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국세청 망나니-137화 (137/500)

137화. 치느냐 마느냐 (1)

“슬슬 전수조사 중간보고 다가오는데 정리는 어떻게 되어갑니까?”

조사1국 3과의 과장은 자신의 팀원들을 바라보며 물었다.

이번 전수조사는 법인세과와 조사과의 합작이나 다름없다.

그러니 중간보고 역시 다 함께 모여 발표하기로 한 상황이었다.

그 자리에 참석해 진척도를 말해야 하는 과장은 잠시 3과의 모든 직원들을 한 자리에 모았다.

“저희 1팀은 아직 관계사 조사 중에 있습니다.”

“2팀은 과세 자료 준비 중입니다. 곧 마무리하겠습니다.”

두 팀장이 각자 자기 팀의 진척도를 이야기할 때 마지막 3팀의 팀장은 당당하게 입을 열었다.

“저희 3팀은 이미 한 곳은 조사를 끝마쳐서 결정통지문 작성 중이고, 나머지 대상은 과세 자료 준비 중에 있습니다.”

“으, 응? 조사 끝난 곳이 있어요?”

나머지 두 팀의 팀장이 엥? 하는 얼굴로 3팀장을 바라보았다.

“3팀이 유독 빠르네요. 배당된 건도 쉬운 건 아니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과장과 다른 팀장들이 의아해하자 3팀장이 결국 두 손을 들었다.

“사실 도움을 받았습니다.”

“도움이요? 설마 극비 조사인데 다른 과 도움을 얻었다는 건가요?”

“아니요. 특조 2팀장님이 도와줬습니다.”

“아.”

과장이 납득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이번 건은 다 특조 2팀에서 출발한 거였죠.”

“전수조사 자체가 특조 2팀의 요청이었으니까요.”

“근데 대체 무슨 도움을 받았다고 벌써 조사가 끝납니까? 과도 달라서 우리 뭐 하는지도 모를 텐데.”

1팀장의 질문에 3팀장이 이제야 생각났다는 듯 결재서류를 꺼내 과장에게 건넸다.

“조사 때문에 업체 회계담당자 불렀더니 특조 2팀장님 얼굴만 보고 다 얘기하던데요. 개중에 이중장부와 차명 통장을 비롯해서 결정적인 증언도 있었습니다.”

과장이 서류를 열어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제보자 지위로 격상시킬 것인지 위에 검토 올리겠습니다.”

이야기가 일단락되자 2팀의 팀장이 고개를 들이밀었다.

“근데 3팀장님은 직접 만나봤겠네요? 어떻던가요?”

“신재현 팀장님이요?”

“네.”

서울청 직원들에게 특수조사팀은 관심의 대상이었다.

팀이 생기기 전부터 그랬다.

‘야, 들었어? 우리 청에 TF 하나 생긴대.’

‘세무서 체제 바꾸더니 우리 청장님도 배우셨나?’

‘청장님 직속으로 해서 전권 준다는데.’

‘와…… 출세는 따놓은 자리네. 그래서 누가 TF 가는데?’

‘삼성 세무서의 신재현하고 우리 청의 권현아 팀장님.’

‘뭐야? 잠깐만, 권현아 팀장님은 그렇다 치고 신재현이면 그 TV에 나왔던 7급 아닌가? 7급이 팀장 자리 앉을 수 있어?’

‘몰라. 지금 승진 대기 중이던 팀장급들 난리던데. 이런 예외가 있을 수 있냐고.’

TF팀이 생긴 이후에도 파란은 계속되었다.

과연 어떤 행보를 보여줄지, 아무리 공훈을 세웠다지만 청장 직속국의 팀장 자리에 앉을 자격이 되는지.

그리고 무엇보다 어디까지 해낼 수 있을지.

온 청의 관심이 한군데에 쏠렸다.

그리고 지금, 법인세과와 조사과가 팀장 한 명의 말에 움직이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요주의 인물과 직접 대화해본 3팀장에게 관심이 쏠리는 것은 당연했다.

“확실히 보통 사람은 아닌 것 같았습니다. 특조 2팀에서 저희가 조사하던 건과 관련 있는 게 나와서 전해주러 오신 건데, 일 처리가 굉장히 빠릅니다. 이제 3년 차라고 생각하긴 힘들 정도였습니다. 저도 조사과에서 구른 세월이 있어서 일부러 시험하듯 물어본 게 있었는데, 그걸 다 대답하더군요. 아무리 봐도 3년 차 짬이 아니었습니다.”

3팀장이 침을 튀겨가며 얘기하자 1팀장이 못마땅한 표정으로 끼어들었다.

“그래 봤자 7급이고 경력도 부족한 일반 직원입니다. TF에 팀원으로 들어갔다면 몰라도 팀장은 너무하지 않습니까? 특조팀장이 어떤 자리입니까?”

1팀장은 열변을 토했다.

