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화. 9달 후(3)
서울지방국세청.
서울 지역의 모든 세금 관련 업무를 총괄하며 서울 28개 세무서의 상급 기관이다.
관할 지역은 서울 전체.
그 수장인 서울지방국세청장은 1급 공무원으로, 고위공무원단 가급에 속한다.
공무원 중에서도 꼭대기에 위치하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그리고 나는 지금 그 청장실에 와 있었다.
“부르셨습니까, 청장님.”
시무식까지는 평범했다.
반갑다, 1년간 잘해 보자는 인사에 청장의 몇 마디 덕담이 있었다.
한 기관의 수장으로서 평범한 연설이었다.
문제는 그다음에 일어났다.
-신재현 팀장은 시무식 후 바로 내 방으로 오세요.
짧은 명령만 남기고 청장은 강당을 나갔다.
막 자리에서 일어나려던 나는 해산하는 직원들의 무수한 시선에 도로 자리에 앉았다.
힘내라는 인사를 건넨 팀원들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떠나가자, 나는 그제야 청장실로 오게 된 것이다.
“긴장할 건 없어요. 임명장 주려고 부른 거니까.”
청장은 책상 앞까지 나를 부르더니 손에 임명장을 들고 일어났다.
민치호 국장과 반대 파벌이라길래 첫날부터 깨지나 했더니 의외로 청장은 평범하게 공무를 수행하고 있었다.
“……특수조사2팀의 팀장에 보함. 자, 전달.”
나는 청장에게서 임명장을 받아 옆구리에 끼우고 고개를 숙였다.
상황이야 어찌 되었든 내가 앞으로 모실 직속 상사다.
“감사합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할 일은 했으니 잠깐 잡담 좀 하죠. 앉아 봐요.”
청장과 나는 소파로 자리를 옮겼다.
앉자마자 푹신하게 몸에 착 감기는 것이 딱 봐도 돈 꽤나 줬을 것 같은 소파다.
청장실 밖에는 비서도 있던데, 역시 1급 공무원의 취급은 다르구나.
나는 조심스럽게 청장의 얼굴을 살폈다.
청장의 머리 위에 숫자가 보이지는 않았다.
이 자리에 오기까지 뇌물이나 탈세는 없었다는 뜻이다.
내심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반대 파벌이고 뭐고, 탈세액만 없으면 내 적이 아니다.
물론 청장이 먼저 날 치겠다면 나도 대응할 수밖에 없지만, 그건 이제 차차 알아볼 일이다.
“이제 내 직속 부하니까 말 놓도록 하지.”
“예, 청장님. 편하게 말씀하십시오.”
청장은 기다렸다는 듯이 얼굴에서 부드러운 미소를 지웠다.
그 얼굴을 보자마자 알았다.
이 무표정이 청장의 본래 모습이라는 것을.
“너도 알 만한 사정은 다 알 테고, 서로 시간 낭비할 필요 없으니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지.”
청장의 안경 너머로 반개한 눈은 어떻게 보면 지루함을 참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나는 긴장을 풀 수가 없었다.
눈앞에 앉아 있는 사람은 구성준을 보내 날 묻어 버리려고 한 장본인이니까.
“그동안 내가 널 쳐내려고 수작을 부린 건 맞아.”
굉장히 의외의 말이었다.
청장이 순순히 인정할 줄은 몰랐다.
내가 놀라서 쳐다보자 청장이 소파에 깊숙이 몸을 묻었다.
“서로 탐색하느라 시간 낭비할 필요 없다고 했잖아. 알 거 다 아는 사이니까.”
“예…….”
그렇다고는 해도 굉장히 직설적인 사람이다.
청장은 돌려 말하는 것을 싫어하는 걸까.
아까부터 시간 낭비 이야기를 하는 걸 보면, 효율적인 대화를 좋아하는 듯했다.
그렇다면 이건 어떨까.
나는 땀에 젖은 손을 꾹 쥐고 슬쩍 한 마디를 던져 보았다.
“저를 적으로 보신 이유가 뭡니까. 앞으로도 저를 쳐내실 겁니까?”
“흐음. 그런 질문도 할 줄 아나?”
청장이 한쪽 팔을 괴고서 나를 응시했다.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나?”
