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화. 1팀장 권현아
“1 팀장님……?”
나는 그 말에서 두 가지를 알아차렸다.
청장의 한 수가 바로 눈앞의 여성이라는 것.
그리고 이 여성은 청장이 일부러 앉혀 놓을 정도로 유능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애초에 특수조사팀은 청장의 권한을 총동원하여 만들어진 시범적이고 단편적인 케이스다.
원래 없던 팀을 시범 운영이라는 명목으로 만들어 놨으니 사람들의 이목이 몰릴 것이 뻔했다.
청장으로서는 변변찮은 사람을 데려다 앉혀 놓았을 리가 없다.
“네. 사무실도 바로 옆 방이에요.”
권현아는 상큼하게 웃었다.
앞머리 없는 단발머리에 한쪽 머리칼은 귀 뒤로 넘겼다.
바지 정장에 움직이기 편한 단화를 신은 권현아는 먼저 내게 다가왔다.
“7급이 이례적으로 팀장 자리에 앉았다길래 누군가 했더니 신재현 씨더라고요.”
권현아의 말이 맞다.
팀장은 보통 6급인 주사가 맡는다.
예상치 못한 공석이 생겼는데 해당하는 급수의 직원이 없을 경우, 아래 직급에서 뽑아 땜빵으로 앉혀 놓는 경우도 있긴 하다.
하지만 그 경우는 자리를 비워 둘 수 없기 때문에 일단 앉혀 두는 것뿐이다.
다음 정기 발령 때는 해당 급수가 와서 자리를 메꾼다.
나와는 경우가 달랐다.
아래에서부터 차근차근 과정을 밟아 온 직원들에게 내가 어떤 식으로 보일지 잘 안다.
그러니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증명하는 것뿐이었다.
“제가 먼저 인사드리러 갔어야 했는데 죄송합니다. 2팀장을 맡게 된 신재현이라고 합니다.”
나는 권현아가 내민 손을 굳게 맞잡았다.
권현아가 나를 살펴보는 것이 느껴졌다.
탐색의 시선이었지만 대놓고 훑어보지는 않았다.
그녀 나름대로의 배려라는 것을 알았다.
“6급 승진하고 팀장 달 줄 알았는데, 많이 급했나 보네요.”
“저도 예상보다 빨라서 놀랐습니다.”
공을 세운 경우 승진 심사를 통해 승진이 가능하다지만, 그것도 최소 연수를 채워야 한다.
6급으로 올라가려면 3년 반을 일해야 하고.
아직 경력이 2년밖에 안 되는 나로서는 머나먼 이야기였다.
“요즘엔 변화가 빨라서 못 따라가겠어요.”
“그런 것 같진 않은데요.”
권현아는 일단 겉으로 봐서는 30대 초반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공무원이야 시험 응시에 나이 제한이 없으니 겉보기로 직급과 경력을 판단할 수는 없다.
하지만 30대 초반에 6급, 그것도 서울청에 팀장급으로 발령이 났다면 승진이 빠르다는 말이 된다.
“신재현 씨랑 언젠가 한 번 같이 일해 보고 싶었어요. 같은 팀이 아니라 아쉽네요. 새로 팀이 만들어지고 신재현 씨가 온다길래 제 밑으로 오실 줄 알았거든요.”
나를 밑으로 보는 말임에도 기분이 나쁘진 않았다.
원래라면 그게 맞는 것이기도 하고.
능력 있어 보이는 사람 같으니 권현아를 상사로 모시는 것도 재밌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높게 평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별말씀을. 뉴스에서 자주 봤어요. 이런 말 하면 믿을지 모르겠는데, 팬이거든요.”
권현아가 한 점의 흐림도 없는 얼굴로 환하게 웃자 양 뺨에 보조개가 파였다.
웃는 얼굴이 시원한 사람이었다.
“감……사합니다. 생각지도 못한 말씀이라 어찌할 바를 모르겠네요.”
말 그대로 기습 공격을 당한 느낌이었다.
차라리 너는 인정 못 한다느니 하는 비난이었으면 뭐라 대꾸라도 했을 것이다.
그런데 경쟁자라 생각한 팀장이 먼저 다가오니 전의가 사그라진 느낌이었다.
내 당황한 모습을 본 권현아가 쿡쿡 소리 내어 웃었다.
“이럴 땐 확실히 어려 보이네요. 걱정 마세요. 제가 신재현 씨 팬이라도 봐줄 생각은 없으니까.”
권현아의 선전포고에 나는 그제야 내 페이스를 되찾았다.
역시 이런 대화가 더 편안하다.
“바라던 바입니다. 권 팀장님께 많이 배우도록 하겠습니다.”
권현아는 내 대답이 마음에 들었는지 만족스러운 표정을 짓더니 악수를 풀었다.
분위기가 생각보다 훈훈하자 권현아 뒤에서 안절부절못하며 서 있던 팀원들이 작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것이 보였다.
“좋아요. 그럼 본론으로 들어가죠.”
본론?
역시 인사만 하러 온 게 아니었나?
