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6화. 그렇게 나온다면(2)
경찰서에서 대면한 관장은 얼굴에 생채기가 나고 한쪽 뺨이 퉁퉁 부어 있었다.
조사하는 형사 앞에 나란히 앉은 관장과 신재현은 못마땅한 눈으로 서로를 쏘아 보았다.
“아, 글쎄 이 사람이 저를……!”
관장의 목소리는 애처로웠다.
표독스럽게 직원을 몰아붙이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억울함을 가득 담은 얼굴에는 눈물까지 맺혀 있었다.
딱 봐도 피해자 같다.
“제가요? 언제요?”
그에 반해 신재현은 삐딱하게 팔짱을 끼고 철제 의자에 앉아 관장을 노려보고 있었다.
겉모습으로 판단하면 안 된다지만, 이 둘을 보고 있자면 가해자와 피해자가 너무도 뚜렷해 보였다.
“이 뻔뻔하고 파렴치한 놈이 이 얼굴을 보고도 그런 말이 나와요?”
점점 분위기가 험악해지자 형사가 둘을 말렸다.
“두 분 다 진정하시고, 오늘은 사실 확인을 위해 부른 거니까 있었던 일 그대로 말해 주시면 됩니다.”
형사는 먼저 신재현에게 시선을 돌렸다.
위에서 내려온 명령이 있었기 때문이다.
-최대한 신재현을 보호해라.
어디서부터 내려온 것인지 모를 정도로 높은 곳에서 내려온 명령이었다.
당연히 처음에는 형사도 반발했다.
‘저 이런 거 안 좋아하는 거 아시잖아요. 팀장님, 잘못이 있으면 벌을 받는 거지 왜 백이 있다고 봐줍니까? 예전에도 누구 때렸다가 무마했다면서요. 그럼 확신범 아닙니까.’
‘처맞은 놈이 누군지는 봤어?’
‘누굴 때렸는데요.’
‘사기범. 피해액만 해도 수십억이다. 현장에서 피해자한테 상해 입히길래 때렸대.’
‘아, 그건 처맞아도 싸지. 그럼 이번에는요?’
‘국세청 쪽 말로는 탈세범이 수 쓰는 거라는데. 세무조사 받기 싫어서. 서울청장이 자기 이름 걸고 보증했어.’
‘끄응…… 믿어도 되는 거예요?’
‘지청장이나 되는 양반이 함부로 자기 이름 걸진 않겠지.’
‘일단 알겠습니다.’
형사는 눈앞의 가해자와 피해자를 바라보았다.
뭘 어떻게 도와주려고 해도 피해자의 증언이 있어서 뒤집기는 어려워 보였다.
“신재현 씨부터 말씀을…….”
“내 증언부터 들어야죠!”
형사가 먼저 신재현에게 기회를 주려고 하자 관장이 냅다 끼어들었다.
“제가 세무조사 대상자니까 따로 얘기 좀 하고 싶다고 했더니 단둘이 되니까 이 사람이 어땠는지 아세요? 완전히 돌변했다니까요? 그러더니 제 얼굴을 이렇게 때린 거예요.”
형사는 슬쩍 신재현을 바라보았다.
별다른 반박은 없었다.
다만 비웃음과 함께 고깝다는 얼굴로 관장을 쳐다보고 있을 뿐이었다.
‘공무원이 저렇게 대놓고 싫은 티 내도 되나. 민원이 무섭지도 않나.’
요즘엔 경찰서에 잡상인이나 사이비 종교 신도가 들어와 소리 질러도 함부로 하지 못하는 세상이었다.
실제로 폭력을 쓰거나 법을 어기지 않는 이상 경찰서에서 드러누워도 제지를 못 한다.
‘어쩌면 정말로 때린 게 아닐까.’
형사가 진지하게 고민을 시작함과 동시에 관장이 목소리 톤을 한층 올렸다.
“공무원이라고 세무조사 대상자를 때려도 되나요? 이건 엄연한 갑질이에요! 갑질이 뭐야, 범죄지! 경찰은 뭐해요? 얼른 잡아가시라고요!”
형사는 관장을 진정시킨 후 신재현에게 고개를 돌렸다.
“뭐 하실 말씀 없으십니까?”
신재현은 팔짱을 풀더니 섬뜩한 미소와 함께 입을 열었다.
“지랄도 진짜 정도껏 하시죠. 제가 말했죠? 모조리 조사해서 법을 우습게 알면 어떤 개망신을 당하는지 알려드리겠다고.”
형사가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입을 떡 벌렸다.
“저, 신재현 씨?”
형사가 제지하려는데 뒤에 서 있던 황민우가 신재현에게 나직하게 말했다.
“주사보님. 경찰서니 자중하시죠. 저희야 주사보님 어떤 분인지 알지만 이분들은 모르잖아요.”
“여기 관장님은 제가 어떤 사람인지 아주 잘 아실 것 같은데요. 그렇죠, 관장님?”
신재현의 눈빛이 관장에게 향했다.
관장이 움찔했다.
“그, 그쪽이 아주 못 돼먹은 폭력 공무원이라는 건 알죠!”
