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0화. 대면(1)
“어후, 지친다.”
온통 적대하는 사람들 천지였던 회의였다.
긴장이 풀리자 온몸에 피곤이 몰려왔다.
마음 같아서는 일이고 뭐고 다 놔두고 이대로 퇴근하고 싶었다.
“이번 건만 끝나면 정말로 연차 쓴다. 쉴 거야, 쉴 거라고.”
원래는 시간 나면 사촌 동생을 불러 어머니와 함께 가까운 호수공원이라도 갔다 올까 했다.
그런데 갤러리를 파 보니 그 안은 거의 싱크홀 수준이었다.
회의에서 청장에게 말했듯 도저히 시간을 끌 만한 건이 아니다.
“정말 쉴 거다. 쌓인 연차가 몇 개야.”
나는 일부러 입을 열어 말하며 다짐했다.
조용한 복도에 내 목소리가 울렸다.
“다녀왔습니다. 제가 라인업 하나 드릴 건데 극비로 밑조사를 해 주실 수…… 응? 무슨 일이에요?”
바람 잘 날 없는 우리 팀이라지만 오늘은 또 분위기가 이상했다.
“서롱 갤러리의 서지숙 관장에게 고지서 보냈는데 반송됐다고 연락 왔어요.”
고지서든 과세예고통지서든 일반 우편은 안 된다.
받았다는 사인을 받아야 하니 보통은 등기를 애용했다.
그런데 강혜원이 들어 올린 하얀 봉투에는 반송 소인이 찍혀 있었다.
“어디로 보냈습니까?”
“처음엔 서롱 갤러리로 보냈는데 닫혀있어서 반송됐고요, 그 후엔 주소지로 보냈는데 집에 아무도 없다고 반송됐어요. 이미 두 번 반송됐는데 공시 송달 해도 되나요?”
송달이라는 것은 서류를 보낸다는 뜻이다.
그냥 서류도 아니고 세금에 대한 중요한 서류인 만큼 납세자에게 반드시 전달되어야 했다.
그러니 송달 과정에 대한 것도 국세기본법으로 정해져 있다.
송달 장소와 송달 방법.
이 두 가지가 중요하다.
송달 장소는 당연히 주소지나 영업소를 말한다.
문제는 송달 방법인데, 세금 내기 싫다고 도망가는 납세자가 의외로 많았다.
일단 서류를 받아야 과세 절차가 시작되므로 과세당국은 서류를 쥐여주려고 애쓰고 탈세범은 안 받으려고 애쓴다.
“등기는 이미 두 번이나 반송됐으니 제외고, 전자 송달은 납세자가 먼저 이메일로 받겠다고 신청해야 가능한 데다 이메일 열어 보지 않으면 소용없으니 제외고요.”
“남은 건 교부 송달, 유치 송달, 공시 송달이네요.”
안길진이 손으로 꼽자 강혜원이 손에 든 우편물로 어깨를 툭툭 쳤다.
“유치 송달은 결국 직접 가서 집 안에 던져 넣어야 되잖아요. 아니면 가족한테 맡기거나. 문도 안 열어 주는데 거의 불가능하지 않아요? 공시 송달 하시죠.”
“공시 송달은 나중에 시비 붙을 수 있어요. 두 번 시도했는데 실패했을 경우만 가능하잖아요.”
공시 송달은 매우 간단했다.
세무서나 국세청 앞에는 아무나 볼 수 있는 곳에 세워진 게시판이 하나 있다.
거기에 서류를 붙여 두고 2주간 지나면 효력 발생이다.
서류 하나 보내자고 납세자와 씨름하다 공무원들이 제대로 일 못 하는 걸 방지하기 위해서다.
“그렇다고 이거 하나 붙잡고 있을 순 없잖아요. 팀장님이 또 새 일거리 가져오신 거 아니에요?”
그건 그렇다.
나는 손에 들고 있던 명단을 옆에 있던 장세훈에게 넘겼다.
그리고 강혜원에게서 갤러리 관장에게 가야 할 고지서를 받아들었다.
“이게 뭐…… 허억!”
웬만하면 놀라는 일 없던 장세훈이 명단을 보자마자 기겁했다.
눈을 감았다 떴다가 천장을 바라보았다가 다시 명단으로 시선을 내렸다.
“거기 제가 체크해 둔 이름 있죠? 밑조사 부탁합니다. 절대 외부에 유출되면 안 돼요. 이 사람들을 조사한다는 사실조차 알려지면 안 됩니다.”
같은 팀이지만 장세훈이 이걸 보는 건 처음이었다.
황민우와 내가 따로 작업해 놓은 명단이니까.
강혜원이 얼결에 내게 국세청 로고가 찍힌 편지 봉투를 건네주었다가 장세훈의 반응을 보고 움찔했다.
“뭐, 뭐예요? 주사보님이 그렇게 놀라는 거 보니까 갑자기 불안해지는데.”
