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4화. 갭 투자(3)
서초동에 위치한 한 빌딩의 5층.
얼기설기 얽힌 서초대로와 빌딩들이 한눈에 보이는 사무실에서 중개업자 김두범은 웃고 있었다.
‘이번 일은 꽤 쏠쏠하네.’
물론 공인중개사 자격증을 딴 정식 중개업자는 아니다.
몇 번이고 시험에 도전했지만, 번번이 고배를 마시곤 했다.
하지만 그게 무슨 대수인가.
이 세상은 돈이 최고다.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은 없다.
즉, 수수료 좀 떼어 주면 공인중개사 중개번호쯤은 금방 구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근데 요즘에 월드더블유 실장 눈초리가 이상하던데. 슬슬 다른 법인을 찾아볼까.’
겉으로는 업계 관행입니다, 고객님께서 절세를 원하십니다, 등등의 그럴듯한 거짓말로 넘어갔지만 그들도 전문가다.
뭔가 이상한 낌새를 느끼고 있는 것 같았다.
‘내 착각일 수도 있지만…… 조심해서 나쁠 건 없지.’
이 나라는 부동산의 상품 가치가 높다.
자연히 중개업자는 자신이 중개하는 부동산의 가치에 따라 몸값이 결정되었다.
김두범 정도라면 어느 중개법인을 가든 좋은 조건으로 계약할 자신이 있었다.
‘쩝. 겨우 중개사 자격증 하나 갖고 일이 이렇게 귀찮을 줄이야.’
자신이 모든 걸 직접 처리하면 프리랜서로서 법인에 수수료를 주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좋게 생각하면 계약서에 중개자인 자신의 이름이 들어가지 않으니 책임을 떠넘기기엔 제격이었다.
‘옛날이 편했는데. 중개사 자격증 없이 계약서만 써주면 장땡이었고.’
김두범은 공인중개사법을 만든 정부를 원망했다.
그깟 자격증 하나로 중개사라 불리지 못하는 데서 오는 자격지심도 있었다.
하지만 자신은 성공자다.
당장 임대료만 해도 300만 원인 서초동의 빌딩 5층에 떡하니 자리 잡은 것도 그랬다.
사업자등록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개인 명의로 사무실을 빌렸다.
부가세 매입세액공제를 받을 필요도 없었기 때문에 세금계산서도 받지 않고 임차료도 현금박치기 했다.
이것이 모두 자신의 능력이었다.
물론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는 과정에서 돈을 잃은 사람이 몇 나오긴 했지만, 그건 투자자의 잘못이다.
‘요즘 세상엔 정보가 곧 힘, 모르는 건 죄야. 누가 내 말만 믿고 투자하래?’
김두범은 책상 위에 놓인 지도를 면밀히 살펴보며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요즘 작업하고 있는 것은 충청도의 산지다.
제곱미터당 15만 원 하던 땅을 사들여 수십 개로 쪼갰다.
산지 전체를 팔면 구매자가 쉽사리 나오지 않는다.
저 넓은 땅을 사자니 가치는 없어 보이는 데다, 금액도 부담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쪼갠다면 이야기가 다르지.’
김두범은 요란하게 울리는 핸드폰을 보고 씨익 웃었다.
며칠 전 직접 충청도까지 불러서 작업 친 투자자의 전화였다.
“예, 사장님!”
-아, 생각해 봤는데요. 그, 혹시 위험성은 없겠습니까? 예를 들어서 그 지역 개발이 안 된다거나.
김두범은 ‘손님’의 목소리에서 미약한 망설임을 느꼈다.
‘이건 거의 넘어오기 직전이다.’
불안함에 확답을 얻기 위한 전화다, 김두범은 자신 있는 목소리로 열변을 토했다.
“사장님, 일전에 말씀드렸다시피 투자라는 건 항상 위험성이 따르는 법입니다. 주식 해 보셨죠? 미래에 오를지 떨어질지 아무도 모릅니다. 그러니 남들보다 앞서 나가기 위해 정보를 수집하는 거고, 위험을 최소화하기 위해 분산 투자를 하는 거죠.”
