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국세청 망나니-125화 (125/500)

125화. 갭 투자(4)

-우당탕!

“아악! 이 새끼 뭐야!”

김두범이 바닥에 요란하게 넘어졌다.

아까까지만 해도 김두범을 한대만이라도 쳐 보겠다고 덤벼들던 중년 부부도 멍하니 바라볼 정도였다.

“으악! 주사보님 사고 쳤다!”

“야, 미친놈아! 나도 참고 있는데 네가 치면 어떡해!”

“안길진 씨, 팔 좀 잡아요!”

청년, 신재현이 씩씩거리며 사무실 안으로 들어가자 일행이 우르르 따라 들어오며 신재현을 말렸다.

“잠깐만요. 한 대만 더 때리게.”

“이미 한 대 때리셨어요! 그리고 말하기 전에 때리는 게 어딨어요! 말릴 수가 없잖아요!”

“말릴까 봐 미리 때린 겁니다.”

신재현은 당당하게 말했다.

그 논리에 잠시 강혜원이 멍한 표정을 지었다.

“너, 너! 내가 가만 안 둬! 당장 신고한다고!”

“야, 이리 와! 반대쪽도 때리게!”

신재현이 다시 다가가기 시작하자 황민우와 장세훈이 필사적으로 말렸다.

“공무원이 이러면 안 돼! 황민우, 좀 말려 봐! 네 말은 듣잖아.”

“뭐야, 공무원이었어? 너희 잘 걸렸다. 청와대에 직빵으로 민원 넣을 거야, 내가.”

“민원? 넣어 봐. 해 보라고, 새끼야.”

안길진은 김두범을 붙잡고, 황민우와 장세훈은 신재현을 붙잡았다.

황민우는 안 되겠다 싶었는지 팔을 놓고 신재현 앞을 가로막았다.

“황민우, 얼른 잡…….”

장세훈의 말을 끊고 황민우가 소리 질렀다.

“신재현! 정신 차려! 너 답지 않게 왜 그래!”

그 순간 신재현이 제자리에 우뚝 멈춰 섰다.

그 황민우가 신재현에게 반말로 소리치다니.

팀원들의 시선도 저절로 황민우에게 돌아갔다.

신재현이 말없이 심호흡하자 황민우는 다시 원래의 어조로 돌아갔다.

“팀장님은 화가 난다고 무작정 때려 패는 분이 아니셨잖습니까. 그런 다혈질은 우리 팀에 한 명이면 충분합니다.”

괜히 찔린 장세훈이 ‘나?’하고 자신을 가리켜 보이자 강혜원이 찌릿 눈치를 줬다.

“팀장님, 정신 차리셨습니까?”

신재현은 후우, 숨을 내쉬고 뒤를 돌아보았다.

강혜원과 그 옆에 서 있는 중년 부부가 보였다.

처음 사무실 문이 열리고 중년 여자가 밖으로 끌려 나올 때, 그 위에 어머니의 모습이 겹쳐 보였다.

그 뒤에 중년 여자를 붙잡은 남자의 얼굴을 보자마자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1,568,810,910]

“후…….”

자신답지 않은 짓을 했다는 건 신재현도 잘 알았다.

하지만 후회는 하지 않았다.

사무실 밖에서 들은 내용으로 미루어보아 저 놈은 맞을 만한 놈이니까.

“모두 죄송합니다. 진정됐습니다.”

신재현이 옷을 매만지며 넥타이를 조이자 팀원들이 일제히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문제는 김두범이었다.

“어어, 너희끼리만 얘기 끝나면 다야? 난 아직 안 끝났거든.”

“잘됐네요. 저도 이제 시작입니다.”

신재현은 살기등등한 얼굴로 사무실 문을 닫았다.

강혜원은 중년 부부와 함께 사무실 밖에 남은 채였다.

“허, 공무원이라고 했지? 민원 폭탄이 얼마나 무서운지 알아?”

김두범은 으름장을 놓았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머릿속에 무언가 걸리는 느낌이 들었다.

