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국세청 망나니-123화 (123/500)

123화. 갭 투자(2)

“…….”

불편한 침묵이 흘렀다.

장내에는 신재현과 그 팀원, 그리고 대표 일행까지 8명이나 되는 사람이 있었건만 그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다.

일부러는 아니다.

그저 뭐라 해야 할지 모르는 것뿐이었다.

‘이 사람한테 무슨 짓 했어요?’

신재현이 팀원들 쪽으로 돌아본 채로 입을 뻐끔거렸다.

추궁하는 듯한 눈빛은 덤이었다.

그걸 본 강혜원이 억울하다는 듯 양팔을 강하게 흔들었다.

‘아무것도 안 했어요!’

‘그런데 왜 이렇게 겁을 먹어요!’

‘그야 팀장님이…… 말을 말자.’

강혜원이 두 손을 늘어뜨렸다.

신재현이 이상하다는 표정으로 다시 고개를 돌렸다.

세무사는 뭔가 체념한 얼굴이고, 실장은 겁먹은 듯 덜덜 떨고 있었다.

결정적으로 대표는 신재현의 손을 꼭 쥔 채 간절한 눈빛을 보냈다.

부담스러워서 절로 고개를 돌리고 싶어질 정도였다.

탈세범이라면 몇 마디 쏘아붙였을 신재현도 대표의 얼굴을 보자 뭐라 입을 뗐다가 다시 다물기를 반복했다.

보다 못한 황민우가 다가가서 손을 떼어 놓았다.

“진정하고 말씀해보세요. 저희 팀장님 잘 아시죠? 절대 아무나 잡는 분 아닙니다. 차분하게 말씀을 해 보세요.”

황민우가 달래자 대표가 후우, 숨을 깊게 내쉬었다.

눈치를 보던 안길진이 자기가 앉았던 의자를 가져와 내밀었다.

대표는 다리에 힘이 풀린 듯 의자에 앉았다.

“마당발로 통하는 사람이 하나 있습니다. 우리 직원은 아닌데 중개를 기가 막히게 잘 물어와서 프리랜서로 쓰고 있거든요.”

“공인중개사입니까?”

“자격증을 가진 건 아니고, 예전에 복덕방을 했대요. 그런 사람 있잖습니까. 동네에서 복덕방 하다가 결국 자격증 못 따고 실무만 뛰는 사람.”

예전에는 공인중개사 자격증 없이도 부동산 거래가 가능했다.

자격증이 필수가 되면서부터는 대표가 공인중개사 자격증을 갖고 있어야 사무실을 낼 수 있다.

하지만 시험이 점점 어려워지면서 결국 자격증을 못 딴 사람은 공인중개사 자격증 가진 사람을 구해 무늬만 대표로 앉혀두고 본인이 중개를 하곤 했다.

“업계 관행입니다. 이건 이해하시죠?”

굳이 허락을 받지 않아도 되는데도 대표는 신재현의 눈치를 봤다.

신재현은 자신이 낼 수 있는 최대한의 부드러운 표정과 목소리로 답했다.

“네, 물론입니다. 이해합니다.”

큰 산을 넘었다는 듯 대표가 안도했다.

“그 마당발이 이번에 큰 건을 여럿 물고 왔는데, 세금을 절세하면서 재산을 넘기고 싶다고 했거든요…….”

대표가 두루뭉술하게 설명하며 말끝을 흐렸다.

뭘 어떻게 했다는지 명확하게 말하지 않은 이유는 간단했다.

자신도 함께 엮일까 봐 그렇다.

신재현은 대표를 재촉하지 않았다.

그저 지긋이 쳐다보기만 했다.

그러자 대표가 알아서 입을 열었다.

“한마디로 말해서 부모가 자식한테 부동산 넘기면서 편법 증여를 했습니다!”

에라, 모르겠다!

대표가 눈을 질끈 감고 냅다 질렀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도 비난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대표가 슬쩍 눈을 뜨자 신재현이 골똘히 생각에 잠겨 있는 것이 보였다.

***

“어떻게 할까요?”

황민우가 내 옆으로 다가와 조심스럽게 물었다.

나는 대표와 실장, 그리고 세무사를 찬찬히 훑었다.

딱히 탈세액이 보이지는 않는데…….

세무사는 둘째치고 대표와 실장이 편법 증여에 관여했는지가 관건이었다.

직접적으로 이득을 취하고 그걸 탈세하지만 않았으면 내 눈에 보이지 않는다.

탈세범이 아니라면 내 적이 아니긴 한데.

아직은 정보가 더 필요하다.

나는 부드럽게 말했다.

“저희가 이 회사를 조사대상으로 선정한 이유는 말입니다. 이 회사에서 중개한 물건 중에서 자금 출처가 불명확한 건이 여럿 있어서 입니다.”

자금조달내역서는 대부분 그럴듯하게 기재해 놨다.

그런데 금융정보분석원(FIU)와 국세청 자체 전산망 자료를 분석해보니 내역서와 다른 것이 튀어나왔다.