나는 다시 긴장을 끌어올렸다.
“청장님이 건수 하나 줬죠?”
권현아의 말에 나는 손에 들고 있던 서류철을 들어 보였다.
“저도 청장님께 뭘 하나 받았습니다. 제가 장담하는데 같은 건일 거예요.”
물론 권현아는 그동안 서울청장과 함께 일해 왔을 테니 나보다는 청장을 잘 알 것이다.
그렇다고 저렇게 자신 있게 말해도 되나?
“내용 열어 봤어요?”
권현아가 서류를 가리켰다.
“언뜻 제목만 봤습니다. 부동산 관련인 것 같더군요.”
“맞습니다. 갭 투자 탈세에 대한 것이죠.”
갭 투자라면 요즘 탈세 방법으로 많이 이용되는 투자방식이었다.
예를 들어 3억짜리 아파트를 산다고 치자.
요즘은 전세금이 많이 올라 매매가의 90%까지 형성된 곳도 있다.
3억의 90%라면 2억 7천만 원이다.
이 경우 전세를 끼고 사면 단돈 3천만 원만 갖고도 3억짜리 아파트를 살 수 있다.
적은 순자산으로 사는 것이기 때문에 나중에 전세금을 돌려주지 못한다거나 대출금을 갚지 못하는 등의 부작용이 있을 수도 있다.
부동산 투기가 과열되는 것은 덤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갭 투자가 나쁜 것은 아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머리를 써서 돈으로 돈을 버는 것은 당연한 일이니까.
부작용 때문에 사회적 지탄을 받더라도 불법으로 규정되지 않는 이유가 그것이다.
문제가 있다면, 갭 투자를 이용한 탈세다.
나는 잠시 권현아의 말을 멈추고 서류를 열어 보았다.
안에는 서울에 있는 다주택자 비율과 숫자 등이 적혀 있었다.
언뜻 보기엔 그냥 다주택자를 치라는 이야기 같았다.
하지만 아무 죄도 없는 다주택자를 집 여러 채 갖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치라는 명령을 했을 리가 없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다주택자 중에 순수하게 자신의 자본만으로 사는 사람은 거의 없다.
대부분은 대출, 아니면 갭 투자지.
나도 그제야 왜 권현아가 갭 투자 이야기를 꺼냈는지 이해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까 권현아는 이것만 보고도 청장의 의도를 알아챘다는 말이지.
의외로 눈앞의 여성이 청장의 심복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구성준 따위보다 훨씬 지적이고 파악이 빠른 사람이었다.
“일부러 같은 건을 주셨군요.”
“네. 왜겠어요?”
권현아의 장난기 어린 눈동자가 나를 시험하듯 바라보았다.
“실적을 비교하기에 가장 편하고 명확한 방법이니까요.”
“또한 둘의 방법과 성격이 어떤지 차이를 볼 수 있기도 하죠.”
권현아는 웃음기를 지우고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신재현 씨, 아니 신 팀장님의 실적은 대충 봤습니다. 그러니 선전포고예요. 제가 왜 1팀을 맡았고, 신 팀장님이 2팀인지 보여 드리겠습니다.”
자신감 넘치는 발언이었다.
언뜻 자만심 같기도 했지만 나는 절대 그녀를 얕보지 않았다.
자신만만하게 자신감을 드러내 보일 정도면 이미 준비는 끝났다는 거니까.
“저도 요행으로 팀장 자리에 앉은 게 아니라는 것은 보여 드리겠습니다. 권 팀장님께, 그리고 서울청의 모든 직원분께.”
“좋아요. 그럼 이제 안심하고 쳐부술 수 있겠네요.”
쳐부…… 뭐?
예상외의 과격한 단어 선정이다.
권현아의 뒤에 있던 장세훈마저 눈을 둥그렇게 뜨고 권현아의 뒤통수를 쳐다보았다.
이분도 만만치 않은 성정이군.
나는 작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기대하겠습니다.”
***
“먼저 정리부터 하죠.”
각자 자리에 대충 짐부터 푼 우리는 테이블에 모였다.
서울지방청장이 준 자료는 그야말로 두루뭉술해서 그냥 ‘서울에 다주택자가 이렇게 많다’ 수준이었다.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막막했다.
세무서에 있을 때는 관할 지역도 좁았고 다루는 세목도 정해져 있었다.
애초에 담당도 다 배분이 되어 있어서, 신고서가 들어오면 자동으로 직원이 배정된다.
자신이 맡은 일만 잘하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는 맡은 것 이상의 눈높이를 원하는 모양이었다.
나야 눈이 있으니 슬쩍 보는 것만으로도 어떤 회사, 어떤 사람이 탈세했는지 알 수 있지만 그것도 명단이 있을 때의 이야기다.
“조사 대상부터 뽑는 게 급선무겠네.”
조용히 종이만 노려보던 직원들이 내 혼잣말에 둑이 무너진 듯 한 마디씩 내뱉었다.
“탈세인지 아닌지 조사하려면 역시 명단부터 있어야겠죠?”
