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8화. 치느냐 마느냐(2)
[기획기사③ - 미술품 거래의 뒷면]
나학진 기자의 기획기사는 이제 3부를 달리고 있었다.
1부가 검은돈 얘기였고, 2부가 탈세 수단 얘기였으니, 눈치 있는 사람이라면 나학진의 기사가 뭘 말하고자 하는지 바로 알았을 것이다.
-다음 기사에는 어떤 놈이 탈세 해 처먹었는지 나오나요?
-기자님 이런 거 써도 돼요?
-다음 기사 안 나오면 신변에 무슨 일 생긴 거라고 생각할게요.
작은 1인 인터넷 신문사에 무슨 관심이 이렇게 많은지.
유진환은 총 130개에 달하는 댓글을 읽다가 참지 못하고 핸드폰을 닫았다.
이번 건은 명백히 자신의 실수였다.
작년 2선 국회의원을 친 요주의 인물 신재현, 그리고 그의 입이라 여겨지는 나학진.
어디로 튈지 모르는 그 둘은 계속 주시하고 있었다.
국회의원 류석호를 잡아낸 이후로 거물을 건드리지 않았기에 일반인의 기억 속에서 잊혀 갔지만, 유진환은 그러지 않았다.
송곳은 얌전히 서랍에 들어 있어도 송곳이다.
당분간 조용하더라도 언제 나타나 누구 목에 박힐지 모르는 것이다.
그래서 서울청의 동향을 예의주시했다.
나학진 기자의 기사 1부가 나온 직후 건설업 전수조사를 한다는 정보를 얻었다.
2부가 나온 직후엔 실제로 서울의 건설업종 전반이 세무조사를 받았다.
누가 봐도 목표는 건설업이었다.
그런데 갑작스럽게, 아무 예고도 없이 서롱 갤러리가 습격당했다.
“목표를 숨길 줄도 안다 이거지. 더 크면 정말 위험하겠는데…….”
유진환은 발밑에서 무언가 꿈틀거리는 느낌을 받았다.
지금은 별것 아닌 기우에 불과하지만 이대로 놔뒀다간 이 불안감이 현실이 되어 나타날 것 같았다.
이제 겨우 3년 차인데 이 성장 속도를 보면 금방 턱밑까지 치고 올라올 것 같았다.
물론 유진환이 가만히 앉아 당할 사람은 아니었다.
이미 손은 써 두었다.
-우우웅.
그리고 기다리던 전화가 왔다.
액정에 뜬 이름은 서지숙 관장.
아마 결과 보고일 것이다.
“예, 관장님. 어떻게 되셨습니까?”
-망했어요, 완전히 망했다고요!
관장의 목소리에서는 평소의 도도함과 우아함은 찾아볼 수도 없었다.
돈 있는 사람들, 직위 있는 사람들을 대하려면 스스로 품격을 갖춰야 한다며 입이 닳듯 이야기하던 관장이었는데.
“제가 알려드린 방법은 쓰셨습니까?”
서롱 갤러리가 기습적인 세무조사를 받은 그날, 유진환은 관장을 불러들였다.
그리고 실제로 뺨을 때렸다.
직접 맞아 봐야 실감 나게 억울함을 표현할 수 있으니까.
두 눈을 부릅뜨고 독기를 품었던 관장인데, 그 쉬운 걸 실패했다고?
-썼어요. 썼다고요!
“그런데 뭐가 문제입니까. 요즘엔 다른 증거는 필요 없어요. 맞았다는 진단서와 눈물. 그거면 충분하다고 했을 텐데요.”
유진환은 불쾌해졌다.
본인이 더러운 수를 썼기 때문은 아니다.
이 바닥에서 수단과 방법을 가린다는 것은 사치니까.
자신이 해결할 수 있는 최적의 방법을 알려줬는데 그것 하나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것에 짜증이 났다.
아무리 수를 생각해줘도 정작 일선에서 제대로 하지 못하면 의미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말이 생각한 대로 움직이지 않는 것은 그가 가장 싫어하는 일이었다.
“조사관이 때렸다. 자신은 힘없이 맞을 수밖에 없었다. 억울하다. 이게 그렇게 어렵습니까?”
-지금 국세청에서 고발하겠대요. 보좌관님, 저 살려 주셔야 해요. 저 이대로 끝날 수 없어요. 제가 입을 열면 어떻게 되는지 아시잖아요.
유진환은 혀를 찼다.
주제를 모르고 협박을 해 오는 것만큼 꼴불견인 것도 없다.
유진환은 잠시 대화를 멈추고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관장을 살리는 것과 버리는 것.
과연 어느 쪽이 이득일지 계산하는 것이다.
