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국세청 망나니-133화 (133/500)

133화. 가치의 추상 (6)

“그쪽이…… 책임자라고요?”

나를 바라보는 관장의 눈에 불신이 서렸다.

처음엔 장난하지 말라는 듯 옅게 비웃음을 띠더니 이제는 숫제 팔짱까지 꼈다.

“몇 살이에요?”

“28살입니다만, 나이가 중요합니까?”

“아니, 내가 좀 중요한 얘기를 하려고 하는데 알아먹을 만한 사람이랑 얘기해야 해서.”

관장이 나를 위아래로 훑는 시선이 느껴졌다.

“그럼 그쪽 상사랑 얘기할 수 있어요? 직속 상사.”

“저랑 말씀하시면 됩니다만.”

“아뇨. 내 얘기를 이해 못 할 것 같아서요.”

관장은 이제 대놓고 나를 이야기에서 배제하기 시작했다.

“그럼 청장님과 얘기하시겠습니까? 서울지방국세청장님이요.”

관장 뒤에서 자료를 추리던 공무원이 푸흡, 하고 웃는 것이 보였다.

관장이 책임자를 찾을 때 날 가리켰던 직원이다.

법인세과에서 지원 나온 사람인데, 괜히 그림을 들었다 놨다 하고 있었다.

저 무의미한 손짓을 보아하니 일부러 대화를 들으려고 저러고 있는 것 같았다.

“거기서 청장이 왜 나와요?”

“직속 상사를 부르셨잖습니까. 저 아니면 청장님입니다. 저희 특수조사 2팀은 청장님 직속이라서요.”

관장이 멍하니 입을 벌렸다.

“청장 직속? 당신 위가 바로 청장이라고요?”

“못 믿으시겠으면 서울청 홈페이지 들어가서 확인하시죠.”

관장은 당황스러운 듯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며 핸드폰을 만지작거렸다.

믿기지는 않는데, 그렇다고 홈페이지 보면 금방 알 수 있는 일을 거짓말할 것 같지는 않고.

그렇게 이도 저도 못 하는 것이 눈에 보였다.

그대로 놔두면 계속 어쩔 줄 모르고 서 있을 것 같아서 나는 관장을 사무실로 이끌었다.

“중요한 말씀인 것 같으니 사무실로 가시죠.”

관장이 정신을 차린 듯 사무실 쪽으로 걷기 시작했다.

괜히 그림을 만지작거리던 법인세과 직원과 눈이 마주치자 그가 화들짝 놀라더니 씨익 웃었다.

“그럼 전시실 쪽은 잘 부탁드립니다.”

“옙! 걱정 마시고 다녀오십쇼, 팀장님!”

직원은 우렁차게 대답했다.

앞서가던 관장에게도 들리도록.

그의 배려에 나는 눈인사를 한 후 복도로 향했다.

복도 중간 중간에서 법인세과 직원들과 스쳐 지나갔다.

“팀장님, 사무실 쪽에 가보셔야겠습니다. 특조 2팀에서 찾아요.”

“네. 알겠습니다.”

복도에서 마주친 직원들도 내게 팀장이라 칭해서 그런지 관장의 얼굴에 복잡한 감정이 서렸다.

사무실로 다가갈수록 관장의 속도가 느려져 결국 내가 그녀를 추월했다.

사무실 앞 복도에는 파란 박스가 한가득 쌓여 있는 것이 보였다.

사무실에서 들어낸 물건들이다.

황민우와 안길진은 사무실 안을 뒤집고 있고, 장세훈과 강혜원은 복도에 쭈그리고 앉아 목록을 작성하고 있었다.

박스를 까고 목록을 적고 도로 박스에 서류를 담아 테이프로 마감하던 둘이 나를 향해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팀장님! 사무실 쪽은 거의 끝났고 이제 창고 쪽 봐야 한대요!”

“일단 이거 끝나면 전시실 쪽 가서 도와주실래요?”

“무슨 일 있어요?”

황민우가 사무실에서 고개를 내밀었다.

“관장님과 할 이야기가 있어서요. 사무실 좀 쓰려고 하는데, 정리 다 된 것 맞죠?”

“네. 안길진 씨, 그것만 들고 나오세요.”

황민우와 안길진이 마지막 박스를 들고나오자 관장이 잔뜩 굳은 얼굴로 사무실로 들어갔다.

황민우가 무언가 촉이 왔는지 작은 목소리로 날 불렀다.

“한 명 더 따라 들어가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관장이 여자니까 혜원 씨가 들어가면 될 것 같은데요.”

강혜원이 펜을 놓고 일어서려 하자 내가 만류했다.

