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9화. 치느냐 마느냐(3)
국장급 회의.
말 그대로 참석하는 사람은 국장 이상이었다.
평소 무슨 일이 있으면 과장까지는 참석하게 마련인데 오늘 청장이 부른 것은 국장 이상이다.
예정에 없던 긴급회의인 것도 그렇고, 참석 조건이 국장급인 것도 그렇고.
무슨 일이 있는 것이 틀림없다.
때문에 회의실로 들어오는 사람들의 얼굴에는 호기심과 함께 불안함이 서려 있었다.
-달칵.
그리고 회의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한 청년을 보자마자 앉아 있던 사람들이 술렁거렸다.
회의실에 앉아 있는 사람들의 평균 연령이 50세 안팎인 것에 비하면 청년은 무척이나 어렸기 때문이다.
이 자리에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국장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은 청년은 문을 닫고는 90도로 인사를 올렸다.
그리고 가장 말석에 자리 잡았다.
“긴급하게 국장들 모이라고 한 것 아니었습니까?”
역시나 못마땅해 하는 사람은 있었다.
특수조사팀을 신설한다고 했을 때도 강 건너 불구경 하듯 했지만, 정작 눈앞에서 보니 불쾌함이 훅 치솟아 올랐다.
아무것도 모르는 애송이가 나대는 기분이었다.
“맞습니다만. 청장님이 필요하니까 부르셨겠죠.”
그리고 청년을 감싼 것은 성실납세국장이었다.
법인세과와 특조 2팀의 공조 덕에 이미 청년과는 안면을 튼 사이였다.
“젊은 사람 있으니 좋지 않습니까.”
“젊은 사람 운운할 자리는 아니지요. 지금 여기가 학예회입니까?”
“말씀이 지나치시네요, 2국장님. 괜히 왔겠습니까? 청장님이 필요하니 불렀겠죠.”
관할 지역의 일선 업무를 처리하는 세무서와 달리, 청은 주 업무가 조사였다.
원래 세무서에서도 조사과는 다른 과보다 입김이 셌다.
청에서는 그 경향이 더욱 짙어졌다.
국장 숫자만 세 봐도 알 수 있었다.
법인세와 소득세, 부가세는 합쳐서 성실납세국 하나로 통합되었지만, 조사국은 무려 국장이 다섯이다.
조사 1국부터 4국, 그리고 국제조사국.
국장 사이에 상하 관계는 없다지만 엄연히 힘의 우열은 존재했다.
“납세국장님은 속도 좋으십니다.”
국장 사이에 심상찮은 기류가 흘렀다.
자세히 파고들어 가 보면 이들 사이에도 엄연히 견제가 존재했다.
국장급 인사 11명 중에서 유일하게 비고시 출신이 바로 성실납세국장이었다.
다른 국장들은 전부 행정고시 출신인데 성실납세국장 혼자 일반 공채로 들어왔다.
비고시 출신이 국장 자리에 앉았을 때부터 파격적이라는 말이 돌았을 정도였다.
납세국장이 청년의 편을 드는 것도 그래서였다.
첫째는 과거의 자신을 보는 것 같아서, 둘째는 다른 국장들에 대한 반발심 때문이다.
“속이 불편할 이유가 뭐 있습니까? 여기 신 팀장도 일하러 왔을 텐데요.”
“아무리 청장님 직속국이라 해도 낄 곳이 있고 안 낄 곳이 있는 겁니다. 당장 보세요, 권현아 1팀장이 여기에 있습니까?”
“꼭 두 팀장이 같이 다니란 법 있습니까? 조사에 대해서는 전권을 받은 TF팀입니다. 뭘 조사하든 팀장 재량입니다.”
성실납세국장이 한마디도 지지 않자 조사 2국장이 불편한 심기를 대놓고 드러냈다.
“납세국장님은 공무원의 위계질서를 너무 같잖게 보시는 것 같습니다.”
분위기가 험악해졌으나 아무도 말리려고 들지 않았다.
으레 있는 일이라서라기보단 다른 국장들도 조사 2국장에게 은연중에 동의하기 때문일 것이다.
“7급 팀장의 명령 하나에 두 개의 국이 움직였습니다. 이게 가당키나 한 일입니까?”
“서로 필요하면 공조할 수 있는 것 아닙니까. 우리는 한 식구입니다. 그리고 그게 어떻게 명령입니까? 협조 요청이지.”
처음엔 그저 옹호하는 발언으로 끝내려던 성실납세국장의 말투도 점점 거칠어졌다.
그간 조사국과 부딪힌 일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특수조사팀이라고 해 봤자 5명씩입니다. 대규모 조사면 원래 여러 팀 뭉치지 않습니까? 어떻게 협조 요청 갈 때마다 국장님은 한 번도 좋게 말씀하시는 법이 없습니까?”
