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1화. 가치의 추상 (4)
[성실납세지원국 법인세과]
나는 고개를 들어 불투명한 유리 위에 붙어 있는 명패를 읽었다.
문 옆에는 공무원증을 찍는 패드가 있고 그 아래에 자그마한 버튼이 있었다.
같은 서울청 직원이라도 내 공무원증으로는 법인세과에 들어갈 수 없다.
세무서에서는 공무원증 하나로 웬만한 곳은 다 다닐 수 있었는데.
서로 팀이 다르면 누가 뭘 조사하는지도 알 수 없는 서울청 특성상 당연한 일이긴 했다.
보안이 중요하니까.
버튼을 누르자 안에서 직원 하나가 마중 나왔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팀장님.”
나보다 나이가 많아 보이는 남자는 나를 보자 먼저 고개를 숙였다.
연장자에게 인사받는 것은 이제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보니 또 아닌가 보다.
나는 어색해져서 서둘러 마주 고개를 숙였다.
직원이 안쪽으로 안내하며 물었다.
“보내 드린 서류는 받으셨죠?”
법인세과의 불투명 유리문을 열면 바로 사무실이 있는 것이 아니었다.
커다란 벽이 하나 막고 있어 안쪽의 모습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 벽을 쭉 돌아 들어가자 그제야 커다란 사무실이 나왔다.
“네. 보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필요한 서류만 우선적으로 골라 주셨더군요.”
법인세과에서 온 자료 중에는 내가 요청하지 않은 것도 섞여 있었다.
그러나 막상 읽어보니 내게 필요한 것이 맞았다.
내 말에 직원이 뿌듯한 얼굴로 웃었다.
“요청 서류 보니까 뭘 원하는지 알겠더라고요.”
역시 경력은 무시할 것이 못 된다.
사무실 한쪽 벽에는 박스 수십 개가 쌓여 있어 직원들이 그 안에서 서류를 꺼내고, 늘어놓고 분류했다.
그리고 한쪽에서는 검토한 서류들을 다시 박스에 넣었다.
“아, 저건 본격적으로 세무조사 할 것들 고른 겁니다. 조사과에 넘길 거예요.”
여기도 세무서와 시스템 자체는 비슷했다.
법인세과와 소득세과가 모니터링하며 조사한다.
그리고 본격적인 탈세 혐의점이 발견되면 조사국 조사과로 넘긴다.
조사과에서 착수한다는 것 자체가 이미 냄새가 많이 난다는 뜻이다.
“저 때문에 괜히 고생이 많으십니다.”
사무실을 가득 채운 서류를 보며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요 며칠간 우리 팀도 야근했지만, 지나다닐 때마다 법인세과 창문에 불이 환하게 켜진 것을 보면 이들도 만만치 않게 야근을 한 것 같았다.
그러나 직원은 손사래를 쳤다.
“저희 일인데요, 뭐. 어차피 한 번쯤은 봐야 하는 업종이긴 했어요. 나중에 언젠가는 하겠지 했는데 그게 지금이 된 거죠.”
“업체들이 이상하게 생각하진 않던가요?”
“대부분은 올 게 왔구나, 하는 반응입니다. 그리고 꼬치꼬치 캐물어 보는 사람들한테는 다른 핑계를 대 뒀어요. 이럴 땐 정부 시책이라고 둘러대는 게 제일이죠.”
“본격적으로 하시나 봅니다.”
“당연합니다. 대충 사정은 과장님한테 들었는데 이유야 어찌 되었든 지금은 저희가 조사 중인 거잖아요. 그러면 최선을 다해야죠.”
직원의 대답은 시원시원했다.
나는 감탄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책상 사이를 비롯해 빈 공간에는 군데군데 박스가 쌓여 있었다.
나와 직원이 박스를 피해 지나가자 아예 바닥에 신문지를 깔고 주저앉아 서류를 보던 직원이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어, 특조 2팀장님이네! 자료 가지러 오셨나?”
“겸사겸사입니다. 과장님께 인사드릴 겸 왔죠.”
“안에 계실 겁니다.”
내가 감사의 뜻으로 고개를 숙이자 앉아 있던 직원이 다시 손을 흔들었다.
그리고 직원이 흔들던 손에 들린 종이가 내 눈에 들어왔다.
그 순간, 종이와 스치듯 숫자가 흐릿하게 떠올랐다.
[51,471,450]
“어?”
나는 앉아 있는 직원에게 달려가 그 앞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리고 그 손에 들린 서류를 살폈다.
앉아 있던 직원이 엉겁결에 내가 보기 편하게 서류를 내밀었다.
“무슨?”
두 직원이 서로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마주 보는 것이 시야 끄트머리에 잡혔다.
나는 두 직원을 내버려 두고 서류를 가리켰다.
“이거 공사현장 거래명세표네요?”
“네. 금융 자료랑 비교해 보고 있었습니다.”