예를 들면 차입금.

내역서에서는 은행에서 빌렸다고 해 놓고 실제로는 부모가 갚아줬다거나, 특수관계인에게 차입했다고 해 놓고 갚지 않는 사례가 수두룩했다.

“저희가 중개한 물건이요?”

대표와 실장이 서로 얼굴을 마주 보았다.

전혀 몰랐다는 표정이다.

저것이 연기라면 대상감이다 싶을 정도로 억울해 보였다.

“부끄럽지만 직원들한테 맡기면 제가 일일이 훑어보질 않습니다. 도장만 찍어서 나가면 땡이에요.”

대표는 온몸을 써서 억울함을 피력했다.

좀 더 찔러볼까.

“그럼 그 마당발이라는 사람이 편법 증여했다는 건 어떻게 알고 계셨습니까?”

“그 마당발에게서 이런저런 사정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관례니까 좀 알아서 넘어가 달라고…… 죄송합니다!”

대표는 연신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절대로 적극적으로 도운 건 아닙니다! 그 사람은 자격증이 없어서 저희 쪽 중개번호를 썼을 뿐입니다! 그래서 프리랜서고, 일감 가져오는 대로 수수료를 줬습니다!”

나는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대표님. 이미 잘 아시는 것 같으니 간략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예, 옙!”

“업계 관행이라고는 해도 탈세입니다. 대표님은 이미 그 마당발이 무슨 일을 할지 다 알고 계셨고. 알면서도 눈감아주신 것 아닙니까.”

“그, 그건…….”

대표의 목소리가 작아졌다.

이윽고 대표는 식은땀을 흘리며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맞습니다…… 모르는 척했습니다. 어차피 프리랜서니까, 업계 관행이니까 넘어가자.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이제 40대 중반쯤 되었을까 싶은 대표는 눈을 마주치지 못한 채 고개를 숙였다.

“내가 젊은 사람 앞에서 부끄럽습니다. 조사관님 말이 맞는 건데요. 그놈의 돈 조금만 더 벌어보겠답시고 이런 짓을 했습니다.”

식은땀을 닦던 실장이 조용히 대표에게 손수건을 내밀었다.

대표가 손수건을 받아 눈가를 찍어냈다.

나는 대표의 앞에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아 대표와 눈을 마주쳤다.

“감사합니다, 대표님. 그렇게 말씀해주셔서요. 대표님이 틀린 선택을 하신 건 맞지만, 사람이야 완벽한 존재가 아니니까요. 깨닫고 바로 돌아오면 되는 겁니다.”

“조사관님……!”

애써 진정했던 대표가 왈칵 눈물을 터뜨렸다.

처음 내 얼굴을 보자마자 두 손 꼭 붙잡고 잘못했다고 할 때부터 느낌이 오긴 했는데.

굉장히 겁이 많고 순진한 사람 같았다.

그러니 그 마당발인지 뭔지 하는 프리랜서 중개업자의 말에 넘어간 것이고.

지금 이렇게 내 말에 설득된 것이겠지.

그래도 다행이다.

완전히 되먹지 못한 사람은 아니어서.

“저는 납세자의 적이 아닙니다. 대표님의 적은 더더욱 아니죠. 아까 우리 팀원이 말했듯 제 목표는 탈세범입니다. 대표님이 성실하게 납세만 해주신다면 앞으로 절 만나게 될 일은 없겠죠.”

“그럼요! 당연합니다! 그러겠습니다!”

대표가 고개를 주억거리자 나는 세무사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자문 세무사님이시죠? 앞으로 세무 신고 잘 좀 부탁드립니다.”

“당연한 말씀입니다. 세무대리인으로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나보다 한참 나이가 많은 사람인데도 세무사는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내가 부담스러워질 정도의 인사였다.

하지만 그것이 나라는 일개 개인이 아니라, 그간 실력으로 증명해온 조사관 신재현에 대한 인사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나 역시 공손하게 인사를 받았다.

“자, 그럼 대표님이 도와주실 일이 있습니다.”

“뭐든 말씀만 하십시오. 신재현 조사관님께 도움이 된다면야…….”

“그 마당발부터 시작해서 중개 자료 부탁드립니다.”

아까와 같은 부탁이었지만 대표는 열성적으로 대답했다.

“예! 다 보여드리겠습니다!”

***

세무사는 신기하다는 눈길로 테이블 앞에 앉아 있는 청년을 바라보았다.

자신도 짧은 기간이지만 공무원으로 일해본 경험이 있어서 눈앞의 청년이 어떤 업적을 세웠는지는 아주 잘 알았다.

세무사 시험에 합격하고 바로 7급 공무원 시험을 본 뒤, 공무원으로 약 5년간 일하다 나와 사무실을 차렸다.

그리고 5년 동안 공무원으로 있으면서 7급 공무원의 한계를 뼈저리게 느꼈었다.