“그때 제가 분명히 알아듣게 말씀드렸는데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신 것 같으니 다시 말씀드리죠.”
신재현은 여전히 웃음기를 지우지 않았다.
“아, 딱 봐도 위험한데.”
형사가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신재현과 함께 온 공무원이 나름 말려주는 것 같아 가만히 두고 보려고 했다.
그러나 수많은 현장을 다녀보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본 형사의 눈에는 신재현이 진짜라는 것을 느꼈다.
가끔 형사 중에 저런 놈이 하나씩 있었다.
범인 잡는 데 머리가 돌아 버린 놈.
처음엔 잘 몰랐는데 지금 보니 겁먹은 것은 오히려 관장처럼 보였다.
“관장님. 탈세 하셨잖아요. 이런다고 제가 겁먹을 것 같아요?”
“지금 대낮에 경찰서에서 이러는 거 봐봐요. 이런 사람이 공무원이라고요! 어떻게 사람을 이렇게 핍박해요? 이거 다 제보할 테니까 그렇게 아세요.”
신재현은 피식 웃었다.
“관장님이야말로 뉴스 안 보시는 것 같네요.”
“무슨 소리예요? 내가 못할 것 같아요?”
“관장님이 제보를 하시든 민원을 넣으시든 저는 아무 상관 없구요. 얘기 들어 보니 증거는 따로 없는 거네요?”
“증거가 왜 없어요? 내가 이렇게 맞았다고요! 내가 말하는 게 증거잖아!”
관장은 자신의 뺨을 가리켜 보인 뒤 신재현 뒤에 조용히 서 있던 황민우에게 시선을 돌렸다.
“윗사람한테 전해 주세요. 이런 사람이 세무조사를 지휘한다니 상상도 할 수 없습니다. 담당자 바꿔 달라고요. 폭행 가해자가 폭행 피해자를 조사한다는 게 말이나 되나요?”
“아. 그런 뜻이었구나.”
신재현은 차갑게 가라앉은 눈으로 관장을 응시했다.
“굉장히 더럽고 치사한 방법이라고 생각했는데 나름 머리를 썼네요. 증거가 없는 이상, 실제로 눈에 보이는 피해가 있는 관장님이 주장하면 검증할 수 있는 방법이 없죠.”
“그러니까 나는 실제로 맞았다니까!”
“저는 징계를 먹고 당연히 담당자는 바뀌겠죠. 더불어 국세청 쪽은 행동에 소극적이 될 수밖에 없고. 가해자와 피해자. 여론 구도 짜기도 쉽네요. 누가 알려줬습니까?”
“무슨 소리예요!”
“말하기 싫으면 됐어요. 직접 알아보면 되니까. 그건 그렇고 그거 아프겠습니다. 제가 한 건 아니니 스스로 자해했거나 누군가에게 맞았다는 건데. 그렇게까지 절박한 상황이에요? 뭘 지키려는 겁니까?”
신재현의 말에 관장이 독기를 품은 눈으로 노려보았다.
“이봐요. 당신 지금 무슨 상황인지 모르나 본데, 나한테 무릎 꿇고 싹싹 빌어도 모자란다고!”
“경찰이 당신 거짓말을 밝혀내지 못할 것 같습니까? 아까부터 피해 상황을 구체적으로 말하지 못하고 있잖아요.”
“맞았다고 했잖아!”
“그러니까 어딜 어떻게 맞았습니까? 그 당시 저는 어디에 서서 어느 손으로, 어떤 방향으로 관장님을 때렸습니까? 저와 관장님이 어떤 식으로 말싸움을 해서 무슨 말을 하며 때렸나요?”
“그건…… 고소장에 쓰여 있어요.”
신재현은 더 들을 게 없다는 듯 관장에게서 고개를 돌렸다.
흥미가 떨어진 얼굴이었다.
“취조는 저희 역할입니다. 저희 할 일도 좀 남겨 주시죠.”
형사가 피식 웃었다.
이제 그도 뭐가 진실인지 확연히 판단한 얼굴이었다.
“이런 일로 형사님을 귀찮게 해드릴 수야 없죠. 금방 해결되게 도와드리겠습니다.”
“이봐요! 당신 지금 무슨 상황인지 모르나 본데, 나한테 무릎 꿇고 싹싹 빌어도 부족한 상황이야!”
신재현은 관장의 발악을 깔끔하게 무시했다.
“형사님. 갤러리 복도에 CCTV가 하나 있을 겁니다. 수거하셨나요?”
“일 착수하자마자 그것부터 수거했죠. 근데 사무실 바로 앞이 아니라 복도 끝에서 찍은 거라 간신히 누가 누군지 구분이 가능한 수준입니다.”
“CCTV에 저희 둘이 사무실에 들어간 시간과 나온 시간. 그건 확인 가능하죠?”
“물론입니다.”
“그럼 이걸 선물로 드리죠.”
신재현은 정장 주머니에서 길쭉한 무언가를 꺼냈다.
불안해진 관장의 시선이 신재현의 손 끝에 닿았다.
“그게 무슨…….”
“궁금하십니까?”
신재현은 가볍게 기계의 버튼을 눌렀다.
