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국세청 망나니-122화 (122/500)

122화. 갭 투자(1)

부동산 중개법인 월드더블유.

떡하니 강남구 한복판에 사무실을 가진 견실한 회사다.

겉으로 보기에는.

“대표님. 오늘입니다, 오늘이에요.”

실장이 연신 식은땀을 훔치며 안절부절못했다.

대표 역시 자리에 앉아 마른침을 삼켰다.

“왜, 왜 세무서도 아니고 서울청에서 조사를 나오지? 세무사님 어떻게 하면 좋습니까.”

자문 세무사는 차분히 대표를 안심시켰다.

“보통은 서에서 조사하지만 규모가 크거나 여러 세목이 연결되어 있으면 청에서 나오기도 합니다. 더군다나 요즘 정부가 유심히 보는 것이 부동산이잖아요.”

“그렇죠. 하루가 멀다 하고 세법을 바꿔대서 골치가 아플 지경이니까.”

부동산을 중개하는 회사다 보니 이들은 세법 동향에 대해서는 관심이 많았다.

오늘 파느냐, 내일 파느냐에 따라 세금이 달라질 수도 있으니까.

그리고 안타깝게도 세법은 굉장히 자주 바뀌는 법 중 하나였다.

“네. 그리고 국세청은 정부 정책에 민감하게 움직이는 조직입니다. 징벌적 세무조사라는 것도 있으니까요.”

“그, 그럼 우리가 그 징벌적 세무조사에 해당돼서 그런 걸까요?”

세무사의 말에 대표가 울상을 지었고 겁먹은 실장이 딸꾹질을 하기 시작했다.

“세무사님. 저희 걸릴만한 거 없어요!”

“먼지 털면 다 나오는 게 세무조사 아닌가요?”

실장과 대표가 나란히 불안해하자 세무사가 아차 하는 표정을 지었다.

“너무 걱정 안 하셔도 될 겁니다. 사전 통지서에는 부동산 중개 내역 위주로 보겠다고 했으니까요.”

대표의 책상 위에는 한 통의 종이가 놓여 있었다.

-서울지방국세청

[세무조사 사전 통지]

조사 대상 : 신고 납부 의무가 있는 모든 세목, 부동산 중개 내역과 관련 정보.

대표는 조사 대상이라고 쓰여 있는 부분을 가리켰다.

“중개 내역? 국세청이 이런 것도 봅니까?”

“세무조사하다 거래처에 위법 사항이 발견된 경우엔 거래처까지 보기도 합니다. 확실히 부동산 쪽을 목표로 나온 것 같더군요.”

“흐음.”

부동산이라는 말에 대표가 불안한 표정을 했다.

‘세무조사 나왔다 하면 세금 때려 맞으니 불안할 만하지.’

세무사는 어떻게 대표를 달랠지 고민에 잠겼다.

납세자를 안심시키는 것도 세무사의 일이었다.

몇 번이고 읽은 통지서를 계속해서 뜯어보던 대표가 이번에는 세무조사 통지서의 가장 아래 부분을 가리켰다.

공문 형식이었기에 통지서 맨 아래 칸에는 담당자의 이름이 쓰여 있었다.

“담당자가 세무서기 강혜원, 기안자가 세무주사보 장세훈이네요. 혹시 아는 사람입니까?”

잘 나가는 세무사라면 세무서나 지방청에 아는 공무원 하나쯤은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세무사는 고개를 흔들었다.

“이번에 뭔가 많이 바뀐 것 같습니다. 작년엔 체납징세과가 생기고, 올해는 대대적으로 사람 물갈이가 되고…… 국세청 내부가 많이 시끄럽습니다.”

“오, 그래요?”

남의 집안 사정 이야기는 언제 들어도 재밌는 것이다.

세무사의 이야기에 대표는 불안함도 잊고 몰두했다.

“국세청장이 슬슬 내려올 때가 됐거든요. 그래서 내부가 좀 많이 복잡합니다. 뭐 다음 후보는 여럿 있는데 서울지방청장이 유력하다는 소문이 있어요. 그래서 올해는 매우 열정적으로 활동한다고 합니다.”

“오…… 거기도 다 사람 사는 동네인가 보네요.”

대표가 호기심의 눈빛을 담아 세무사를 바라보았다.

차기 청장 후보들의 싸움이 심화하였다고는 해도 내부 정보다.

웬만한 소식통이 아니고서야 알기 어려운 것이었다.

반대로 말하면, 한 지역의 대표 격인 세무사가 아니더라도 알 수 있을 정도로 소문이 슬금슬금 퍼져 나가고 있다는 말도 된다.

한참 대표와 세무사가 대화에 빠져 있을 때 한 직원이 조심스럽게 대표실의 문을 두드렸다.

“대표님. 국세청에서 나오셨다는데요.”

세무서도 아니고 국세청이다 보니 직원의 얼굴이 흐렸다.

직원은 공무원을 대표실로 안내하자마자 후다닥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쳤다.

“안녕하십니까, 서울지방국세청 특수조사2팀의 7급 세무주사보 장세훈입니다.”

“8급 세무서기 강혜원입니다.”