분명 어디서 본 것처럼 이 일행의 얼굴이 너무나 낯이 익었다.

고객은 당연히 아니다.

직업이 공무원이라면 기억에 남았을 테니까.

그렇다고 자신이 민원 처리하러 들린 구청이나 세무서의 공무원도 아니다.

애초에 잠깐 일 보러 들린 관공서의 공무원 얼굴은 머리에 담아두지도 않는다.

‘대체 어디서 봤지.’

답답함이 쌓여 갔지만 일단 의문은 머리 한구석에 미뤄 두었다.

지금은 이놈들을 어떻게 엿 먹일지가 관건이었다.

“관등성명부터 대라, 자식들아.”

김두범의 말에 중개법인 대표를 제외한 공무원들이 일제히 주머니와 지갑에서 명함을 꺼냈다.

그중 한 명은 A4용지도 한 장 꺼냈다.

“서울지방국세청 특수조사 2팀입니다. 원하시는 관등성명 여깄습니다.”

신재현은 꺼낸 명함을 던지듯 테이블 위에 올려 두었다.

그리고 이어서 꺼낸 A4용지 크기의 서류를 들이밀었다.

그것을 본 김두범이 기겁했다.

“세무조사? 당신들, 국세청이라고 이렇게 쳐들어와도 되는 거야? 세무조사 할 때는 최소한 2주 전에 통지해야 되는 거 내가 다 알고 있어!”

“2주가 아니고 15일입니다. 그리고 원래는 그게 맞는데 귀하에 대해서는 국세기본법 제81조의 7, 제1항 단서에 따라 사전 통지를 생략하였습니다.”

퉁명스러운 신재현의 말투에 김두범이 어이없는 얼굴을 했다.

“그런 뭣 같은 법이 어딨어!”

“불만 있으면 국회에 따지시구요.”

“당신들, 지금 기고만장하다 이거지? 내가 당신들 이름 다 외워 둘 거야. 나중에 각오하라고.”

김두범은 손가락으로 공무원 한 명 한 명을 가리키고는 테이블에서 명함을 집어 들었다.

“서울지방청이라 이거지? 이름이 신…….”

그리고 명함을 든 상태 그대로 굳고 말았다.

“신재현?”

김두범은 명함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뭔가를 잘못 봤다는 듯 눈을 비비기도 했다.

그러나 명함의 글자가 바뀌는 일은 없었다.

“…….”

김두범이 흘끔흘끔 주위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신재현은 자료를 뒤지라는 지시를 내리고 있었다.

‘조졌다. 정말 조졌다. 조금만 더 하면 외국으로 뜰 타이밍이었는데 왜 하필 이 새끼가 나타나서…….’

신재현이 뚜벅뚜벅 책상에 있는 컴퓨터 쪽으로 다가가자 김두범은 벽으로 비켜섰다.

신재현이 옆을 지나가는 와중에도 김두범의 머릿속은 팽팽 돌아가고 있었다.

‘국회의원까지 잡은 놈이 민원에 꿈쩍이나 할까? 조졌다…… 저놈이 뒤지기 시작하면 진짜로 끝인데. 안 되겠다, 도망치자.’

지금까지 모은 돈이라도 건지려면 그 수밖에 없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것이 최선이었다.

김두범은 직원들이 바쁘게 사무실을 뒤지는 사이에 냅다 문으로 달렸다.

-벌컥.

“꺄악!”

그리고 문 앞에 서 있던 강혜원과 마주쳤다.

“씨발, 비켜!”

“혜원 씨! 조심해요!”

좁은 복도에서 갑작스럽게 나타나 위협하는 남자의 등장에, 강혜원은 저도 모르게 손을 올렸다.

-짜악!

바로 조금 전까지 신재현의 폭력 사태를 봤기 때문일까.

아니면 그동안 장세훈과 페어로 다녔기 때문일까.

강혜원이 무의식적으로 날린 손은 아슬아슬하게 김두범의 뺨을 스쳐 어깨에 닿았다.