김두범의 설명은 유창했다.
전화 너머의 투자자도 반박하지 못하고 예, 하고 맞장구를 칠 뿐이었다.
당당하고 자신감 있는 태도가 더욱 그의 말에 신빙성을 더했다.
“정보는 제가 이미 드렸죠? 직접 보셔서 아시겠지만, 산지 바로 앞에 택지가 있습니다. 공사 중인 곳도 있고요. 요즘 집 빨리 짓습니다. 그 동네에 변변찮은 도로가 없으니 주택단지 들어서면 도로 내야 합니다. 그 근처로 접근하는 길은 산 옆뿐이고요. 도로가 생기면 당연히 개발도 따라옵니다. 사장님도 투자해 보셨으니 잘 아시죠?”
-예, 예.
이런 식으로 말하면 상대는 그저 끄덕일 수밖에 없다.
모른다고 대답하면 얕잡아 보이거나 바가지를 쓸 거라 걱정하기 때문이다.
“위험성을 걱정하는 사장님의 마음도 충분히 이해합니다. 그래서 제가 일부러 쪼개서 중개해 드리는 거예요. 투자의 기본은 분산 아니겠습니까. 조금씩 여러 군데에 투자한다, 충청도에 조금 사 두시고 다음은 강원도에 조금 사 두시고. 이런 식으로 전국에 조금씩 묻어 두시면 그중 하나만 떠도 사장님은 성공한 투자자가 되시는 겁니다.”
-맞는 말씀입니다.
“그러니 저희 투자 전문가와 중개자가 있는 겁니다. 투자자의 돈은 소중하니까요.”
-아이고, 걱정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안 그래도 제 퇴직금이라서요. 아이들을 생각하면 조금이라도 불려놔야 합니다. 중개사님이 잘 좀 도와주세요.
투자자는 김두범을 중개사라고 불렀다.
잘 모르는 일반인에게는 땅 거래를 중개하는 사람은 다 공인중개사라고 생각되겠지.
그것이 김두범에게는 청신호로 들렸다.
자신을 철석같이 믿고 있다는 뜻이었으니까.
“그럼요. 저도 공짜로 하는 일 아니고, 수수료 받습니다. 당연히 사장님께 도움이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야 다음에 또 저랑 거래하시죠. 안 그래요? 하하하!”
김두범은 넉살 좋게 웃었다.
계속 이 업계에서 일하고 있으니 걱정 말라는 은근한 표현이었다.
김두범의 농담에 투자자도 시원하게 웃었다.
-어허허, 중개사님만 믿고 가겠습니다. 오늘 찾아뵈면 되겠습니까?
김두범은 잠시 고민하는 척했다.
시간이야 많지만 바쁜 척 해야 좀 더 잘 낚이기 때문이다.
“음, 잠시 후에 손님이 오실 예정이라 오후 4시부터 가능합니다.”
-그럼 4시까지 가겠습니다. 너무 갑작스러운가요? 양도자분이 그 시간이 되시려나?
이렇게 한 놈이 또 걸려드는구나.
김두범은 속으로 투자자를 비웃었다.
“주인분이 직접 오실 리가 없지요. 전국에 부동산을 갖고 계신 분이십니다. 이런 일엔 잘 움직이지 않으셔서요. 전적으로 제게 맡기고 계시니 편하게 오시면 됩니다. 저는 땅만 팔고 대금만 주인분께 보내드리면 되거든요.”
물론 양도자 란에 적는 것은 차명이다.
-그럼 4시에 뵙겠습니다.
“예, 감사합니다!”
기분 좋게 전화를 끊은 김두범은 사무실이 떠나가라 소리를 질렀다.
“좋았어! 이제 반절 팔았다!”
어차피 혼자 있는 오피스텔이다.
김두범은 허공을 향해 승리의 주먹질을 몇 번 해 보인 후 책상 위에 놓인 지도 중 하나의 번호를 분홍 형광펜으로 칠했다.
산지를 자잘하게 쪼갠 번호는 반 정도가 알록달록한 색으로 칠해져 있었다.