“무슨 얘기를 할지 대충 짐작이 갑니다. 아마 뒷거래겠죠. 저보다 윗사람을 찾더라구요.”

“그렇다면 저희 팀원이 들어가면 본심은 말하지 않겠군요.”

황민우는 잠시 고민하다 주머니에서 자그마한 막대기 형태의 기계를 꺼냈다.

“저런 사람은 이상한 수를 쓸 수도 있습니다. 혹시 모르니 이걸…….”

황민우가 건넨 것은 녹음기였다.

“보험입니다.”

나는 녹음기를 받아들곤 곧바로 녹음 버튼을 누른 후 정장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항상 복도 앞에 한 명은 두겠습니다.”

언제까지고 복도에서 자료를 늘어놓을 수는 없으니 이 앞에서 정리가 끝나면 이들은 전시실로 합류하게 된다.

그러니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한 명은 두겠다는 것이다.

황민우는 생각보다 철저했다.

“감사합니다.”

팀원에게 고개를 끄덕여 준 나는 사무실로 들어가 문을 닫았다.

텅 빈 책장과 열린 서랍, 어지럽게 흩어진 장식품들 사이에 관장이 서 있었다.

아까는 좁아 보였던 사무실이 텅 빈 것처럼 보였다.

-촤르륵.

블라인드를 내린 관장이 내게 홱 돌아섰다.

아까처럼 흔들리는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잠깐의 시간 동안 무슨 생각을 했는지 당당함을 되찾았다.

“일단 통성명부터 하죠. 그쪽 성함이?”

관장은 내게 팀장이라고 부르지 않았다.

여전히 얕보는군.

오히려 지금은 그것이 나을 수도 있다.

나는 정중히 대답했다.

“신재현입니다. 7급 주사보구요. 현재 서울청장님 직속 특수조사 2팀의 팀장을 맡고 있습니다.”

“7급? 가관이네…… 요즘엔 7급한테도 이렇게 사람 붙여주고 대우하나 보네요.”

관장은 더욱 기고만장해졌다.

저렇게 해서 방심한다면 나야 기쁘지.

나는 조용히 웃어주었다.

“됐고, 상황이 어쩔 수 없으니 그쪽한테 얘기할게요. 그쪽은 지금 범의 꼬리를 밟고 있어요.”

“어떤 의미입니까?”

나는 의자를 끌어다 앉으며 물었다.

자연히 내가 관장을 올려다보는 모양새가 되었다.

관장은 한결 편안해진 얼굴로 말했다.

“우리 갤러리는 어중이떠중이는 상대하지 않아요. 평생 가도 그림자조차 밟지 못할 만큼 멀고 높은 곳에 계시는 분들이 우리 고객이죠.”

“세상에 그런 사람이 어딨습니까?”

나는 세상 물정 모르는 어린애처럼 질문했다.

“어머, 20대 후반이면 알 건 다 아는 나이 아닌가요? 승진이 빨라서 잘 모르나?”

관장은 비꼬는 말투와 함께 비웃음을 띄웠다.

이젠 완전히 자기 페이스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자신만만한 표정이었다.

“이 세상은요, 눈에 보이지 않는 권력이 많아요. 젊은 나이에 서울청 팀장 자리까지 갔으면 유능하고 부단히 노력한 건 알겠는데, 이런 뒷사정도 알아야죠.”

관장은 완전히 윗사람처럼 굴었다.

가르치는 듯한 말투다.

“이 대한민국엔 절대 건드릴 수 없는 사람들이 있어요. 우리 갤러리 고객이라는 이유로 그런 사람한테 조사 통지서가 가 봐요. 어떤 일이 일어날지.”

“고객이라는 이유로 조사하진 않습니다. 탈세 혐의점이 밝혀지면 조사하죠.”

“정말 말귀를 못 알아들으시네. 이래서 윗사람하고 얘기하고 싶다고 했던 건데.”

관장이 답답한 듯 테이블을 짚었다.

어디서부터 설명을 해야 할지 고민하는 모습이다.

나는 학생처럼 조용히 관장이 입을 열기를 기다렸다.

“예전에는 검사가 경찰서장 뺨을 때리고 그랬어요. 지금이야 시대가 바뀌어서 그렇게 했다간 검경 사이가 악화되고 신문에도 나니까 못 하지만, 대한민국에서 권력 최고봉 하면 검사인 거 알죠? 수사권 갖고 기소권도 갖고.”

와, 정말 눈높이 교육이다.

나는 내심 감탄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검사도 건드리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일개 7급 공무원? 입김만 불어도 날아가지. 아무리 그쪽에서 조사하네 마네 찔러대도 눈 하나 깜짝 안 할 사람들이요. 누가 봐도 유죄인데 검사가 기소도 안 하고 돌려보내는 일은 비일비재하잖아요.”