질문을 질문으로 받아치다니.
이런 화법은 싫어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이게 그 나름대로의 시험이라는 것은 듣자마자 알았으니까.
여기서 괜히 떠보거나 돌려 말하는 것은 청장의 반감을 살 수 있다.
‘서로 탐색하느라 시간 낭비할 필요 없다.’
그 말은 곧 내 생각을 까보라는 것과 같았다.
가진 패를 모두 보여 주는 것은 하수가 하는 일이지만, 여기서는 그것이 정답이다.
“민치호 국장님의 힘을 약화시키기 위해서라고 생각합니다. 그 과정에서 저를 타겟으로 삼으신 것은, 더 크기 전에 밟아 두려고 하신 것 아닙니까. 국장님에 대한 경고의 의미라기엔 본격적이셨으니까요.”
청장은 말없이 나를 바라보았다.
그가 뭐라 대꾸하기 전에 나는 한 마디를 덧붙였다.
“영광입니다.”
“응?”
“직접 밟으실 필요가 있다고 여기실 정도로, 저를 높게 평가해 주신 것 아닙니까.”
청장은 괴었던 팔을 풀고 눈을 깜빡였다.
“……아까운데.”
“아까우시면 키워 주십시오. 앞에서 끌어 주시지 않아도 됩니다. 저 혼자서 잘 클 수 있습니다. 이미 지원은 충분히 받고 있으니까요.”
청장의 반쯤 감겨 있던 눈동자가 점점 크게 뜨였다.
“정말 물건이네. 살려 달라는 말을 구차한 느낌이 전혀 들지 않게 하는 놈은 드문데.”
“칭찬 감사히 듣겠습니다.”
내가 씨익 웃으며 고개를 숙이자 청장의 무표정했던 입꼬리가 미미하게 올라갔다.
“민 국장이 왜 그렇게 죽자 사자 감싸고 들었는지 알겠군. 확실히 아깝긴 해. 남의 인재라는 게, 특히 민치호 그놈의 사람이라는 게 화가 날 정도로.”
청장이 팔걸이를 손끝으로 톡톡 두드렸다.
그가 고민할 때 나오는 버릇인 듯했다.
“그럼 이것도 대답할 수 있겠나?”
“말씀하십시오.”
“내가 널 밟지 말아야 하는 이유를 말해 봐라.”
‘이것도 대답해 보아라’라는 것은 내게 기대를 품었다는 뜻이다.
더불어 시험이 끝나지 않았다는 것이고.
이런 종류의 질문에 대한 답은 간단하다.
“똑똑하고 유능한 사람은 세상에 많습니다. 지식은 배우면 되는 것이고 업무는 익히면 됩니다. 하지만 마음가짐은 어렵죠.”
면접에서 자기 PR을 하듯이, 내 장점을 말해 주면 된다.
그러자 청장이 피식 웃었다.
“본인은 마음가짐이 똑바로 박혀 있다, 그렇게 말하고 싶은 건가?”
“저는 세무 공무원으로서 딱 한 가지의 기준만 가집니다. 성실한 납세자인가, 아닌가. 그 이외의 기준으로 제 태도를 다르게 하진 않습니다.”
-따다닥.
청장의 손끝이 팔걸이를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그리고 제 마음가짐은 그간의 행동으로 증명해 왔다고 생각합니다.”
-따닥.
팔걸이를 톡톡 두드리던 손가락이 멈추고 청장이 다시 한쪽 팔을 괴었다.
“하나가 빠졌군.”
“경청하겠습니다.”
“겉으로 보면 미친개처럼 개나 소나 모두 물어뜯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렇지 않아. 지금 적대자인 나에게 하는 태도만 봐도 그렇지.”
혹시 청장에게 대들지 않았다고 해서 그에게 아부하는 것처럼 보였을까.
나는 서둘러 첨언하려 했지만, 그보다 먼저 청장이 입을 열었다.
“그렇다고 나한테 아부하는 건 아냐. 내게 배를 보이는 것도 아니지. 그래, 물어뜯을 때와 가만히 있을 때를 구분하는 거로군.”