-일단 통성명부터 하죠. 그쪽 성함이?
-신재현입니다. 7급 주사보구요. 현재 서울청장님 직속 특수조사 2팀의 팀장을 맡고 있습니다.
관장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신재현은 녹음기를 멈추고 액정을 보여주었다.
“녹음된 대화는 총 13분 51초입니다. 저는 사무실에 들어가기 전 녹음기를 켰고, 나와서 껐습니다. CCTV에 찍힌 시간과 비교해 보면 폭행이 없었다는 걸 명확히 알 수 있을 겁니다.”
“아니야! 아니라고! 내가 맞았다니까! 이게 증거라고!”
관장이 벌떡 일어나며 녹음기에 손을 뻗었다.
관장의 손이 닿기 전에 형사가 얼른 녹음기를 낚아챘다.
“어딜 증거품에 손을 댑니까?”
“아니야! 아니라니까요! 형사님!!!”
관장의 외침은 비명처럼 변해갔지만 형사의 반응은 냉담했다.
“얌전히 좀 앉아 계세요. 가해자와 피해자 위치가 바뀌게 될 것 같으니까.”
형사는 차가운 눈길로 이어폰을 꺼내 한쪽 귀에 꽂았다.
그리고 곧바로 녹음기를 재생했다.
관장은 이제 정말로 어쩔 줄 모르는 표정이었다.
눈동자가 바쁘게 이리저리 오가고 손톱 끝을 물어뜯었다.
붉게 칠해진 매니큐어가 벗겨져 핏방울과 함께 바닥에 떨어졌다.
“잠시 시간이 되니 저도 업무 좀 보겠습니다.”
신재현은 아까 녹음기를 꺼낸 반대쪽 정장 주머니에서 종이를 꺼내 건넸다.
“내일 아침 10시까지 서울청으로 나와주시면 됩니다. 관장님의 성실한 협조 부탁드립니다.”
“혀, 협조?”
“안 나와주셔도 저희는 다 찾아내니까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협조해주시면 일이 조금 빨라지겠죠?”
관장이 불안한 얼굴로 두리번거리다 형사에게 시선을 돌렸다.
형사가 잡아먹을 듯 강렬한 눈빛으로 관장을 빤히 노려보고 있었다.
그는 녹음기를 멈추고는 다짜고짜 관장에게 말했다.
“관장님. 실제 범죄사실이 없는데 무고한 자에게 허위로 신고하시면 무고죄에 해당됩니다. 알고 계시죠?”
형사가 귀에서 이어폰을 뽑았다.
신재현과 달리 형사는 웃음기 하나 없는 얼굴이라 더더욱 살벌했다.
형사가 부리부리한 눈을 치켜뜨자 웬만한 범죄자보다 험한 인상이 되었다.
“왜, 왜 이런 일이…….”
“들어 보니까 관장님이 잘못했네! 지금 이게 뭐 하는 짓입니까? 경찰이 사적으로 대신 복수해 주는 기관이에요? 폭행당했다고 거짓말쳐서 사람 인생 하나 골로 보내려고요? 경찰이 그렇게 만만해 보여요?”
“혀, 형사님…….”
형사가 테이블까지 내려치며 형사과가 떠나가라 소리를 치자 관장이 겁먹은 눈으로 입을 다물었다.
누군가 도와주길 바라며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관장의 편은 없었다.
경멸의 눈동자 수십 쌍이 관장에게 내리꽂혔다.
생전 처음 겪어보는 굴욕에 관장이 입술을 깨물었다.
“신재현 씨, 그냥 넘어가실 겁니까?”
관장이 입을 다물자 형사는 신재현에게 물었다.
“무고죄로 고소할 겁니다. 거기에 위증도 걸어주세요. 저희 국세청 쪽에서도 조만간 다른 혐의로 고발할 테니 잘 부탁드립니다.”
“걱정 마십쇼.”
신재현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형사 역시 따라서 일어섰다.
“가 보겠습니다. 나오지 않으셔도 됩니다.”
신재현의 만류에도 형사는 끝까지 따라 나왔다.
“녹음된 내용 다 들었습니다.”
“아. 좀 위험한 내용 있을 수 있는데, 그걸 생각 못 했네요.”
“아뇨, 괜찮습니다. 오히려 아직 세상은 살만하구나, 하고 느꼈습니다. 증거물은 꼭 제가 목숨 걸고 간수하겠습니다.”
형사의 굳은 의지의 표명에 신재현이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목숨까지 거시면 안 됩니다.”
“서로 소속된 기관은 달라도 같은 공무원 아닙니까. 팀장님이라고 했죠? 꼭 조세 정의를 구현하시길 바라겠습니다. 저도 제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두 공무원은 형사에게 고개를 숙인 후 복도로 나갔다.
형사의 머릿속에 계속 녹음기 속의 목소리가 맴돌았다.
-저는 이 갤러리를 아주 다 뒤집어엎을 겁니다. 그리고 이 갤러리와 거래한 고객 전부를 조사하겠습니다.
“TV에서 본 그대로네.”
피식 웃은 형사는 떠나가는 공무원의 뒷모습에 경례를 올려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