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0화. 가치의 추상 (3)
이원건설의 건설현장 회계팀 분위기는 항상 살얼음판이었다.
회계팀이라고는 해도 팀장과 경리, 단 둘 뿐이지만.
상사가 갈군다거나 거래처가 말썽이라거나 그런 문제 때문은 아니었다.
좋게 생각하자면 그런 문제는 어느 회사든 있는 고질병이나 다름없으니까.
“거기 경리 아가씨! 오늘 사람 썼어!”
“노무대장은요?”
“바쁜데 언제 그런 걸 써. 어제 온 최 씨랑 저번 주에 왔던 강 씨 추가로 불렀으니까 좀 만들어 줘.”
“아, 현장에서 아침에 적어주시면 되는데…….”
현장소장에게 대놓고 말하지 못한 경리는 입속으로 작게 중얼거렸다.
항상 이렇게 주먹구구식이었다.
다른 회사에서 배워 온 회계는 여기서는 써먹을 기회조차 없었다.
건설 현장이라는 곳 자체가 워낙에 과격하기 그지없고, 온갖 종류의 사람들이 오다 보니 부딪히지 않는 것이 속 편했다.
‘에휴. 그냥 내가 쓰자.’
경리는 일용직 노무대장에 일한 사람의 이름과 주민등록번호, 금액을 적었다.
“현장소장님, 알려주신 금액이랑 돈 나간 금액이 안 맞는데요?”
“안 맞아? 에이씨, 나도 모르는데.”
“잘 좀 생각해 주세요. 저 이사님한테 혼난단 말이에요.”
경리가 울상을 지었다.
현장소장은 난로 앞에 앉아 잠시 생각하는 듯하더니 곧 머리를 벅벅 긁었다.
“아가씨가 잘 좀 맞춰 봐. 우리 같은 사람은 그런 거 잘 몰라. 분명히 일당 13만 원씩 나갔단 말이여.”
“현장에서 일하는 분이 모르시면 저는 진짜 몰라서 그래요. 한 번만 더 생각해 주세요.”
“아, 모른다니까! 그거 그냥 숫자 놀음 아녀! 대충 잘 맞춰 봐. 그런 거 하라고 경리가 있는 거지.”
결국 현장소장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화를 내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고된 일을 마치고 올라와 잠시 쉬는 와중에 경리가 별것도 아닌 걸로 자꾸만 귀찮게 구니 짜증이 났던 것뿐이다.
그러나 경리는 금세 얼굴이 어두워졌다.
-타닥타닥.
조용해진 사무실에서 경리가 열심히 계산기를 두드렸다.
이제야 겨우 살겠다는 듯 소장이 의자 등받이에 머리를 대고 잠에 들었다.
소장의 코 고는 소리가 조금씩 커질 무렵 사무실 문이 벌컥 열리며 젊은 남자가 들어왔다.
건설사 사장의 아들이자 이사인 남자로, 현장 책임을 맡고 있었다.
그는 좁은 사무실에 들어오자마자 눈가를 찌푸렸다.
“정리 좀 하라니까…… 소장님은 사무실에서 좀 이러지 마세요.”
이사는 들어오자마자 잔소리를 퍼부었다.
다만 현장 소장에게는 별 말을 하지 못했다.
기껏해야 사무실에서 대놓고 드러누워 자지 말라는 말뿐.
그마저도 소장은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버렸다.
이사는 혀를 한 번 차더니 경리에게 다가갔다.
“일용직 대장 아직도 하고 있어요? 현장 작업 끝난 지가 언젠데.”
“나간 금액이 달라서요…….”
“거 참, 현장이 원래 그런 거 알면서 어떻게 하루를 제대로 맞추는 법이 없네.”
고개를 숙이는 경리를 보며 이사는 영수증을 툭 던졌다.
“통장에서 5억 인출할 겁니다. 지출결의서는 알아서 하고.”
“예에?”
경리는 고개를 번쩍 들었다.