“제가 언제 협조 거절한 적 있습니까? 매번 우리 직원들 고생하며 조사하는데 말씀이 심하십니다.”
그간 있었던 일까지 끄집어내기 시작했으나 아예 싸움이 본격적이 되었다.
그러나 아직도 말리는 사람은 없었다.
까마득히 높은 상급자의 말싸움에 청년이 차마 끼어들지 못하고 지켜보고 있을 때, 청장이 빠른 걸음으로 들어왔다.
미리 보고를 다 듣고 회의를 소집했으니 외부에 나갔거나 급한 일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청장은 상석에 앉더니 곧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특조 2팀에서 가져온 명단이 하나 있어. 지금 이 자리에서 이름을 하나하나 밝히진 않을 거다. 하지만 국장급을 불러 모을 정도면 이게 어떤 파급력을 가졌는지 잘 알겠지.”
국장들의 시선이 일제히 말석의 청년에게 쏠렸다.
정확히는 청년이 들고 들어온 파일에 시선이 꽂혔다.
“국세청장 후보 추천이 머지않았습니다. 지금은 시기가 좋지 않습니다.”
가장 먼저 입을 연 것은 조사국의 1국장이었다.
서울청장의 사람인 만큼 그의 관심은 다가올 국세청장 추천에 쏠려 있었다.
“어느 분이 수장 자리에 앉으실지는 모르겠지만, 국세청 내부의 잡음이 가라앉은 후에 조사해도 늦지 않습니다.”
“명단을 봐야 가타부타 말씀을 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어느 정도 선인지 알아야 어떻게 칠지 계획을 잡지 않겠습니까?”
“신중하게 접근하면 충분히 가능하다고 봅니다. 누구든 간에 일단 극비로 조용히 파고, 결정적인 한 방이 나왔을 때 언론에 발표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잘하면 서울청의 업적이 될 겁니다.”
국장들이 각자 한 마디씩 의견을 개진했다.
청장은 묵묵히 그것을 듣고 있다가 하나의 이름을 말했다.
“현직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최명운.”
“……예?”
설마 하는 표정으로 바라보는 국장들에게 청장이 쐐기를 박듯 말했다.
“명단에 있는 이름 중 하나다. 최명운 외에 더 대단한 사람도 많아.”
“허어…….”
“크음.”
국장들이 꿀 먹은 벙어리처럼 입을 다물었다.
일단 명단 좀 보자고 했던 중립파도, 해보자고 했던 긍정파도 섣불리 입을 열지 못하고 눈동자만 데록 굴렸다.
이제 대세는 반대의견이었다.
“판도라의 상자입니다. 열면 안 돼요. 청장님, 이건 절대 안 됩니다.”
“무리입니다. 본청에서 발 벗고 나서야 하는 건입니다. 저희 지청에서는 불가능해요. 정 원하시면 본청으로 보내시죠.”
“공적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먼저 살아남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대놓고 목숨을 부지하자고 말하는 국장도 있었다.
어떻게 그런 품위 없는 말을 하냐는 다른 국장의 눈빛이 잠시 꽂혔다.
“신 팀장은 치자고 하던데.”
“예?”
“신 팀장, 미쳤어?”
청장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국장들이 청년을 다그치기 시작했다.
“지금 국회의원 하나 잡았다고 눈에 뵈는 게 없는 모양인데, 2선이면 정치인 중에서는 입문 단계야. 초선보다 힘이 있을지는 몰라도 당에서도 쉽게 버리는 말이라고!”
“신 팀장, 제정신입니까? 서울청 쑥대밭 만들고 싶어? 다 같이 죽자는 거야, 뭐야?”
어떤 국장은 눈이 벌게져서 벌떡 일어나 삿대질을 퍼부었다.
청장은 국장들을 말리지 않았다.
오히려 청년이 어떻게 나오는지 지켜보려는 듯했다.
청년은 그런 청장을 힐끔 보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국장들을 향해 정면으로 보고 섰다.
청장이 아무 의견도 말하지 않는다는 것은 오히려 청년에게는 판을 깔아준 것이나 다름없었다.
“왜 못 칩니까? 근거만 있으면 되는 것 아닙니까? 근거는 조사하면 나올 거구요. 세금 안 냈으니 내시라는 말 한마디 하기가 그렇게 어렵습니까?”
“우리나라에서는 어려우니까 하는 말 아니야!”
“신 팀장이 아무리 청장님을 적대하는 쪽 사람이라지만 이렇게 대놓고 청장님 물 먹일 작정이야?”
청년은 한 마디도 지지 않고 열변을 토했다.
“제가 어느 쪽 라인인지와 이 건은 아무 관련 없습니다. 청장님의 사람이었어도 똑같이 했을 겁니다. 제가 처음 서울청에 온 날, 청장님께 이미 말씀드렸습니다. 제 기준은 하나라고요. 탈세한 놈은 누구든 고지서를 받을 겁니다!”