민원에 시달리고 납세자에게 재촉하고 위에서 까이고.

그래서 5년 만에 나온 것이기도 하다.

세무사는 호의를 가득 담아 청년에게 다가갔다.

“편법 증여 건이면 저도 정리를 도와드리겠습니다.”

“아, 세무사님. 원래라면 안 되는 건데.”

청년은 희미하게 웃으며 자료를 내밀었다.

이미 대표와 실장이 들러붙어서 책꽂이와 캐비닛을 뒤집어엎고 있는 와중에 세무사를 놀리는 것도 자원 낭비다.

원래 세무조사 때는 조사관이 방대한 자료를 수집할 수 없기 때문에 세무대리인이 자체적으로 자료를 제출하기도 하고.

세무사는 열정적으로 정리를 시작했다.

과거 공무원으로 돌아간 느낌도 들었다.

“그러면 이쪽 라인은 제가 볼 테니 장세훈 주사보님은 이 칸 봐주세요. 강혜원 씨랑 안길진 씨는 주사보님 거들어 주십시오. 형은 이거 분류 좀 해줄래요?”

신재현은 익숙한 어투로 팀원에게 지시했다.

팀원들도 척척 손발이 맞아 들어갔다.

자신들보다 한참 어린, 심지어 같은 직급도 있는데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나도 계속 공무원으로 남아있었다면 이런 사람과 일할 수 있었을까.’

이미 지난 일이지만 세무사의 마음에 한 가닥의 후회가 흘렀다.

그렇기에 세무사는 더욱 빠르게 손을 움직였다.

어떻게든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었다.

한편으로는 세무사도 유능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조사관님, 이거랑 이것도 한번 보시겠습니까?”

신재현은 가볍게 고개를 숙이고 서류를 받아들었다.

주택이 아니라 충청도에 있는 땅인지라 자금조달내역서는 첨부되어 있지 않았다.

자금조달내역서라는 것이 서울의 3억 원 이상 주택의 매매에만 붙는 서류이기 때문이다.

신재현은 첨부서류에 있는 필지와 지적도를 확인하더니 대번에 얼굴이 심각해졌다.

“어? 대표님, 잠시만 와보시겠습니까.”

신재현의 목소리가 어두워지자 대표가 화들짝 놀랐다.

“무,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신재현은 얼른 표정을 풀고 지도를 내밀었다.

납세자를 대하는 것이 익숙하며 무작정 몰아세우지 않는다.

그간 얼마나 많이 납세자를 대해왔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세무사는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보통 필지를 이렇게 쪼개어서 팝니까?”

신재현의 질문에 대표와 실장이 고개를 책상 위로 들이밀었다.

궁금함을 참지 못한 세무사 역시 지도를 보자마자 탄성을 내질렀다.

땅을 통째로 팔기 부담스러우면 쪼개어 파는 것은 이해할 수 있다.

보통 그런 경우 필요에 따라 네모나게 잘라 필지를 분할한다.

그런데 지도상에는 가로세로 비율이 1대10은 되어 보이는 길쭉한 직사각형 모양으로 분할되어 있었다.

지도로만 봐서는 카스테라 빵을 조각내놓은 것처럼 겹겹이 쌓여 있었다.

“냄새가 나네요.”

“계획 부동산일까요?”

대표의 얼굴이 단번에 어두워졌다.

어찌 되었든 자신의 회사를 통해 중개된 물건들이니 이런 걸 눈치채지 못했다는 건 자신의 실수이기 때문이다.

신재현이 손가락으로 지도를 짚었다.

“보니까 산인데, 이런 식으로 자르면 여기서 뭘 할 수 있습니까?”

“아무것도 못 합니다. 이렇게까지 길쭉하면 건물을 지으려고 해도 각이 나오질 않아요. 이건 써먹을 용도가 아니라 순수하게 투자용으로 파는 땅입니다.”

“이런 땅이 팔립니까?”

“투자자에겐 이렇게 설명하겠죠. 어차피 놀릴 땅인데 모양이 뭐가 중요하겠습니까, 실질적으로 손에 쥐는 면적이 중요하지.”

대표는 실제로 투자자에게 프레젠테이션 하는 것처럼 신재현을 향해 말했다.

이 순간만은 겁먹은 기색은 온데간데없고 한 회사의 대표다운 모습이었다.

“오히려 이렇게 되면 개발사가 어느 한 곳의 땅만 살 수 없으니 이득이라고 했을 겁니다. 이렇게 쪼개면 옆 땅만 개발하고 내 땅은 나가리 되는 일은 막을 수 있다 이거죠.”

“그 말이 사실이라면 면적에 가격을 곱하는 거니 맞긴 한데, 대표님 보시기엔 어떻습니까?”

대표는 단호하게 대답했다.

“제가 딱 잘라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사기입니다.”

“역시.”

신재현의 입가에 지금까지 보지 못한 미소가 피었다.

“이 사람 주소 알려주세요.”

순간 세무사는 소름이 오소소 돋는 것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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