서둘러 이사가 던진 영수증을 살펴보았지만 정규 증빙이 아니었다.
세법상 인정되는 정규 증빙은 총 네 가지.
세금계산서, 계산서, 신용카드 영수증, 현금영수증이다.
그러나 이사가 가져온 것은 어디 어디에 뭘 쓰겠다, 하는 거래명세서 뿐이었다.
“하다못해 계약서라도 주셔야 해요. 지금 이미 가지급금이 30억인데 여기다 5억이 더 나가요?”
“건설사는 원래 다 그래요. 현장 굴러가는 거 잘 모르면 그냥 시키는 대로 해요.”
이래서 살얼음판이라는 것이다.
건설사 경리로 들어가겠다고 했을 때 친구가 말린 이유를 뼈저리게 깨닫는 중이었다.
‘내가 현장은 몰라도 회계 일은 너보다 훨씬 잘 알아, 인마. 나중에 세금 많이 나온다고 나한테 뭐라고 할 거면서…….’
어디에 쓴답시고 회사 돈을 마구 빼 가는데, 정작 증빙은 없다.
팀장 말로는 이것이 관행이라고 한다.
예전부터 비일비재한 일이라 대수롭지도 않다던가.
정상적이지 않은 재무제표, 증빙 없는 금액 처리.
언제 세무조사가 나와도 이상하지 않다.
그러니 매일매일이 불안했다.
일개 직원이 회사 회계 사정을 걱정하는 것이 웃긴 일이다.
그래도 자신이 경리 업무를 맡고 있는 이상 책임의 문제도 있으니 신경 쓰이는 것이다.
아침에 눈을 뜨면 ‘오늘도 제발 무사히 지나가게 해 주세요’라고 기도하고 출근한다.
그러나 월급 주는 상사, 그것도 사장의 아들에게 불만을 표할 수는 없는 일이다.
경리는 조심스럽게 항의해 보았다.
“세금계산서 혹시 없나요? 진짜로 나중에 세금 나올까 봐 무서운데요.”
“회사 하루 이틀 한 게 아닌데 이런 걸로 세무조사 안 나와요. 그 뭐냐, 오늘내일 중으로 서롱 갤러리에서 5억짜리 세금계산서 하나 올 거예요.”
“갤러리면 미술관이에요?”
“저번에 나간 5억에 대한 대금이에요. 그런 줄 알고 있으면 되고. 팀장님, 나머지도 잘 부탁합니다.”
“예, 이사님.”
이사와 회계팀장이 서로 눈빛을 교환한 후 이사가 사무실을 나갔다.
정말 영수증만 전달하러 온 모양이었다.
경리는 고개를 갸웃하다가 팀장에게 질문했다.
“저번에 나간 5억이면 어떤 거예요?”
“작년 말에 선급금으로 잡아둔 돈 있지? 거기서 상계하면 돼.”
통장에서 돈이 나갔는데 이유를 모르면 가지급금이다.
그러나 현재 이원건설은 가지급금이 너무 많아 재무제표에서 보이지 않도록 숨겨야 했다.
그 결과 쓴 계정이 선급금이다.
나중에 정규 증빙 받을 예정이니 먼저 거래처에 돈을 줬다.
대충 그런 뜻이다.
“그야 상계하면 되긴 하는데…… 대체 어떤 그림이길래 5억이나 해요?”
팀장은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본사 1층에 걸린 쪼그만 그림 있어. 나중에 본사 가면서 한번 봐봐.”
“아, 네.”
대체 어떤 그림이길래 5억씩이나 할까, 자리에 앉은 경리는 메신저를 켰다.
본사 총무부에서 일하는 대리에게 물어보자 대리가 바로 사진을 보내왔다.
-이거밖에 없던데.
-이게 5억이나 한대요.
-으잉? 그래요? 내가 예술 잘 모르긴 하지만 그래도 5억짜리는 아닌 것 같은데.
