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국세청 망나니-127화 (127/500)

127화. 성과 발표

“70%라고 하지 않았나?”

청장이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권현아 역시 마찬가지였다.

“전체 작업량에 비해서는 70%가 맞습니다. 아직 토지에 대한 과세가 남았거든요.”

내 손에 들린 서류와 내 얼굴을 번갈아 바라보던 청장이 문득 입을 열었다.

“혹시 부동산 전반에 대해 조사하려고 했나?”

“전반까지는 아닙니다. 간략하게 토지, 다주택자, 그리고 갭 투자에 대해 조사하려고 했죠.”

“전반까지는 아니어도 작정하고 물었군.”

청장이 허어, 하고 탄식했다가 서류를 받아들었다.

한 장 두 장 넘겨 가던 청장이 갭 투자 건을 쿡 짚었다.

“요즘 경찰 쪽에서 공문이 오고 가던데 그게 이 건인가? 뭐야, 기획부동산까지 잡았어?”

“네. 파다 보니 나왔습니다.”

“파다 보니 나왔다라…….”

권현아가 내 옆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보는 것이 느껴졌다.

굉장히 부담스러울 정도였다.

청장은 뭐라 말하고 싶은 것이 있는 눈치였지만, 이내 서류에 집중했다.

“자료는 어느 선까지 넘겨줬지?”

“제가 아는 것은 전부 다 줬습니다.”

사기의 경우 피해자는 실제 정보와 다른 정보를 얻고 틀린 의사결정을 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사기범 놈이 알고서 피해자의 착오를 유도했는지 입증하는 것이 문제다.

그거야 저쪽에서 할 일이긴 하지만 이런 사건의 경우 자료는 풍부할수록 좋다.

“흐음…….”

청장이 다시 서류로 눈을 돌렸다.

-사락.

종이 넘기는 소리와 함께 잠시 침묵이 흐르고 청장이 결재권자 란에 서명을 했다.

내 것과 권현아 팀장의 것까지 모두 함께였다.

“둘 다 수고했어.”

나와 권현아는 공손히 고개를 숙였다.

“내가 왜 같은 건을 줬는지는 알 테니 자세히 설명하진 않으마.”

“예.”

“민치호의 방식은 한 번 검증한 놈에게 더없이 큰 것을 들려 줘서 그 밑바닥까지 긁어내는 것이지.”

실제로 내가 겪어 본 바도 그랬다.

보통은 사람을 시험할 때 마음의 여유가 남지 않도록 몰아붙여 숨겨진 면을 끌어낸다.

그러나 민치호는 반대였다.

감당하지 못할 만큼의 힘을 쥐여 준다.

그릇에 한계까지 물을 따라보고, 한 방울을 더한다.

감당하지 못하고 깨지면 그만.

주제도 모르고 넘치면 그만.

청장도 민치호 국장의 방식을 잘 아는 듯했다.

“하지만 나는 반대야. 밑바닥부터 올린다. 이 조직은 피라미드야. 밑에서부터 서로 부딪히고 또 부딪혀서 갈고 닦아 살아남는 놈이 위로 올라가는 거지.”

청장의 눈동자에 열기가 흘렀다.

“그렇게 수많은 인재 가운데서 다듬어 위로 올리는 것이 내 방식이다.”

나는 언뜻 청장이 내게 설명하려 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정확히는 납득시키려 하는 것 같았다.

“내가 너희에게 경쟁을 유도한 건 맞지만, 여기서 명심할 건 하나다. 너희는 적이 아니야. 동료다. 누구를 치고 누구와 손을 잡아야 하는지는 항상 염두에 두도록.”

역시나 청장은 본론을 끄집어냈다.

나와 권 팀장을 싸움 붙였지만, 그로 인해 박 터지지는 말라는 뜻인 것 같았다.

그야 당연한 말이다.

경쟁은 향상을 위해 하는 거니까.

어?

고개를 끄덕거리다가 나는 묘한 기시감을 느꼈다.

이런 상황과 구도는 어디서 많이 본 것이었다.

그러나 차마 청장에게 대놓고 물어볼 수가 없어 질문을 꿀꺽 삼켰다.

“이 결과는 바로 신문에 실릴 거다.”

“신문이요?”

“국세청장님은 결과를 원하시지. 물론 나도 원하고. 재촉한다고 뚝딱 결과가 나오는 건 아니라지만, 겉으로 보여 주는 것도 중요해.”

체납징세과 때도 느꼈던 것이다.

기존의 틀을 유지한 것이 아니라 ‘특수’라는 이름을 붙일 만큼 새로운 시도를 했으니 무언가를 보여 줘 하는 것이다.

“우리는 세금으로 월급 받는 공무원이다. 밥값은 한다고 알려 줘야지.”

청장도 이런 생각을 하는구나.

어쩌면 나는 청장이 민치호 국장과 적이라는 이유만으로 그동안 선입견을 가지고 그를 봐왔는지도 모른다.

청장은 만년필 뚜껑을 닫고는 권 팀장과 나를 순서대로 가리켰다.