“지금 특조팀이 가진 힘이 얼만지 다들 아시잖습니까. 단적인 예가 바로 이번 일이에요. 서울청에 팀장이 몇이고 과장이 몇입니까? 게다가 여기는 청에서 가장 파워가 세다는 조사과에요.”

1팀장의 목소리는 점점 커져 갔다.

과장이 놀라서 쳐다볼 정도였다.

“팀장인 저는커녕, 우리 3과장님이 청장님이나 국장님 불러다 놓고 ‘전수조사합시다’ 하면 알겠다 하시겠습니까?”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특조팀의 힘이 세긴 하죠. 법인세과와 조사과가 오로지 특조팀 백업으로 움직였으니.”

과장은 1팀장을 말리지 않았다.

그가 생각해도 청장이 특조팀에 실어주는 힘은 무지막지했다.

과연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을 정도로.

“작년에 국회의원 잡은 건 저도 봤습니다. 대단했어요. 하지만 굳이 이런 이례까지 줘 가면서 앉혔어야 했나요? 우리 청에도 사람은 많은데.”

결론은 그거였다.

특수조사팀을 2개 신설한다는 발표가 났을 때, 팀장 후보로 오르내린 것이 바로 지금 열변을 토하고 있는 1팀장이었다.

그로서는 어디서 굴러온 돌이 자신의 자리를 빼앗았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 것이다.

그때 3팀장이 1팀장의 말에 정면으로 반박했다.

“그러면 1팀장님은 만약 특조팀 가셨으면 이보다 더한 걸 하실 수 있었겠네요.”

괜히 1팀장이 자신에게 화풀이를 한 것 같아 기분이 상한 3팀장이었다.

그는 1팀장을 몰아세웠다.

“국장님한테 전수조사하자고 제안하고 그동안 털고 싶은데 못 털었던 회사들 싹 다 모아서 털고. 다 하셨겠네요?”

“당연하죠. 저한테 그런 권한만 주면 합니다.”

“조사과 권한도 그렇게 작진 않은데요. 그동안은 왜 그렇게 안 하셨습니까?”

1팀장이 말문이 막힌 듯 잠시 주춤거렸다.

“특조팀 권한이랑 우리 조사과 권한이랑 같습니까?”

“우리도 굳이 못 할 건 없다고 보는데요.”

“특조팀 팀장은 어리잖습니까. 젊은 혈기에 청장님 믿고 앞뒤 안 가리고 까부는 거죠.”

“그래서 1팀장님은 그 나이에 신 팀장처럼 하셨습니까?”

분위기가 험악해지자 과장이 둘을 말렸다.

“그만들 하세요. 지금 제 앞에서 뭣들 하시는 겁니까.”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과장이 눈을 부라리자 두 팀장이 고개를 숙였다.

“특조팀이 권한을 과하게 받은 건 맞는데, 앞으로 어떤 성과를 낼지 지켜보면 되는 일 아닙니까? 우리 청장님은 무능력한 사람한테 권한 주는 사람 아니에요. 기대에 못 미치면 알아서 잘릴 겁니다. 우리는 우리 일이나 합시다.”

어수선한 분위기에서 조사3과의 회의는 끝이 났다.

1팀장이 기다렸다는 듯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

2팀과 3팀의 팀장은 엉거주춤 일어섰다.

“서로 돕고 사는 다 같은 직원 아닙니까. 1팀장님처럼 굳이 특조팀 적대할 필요 있습니까?”

직접적인 도움을 받은 3팀장이 말하자 과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1팀장님 저러는 건 이해해요. 어차피 두고 보면 알 일이니 너무 마음 쓰지 맙시다. 밥이나 먹으러 가죠.”

과장이 팀원들을 다독여 밖으로 나갔을 때였다.

복도 끝에서 누군가 전속력으로 달리는 것이 보였다.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더니 양반은 못 되시네. 신 팀장님, 안녕하세요.”

안면이 있는 팀원이 인사를 건네자 신재현이 달려오며 고개를 숙였다.

“안녕하세요! 나중에 뵙겠습니다!”

그리고 달려온 속도 그대로 조사과 앞을 스쳐 지나갔다.

“와…… 서울청에서 저렇게 뛰는 사람은 처음 본다. 젊은 피긴 하네.”

과장이 혀를 내둘렀다.

***

권현아는 청장 앞에서 두 손을 모으고 서 있었다.

청장의 기분은 평소와 다름없었다.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얼굴로 지그시 눈을 감고 권현아의 보고를 듣고 있었다.

그러나 현재 서울청 내부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뻔히 아는 권현아로서는 지금 이 자리가 그다지 편치만은 않았다.

“……따라서 이 건은 오늘 중으로 과세예고통지서를 발송할 예정입니다. 이상입니다.”

권현아의 보고가 끝났지만 청장은 좀처럼 대답이 없었다.

잠시 청장실 내에 침묵이 흘렀다.

권현아는 잠자코 기다렸다.

청장이 눈을 뜬 것은 초침이 한 바퀴를 돈 후였다.