-아, 저번에 전도금 나갔다고 하셨잖아요. 그거 우리 쪽에는 안 왔는데 회계 처리 어떻게 해요?
-이사님이 출금해가셨는데 입금 안 됐다고요? 미치겠네…….
대리의 한숨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이거 아무리 봐도 비자금 같지 않아요? 대놓고 돈 빼돌린 거잖아요.
-백 프로예요. 빼박. 진짜루.
경리는 홧김에 열정적으로 키보드를 쳤다.
-이거 확 어디 신고해버리고 싶다.
-헉! 주임님 큰일 나요! 저 예전에 다녔던 회사에서 총무부 직원 하나가 그랬다가 바로 잘렸잖아요.
-그럼 다른 데 취업하면 되죠.
-이력서 넣었는데 경력기술서 보고 직전 회사에 전화하면요?
경리는 타자 치던 손을 멈칫했다.
‘설마 진짜로 전 직장에 전화하려나?’
내부고발 했다가 버림받은 경우는 뉴스에서 많이 보아왔다.
경리는 한층 주눅 든 자세로 조심스럽게 메시지를 보냈다.
-혹시 그 총무부 직원은 어떻게 됐어요?
-공무원 됐어요.
-우와!
-그러니까, 주임님이 시험 봐서 다른 직종으로 옮길 거 아니면 하지 말란 뜻이에요.
-네에.
경리는 얌전히 대답하고 메신저를 닫았다.
한참 금액 맞추기에 몰두하고 있을 때 메신저가 과격하게 깜빡이는 것이 보였다.
-주임님주임님주임님 왔어요 왔다고요!
이어서 첨부된 사진을 보자마자 경리를 비명을 질렀다.
[세무조사 사전 통지]
“꺄악! 팀장님!”
“뭔데 호들갑이야.”
경리를 면박 주려고 일어난 팀장도 사진을 보자마자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
“올 게 왔습니다.”
이원건설의 본사에 현장별 회계책임자와 이사가 모였다.
본사의 재무이사는 심각한 표정으로 종이를 한 장 내밀었다.
“세무조사 사전 통지서입니다.”
“솔직히 어느 정도 예상하지는 않았습니까? 여기 앉아 있는 사람 중에 우리 회사 장부 제대로 돌아간다고 자부할 수 있는 사람은 없어요.”
중년 여성이 차갑게 말했다.
이사들이 단번에 불편한 표정을 지었지만 중년 여성은 단호했다.
“세금 낸다고 생각하셔야 할 겁니다.”
“이 실장, 그걸 지금 말이라고…….”
“이미 예고된 상황 아니었습니까? 아니면 다른 방법이 있으신가요?”
분위기가 험악해지자 재무이사가 펜으로 테이블을 두드려 주목을 모았다.
“이미 넘어간 일은 어쩔 수 없습니다. 앞으로 어떻게 할지를 생각해봅시다. 일단 제일 중요한 전도금은 지켜야 합니다.”
재무이사가 말한 전도금이 단순한 전도금이 아닌 것은 여기 있는 모두가 알고 있었다.
보통의 회사에서 말하는 전도금이란 본사에서 지점, 또는 현장에 먼저 내려보내는 돈을 말한다.
현장에서 돈이 얼마나 필요할지 모르는데 본사의 결재를 기다릴 시간이 없는 경우가 있다.
그럴 때는 예산을 짜기 전에 먼저 운영비를 보내주는 것이다.
그래서 중간에 전도금을 빼돌리기가 쉽고, 또 흔했다.
그건 이원건설에서도 마찬가지였으며, 그렇게 사라진 돈이 누구에게 갔는지 말하지 않아도 다 알고 있었다.
“법인세는 까짓 거 내도록 합시다. 대신에 전도금만은 지켜야 해요. 모두 아시겠습니까?”
회계책임자들은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세무조사 나오기 전까지 최대한 장부 예쁘게 정리해 두시고…… 거기 이 실장님 뭐 하십니까?”