-보좌관님! 그동안 저 잘 해왔잖아요. 돈세탁도 해 드리고, 증빙도 마련해드리고, 원하시는 금액에 그림도 구해드렸어요. 저만한 사람을 또 구하긴 힘드실 거예요.
관장은 다급한 마음에 계속 생각나는 대로 주워섬겼지만, 한 마디 한 마디 할수록 유진환의 심기는 더욱 불편해졌다.
“대체 불가능한 인간이란 세상에 없습니다. 그동안 누려왔던 것을 유지하고 싶으면 계속 증명을 해야 하죠.”
-제가 계속 증명할게요. 사람이 살다 보면 위기가 오는 법이잖아요. 저는 아직 더 할 수 있어요!“
“관장님은 이미 한 번의 기회를 얻었습니다. 그런데 실패했죠. 위기가 오는 법이라고요? 그래서 제가 벗어날 수 있게 해드렸잖습니까. 거기서 관장님은 뭘 증명하셨습니까?”
-하지만 이번엔 생각도 못 한 증거가 나왔어요. 다음엔 저도…….
“생각도 못 한 증거가 뭡니까?”
관장이 우물거리자 유진환은 다그쳤다.
보통 자신에게 불리한 건 쉽사리 말하려 하지 않는 법이다.
그것이 패인이 되는 것도 모른 채.
“증거가 뭡니까? 말하세요. 지금 절 시험합니까?”
-아, 아니에요. 그 공무원이 녹음기를 갖고 있었던 바람에…….
유진환은 얼굴을 찌푸렸다.
녹음기라니 골치 아프게 생겼다.
분명 관장 성격에 떠벌떠벌 나댔을 테고, 그것은 힌트가 되었을 것이다.
웬만한 놈이라면 갤러리만 털고 끝나겠지만, 과연 그놈이 거기서 만족을 할까?
유진환의 머릿속에 작년 있었던 기자회견이 떠올랐다.
그리고 그 순간 유진환은 결심을 굳혔다.
“이 시간 이후로 관장님 번호는 차단합니다. 연락하지 마세요.”
-보좌관님!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세금은 알아서 처리하십시오. 국세청이 때리는 대로 맞으시고 불복은 생각도 하지 마세요. 갤러리에 대한 모든 탈세 혐의를 인정하십시오.”
-그건 저한테 죽으라는 소리잖아요!
관장의 날카로운 고함은 유진환 귀에 제대로 들어오지도 않았다.
서롱 갤러리와 있었던 뒷거래를 어떻게 감춰야 할지, 들킨다면 어떻게 수습해야 할지.
그것을 생각하는 것이 급선무였다.
-저 도와주셔야 해요. 제가 죽으면 얼마나 많은 분이 불편해질지…….
“관장님, 착각 좀 그만하시죠.”
-보좌관님!
유진환은 차갑게 말했다.
더 이상 관장에게 볼일은 없었다.
“말하고 싶으면 말해 보세요. 과연 어떻게 될 것 같습니까. 국세청은 기껏해야 당신에게 세금이나 매기고 끝나겠죠. 고발? 적당히 집행유예 때려 맞겠죠. 그런데 당신이 입을 열면요?”
유진환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떼를 쓰듯 소리 지르던 관장이 덩달아 입을 다물었다.
“자살하고 싶습니까?”
그것으로 끝이었다.
울음을 터뜨린 관장을 뒤로하고 유진환은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곧장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접니다. 급한 일이에요. 서울지방국세청 내에 선 댈 만한 사람 있습니까? 승진 기회를 놓치고 특수조사팀이라는 이례적인 방식에 불만을 가진 사람이면 좋습니다.”
유진환은 다음 수에 착수했다.
***
나는 청장실을 나와 사무실로 돌아가지 않았다.
대신 이선균 과장에게 향했다.
서울청으로 오고 나서는 과가 갈렸기 때문에 제대로 마주하는 것은 오랜만이었다.
반갑게 맞아주던 과장은, 내 얼굴을 보자마자 표정을 굳혔다.
“무슨 일입니까?”
“제가 이번 조사 때 찾은 명단입니다.”
나는 들고 온 명단을 이선균에게 넘겼다.
그는 빠르게 눈으로 훑더니 사무실과 연결된 통유리로 다가가 블라인드를 쳤다.
사무실에서 과장실 내부가 보이지 않게 되자 그제야 명단을 펼치고 천천히 읽어 내려갔다.
“미술품을 거래하는 갤러리의 고객들입니다. 관장 스스로 자기 고객들을 건드리지 말라고 협박했으니 조사하면 뭔가 나올 겁니다.”
“여당 국회의원도 있고, 재벌도 있군요. 이 사람은 현직 검사장이고. 연예인도 있네요.”
이선균은 담담히 명단을 읊었다.
그리고 곧바로 심각성을 인지했다.