“크, 다 팔면 좀 쉬어도 되겠다. 어디로 갈까. 필리핀에서 한 2년 있다가 들어올까.”
언젠가 속았다는 것을 눈치챈 투자자들은 벌떼처럼 사무실로 달려올 것이다.
그래서 어차피 이 건만 끝나면 잠수할 예정이었다.
“넉넉잡고 한 3년 있다가 오면 되겠다.”
별장 같은 단독주택에서 하인을 부리며 사는 그린 듯한 생활을 상상하며 김두범이 웃었다.
목표는 머지않았다.
이대로라면 순항이다.
-똑똑.
그때 김두범의 상념을 깨듯 조심스러운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어차피 김두범 혼자 쓰는 오피스텔이다.
올 사람은 투자자밖에 없었다.
김두범이 의아해하며 오피스텔의 잠긴 문을 열었다.
앞에는 웬 초라한 행색의 중년 남녀가 서 있었다.
울분에 가득 찬 얼굴, 독기가 담긴 눈동자.
딱 봐도 피해자의 모습이다.
김두범은 서둘러 문을 닫으려 했지만 그보다 남녀가 들어오는 것이 빨랐다.
“당신이 그 집 중개했다며! 이 개새끼야!”
“잠시만요, 잘못 찾아오신 것 같습니다.”
“아니긴 뭐가 아니야! 당신이 김두범이잖아!”
김두범은 남녀의 서슬에 밀려 사무실 안으로 밀려 들어갔다.
하지만 도무지 눈앞의 중년 남녀가 누군지 생각나지 않았다.
‘충청도 건이 벌써 터질 리가 없는데.’
산지 하나를 쪼갠 것이기 때문에 하나가 터지면 다 같이 말아먹는다.
김두범은 애써 기억을 되살리며 중년 남녀를 진정시켰다.
“어떤 건인지 차근차근 말씀을 해보세요. 저는 일개 중개인이지만 억울한 점이 있으시면 최선을 다해 돕겠습니다.”
어떻게든 모면해야 한다는 일념으로 김두범이 달랬다.
어차피 자신은 중개인일 뿐이다.
모든 책임은 판매자와 구매자에게 있는 것 아닌가.
문제가 있음을 알고도 판매한 판매자와 제대로 알지도 못하고 구매한 구매자.
둘 모두의 탓이지 자신의 책임은 아니다.
“용산구 재개발 지역 사는 세입자인데, 이사 가려고 보니까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집주인이 바뀌었더라고요? 근데 전세금 빼달라고 하니까 자기가 돈이 없어서 못 준다잖아요!”
“아, 뭐야. 세입자였나.”
김두범은 미소를 지웠다.
판매자도 아니고 구매자도 아니라면 자신이 상대할 필요도 없는 사람들이다.
전세금을 못 받았든, 그래서 집이 망했든 김두범 자신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다.
“아, 손님도 아니면서 다짜고짜 쳐들어오면 됩니까? 처음에 보자마자 욕하는 건 또 뭡니까. 당신들이 깡패야, 뭐야!”
“깡패는 너지, 나쁜 놈아!”
“아니, 그러니까. 지금 번지수를 잘못 찾아 왔다니까요. 저는 그냥 중개인이에요, 중개인. 두 분이 어떤 피해를 입으셨든 그건 집주인한테 가셔 따지셔야죠!”
김두범의 말에 중년 남자가 버럭 화를 냈다.
“내가 지금 집주인이랑 한판 하고 오는 길이야, 이놈아! 네가 다 컨설팅 해 주고 꼬드겼다며!”
“그걸 믿으세요? 상식적으로 생각을 해 보세요. 저는 중개만 해 줘요. 파는 사람이 팔겠다면 장땡이지! 그리고 갭 투자는 요즘 많이 쓰는 방법이라니까요. 합법이에요!”
김두범이 목소리를 높였다.
중년 남녀가 달라붙자 김두범은 매몰차게 둘을 밀쳐냈다.
“아, 진짜. 기분 좋았는데. 가요, 가! 여기 와서 난리 피우지 말고 가시라고요!”