“신문엔 둘 다 나간다. 다주택자 조사 결과는 권현아 제1팀장, 사기를 잡아낸 건은 신재현 제2팀장. 이렇게다.”

청장은 매우 공평하게 지분을 나눴다.

납득할 만한 결과다.

“알겠습니다.”

청장이 결재서류를 돌려주자 나와 권현아는 옆구리에 끼고 나란히 청장실을 나왔다.

복도로 나오자 나는 아까부터 궁금했던 것을 물었다.

“혹시 서울청장님께서는 국세청장님 밑에서 일한 적이 있습니까?”

어쩐지 나와 권 팀장을 경쟁하게 만드는 것은 지금 국세청의 전체적인 구도와 닮아 있었다.

서로 견제하고 부딪히되 그것이 선의의 경쟁으로 이어지게 하는 것 또한 현재 국세청장의 방식과 똑같았다.

“맞아요. 서울청장님께선 국세청장님 밑에서 일한 적이 있으세요. 민치호 국장님이랑 같이.”

“민치호 국장님과 같이요?”

“네. 소싯적부터 라이벌이었죠.”

어쩐지 중부청장은 눈에 잘 띄지 않는데, 저 둘만 박 터지게 싸운다 했더니 유서 깊은 역사가 있었구나.

“그런데 라이벌 관계가 성립합니까? 아무리 민 국장님이 능력 있다 하셔도 서울지청장과 본청 국장의 싸움인데.”

“민 국장님이 좀 늦게 공무원으로 들어오긴 했지만…… 음, 지금의 신 팀장이랑 느낌이 비슷했거든요. 앞뒤 안 가리고 달려드는 게.”

예전에 언뜻 들었던 것 같다.

나는 권현아와 함께 사무실로 돌아가는 복도를 걸으며 물었다.

“그건 민치호 국장님께서 서울청장님과 함께 계실 때의 일입니까?”

“그렇대요. 근데 당시에 세 분이 무슨 힘이 있겠어요. 하도 셋이 뭉쳐서 윗분들 심기 거스르고 다니니까 뿔뿔이 흩어 놓았는데, 거기서 도로 여기까지 올라오는 데 힘들었나 봐요.”

“아…….”

나는 나지막하게 한탄했다.

대충 상상은 간다.

지금 내 경우야 민치호나 다른 상사들이 위에서 가려주고 덮어 주지만, 만약 그런 이들이 없었다면 나도 지방의 한직으로 밀려났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니 옛날 저 셋은 어땠겠는가.

결국 뜻을 이루지 못하고 팀이 해체되면서 느꼈을 감정은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다.

그리고 이제야 국세청장과 민치호 국장의 행동이 이해되기 시작했다.

국세청장의 경우엔 일부러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내부의 싸움을 방관하고 있다.

방금 서울청장이 말한 대로 서로 부딪히고 갈고 닦아 마지막까지 살아남는 놈을 찾기 위한 것이다.

서울청장이 나와 권 팀장을 경쟁시킨 것도 정상훈 국세청장에게 배웠다고 하면 말이 된다.

반면 민치호 국장은 당시 가장 직급이 낮았을 테니, 상사들이 날아가는 것을 보고 많은 생각이 들었을 것이다.

나와 비슷한 성향이었다고 하니, 내게 대입해보면 쉽다.

세무조사를 하다 누군가를 건드렸다는 이유만으로 지금 내 팀이 조각나 뿔뿔이 흩어진다고 하면 가만있지 않을 테니까.

그래서 민치호는 스스로 믿을 수 있는 사람들을 지켜주는 우산이 되기로 한 거구나.

위로, 더욱 위로 올라가서 다른 기관의 고위 공무원과 손을 잡고 후학을 키운다.

수십 년에 걸친 집념이다.

“……열심히 해야겠습니다.”

“이미 잘하고 계신데요. 방금 건은 생각지도 못했거든요.”

“아닙니다. 권 팀장님이야말로 저보다 한발 앞서나가셨는데요.”

권현아와 나와 조사한 대상은 같다.

그런데 권현아가 과세한 건은 413명, 내가 과세한 건은 319명이다.

같은 조건이라면 당연히 숫자가 높은 쪽의 승리다.

“단순히 숫자로 따지자면 그렇겠죠. 하지만 신 팀장님은 폭넓게 들여다봤으니까요. 오히려 과세자료를 319건이나 완료한 것만 해도 대단합니다.”

사실 나는 눈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명단만 작성된다면야 추려내고 과세하는 거야 누구보다 빠르게 할 자신이 있다.

이제는 숙달이 됐으니까.

이 과세가 맞는지, 틀린지 고민하면서 시간이 들지도 않는다.

“서로 한 번씩 주고받았군요. 좋은 경험이었습니다.”

“저도 재밌었습니다. 앞으로도 이런 식이었으면 좋겠네요.”

어느덧 사무실 앞에 도착했다.

나와 권현아는 각자의 사무실 앞에 서서 웃어 보이는 것으로 인사를 대신했다.