“오낙현 지청장님도 알고 계십니까?”
“방금 말씀드리고 오는 길입니다. 곧 국장급 회의 소집하실 거구요. 그 전에 여쭤볼 것이 있어서 온 겁니다.”
“당연히 이놈들도 치고 싶다는 뜻이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단순히 그걸 말하러 온 것은 아니었다.
“단도직입적으로 여쭙겠습니다. 제가 어디까지 쳐도 되겠습니까?”
치지 않는다는 선택지는 없었다.
하지만 이 건은 무작정 밀고 나갈 수도 없다.
내가 봐도 상대는 쉽지 않아 보였다.
그동안 내가 마구 날뛰는 것처럼 행동하긴 했지만, 나름의 계산은 있었다.
이 정도면 위에서 커버할 수 있겠지, 하는 계산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가늠하기가 어려웠다.
이선균은 잠시의 지체도 없이 핸드폰을 꺼내 명단을 찍었다.
그리고 곧바로 민치호 국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벨이 몇 번 울리지도 않았는데 민치호가 전화를 받았다.
여전히 굵고 엄격한 목소리다.
“국장님, 신재현 팀장과 함께 있습니다. 스피커폰으로 돌리겠습니다. 그리고 방금 보내드린 사진 한 번만 확인 부탁드립니다.”
-잠시만.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리고 민치호 국장의 질문이 시작되었다.
-신 팀장이 가져온 건가?
“예.”
-언제 어디서 나온 명단인가?
“이번 미술관 세무조사에서 나온 거라고 합니다. 현장 세무조사는 사전 예고 없이 기습적으로 3일 전 실시했으며 이 명단은 방금 가져왔습니다.”
-서울청장님에게는 보고 했나?
“알고 계십니다. 국장급 회의에 들어간다고 합니다.”
민치호 국장과 이선균 과장의 대화는 짧고 간결했으며 요점만 명확했다.
급한 일이기 때문인지 아니면 원래 그런 성격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덕분에 주저리주저리 설명할 필요가 없어져서 다행이었다.
-신 팀장에게 묻지.
“예, 국장님.”
이번엔 질문의 화살이 내게 날아왔다.
-어디까지 치고 싶은가?
“전부 다 치고 싶습니다. 하지만 이상과 현실이 맞지 않는 경우는 허다하죠. 그러니 현실적으로 알려주셨으면 합니다. 정확히 어디까지 쳐도 되는 겁니까?”
민치호 국장은 쉽사리 대답하지 않았다.
그도 계산을 해 보고 있는 것이다.
나는 몇 마디를 덧붙였다.
“제 뒤에, 장막 끝에 누가 있는지. 어떤 거물이 있어서 일선의 제게 힘을 실어주는지 굳이 묻지는 않겠습니다. 대충 짐작은 하고 있으니까요.”
이선균이 놀란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제가 국세청에 들어가는 그날, 알려주시겠다고 하셨죠. 저 역시 때가 되면 알아서 가르쳐주실 거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이것만 알려주십시오.”
비록 전화였지만 그 너머에 앉은 민치호의 얼굴이 눈에 선하게 그려졌다.
깍지를 끼고 진지하게 듣고 있는 민치호의 근엄한 얼굴이.
“제가 칼을 휘둘러도 되는 선을 알려주십시오. 그리고 나중에는 이 명단에 있는 모든 놈들을, 그리고 그보다 더한 놈도 쳐낼 수 있을 거란 믿음을 주십시오.”
-그거라면 장담할 수 있지.
민치호의 단단한 목소리가 이어졌다.
-서울청은 내 힘이 닿지 않으니 지금은 저놈들의 팔다리로 만족해라. 하지만 머지않은 시일 내에 몸통과 머리도 모조리 쳐낼 수 있게 될 거다. 그때까지만 기다려. 네가 마음 놓고 날뛸 수 있을 만한 바닥은 내가 마련해 줄 테니까.
민치호는 맹수가 으르렁대듯 말했다.
처음 듣는 민치호의 각오였다.
나는 그에게 내가 보일 리 없는데도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씀, 믿고 기다리겠습니다.”
통화가 끝나고 잠시 후, 민치호에게서 밑줄 그어진 명단이 하나 도착했다.
이선균 과장이 보낸 사진에 민치호 과장이 위험도를 셋으로 나누어 표시해준 것이었다.
붉은색은 좀 더 힘이 생길 때까지 보류, 노란색은 명확한 증거 없이는 치기 버거운 대상, 그리고 초록색은 지금 당장 쳐도 되는 놈들.
그리고 동시에, 내 핸드폰에 문자 한 통이 들어왔다.
발신인은 청장 비서실이었다.
-특수조사 2팀장 신재현, 다목적 회의실로.
긴급 국장 회의의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