재무이사가 째릿 노려보자 실장이 핸드폰을 들어 보였다.
“아는 실장들입니다. 지금 우리만 나온 거 아니에요. 건설사 전반에 걸쳐 세무조사 나왔습니다.”
“건설사 전반이라고요? 올해 목표는 건설사인가?”
정부 정책과 그해 경제 상황에 따라 국세청이 파고드는 업종이 달라지곤 한다.
예를 들어 한 해운 회사가 부실 경영으로 파산했을 때는 국세청에서 앞장서서 무역 업종 전반을 전수 조사했다.
주식으로 장난친 사람이 많던 해에는 법인의 주식 변동 상황 명세서라는 서식만 전문적으로 보는 전담팀이 설립된 적도 있을 정도였다.
“올해 건설사에서 뭐 터진 거 있습니까?”
재무이사가 눈을 둥그렇게 뜨고 긴장된 얼굴로 물었다.
“제가 알기로는 없습니다. 하지만 조사 대상 선정은 무조건 내부 기준이니 우리는 알 수 없죠.”
“크흠. 그래도 업종 전반 조사면 적당히 건드리고 지나가지 않을까요? 건설사 중에는 우리 말고도 재벌도 많은데. 전도금 건드리면 그건 다 같이 죽자는 거지.”
재무이사는 희망적인 관측을 내놓았다.
그러면서도 회계 책임자들에게 엄포 놓는 것을 잊지 않았다.
“이번 주 내로 최근 5개년도 장부 깔끔하게 정리하세요. 재무제표는 마감되었으니 건드리지 말고 원장만 정리해야 하는 거 다들 아실 겁니다. 가장 많은 세금이 나오는 현장은 감봉하도록 하겠습니다.”
곳곳에서 회계 책임자의 불만이 터져 나왔다.
***
나는 서울청 1층에 서서 줄지어 박스가 들어오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서에서 봤던 것과는 규모부터가 수준이 달랐다.
나와 우리 팀은 인원수가 적기 때문에 보통 현장에서 직접 조사하고 필요한 것들만 추려서 가져온다.
그런데 서울청의 조사관들은 어디다 저 많은 걸 싣고 왔나 싶을 정도로 끝없이 자료를 들고 날랐다.
아예 회사를 통째로 털어온 것 같았다.
그렇다고 내가 도와주겠다고 나설 수도 없었다.
애초에 조사관끼리는 팀이나 반이 다르면 자기들이 조사하는 대상의 이름조차 말하지 않는다.
밖으로 새어나가지 않도록 철저한 보안을 지키고 있는 것이다.
내가 부탁한 것이고 내가 필요한 자료지만 저들은 절대 다른 팀인 내게 자료를 보여주지 않을 것이다.
자료가 넘어올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 답답했지만 어쩔 수 없다.
저들은 나보다 훨씬 오랜 세월 서울청에서 일해온 노련한 조사관이니 믿고 맡겨두면 된다.
잘 손질된 재료가 넘어올 것이다.
“팀장님! 여기 계셨네요.”
뒤를 돌아보니 황민우가 엘리베이터에서 막 내려서 달려오고 있었다.
“자료가 넘어오기 시작했습니다.”
“벌써요?”
“팀장님이 지정하신 문건을 최우선으로 추려서 넘긴답니다. 실시간으로 한 회사씩 오고 있어요.”
나는 혀를 내두르며 바쁘게 움직이는 조사관들을 바라보았다.
아직도 저렇게 옮기고 있는 자료가 한창인데 한쪽에서는 분류가 끝나 벌써 넘어온단 말인가.
이게 바로 조직인가 싶을 정도로 유기적인 움직임이었다.
“거래처가 털리고 있으니 어쩌면 경계할 수도 있어요. 속전속결입니다.”
오늘부터 야근이구나.
나 때문에 야근이 확정된 법인세과의 조사관들과 함께 엘리베이터에 탄 우리는 사무실로 향했다.
다음 목표는 드디어 서롱 갤러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