***

나학진은 카페 구석에 앉아 신문 세 개를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

어느 한쪽 의사에 편향되지 않도록 나학진은 항상 세 개의 신문을 동시에 보았다.

커피를 한 모금 홀짝인 후, 그중 하나를 집어 들었다.

몇 장 지나지 않아 원하던 기사가 보였다.

기사가 실린 것은 무려 7면.

중요한 것 순으로 싣는 신문의 특성상 7면이면 꽤 신경 써 준 편이었다.

[서울지방국세청의 두 특수팀]

-지난 1월 발족한 서울지방국세청의 특수조사1팀과 2팀은 오늘 2달 간의 성과를 발표했다.

특수조사1팀의 경우 서울의 다주택자 413명을 전수조사해 탈세 혐의자에 대해 과세권을 행사했다고 밝혔다.

“1팀도 대단하시네. 역시 서울청 에이스다워.”

나학진은 1팀의 활약을 빠르게 읽어나갔다.

그러다 문단이 바뀌고 2팀이 나오자 갑자기 자세를 바로 했다.

-특수조사2팀의 팀장은 작년 류석호 전 국회의원의 탈세 혐의를 조사해 화제가 된 세무공무원 신재현이다. 이번 특수조사2팀의 활약 역시 눈부시다. 세무조사 과정에서 부동산 기획 사기를 꾸민 일당 셋을 발견해 파헤쳤는데, 이들의 기획 사기는 피해액만 150여억 원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캬! 역시 서울청 가서도 변함 없으십니다!”

글자 하나하나 꼼꼼히 읽어 내려간 나학진은 감탄을 터뜨렸다.

혼자서 신문을 보고 싱글벙글하는 나학진을 보고 주위의 손님들이 이상한 표정을 지었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크. 나도 쓸 만한 기사를 써야 할 텐데.”

“나 기자님이야 항상 쓸 만한 기사만 쓰지 않으십니까?”

“어이쿠, 깜짝이야!”

남자 하나가 앞자리에 불쑥 앉으며 말하자 나학진이 펄쩍 뛸 듯 놀랐다.

갑자기 나타나 깜짝 놀랐다기 보단 혼잣말을 들킨 것이 더 멋쩍은 듯했다.

“저야 항상 노력은 하지요.”

“신문사도 아직 신생 단계 아닙니까. 법적인 요건 채우느라 힘드셨을 텐데. 고생 많으셨습니다.”

“인터넷 신문사는 설립이 쉬워서 괜찮습니다.”

“그래요?”

눈앞의 청년은 눈을 빛내며 귀를 기울였다.

남에게 정보를 전파하는 것을 업으로 삼는 신문기자로서 청년, 신재현은 들려주는 보람이 있는 청취자였다.

“예전에는 발행인하고 편집인을 따로 두고 최소 5명의 편집인을 상시 고용해야 등록이 가능했거든요. 여기서 발행인은 신문 발행 책임자고 편집인은 편집 책임자라고 보시면 됩니다.”

“둘이 다른 거였군요.”

“네. 그런데 몇 년 전 위헌 판결이 나서 이제 1인 신문사도 가능하게 됐습니다.”

“오…….”

때마침 진동벨이 울렸기에 신재현이 카운터로 다가가 자기 몫의 커피를 가져왔다.

공무원과 언론인, 둘 다 김영란법의 대상자였기에 당연히 계산은 따로였다.

“그럼 현재 나학진 기자님 혼자 계시는 겁니까?”

“심별철 사장님하고 둘이 합니다. 지금이야 소규모지만, 돈에 구애받지 않고 눈치 보지 않고 마음껏 기사를 써도 돼서 감사할 따름입니다.”

나학진이 행복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보는 사람이 흐뭇해지는 미소였다.

“잘 지내시는 것 같아 다행입니다. 처음엔 두 분이 같이 오셔서 깜짝 놀랐잖습니까.”

“저도 놀랐습니다. 심병철 사장님이 조사관님하고 아는 사이시라니.”

“자그마한 도움을 드렸을 뿐입니다. 당연히 받으셨어야 하는 몫을 찾아드린 건데요.”

새어머니와 형제들에게 재산을 빼앗긴 심병철은 재판 결과 자신의 몫을 되찾았다.

상속세까지 깔끔하게 정리한 후라 이제는 그 재산을 좋은데 써 보겠다고 열심이었다.

나학진은 심약해 보이는 자신의 사장을 떠올리며 후후 웃었다.

“돈 생각하지 말고 취재하라고 하셔서 정말로 펑펑 쓰고 있습니다.”

“잘 지내시는 것 같아 다행입니다.”

안부 인사를 나눈 뒤 나학진은 가방에서 카메라를 꺼냈다.

심병철이 돈 생각하지 말라고 한 후로 정말 큰마음 먹고 산 카메라였다.

렌즈값만 해도 600만 원에 달하는 고가의 장비였다.

“말씀하신 건입니다. 미술관이요.”

나학진은 본체까지 도합 천만 원에 달하는 카메라를 주저 없이 신재현에게 통째로 넘겼다.

카메라에는 꽤 세련된 건물이 찍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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