“다주택자 전부를 조사하나요?”
“아냐, 그건 말이 안 돼. 서울에 다주택자가 몇인데.”
“그러면 부동산 투자 법인 위주로 뽑을까요? 아무래도 탈세 수법은 법인이 하기 쉬우니까.”
“에이, 개인 중에서도 많죠. 부동산 탈세하면 보통 증여세나 양도세 탈세잖아요.”
팀원들이 머리를 맞대고 의견을 내기 시작했다.
무조건 내가 앞서고 팀원들이 뒷받침하는 것보단 이런 모습도 보기 좋았다.
선임자나 과장급이 있어서 이끌어주는 것도 아니고.
팀장인 나를 포함해 팀원 모두 서에서 방금 올라온 따끈따끈한 햇병아리 아닌가.
조금 돌아가더라도 팀원들이 서로 의견을 내며 방향을 잡는 분위기로 만들고 싶었다.
“저, 제가 한 말씀 드려도 됩니까?”
황민우가 조심스럽게 손을 들었다.
“어어, 말해 봐. 뭔데.”
장세훈이 채근했다.
“금융정보 분석원이 있잖습니까. 우리는 그동안 서에서 일했으니까 공조해본 적이 없지만 청 정도 되면 협조 요청하지 않아요?”
“금융정보 분석원이 그거지? 송금할 때 천만 원 넘으면 자동으로 통보 가고, 국내에서 해외로 돈 왔다 갔다 하면 자료 수집하는 곳.”
“네. 금융기관에서 의심 가는 자료 있거나 고액 송금 있으면 자료 받아서 분석하는 곳이요.”
그러고 보니 우리는 보통 세무서 내에서 해결했었다.
계좌를 받아서 대조해 보고, 회사의 계정별 원장 같은 장부를 받아 분석하는 것으로도 충분했다.
“스케일 커지네요…….”
“앞으로 할 일이 다 그런 거니까요. 익숙해져야겠죠.”
안길진이 감탄한 듯 중얼거리자 강혜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방금 나왔던 얘기를 수첩에 메모했다.
“그럼 공문은 제가 보내도록 할게요.”
일단은 직급이 내가 가장 위이므로 기안은 팀원이 하더라도 검토권자는 나였다.
원래라면 공문에 내 이름을 넣고 과장이나 국장 같은 직속 상사에게 결재를 맡겨야 한다.
하지만 나에겐 직속 상사가 청장이니…….
어, 청장에게 결재를 받으러 가야 하네?
나는 마른침을 삼켰다.
청장에게 가야 한다면 저것만 갖고는 안 된다.
명확한 조사 방향을 확립하고 그 앞에 가야 털리지 않을 것이다.
“그럼 다주택자 중에서 추려내는 기준을 정해야겠군요.”
내 말에 팀원들이 다시 머리를 맞댔다.
아까 한 번씩 나왔던 의견들인지라 테이블 주위가 조용해졌다.
나는 고민하다 입을 열었다.
“부동산 관련해서 탈세할 수 있는 세목이 법인세, 소득세, 종부세, 양도세, 증여세 맞습니까?”
“취득세도 있죠.”
“그건 지방세니까 빼구요.”
우리는 국세를 다루는 국세청이다.
취득세나 등록세 같은 지방세는 지자체의 몫이었다.
지방세도 국세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보니 우리가 조사하다 보면 지방세의 탈세도 밝혀지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우리의 주목적은 국세였다.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말고 우리 초심으로 돌아갑시다. 서에서 조사할 때 부동산이 얽히면 뭐부터 조사했죠?”
“아!”
내 말을 이해 한 강혜원이 손뼉을 쳤다.
“자금 출처!”
“네. 갭 투자든, 순수 자본으로 다주택자가 되었든 부동산을 사는 데는 거액이 들어갑니다. 구입 자금을 어떻게 마련했는지 출처를 밝히지 못하는 사람부터 조사해 나갑시다.”
자금 출처라는 말이 나오자 조용히 입술을 매만지고 있던 장세훈이 테이블을 탕 쳤다.
“자금 조달 내역서랑 크로스 체크하면 되겠네.”
주택자금 조달 내역서.
조정지역 내에서 주택을 거래할 때 무조건적으로 내는 서류다.
말 그대로 어디서 난 돈으로 어떤 주택을 샀다는 내용이 적힌 것이다.
조정 지역이란 정부에서 ‘이 지역은 물가상승률보다 주택가격상승률이 2배 이상 높다. 규제해야 한다.’는 뜻으로 지정한 지역이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서울 전 지역이 조정지역으로 지정되어 있다.
즉, 서울에서 거래되는 모든 주택은 조달내역서가 있다는 뜻이다.
“대충 방향은 잡은 것 같네요.”
내 말에 장세훈이 ‘하니까 되잖아’하는 표정을 지었다.
나는 피식 웃으며 팀원들에게 선언하듯 말했다.
“그럼 해봅시다.”
이제야 비로소 출발선에 섰다는 느낌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