나는 받아든 봉투를 뜯고 안에서 고지서를 꺼냈다.
-법인세 691,733,140원
내가 갤러리의 재무제표를 봤을 때 떠오른 숫자와 정확히 일치한다.
물론 가산세 포함이다.
“소득세 고지서는 어딨어요?”
법인세가 나가는데 소득세가 빠질 리가 없다.
관장 개인적인 탈세도 이미 조사가 끝난 상태였기에 황민우가 책상에서 금방 고지서를 가져다줬다.
왜 황민우가 가져오나 했더니 나머지 셋은 명단을 보고 심호흡 중이었다.
“티, 팀장님. 제가 그동안 정말 강심장이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다 착각이었나 봐요.”
“허억허억. 아냐, 다들 진정해 봐. 항상 신재현이, 아니 팀장이 그랬잖아. 탈세범은 탈세범이라고. 진정하자, 장세훈.”
“이건 진짜 새 나가면 안 되겠네요. 모두 입단속 해야 돼요.”
강혜원의 말에 안길진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저희가 이제 와서 누구 하나 배신하거나 그럴 일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조사 과정에서 새지 않을까 걱정인데요.”
불안한 세 쌍의 눈동자가 나를 조심스럽게 바라보았다.
나도 일개 팀원이었다면 저 안에 섞여서 먹이를 기다리는 아기 새처럼 과장이나 팀장을 바라보고 있었을 텐데.
그러나 저들에게 있어 팀장은 나다.
내가 확신과 안도감을 줘야 하는 것이다.
이선균 과장과 민치호 국장이 했던 것을 이제는 내가 해야 한다.
“윗분들하고 이미 얘기했습니다. 거기 체크해 둔 사람들은 쳐도 무방하다는 결론이 났어요.”
“이걸 쳐도 된다고요? 국세청이 그렇게 막강했나?”
강혜원이 고개를 갸웃했다.
정확히는 내가 말한 윗분은 민치호와 그 뒤의 누군가지만.
이들은 굳이 거기까진 몰라도 될 것이다.
청장이 허락한 것도 엄연한 사실이니까.
“윗분들도 자기 목 아까워하는 사람들입니다. 계산을 해 보고 정말 괜찮겠다 싶으니 허락을 했겠죠. 그리고 저 역시 승산 있다고 봅니다.”
“역시 그렇죠? 팀장님 판단력은 믿으니까요.”
“네. 원래 우리가 이런 일 하려고 이 팀에 모인 거잖아요. 또 해봅시다!”
세 직원이 일제히 안도하는 표정과 함께 열의에 불타올랐다.
“그럼 저는 이것 좀 송달하고 오겠습니다.”
내 손에 들린 것은 서지숙 관장에게 전해 줄 고지서 두 장이었다.
“정말 직접 가시게요?”
“네. 공시송달 하다가 소송 거리 주는 건 싫어서요. 물어볼 것도 있고. 아, 오늘은 야근 안 하셔도 됩니다. 그동안 갤러리 조사하느라 고생 많으셨는데, 오늘은 일찍 들어가서 쉬시고 내일부터 또 빡세게 합시다.”
“마지막에 빡세게라는 말에 강세가 들어간 것 같은데요.”
이젠 농담까지 건넬 정도로 분위기가 풀어졌다.
다행이다.
“저도 이것만 전달하고 퇴근합니다. 그럼 내일 뵙겠습니다.”
“네. 들어가세요!”
나는 황민우에게 눈짓하고 사무실을 나섰다.
날 따라 나온 황민우가 눈치 빠르게 물었다.
“관장이 거래를 받아들이겠습니까?”
물어볼 것이 있다는 말 한마디만 했는데 황민우는 내가 어떻게 할지 이미 파악한 모양이었다.
“어떻게 알았습니까? 거래할 거라는 걸.”
“관장이 직접 서울청까지 와서 조사받을 때 느낌이 이상했습니다. 법인세는 다 인정하는데 다른 거래는 숨기더군요. 절대 쉽사리 입을 열지 않을 것 같았어요. 그렇다면 협박과 거래 둘 중 하나 아닙니까.”
나는 피식 웃었다.
“어차피 거물들하고 거래한 건 우리가 조사하면 될 일입니다. 명단도 손에 넣은 판국에 남은 건 걸리지 않고 어디까지 파헤칠 수 있느냐, 아닙니까?”
“그러면 관장에게는 뭘 알아보러 가시는 겁니까?”
“냄새가 나요. 뭔가 조언자의 냄새가.”
날 폭행으로 고소한 것도 그렇고, 그 직후 서울청으로 자진 출두해서 미주알고주알 다 얘기한 것도 그렇고.
그러면서도 중요한 건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처음엔 관장이 살아남기 위해 머리를 굴려 수를 쓰는가 했는데, 그렇다기엔 뭔가 정교했다.
꼭 컨설팅을 받은 것처럼.
“일단 가서 들이밀어 봅시다. 그러면 뭐가 나오든 나오겠죠.”