관장은 목소리를 낮췄다.

“그쪽은 상상도 못 할 겁니다. 권력으로 무슨 짓까지 할 수 있는지. 그러니까 적당히 법인세만 조사하고 손 떼는 게 좋을 거예요. 그 어떤 이상한 것이 나와도 고객을 건드리지 말아요. 다치는 건 그쪽이니까. 그쪽을 위해 하는 말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있다구요?”

어디까지나 멋모르는 하룻강아지가 호기심과 두려움을 담아 다가가듯, 나는 겁먹은 것처럼 연기하며 말했다.

그럼 그렇지, 하는 표정의 관장이 텅 빈 책상에 걸터앉았다.

“모르는 게 약이라는 말도 있잖아요. 적당히 덮어요. 검사들이 조사할 줄 몰라서 안 하는 게 아니니까. 그거 알죠? 검사는 3급, 4급 대우인 거. 근데 그쪽은 7급이잖아요.”

“구체적으로 누구입니까? 우리나라에 그런 사람이 있다니 전혀 몰랐습니다. 짐작도 안 가네요.”

“그건 알려고 하지 말아요.”

“그렇군요…….”

들을 것은 다 들은 것 같다.

나는 소파에서 일어나 관장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진심을 담아 물었다.

“하지만 법대로 하는데 대체 뭐가 문제입니까?”

***

관장은 팔짱을 낀 채 청년을 노려보다가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게 이야기했건만 여전히 알아듣지 못하고 있었다.

“어휴, 정말. 모르겠어요? 사람 하나 매장하는 건 정말 쉬운 일이에요. 그러니까 법인세만 적당히 과세하고 끝…….”

관장이 말을 하다 말고 눈을 둥그렇게 떴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움츠러들어 있던 청년이 소파에서 일어나 성큼성큼 다가와 있었다.

책상에 앉아 올려다보니 꽤 키가 크기에 관장은 똑바로 섰다.

겁먹은 눈동자는 어디에도 없었다.

청년의 당당한 태도가 의아해서 관장은 그를 노려보았다.

“뭐죠?”

“말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러니까 갤러리를 조사하면 뒤가 구린 거물들이 쑥쑥 나온다 이거군요? 고구마 줄기처럼?”

“지금까지 뭘 들었어요?”

관장은 어이없어 했지만 청년은 듣고 있지도 않았다.

그의 목소리는 점점 열기를 띄어갔다.

“조사하길 정말 잘했네요. 관장님이 그렇게 말씀하실 정도면 정말 거물이겠죠? 이야, 이 세상에 그렇게 당당하게 탈세도 하고 매장도 하고 건드리면 큰일 나는 새끼가 또 있다구요? 가만 놔두면 안 되죠!”

눈앞의 청년을 이해할 수 없다.

정상인이라면 절대 이런 반응이 나올 수 없었다.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아주 좋은 말씀 해주신 보답으로 저도 제 계획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청년의 눈동자가 희번덕거렸다.

수많은 종류의 사람을 만나보았다.

젠체하는 인간, 신사인 척하는 졸부, 허영으로 가득 찬 허풍선, 사람을 정말 도구로 보는 놈.

그런 놈들도 다들 공통점은 있다.

자기 몸 귀한 줄은 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놈은 처음이었다.

“저는 이 갤러리를 아주 다 뒤집어엎을 겁니다. 관장님과 갤러리 뿐 아니라 차명이 있을지 모르니 모든 인간관계를 털어낼 거예요. 그리고 이 갤러리와 거래한 고객 전부를 조사하겠습니다.”

“아니, 왜!”

“관장님이 말씀하셨잖아요. 고객 중엔 건드리면 안 되는 사람이 있다고. 어떤 이상한 게 나와도 건드리지 말라고. 그러면 더 건드려야죠. 법을 우습게 봤다간 무슨 개망신을 당하는지 알게 해 줘야지.”

청년이 신난 것처럼 떠들자 관장이 주춤했다.

이해할 수 없는 것에서는 공포를 느끼게 된다.

지금 관장에게 있어서 청년은 공포 그 자체였다.

“이, 이거 미친놈 아니야? 어떻게 그런 결론이 나와?”

청년은 아랑곳없이 관장과 시선을 마주했다.

“그런 이유로 관장님, 저는 봐드리는 거 없습니다. 세금 고지서에 얼마가 적힐지 기대하시는 게 좋을 겁니다.”

청년이 관장의 머리 위를 스윽 훑더니 밝게 미소 지었다.

예의상 짓는 미소가 아닌, 지금까지 관장이 본 것 중 가장 진심이 담긴 미소였다.

“보람찬 과세가 되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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