당연히 김두범에게 타격은 없었지만, 그를 돌아서게 하는 데는 충분했다.

“이년이!”

“누구한테 이년이라는 거야!”

후다닥 달려 나온 장세훈의 무릎이 강혜원에게 다가서는 김두범의 등짝에 작렬했다.

-빠악!

“이 싸가지 없는 새끼야!”

연달아 터진 폭력 사태에 황민우가 천장을 바라보며 긴 한숨을 내쉬었다.

***

서울 종로에 있는 서울지방국세청에 돌아온 특수조사 2팀원들의 손에는 무거운 상자가 한 아름 들려 있었다.

다들 어딘가 지치고 피곤한 얼굴이었는데 단지 무거운 짐 때문만은 아니었다.

“와, 오늘 엄청 사고치고 다녔네요.”

강혜원이 지친 목소리로 말하자 안길진이 새삼스럽다는 얼굴로 받았다.

“원래부터 우리가 정상적인 팀은 아니었잖습니까.”

“그건 그렇죠. 이러고 다니니까 위에서 뽑은 거기도 하고. 그래도 폭력 사태는 좀…….”

“아마 혼나겠죠.”

강혜원과 안길진의 시선이 팀장 책상으로 향했다.

거기엔 가져온 자료를 바쁘게 늘어놓기 시작한 신재현이 있었다.

“장세훈 주사보님만 신경 쓰다 보니 우리 팀장님도 원래는 막 나가는 성격이라는 걸 깜박했네요.”

강혜원은 사무실인데도 팀장이라는 호칭을 사용했다.

처음 왔을 때만 해도 사무실에서는 주사보님이라고 부르곤 했는데 이제는 아예 입에 익었는데 쉽게 나왔다.

“그래도 황민우 서기님이 잘 챙기지 않습니까.”

“제가 듣기로는 용산 서에 있을 땐 아예 납세자한테 쳐들어가서 의자 들고 맞붙어 싸웠대요.”

“팀장님이요?”

“네. 삼성 서 오고 나서는 자제했다고 그러더니…….”

“그래도 아까 그놈은 맞을 만 했어요.”

안길진이 상자에서 테이프를 부욱 뜯어내며 말했다.

강혜원이 함께 들러붙어 장부를 꺼내기 시작했다.

“그러게요. 땅 갈라 팔아먹을 때부터 사기꾼 같다는 느낌은 들었는데 어떻게 갭 투자 이용해서 전세금까지 등쳐먹냐.”

방법은 매우 간단했다.

갭 투자라는 것 자체가 전세금이나 대출금을 끼고 사는 것이다.

적은 자본으로 부동산을 살 수 있지만 나중에 대출을 갚거나 전세금을 돌려줘야 하는 날이 오면 목돈을 한꺼번에 마련해 돌려줘야 한다.

거기서 김두범이 제안한 것이 갚지 말라는 것이었다.

“그게 중개하는 사람 입에서 나올 소리예요? 그리고, 애초에 중개하면서도 갭 투자로 산 사람이 나중에 못 갚을 정도로 경제 능력 빈약하다는 거 다 알면서도 일부러 중개했다는 게 말이나 돼요?”

“그 정도가 아니죠. 그런 사람만 골라서 연결해 주는 대신 수수료를 높게 받았는데.”

못 갚으면 또 팔고, 그 돈으로 또 새 부동산을 전세 껴서 사고.

양심적인 중개업자라면 나중을 위해 경고했을 것이다.

그러나 김두범은 아예 중개업자조차 기피하는 사람들을 끌어들여 매매를 알선해줬다.

강혜원과 안길진이 투덜대며 자료를 정리하고 있자 삐빅, 소리가 나며 사무실 문의 잠금이 열렸다.

장세훈과 황민우가 새로운 상자를 들고 들어왔다.

“밑에 남은 거 있으면 저도 가겠습니다.”

“아냐, 다 가져왔어.”