“9급 세무서기보 안길진입니다.”

들어온 것은 전부 세 명.

셋 다 젊었기에 세무사는 의아한 얼굴을 했다.

앞서서 들어온 남자, 장세훈은 납세자권리헌장과 서약서를 내밀었다.

“권리헌장 읽어보시고 서명해주시면 됩니다. 그리고 이건 세무조사를 임함에 있어 공정하고 명확하게 세법에 따라 하겠다는 저희 조사관의 서약서입니다.”

장세훈은 서약서를 펼쳐 보여준 뒤 보는 앞에서 이름을 적고 서명했다.

강혜원과 안길진도 마찬가지였다.

“일단 이 둘은 나가서 컴퓨터 좀 보겠습니다. 괜찮으시죠?”

“예, 예.”

원래라면 공무원 혼자 대표실에 남도록 두는 경우는 없다.

그러나 이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장세훈 한 명만 남겨두고 밖으로 나갔다.

‘그렇게 서로 믿는 건가? 아니면 다 같이 썩은 건가?’

세무사는 고개를 갸웃했다.

예전에는 돈으로 세무조사를 때우는 경우도 많았다.

지금도 지방 저 구석에서는 그렇게 한다고 들었다.

하지만 서울청은 그야말로 전국에서 내로라하는 공무원들이 모인 곳이다.

절대 얕은수가 통할 사람들이 아니다.

세무사는 아주 잠깐 유혹이 들었지만 금세 떨쳐냈다.

그리고 자신의 의무를 수행했다.

“특별히 필요하신 자료가 있습니까? 전 세목이라고 하셨는데요. 혹시 청 조사에 선정된 특별한 이유라도 있습니까?”

아까 대표가 물었듯 원래는 세무서에서 조사가 나오게 마련이다.

대표에게는 안심시키기 위해 괜찮다고 말했지만 세무사는 앞으로의 대처를 위해 물어봐야 했다.

그러자 장세훈은 뒷머리를 긁적였다.

“회사 자체를 조사하러 나온 건 아닙니다. 물론 탈세 정황이 포착되면 회사도 조사하겠지만, 여기서 중개한 물건들의 자세한 정보가 좀 궁금해서요.”

“저희 물건에 문제가 있다고요?”

대표가 놀라서 되물었다.

“조사를 해 봐야 알겠지만 일단은 저희 망에 잡힌 게 그렇습니다. 더 이상 말씀드리긴 곤란하고요. 그래서 그간 중개하신 물건들 자료를 보고 싶습니다.”

대표와 실장은 말없이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이걸 줘야 해?

난감한 시선이 오갔다.

“중개한 물건들이라고 해봤자 다 국토교통부에 신고 들어간 건이라 다 아실 텐데요. 그리고 물건지 세부사항은 고객 정보입니다. 저희가 함부로 드리기가 좀…….”

실장이 우물거리며 말했다.

“그래서 협조를 요청드리는 겁니다.”

장세훈의 말에도 대표와 실장은 머뭇거리기만 할 뿐 쉽사리 대답을 내지 못했다.

“어차피 거래처 원장이랑 현금매출명세서 보면 대충 고객 정보 다 나옵니다. 저희가 추가로 필요한 건 물건지 세부정보인데요. 곤란하십니까?”

장세훈의 눈빛이 슬슬 날카로워졌다.

이상함을 느낀 세무사가 대표에게 다가갔다.

“통지서까지 와서 장부 뒤지는 마당에 고객 정보를 지키는 것은 이미 의미가 없습니다. 필요한 자료는 넘겨주시지요.”

“그게…….”

대표가 식은땀을 흘리고 실장의 눈동자가 갈 곳을 잃은 듯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걸 본 순간 세무사는 무언가 뒷사정이 있음을 눈치챘다

‘이 인간들이! 걸릴 게 있으면 미리 말을 해 줘야 할 것 아냐! 대처를 어떻게 하라고!’

세무사는 속으로 이를 갈았지만 이미 늦은 일이다.

장세훈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조사관님. 저희 대표님이 세무조사 자체가 처음이라 많이 긴장하신 것 같습니다. 잠시 의뢰인과 둘이서 이야기를 나눠도 되겠습니까?”

세무사는 일부러 의뢰인이라는 단어를 강조했다.

장세훈은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지만 의뢰인과 세무사가 협의를 하겠다는데 못하게 할 수도 없는 일이다.

세무대리인의 도움을 받는 것은 납세자의 당연한 권리니까.

장세훈이 어쩔 수 없이 발걸음을 돌렸다.

대표실에서 터덜터덜 걸어 나오자 한 직원의 자리에서 컴퓨터를 열어보고 있던 강혜원이 의아해하며 물었다.

직원들은 모두 밖으로 내보낸지라 사무실 안에는 강혜원과 안길진 뿐이었다.

“응? 표정이 안 좋으신데. 무슨 일 있었어요?”

잔뜩 이마를 찌푸린 장세훈이 대표실을 가리켰다.

“자료 달라니까 꺼리네. 왜지?”