“권 팀장도 잘 하고는 있어. 그런데 특수조사팀이라는 건 말 그대로 TF거든. 다른 과와 차별성이 있어야 해.”

“예, 청장님.”

“권 팀장이 부족하다는 건 아냐. 근데 기존 조사과와 다른 점을 보여줘야 우리 청 식구들이 납득을 하지 않을까?”

권현아는 입술을 깨물었다.

청장 직속으로 특별한 권한을 받은 만큼 그동안 조사과에서 손대지 못하고 미뤄놨던 건들을 하나하나 꺼내어 손댔다.

그런데도 청장의 눈에는 차지 않았던 모양이다.

오랫동안 청장을 모셔온 권현아는 알 수 있었다.

“신 팀장이 지금 일을 벌이고 있다고는 들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방식은 위험하지 않습니까?”

“그건 그렇지. 신재현은 뒤를 돌아보지 않거든. 양날의 검이야.”

“제가 신 팀장보다 잘났다는 것을 말씀드리려는 건 아닙니다. 신 팀장은 그만의 장점이 있죠. 하지만 우리 공무원 조직에는 맞지 않는 사람입니다. 너무 튀어요.”

공무원 사회 특유의 폐쇄적인 분위기에 신재현이 어울리지 않는다는 말을 하려는 건 아니었다.

수많은 종류의 사람이 모인 공무원 특성상 가끔 튀는 사람이 나오긴 한다.

문제는 그의 방식이다.

신재현은 앞에 걸리는 모든 것을 밀어 버린다.

그 과정에서 옆과 뒤에서 받쳐주는 사람들이 얼마나 고생을 할지 권현아로서는 상상도 하기 힘들었다.

“하지만 힘만 받쳐주면 뭐든 칠 놈이지.”

“혹시 청장님께서는 저 역시 그렇게 하길 바라십니까?”

권현아는 직접적으로 질문했다.

그러나 청장은 즉시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 일전에 말했듯 권 팀장이 신 팀장에게 그런 걸 배울 필요는 없어. 하지만 내 사람이 남의 사람에게 지는 꼴은 보기 힘들군.”

청장이 저렇게 말하니 권현아의 대답은 한 가지였다.

“분발하겠습니다.”

권현아와 청장의 대화가 일단락되었을 때 노크 소리가 울렸다.

“들어와.”

청장실 문을 열고 들어온 신재현은 숨을 헐떡거리고 있었다.

딱 봐도 심상치 않은 모습이었다.

“청장님. 이거…….”

숨을 몰아쉰 신재현은 인사도 하기 전에 청장에게 덥석 무언가를 내밀었다.

날짜와 이름, 그리고 숫자가 적힌 장부였는데 거기 있는 이름이 어쩐지 낯설지 않았다.

“서롱 갤러리를 조사하다 나온 명단입니다. 탈세 정황이 명확한 건이에요.”

청장이 두 눈을 부릅떴다.

“……이 명단에 적힌 이들은 정재계 인사들이야. 정부 요인도 있어. 네가 상대했던 2선 의원과는 수준이 달라. 정확한 명단인가?”

“예. 정확합니다.”

신재현이 자신 있게 대답하자 청장은 더욱 얼굴을 굳혔다.

권현아의 경우엔 듣지 말아야 할 것을 들었다는 듯 얼굴이 파랗게 질렸다.

청장이 쉽사리 대답하지 못하자 권현아가 다급히 책상으로 다가왔다.

“청장님, 위험합니다.”

권현아는 저도 모르게 끼어들었다.

“그 명단에 있는 이름이 진짜라면 신중하게 접근하셔야 합니다. 만약 잘못 건드렸다간…….”

권현아는 차마 뒷말을 잇지 못했다.

국세청장의 자리는 대통령이 지명하되, 국회의 청문회를 거쳐야 한다.

국세청장도 정계 인사들을 무시할 수 있는 만능의 자리가 아니라는 말이다.

그런데 그 밑인 지청장이 정재계 인사들에게 잘못 손댔다간 어떻게 될지 뻔했다.

“너희 둘에게 묻지. 어떻게 해야 한다고 보나?”

어두운 목소리의 청장에게 권현아는 재차 당부했다.

“신중하셔야 합니다. 지금 당장 손대는 건 무리예요. 저희 쪽 힘이 부족합니다.”

청장의 시선이 신재현에게 향했다.

평소처럼 무작정 자신 있는 표정은 아니었다.

약간의 걱정이 담긴 눈동자가 청장을 마주했다.

“위험하다는 건 압니다. 하지만 쳐야 해요.”

“이유는?”

“지금 못 친다고 내버려 두면 평생 못 칩니다.”

신재현의 말에 권현아가 비명에 가까운 소리를 질렀다.

“신 팀장! 마음만으로 칠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에요!”

“철저하게 조사하면 되잖습니까! 그리고 저는 아예 불가능하다고 보지는 않습니다!”

상반된 두 의견에 청장이 비서실로 연결된 전화를 들었다.

“국장급 회의를 소집해. 긴급 안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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