“이놈아! 이 사기꾼 놈아! 그 돈이 무슨 돈인 줄 아냐! 전세금 돌려내라! 집주인이 다 알려줬어! 다 네가 시키는 대로 했다고!”
“좀 꺼지라니까!”
김두범은 중년 남녀 중 상대적으로 약해 보이는 여자 쪽을 질질 끌고 사무실 문으로 갔다.
남자가 노호성을 터뜨리며 김두범의 팔을 후려쳤다.
“어, 이거 폭력입니다. 신고할 거예요.”
“이런 천하에 못돼먹은 놈이 다 있나! 이 개새끼야!”
실랑이 끝에 김두범은 힘겹게 사무실 문을 열었다.
그리고 중년 여자를 내팽개치듯 문밖으로 밀어냈다.
“아이고!”
짧은 비명 소리와 함께 중년 여자가 문밖으로 밀려났다.
“여보!”
중년 남자가 허겁지겁 문밖으로 뛰쳐나갔지만 다행히도 부인은 무사했다.
문밖에 서 있던 젊은 남자가 부축했기 때문이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남편은 연신 감사 인사를 하며 고개를 숙였다.
옆 사무실 사람인가보다 했는데 이상하게도 수가 많았다.
“여보, 괜찮아요?”
남편이 서둘러 부인을 살폈다.
상처가 없는 것을 확인하고 고개를 들자 잔뜩 분노한 표정의 젊은 남자들이 보였다.
일행 중 뒤에 서 있던 여자 하나가 나와 조심스럽게 중년 부부에게 물었다.
“괜찮으세요? 자세한 사정을 좀 들을 수 있을까요?”
중년 부부가 홀린 듯 입을 열려고 하자 김두범이 끼어들었다.
“당신들 뭐야! 남의 사무실 앞에서 뭐 하는 겁니까!”
수적으로 밀리다 보니 목소리는 작아졌지만 말은 퉁명스러웠다.
곧 4시가 되면 손님이 올 텐데 자꾸 훼방이 들어오는 것이 못마땅한 것이다.
“지나가는 길이면 그냥 지나가세요. 남의 일 끼어들지 마시고.”
김두범이 손을 휘휘 저으며 내쫓았지만 이들은 붙박은 듯 움직이지 않았다.
그러다 김두범은 일행의 뒤편에 서 있던 익숙한 사람을 발견했다.
자신이 거래하는 부동산 거래법인 월드더블유의 대표이사였다.
“뭐야, 대표님이 우리 사무실엔 무슨 일이에요? 이 사람들은 다 뭐고요.”
김두범이 질문했지만 대표는 어두운 표정으로 그저 입을 꾹 다물고 있을 뿐이었다.
의아해하는 김두범이 고개를 돌리는 순간.
-빠악!
맨 앞에 서 있던 청년에게서 주먹이 날아왔다.
“안 되겠다. 너 한 대만 맞아라.”
-우당탕!
“아악! 이 새끼 뭐야!”
김두범이 바닥에 요란하게 넘어졌다.
아까까지만 해도 김두범을 한 대만이라도 쳐 보겠다고 덤벼들던 중년 부부도 멍하니 바라볼 정도였다.
“으악! 주사보님 사고 쳤다!”
“야, 미친놈아! 나도 참고 있는데 네가 치면 어떡해!”
“안길진 씨, 팔 좀 잡아요!”
청년, 신재현이 씩씩거리며 사무실 안으로 들어가자 일행이 우르르 따라 들어오며 신재현을 말렸다.
“잠깐만요. 한 대만 더 때리게.”
“이미 한 대 때리셨어요! 그리고 말하기 전에 때리는 게 어딨어요! 말릴 수가 없잖아요!”
“말릴까 봐 미리 때린 겁니다.”
신재현은 당당하게 말했다.
그 논리에 잠시 강혜원이 멍한 표정을 지었다.
“너, 너! 내가 가만 안 둬! 당장 신고한다고!”
“야, 이리 와! 반대쪽도 때리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