“글쎄요. 어차피 우리가 회사까지 나와서 컴퓨터 다 열어보는 이상 고객 정보는 이미 다 봤는데요. 장부 보면 어디 어디랑 거래했는지도 다 나오는데.”

“그러니까 이상하잖아. 이미 털린 정보를 왜 숨겨? 우리가 뭐 대단한 거 달라고 한 것도 아닌데.”

“그래서 지금 주사보님더러 잠깐 나가 있으라고 한 거예요?”

강혜원이 눈을 깜빡였다.

“주사보님 성질 많이 죽었네요.”

“내가 그 정도로 막가는 놈은 아니거든?”

장세훈이 울컥하자 강혜원이 작게 웃었다.

“엿들을 수도 없는 노릇이니 얼른 조사해야겠네요. 일단 주사보님, 저쪽 파일 좀 다 엎어주세요.”

강혜원은 벽 한쪽 면을 가득 차지한 책꽂이와 캐비닛을 가리켰다.

각종 실무서와 함께 파일철이 한가득이었다.

“찔리는 걸 저런 데다 보관해놓을 것 같지는 않지만…… 일단 엎자. 그리고 길진아!”

“예!”

책상 서랍을 뒤지던 안길진이 벌떡 일어났다.

“너는 대표실 감시하고 있어. 혹시 안에서 뭐 찢는 것 같으면 바로 들어가고, 누가 손에 뭐 들고나오면 얘기해 줘.”

“넵.”

대표실이 잘 보이는 곳에 아예 의자를 가져다 앉은 안길진이 눈을 부릅뜨고 대표실을 노려보았다.

블라인드가 반쯤 내려가 있는 대표실에서는 세 사람의 모습이 훤히 보였다.

막 세무사가 대표에게 무언가를 따지고 실장이 머리를 감싸 쥐는 것이 보였다.

“진짜 뭐가 있긴 있나 본데요.”

대표실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안길진이 말했다.

흘끔 대표실의 모습을 본 강혜원의 눈빛이 강렬해졌다.

“그러게요. 냄새가 나…… 세무사가 저렇게 따지고 드는 경우는 하나예요. 의뢰인이 자신에게 불리한 정보를 숨겨서 의뢰 수행에 문제가 생기는 경우.”

강혜원의 손놀림이 더욱 빨라졌다.

그때 안길진이 의자에서 벌떡 일어섰다.

“어, 대화 끝난 것 같습니다.”

고개를 돌리니 대표실에서 세 명의 남자가 걸어 나오고 있었다.

세무사는 아까보다 한층 피곤해진 모습으로 제안했다.

“고객 정보이기도 하고 국토교통부 데이터베이스에 이미 넘어가 있는 자료들이라 필요는 없으실 것 같습니다만, 정 원하신다면 저희 쪽에서 명단을 정리하여 드리겠습니다. 어차피 조사관님들께서 저 많은 걸 다 훑어보시려면 시간이 많이 들 것 아닙니까.”

파일을 엎어보던 장세훈이 나는 듯이 달려왔다.

“명단이요? 고객 이름과 매입 또는 매도한 물건 등등을 정리해서 주겠다는 겁니까?”

“네. 먼저 명단 보시고 그 후에 세부자료 필요하시면 따로 요청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장세훈은 강혜원과 눈빛을 교환했다.

조사관이라고 만능은 아니다.

모르는 업종도 있고 전문 지식이 필요한 분야라면 조사 대상자의 도움을 얻기도 한다.

협조적인 곳이라면 세무사가 말하는 것처럼 자료를 정리해서 넘겨주기도 했다.

그러나 한번 가공해서 넘어오는 자료를 믿어도 될까?

장세훈이 갈등하다 결국 거절한다고 말하려고 할 때, 사무실 문이 벌컥 열렸다.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문 쪽으로 쏠렸다.

“아직 설득 중이에요?”

“아, 팀장님.”

납세자가 보는 앞이었기에 장세훈은 일부러 깍듯이 고개를 숙였다.

사무실로 막 들어선 청년, 신재현은 일동을 둘러보더니 대표에게 다가와 명함을 내밀었다.

“세무조사 중에 실례하겠습니다. 서울지방국세청 특수조사 2팀의 팀장, 신재현입니다.”

“시, 신…….”

대표가 믿기지 않는다는 듯 신재현의 얼굴과 명함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그, 그 신재현!”

“네. 맞습니다.”

대표가 뒤로 넘어갈 듯 놀라자 신재현은 가볍게 웃으며 답했다.

숨을 내쉬지도 못하고 꺽꺽거리던 대표가 양손으로 신재현의 손을 덥석 붙잡았다.

“신재현 조사관님. 살려주십시오.”

“진정하세요. 세무조사는 탈세범을 잡는 겁니다. 성실하게 납세하셨으면 아무 문제 없어요. 걱정하지 마세요.”

신재현이 다독였지만 대표는 다급히 말을 이었다.

“아는 대로 다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그냥 저쪽에서 해달라는 대로 해준 것뿐이에요! 필요하신 자료 다 드리겠습니다!”

이게 무슨 일이지, 하는 표정으로 신재현이 자신의 팀원들을 바라보았다.

물론 이 상황을 설명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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