***
-띵동.
나와 황민우는 관장이 사는 아파트에 나와 있었다.
“서지숙 관장님. 서울청에서 나왔습니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관장은 문을 열지 않았다.
문에 귀를 대 봐도 쥐죽은 듯 조용했다.
괜히 우편물이 반송된 게 아닌 것이다.
“다른 어디에 피해 있는 걸까요?”
“그건 아닙니다. 가족과 함께 사는 데다 오늘 아들이 멀쩡하게 고등학교에 등교했어요.”
“그건 또 어떻게 아십니까?”
“학교 교무실에 전화해 봤죠.”
“아, 예…….”
나도 점점 진화하는 것 같다.
하도 이상한 놈들을 많이 상대해서 그런가, 나도 별 방법을 다 쓰고 있었다.
사실 서지숙 집에 방문할 때도 택배원인 척하거나 가스검침원인 척할까 생각도 해 보았다.
그러나 나중에 절차상 문제가 생길 것 같아 참았다.
“아들이 귀가한 후에 친척 집이나 호텔로 대피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이런 종류의 사람은 쪽팔려서 친척이나 친구 집에는 못 갑니다. 호텔은 가능성이 있는데, 일단 지금은 집에 있는 것 같아요. 저기 보시죠.”
나는 복도에 있는 전기 계량기를 가리켰다.
눈금 올라가는 속도가 빨랐다.
“집에 있네요.”
황민우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그다음은 뻔했다.
나올 때까지 두드린다.
“서지숙 씨, 안에 계신 거 다 압니다. 저희가 복도에서 소리치면 이웃들도 다 들으실 텐데 정말 이래도 괜찮으시겠습니까? 제가 왜 나왔는지 복도에서 다 읊어 드릴까요?”
이런 방법은 약점을 공략하는 것 같아서 마음에 들지는 않는다.
나도 웬만하면 정공법으로 나가고 싶다.
하지만 성실 납세자도 아니고 탈세한 사람이 고지서 안 받겠다고 잠수를 타면 이 정도는 해도 되지 않을까?
그래서 나는 더더욱 목소리를 높였다.
“안 나오신다 이거죠? 저 되게 끈질깁니다. 어떤 사람인지 이제 대충 파악하실 때도 되지 않았습니까? 오늘 팀원이랑 두 명이 왔거든요. 공무 집행 중이라 쫓겨날 일도 없으니 여기서 먹고 자고 해보겠습니다!”
이렇게 말해도 반응은 없었다.
하긴 문 열고 나오는 순간 잠수는 끝인데, 납세자 본인만 확인하면 집 안에 고지서를 던져 넣는 유치송달도 가능하다.
어떻게든 고지서를 받지 않으려는 필사의 노력에 감탄했다.
“관장님, 언젠가는 고지서 받으시게 되어 있어요. 이 좁은 대한민국에서 어디로 도망치시게요?”
복도가 시끄러워지자 옆집에서 주민 몇 명이 문을 열고 나오기 시작했다.
황민우가 서둘러 달려가 공무원증을 보여주고 고개를 숙였다.
“어머, 국세청이라고요? 어쩔 수 없긴 한데…… 우리 집 애가 아직 어려서 너무 시끄러우면 곤란해요.”
“죄송합니다. 탈세한 사람이 집에 처박혀서 나오질 않는 바람에 저희도 어쩔 수 없이…… 금방 정리하겠습니다.”
“탈세요? 어휴, 그렇게 안 봤는데.”
주민들은 그렇게 말하며 오히려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재밌는 구경이 생겼다고 좋아하는 모양새였다.
“어? 저 사람 어디서 많이 봤는데…….”
“응? 누구? 난 모르겠는데.”
“아이고, TV 좀 보고 살아요. 작년에 국회의원 탈세 밝혀낸 그 사람이잖아!”
“아, 그런 일이 있긴 했지. 난 그새 까먹었는데 현주 엄마는 기억력도 참 좋다.”
“그럼 저쪽 집은 진짜 탈세범인가 보네. 에휴, 누구는 세금 내기 좋아서 내는 줄 아나.”
복도가 시끄러워지자 나는 아예 문을 두드렸다.
“외국도 못 갑니다. 출국금지 걸릴 테니까요. 이미 고지서까지 나온 마당에 절대 못 피합니다. 밀항하실 것도 아니잖아요. 까짓거 세금 내면 끝 아닙니까!”
문에 바짝 귀를 대자 안쪽에서 부스럭하는 소리가 났다.
나는 황민우에게 주민들을 들여보내라고 손짓했다.
“공무 중이라서요. 죄송합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
황민우가 주민들을 집에 도로 들여보내느라 분주할 때, 나는 목소리를 낮춰 문에 대고 말했다.
“일단 얘기 좀 나누시죠. 압류 안 걸고, 징수유예까지 해 드리겠습니다. 협상할 생각이 있다는 얘깁니다.”
-덜컥.
마침내 문이 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