트를 날렸다.
“지금 서울지방국세청의 신재현 팀장이 들어오고 있습니다. 문체부 장관의 가택 세무조사를 위해 세무 공무원들을 이끌고 방금 차에서 내렸습니다.”
그리고 차에서 내리는 청년을 보자마자 기자는 눈에 이채를 띠었다.
직접 본 것은 처음이었지만 작년 기자회견에 참석했던 기자들이 왜 혀를 내둘렀는지 알 것 같았다.
이렇게 수많은 사람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으면 저절로 몸이 굳게 마련이다.
그런데 청년은 서늘한 눈빛으로 골목을 스윽 훑었다.
마치 의도한 대로 기자들이 왔는지 보려는 것 같았다.
“최명운 장관에게 탈세 혐의가 있는 겁니까? 장관의 조사는 언제부터 시작되었습니까?”
마이크를 든 젊은 기자를 비롯해 일간지의 기자들이 일제히 질문을 던졌다.
그러나 청년은 장관의 사택을 응시한 채로 움직이지 않았다.
수많은 인파는 안중에도 없는 듯싶었다.
‘기자는 철저하게 이용대상일 뿐이다 이거네.’
저렇게 솔직하고도 뚜렷하게 목적을 보여 주는 건 또 처음이라 신선했다.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 보고 싶기도 했다.
승합차에서 내린 직원들이 청년의 뒤로 줄지어 섰다.
청년은 그제야 발을 떼었다.
기자들이 주춤거리며 길을 터 주고 청년이 사택을 향하더니 정문 앞에서 멈춰 섰다.
기자들이 침을 꿀꺽 삼켰다.
“이번 저희 특수조사 2팀이 최명운 장관님의 가택을 조사하게 된 배경에 많은 궁금증이 있으실 겁니다.”
청년은 매우 직설적으로 말을 꺼냈다.
모든 질문을 관통하는 대답이었다.
이렇게까지 대놓고 말할 줄은 몰랐기에 기자들이 서로 얼굴을 마주 보았다.
“추후 브리핑이 있겠습니다만 미리 확실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최명운 장관님은 뇌물수수, 탈세의 정황이 포착되었으며, 저희 팀은 세무조사 외에 그 어떤 의도도 없습니다.”
보통 사람이 저런 이야기를 하면 빠져나가기 위해서라고 생각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기자들은 조용히 청년의 말이 그것이 목적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적어도 보통 사람은 뜬금없이 멀쩡한 장관을 치지 않는다.
“이번 건은 저희 팀이 앞으로 어떤 행보를 걸을지 보여 드리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저희는 특수조사팀이라는 이름에 어울리도록 공평하게 가리지 않고, 성역 없는 세무조사를 약속드리겠습니다.”
기자들 중 대부분은 성역 없는 조사라는 데서 고개를 갸웃했다.
국민의 여론을 등에 업으려는 것 같은데 과연 가능할까.
그러나 일부의 기자들은 숨은 뜻을 알아챘다.
가장 먼저 행정기관의 수장을 쳐서 상대를 가리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한다.
더불어 장관을 먼저 친 것은 스스로 투명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다.
만약 이들 팀이 야당 인사나 정부와 관계없는 사람을 쳤다면 다른 속셈이 있는 게 아니냐는 소리가 꼬리표처럼 따라붙었을 것이다.
그러나 앞으로는 이들이 세무조사를 나갈 때 사람들은 팀을 비난하기 전에 한 번 더 생각해볼 여지가 생겼다.
‘장관도 친 놈들이 쳤으니까 정말 탈세범 아닐까? 일단 하는 걸 두고 보자.’
청년의 말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그의 뚜렷한 눈동자가 카메라를 향했다.
“앞으로 탈세하신 분은 그 누구도 예외 없이 저희 팀의 방문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것은 카메라 너머의 탈세범을 향한 경고 같아서 기자는 그만 한걸음 뒤로 물러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