“어디 보자, 김두범 컴퓨터랑 중개자 내역. 중개법인 중개내역이랑 또 그동안 조사해온 내역들.”

“근데 이거 양이 너무 방대하지 않아요?”

“야근 확정이네요…….”

안길진이 시무룩하게 말했지만 강혜원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 말이 아니라 처음에 분명히 우리 목표가 다주택자 중에서 탈세 있나 보려는 거 아니었어요? 그런데 지금 있는 자료는 부동산 전반인데요…….”

강혜원이 테이블 위에 놓인 자료를 보고는 말끝을 흐렸다.

그때 어딘가와 전화를 마친 신재현이 다가왔다.

“뭐 어떻습니까. 손 가는 대로 다 살펴보죠, 뭐. 청장님이 콕 짚어서 다주택자 보라고 한 건 아니었잖습니까. 그 이상 볼 수도 있고, 다른 걸 볼 수도 있는 거죠.”

“네에.”

“그래도 양이 방대한 건 사실입니다. 일단 다주택자부터 추립시다.”

의욕이 넘치는 건 좋았지만 자료 정리만 하다가 시간만 지나도 곤란했다.

“월드더블유 법인에서 엑셀 자료도 줬으니까 크로스 체크부터 해 보죠. 아, 그리고 김두범 그놈은 출국금지 요청 해 놨습니다.”

“어, 검사님하고 통화하신 거예요?”

신재현이 어느 검사와 친하다는 것은 이제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신재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책상 뒤져보니까 외국 관광지 리플렛이 있더군요. 혹시 몰라서 요청했습니다.”

“빠르시네요.”

짧은 감탄이 흘렀다.

그리고 이후로는 작업의 연속이었다.

입력, 대조, 비교, 맞추기, 맞추기, 맞추기…….

팀원들이 조용히 손과 머리만 굴리고 있을 때 누군가 사무실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문에서 가장 가까이에 있던 안길진이 다가가 열자 1팀장 권현아가 밝은 얼굴로 한 손을 흔들었다.

“늦은 시간까지 고생 많으시네요. 저녁 먹었어요?”

2팀원들의 고개가 일제히 벽에 있는 시계로 돌아갔다.

어느새 6시 반이었다.

“보아하니 아직인가 보네. 그럼 식사 하고 하시죠.”

단순히 식사를 권하러 온 것은 아닐 것이다.

신재현은 황민우에게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늦었으니 식사부터 하고 오세요. 혹시 제가 늦어지면 먼저 퇴근하셔도 됩니다.”

황민우가 조용히 팀원들과 함께 나가자 권현아가 눈짓했다.

“눈치 진짜 빠르네요. 가죠.”

신재현과 권현아는 불이 군데군데 켜진 사무실을 지났다.

야근하는 것은 2팀만이 아니었던 것이다.

“1팀도 바쁘신가 봅니다.”

“응? 우린 아직 정보 수집 단계예요. 2팀도 그렇지 않나요?”

“그렇습니다.”

그 이상의 정보 공유는 없었다.

둘은 약속한 듯이 입을 다물었고 권현아는 신재현을 서울청 밖으로 안내했다.

골목 사이를 요리조리 들어간 권현아는 생각지도 못한 위치의 회색 건물을 가리켰다.

“저 건물이에요.”

가까이 다가가자 건물 입구 머리 위에 새겨진 한자와 그 옆에 동그란 입간판이 서 있는 것이 보였다.

권현아가 앞장서서 지하로 내려갔고, 이윽고 평범해 보이는 국밥집이 나왔다.

“여기 맛있나요?”

“글쎄요, 우리 청장님은 좋아하시더라고요.”

그렇게 말한 권현아가 구석 자리를 가리켰다.

한 남자가 빈 테이블에 앉아 있었다.

권현아가 장난기 도는 얼굴로 신재현을 관찰했지만, 그는 아무런 동요도 없이 코트를 벗어 왼손에 걸고는 테이블로 다가갔다.

그리고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안녕하십니까, 청장님. 오래 기다리셨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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