“저저, 저놈이 미쳤나! 들이받을 자리를 둘러보고 들이받아!”
국장의 비난이 쏟아졌다.
청년은 고개를 돌려 청장을 응시했다.
“저는 청장님 직속입니다. 청장님은 어떻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이 사람이 그래도! 신 팀장, 직속이라는 뜻은 청장님께 달려들어도 된다는 뜻이 아닙니다!”
국장이 침을 튀기며 소리쳤지만 청년은 눈 하나 깜짝 하지 않았다.
청장 외엔 눈에 들어오지 않는 듯했다.
고함이 오가는 회의를 지켜보던 청장이 나지막하게 입을 열었다.
“내가 하지 말라고 하면 안 할 건가?”
국장들이 예상한 답은 당연히 ‘하지 않겠다’였다.
그러나 의외로 청년은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고민에 빠진 청년을 본 국장들이 탄식을 내뱉었다.
“저걸 고민해?”
다시 호통을 치려는 국장을 가로막듯 청장이 재차 물었다.
“할 건가?”
“안 하겠습니다.”
휴, 하고 안도의 한숨이 터져 나왔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국장들의 머릿속에 의문이 떠올랐다.
‘저렇게 쉽게 꺾을 놈이었나?’ 하는 의문이었다.
청장 역시 의외라는 눈빛으로 청년을 바라보자 그가 한 마디를 덧붙였다.
“대신 허락해 주실 때까지 계속 설득하겠습니다.”
“미치겠군.”
내내 가만히 자리를 지키고 있던 조사 1국장마저 한 마디 내뱉었다.
청장이 테이블 위를 토도독 두드렸다.
“그 설득 지금 해 봐.”
“청장님! 무슨 말씀이십니까!”
“지금 이 자리에서 발언권 가진 건 신재현 팀장뿐이다. 할 말 있으면 나중에 해. 일단 들어봐야 반박을 할 거 아냐.”
“반박이 왜 필요합니까! 된다, 안 된다, 한 마디로 움직이는 것이 우리 공무원입니다!”
“지금 2국장이 하는 행동은 나 무시하는 거 아닌가?”
2국장이 주먹을 쥐며 자리에 주저앉았다.
살기까지 어린 눈빛이 청년에게 쏠렸다.
말 한 마디 잘못 했다간 두고두고 물어뜯을 모양새였다.
‘나를 이렇게까지 견제하네.’
그러나 청년의 눈에 보인 것은 국장이 아닌 청장의 태도였다.
‘일부러 국장들에게 밉보이도록 유도하잖아. 결국 권한은 주겠지만, 서울청 내에서 세력을 키우는 건 막겠다 이건가?’
그러나 어차피 서울청에는 세력을 만들러 온 게 아니다.
청년은 쓰게 웃으며 브리핑을 시작했다.
대상은 국장이 아닌 청장이다.
“명단에 있는 이름 모두를 칠 건 아닙니다. 제가 그 정도 상황파악도 안 되는 단계는 아니에요. 명백하게 과세 근거 있는 것부터 순서대로 쳐 나갈 겁니다.”
청년이 짚은 파일철에 국장들의 시선이 쏠렸다.
얼마나 거물이 실려 있기에 문체부 장관의 이름이 튀어나오는지 당장이라도 파일철을 빼앗아 열어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또한 시기적으로 지금 쳐야 합니다. 서롱 갤러리가 털린 이상, 시간을 주면 증거를 인멸할 사람들이 꽤 있어요. 지금이 아니면 못 잡습니다. 나중엔 기회가 없어요.”
지금 아니면 못 잡는다는 말엔 몇 국장이 동의하는 모습을 보였다.
서롱 갤러리와의 거래가 가장 큰 탈세인 사람이라면, 시간이 지나 그 증거가 소실될 수도 있다.
“마지막으로…….”
청년은 청장에게서 시선을 떼고 국장들을 둘러보았다.
“칠 수 있습니다. 칠 수 있는 놈만 치겠습니다. 청장님과 국장님들께 흙탕물이 튀는 일은 없을 겁니다.”
“뭘 근거로 그런 말을 하는 거야? 설마 본청의 민치호 국장을 믿나? 아무리 본청의 조사국장이라지만 그런 장담을 하기에는 부족하지.”
“민치호 국장님이 믿는 분을 믿습니다.”
“믿는…… 뭐?”
청년의 말에 국장들이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청장은 잠시 테이블을 두드리더니 청년에게 명령을 내렸다.
“누굴 언제 어떻게 조사할 건지 계획서 갖고 올라와.”
명실상부한 허락이었다.
국장들이 기겁하며 일어서는 와중에 청년은 진심을 담아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열심히 뛰겠습니다!”
“아니야! 열심히 뛰지 마! 잠시만요, 청장님!”
회의실을 나가는 청장의 뒷모습에 국장들의 비명이 꽂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