직원은 옆에 내려두었던 두꺼운 은행 통장 내역을 가리켰다.
통장 내역 곳곳에는 형광펜으로 색칠이 되어 있었다.
예를 들어 거래명세표에 자재 대금 1억이라고 적혀 있으면 당연히 장부에도 1억에 대한 분개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대금은 법인 통장에서 거래처 통장으로 빠져나갔을 테고.
직원은 가장 기본적이고 필수지만 지루한 확인 작업 중이었던 것이다.
나는 바닥에 늘어져 있던 거래명세표를 좌르륵 훑었다.
그리고 그 거래명세표에 적혀 있던 자재 납품 회사의 재무제표를 찾아 확인했다.
눈앞에 어른거리는 숫자를 보자 절로 이마가 찌푸려졌다.
“이거 실제 거래 금액과 다를 것 같습니다.”
“……예?”
“다른 것도 아니고 다를 것 같다고요?”
나를 안내하던 직원이 빤히 쳐다보았다.
나는 말실수를 했구나, 하고 아차 했다.
물론 내가 짚지 않아도 시간을 들이면 충분히 찾아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눈에 보이는 걸 어쩌란 말인가.
탈세액이 뻔히 보이는데 모르는 척 지나친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다.
나는 자연스럽게 말을 돌렸다.
“아마 실제 납품 금액을 장부상 부풀려 적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어쩌면 부실공사일 수도 있겠네요.”
“으응?”
앉아 있던 직원이 거래명세표를 빤히 들여다보았다.
“이것만 갖고도 안다고요?”
역시 이런 쪽 전문가라 그런지 쉽게 납득하는 것 같진 않았다.
직원은 한참 동안 통장과 거래명세표, 부속 서류, 재무제표를 번갈아 바라보더니 잠시 후 고개를 끄덕였다.
“숫자 잘 보는 사람은 머릿속에서 그림처럼 착착 맞춰진다더니 정말 그런가 보네.”
내가 숫자를 잘 보긴 하지.
대답 없이 가볍게 웃어주자 옆에 서 있던 직원이 감탄할 얼굴을 했다.
“이야, 진짜 소문이 과장된 게 아니었구나.”
“소문이요?”
“만나보면 왜 이례적으로 특조팀이 탄생했는지 알게 될 거라고요. 공훈 세워서 특진하는 거야 종종 있는 일이니까. 그런 종류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진짜 보니까 알겠네요. 확실히 눈이 달라, 눈이.”
직원은 반짝이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부담스러워진 내가 멋쩍게 웃었다.
앉아 있던 직원은 양손을 흔들었다.
“도와줘서 고맙습니다! 후딱 정리해서 조사과 넘기고, 뭐 나오는 대로 특조팀에도 알려 드릴게요!”
“감사합니다. 꼭 좀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이제는 정말 과장을 만나러 갈 시간이었다.
아까보다 한층 정중해진 직원의 안내와 함께 과장실 앞에 도착했다.
“그럼 얘기 나누시고, 다음에 뵙겠습니다.”
직원이 화이팅 포즈를 취해 보였다.
피식 웃으며 직원을 떠나보낸 후 과장실 문을 두드렸다.
“들어와.”
과장실 안은 밖과 다르지 않았다.
소파와 테이블 위에 가득 쌓인 서류 뭉치가 압도적이었다.
“아, 저거. 검토 끝난 것들입니다. 조사과에 인계해야 하니까.”
앉을 자리가 없자 과장이 서류를 치우려 일어나길래 내가 만류했다.
“과장님, 바쁘신데 죄송합니다. 한 가지 더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응? 어디 털 데가 더 있나요?”
“내일, 바로 서롱 갤러리를 털 겁니다. 하지만 저희 팀은 저까지 해도 5명뿐이라서요.”
보통은 한 과 한 팀에 열 명 정도다.
팀에서 또 몇 명씩 반을 짜서 일을 맡다가 인원이 필요하면 팀 전체가 동원되기도 한다.
지금처럼 과 전체가 동원되는 것도 가끔 있는 일이었다.
그러나 우리 팀은 동원할 사람이 없다.
애초에 예외적으로 꾸려진 팀이니까.
“하긴 거기는 백업도 없군요.”
“예. 5명으로는 부족합니다. 현장 조사에 도움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과장님의 법인세과라면 믿고 맡겨도 될 것 같습니다.”
업무적으로도 유능하고 직원들의 보안도 믿을 수 있다.
두 가지 모두 포함한 말이다.
과장은 너털웃음을 지었다.
“신 팀장이 그렇게 말해주니 기분은 좋네요. 좋습니다. 내일 두 팀을 보내두겠습니다.”
***
서롱 갤러리는 특별 전시를 위한 준비가 한참이었다.
“부딪히지 않게 조심해요. 거기! 장갑 똑바로 끼고! 손목이 보이잖아. 스치기라도 하면 어쩔 거야!”
갤러리의 관장 서지숙은 직원들이 그림을 옮겨오는 것을 보며 발을 동동 굴렀다.
“그게 얼마짜리인 줄 알아? 당신 월급 10년 동안 모아도 못 사는 거야!”
전시회를 준비하면서 관장이 난리 치는 거야 하루 이틀 일이 아니었다.
특히 오늘은 특별 전시회를 앞둔 준비라 평소보다 그 정도가 심했다.
직원들은 관장의 눈치를 보며 조심스럽게 그림을 옮겼다.
“어우, 왜 이렇게 굼떠? 얼른얼른 못 해요? 대충 갖고 가요. 옮길 게 얼마나 많은데.”
직원은 흰 종이에 싸여 놓여 있는 그림을 보더니 당황한 얼굴을 했다.
아까만 해도 조금만 삐끗했다가 관장의 잔소리를 들은 참이었다.
관장이 원하는 ‘빠르지만 조심스럽게’는 양립할 수 없는 것이다.
“저, 관장님. 이것도 특별 전시 품목이라 주의해서 옮기고 있습니다.”
조심스럽게 항의하자 관장이 코웃음을 쳤다.
“보는 눈이 없으면 눈치라도 있어야죠. 빨리 옮겨요.”
관장이 하는 말이 무슨 뜻인지 직원은 이해하지 못했다.
그저 시킨 대로 손을 바쁘게 움직일 뿐이었다.
“일단 여기 있는 건 싹 걸어놔요. 11번부터 19번 자리까지. 알았어요?”
분주히 움직이는 직원들을 못마땅한 눈으로 흘겨보던 관장은 핸드폰을 보더니 다급히 사무실로 들어갔다.
평소 자주 미술품을 사 가던 큰손이었기 때문이다.
“어머! 이사님 안녕하세요! 잘 지내셨죠?”
아까 직원을 대할 때와는 전혀 다른 톤의 목소리였다.
관장이 웃음까지 섞어 가며 애교를 부렸지만 전화 너머의 이사는 한숨을 푹푹 쉬었다.
“무슨 일 있으세요, 이사님? 혹시 금액이 많이 비시나요?”
상대는 건설사 재무이사다.
그것도 항상 정규 증빙에 목마른 건설사.
‘대놓고 힘들다는 티를 내네. 증빙 더 끊어 달라는 소리야, 뭐야.’
관장은 내심 불만스러웠지만 거래처와 앞으로도 원만한 관계를 이어가려면 어느 정도의 양보는 필수였다.
관장은 큰 결심을 한 것처럼 가벼운 한숨을 섞어 말했다.
“이사님, 많이 어려우시면 3억까지는 더 끊어 드릴게요. 하지만 저희도 3억 끊으면 세금을 그만큼 더 내야 하거든요. 20%는 부담을 해 주셔야 합니다?”
미술관은 현재 법인으로 등록되어 있다.
당연히 세금이 싸기 때문이다.
여기서 3억을 추가 매출로 잡고 정규 증빙인 계산서를 끊어 준다면 미술관은 법인세율인 20%만큼 세금을 더 내게 된다.
상대 회사인 건설사는 3억 원만큼 법인 통장에서 빈 돈을 해명할 수 있을뿐더러 세금도 줄일 수 있다.
그러니 관장이 리베이트를 요구하는 것은 당연했다.
이것은 평소에도 있었던 거래였기에 당연히 이사가 고마워할 줄 알았다.
겸사겸사 그림도 하나 더 팔고.
그런데 이사의 목소리는 나아질 기미가 없었다.
-그게 문제가 아니에요. 지금 우리 회사에 세무조사가 나왔습니다.
“세, 세무조사요?”
관장의 목소리가 절로 높아졌다.
뒤가 켕기는 것이 많을수록 조그만 것에도 놀라게 되는 법이다.
심지어 세무조사에 선정되었다고 전화 온 것은 이 회사가 처음이 아니었다.
며칠 전 거래처 중 또 다른 회사에서 세무조사 중이라는 연락을 했던 것이다.
“이원건설도 나왔던데 일주건설도 나왔다고요?”
-아, 이원도 나왔구나.
원래는 본인이 세무조사를 받는다고 거래처에 알리지 않는다.
신뢰를 떨어뜨리게 되니까.
하지만 서롱 갤러리와 연관된 거래처는 사정이 달랐다.
서로 단순히 그림만 사고파는 것이 아니다.
가짜 계산서가 오고 간 사이, 즉 한 배를 탄 사이다.
하나가 걸리면 다른 하나가 걸리니 서로 정보 공유를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게 무슨 일이죠? 한꺼번에 세무조사라니…….”
관장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혹시 갤러리도 조사가 나오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다.
-관장님은 아직 못 들으셨나? 건설업 전수 조사한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