“그야 아까 말씀드렸듯 제가 물어뜯는 기준은 하나니까요. 탈세. 청장님은 탈세범이 아니시잖습니까. 그렇다면 제 상사로 대우해 드리는 게 맞지요.”
“진짜 광견은 조직 생활을 하지 못해. 그런 의미에서 명확한 기준점에 상황 판단까지. 이래서 내가 아깝다고 한 거다.”
청장은 한 손을 내 쪽으로 내밀었다.
“내가 좋아하는 인재상이야. 민치호 버리고 나한테 오지? 어차피 다음 청장은 나나 중부청장 둘 중 하나가 될 텐데. 네가 있으면 내가 청장 자리에 갈 수 있을 것 같거든.”
나는 물끄러미 청장의 빈손을 바라보았다.
“청장이 되실 분이라 민치호 국장님을 따르는 게 아닙니다. 제게 아무것도 없을 때 절 알아봐 주시고 도와주신 분입니다. 그분이 없었다면 지금의 전 없었을 겁니다.”
민치호, 그리고 이선균이 없었다면 나는 지금쯤 공무원 시험을 포기하고 일반 회사에 있을 것이다.
사람에게는 일생에 기회가 세 번 온다고 하던가.
내게 있어서 첫 번째 기회는 그날 잠수교에서였다.
공무원 시험이야 내 힘으로 봤고 실적 역시 내 힘으로 쌓았다.
하지만 내게 압력이 들어오지 않도록 위에서 막고 뒤에서 밀어준 두 상사의 노고는 감히 이 자리에서 말 한 마디로 대신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나의 완곡한 거절을 알아들었는지 청장은 순순히 손을 거두었다.
“안 될 거라고 생각은 했다. 말 한 마디로 넘어올 놈 같으면 애초에 내가 탐내지도 않았어.”
하지만 그것마저 청장의 시험이었나 보다.
내가 씁쓸하게 웃자 청장이 팔걸이를 탕 쳤다.
생각의 정리가 끝난 모양이다.
“좋아. 이 자리에서 명확하게 말해주지. 첫째, 업무 외적인 이유로 내가 널 방해하거나 밟진 않을 거다. 둘째, 네가 말한 그 기준점을 잃지 않는다면 나 역시 외부의 압박은 막아 주마. 셋째, 네가 이끄는 팀은 과세권과 조사권에 있어 전적인 자유를 가진다. 단, 조사 과정에 위법이 있는 경우엔 전적으로 네게 책임을 묻는다.”
청장의 조건은 명쾌했다.
오히려 내가 바라는 것이기도 했다.
하지만 한 가지 확인해야 할 것이 있었다.
“청장님은 제게 직접적으로 손대지 않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 서울청의 다른 직원들은 어떻습니까? 개중에는 청장님께 충성 경쟁하느라 과하게 열정적인 사람도 있을 법한데요.”
청장의 눈에 들겠답시고 날 치려는 놈이 한둘쯤은 나올 법하다.
청장이 직접 할 수 없으니 심복을 시켜서든, 아니면 정말로 열정이 과해서든.
청장은 잠시 의외라는 듯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다시 팔걸이를 두드렸다.
“번복할 생각은 없다. 내가 직접적으로 건드리는 일은 없을 거야. 하지만 서울청의 직원들에게 널 건드리지 말라고 적극적으로 막는 일도 없을 거다. 다들 나이 먹을 만큼 먹은 사람들이니 알아서 잘 판단하겠지.”
“그 말씀은, 앞으로 싸움 걸어오는 놈들은 청장님의 의도는 아니란 말씀이시죠?”
“그것만은 확답하지. 내가 널 칠 때는 직접 할 거다. 그게 내가 인재에게 표하는 예의다.”
3년 차에 갑작스레 서울청에 올라온 팀.
분명 바람 잘 날이 없을 것이다.
그러니 청장이 내 적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하고 싶었다.
다행히 청장의 대답은 호의적이었다.
이 정도 반응이면 청장이 많이 양보했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앞으로 많은 활약 기대하마.”
이걸로 대화는 끝났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90도 각도로 깍듯하게 인사했다.
그리고 청장실을 나가려 할 때였다.
“이건 가져가라.”
청장이 테이블 위에 놓여 있던 서류철을 밀었다.
주욱 밀린 서류가 내 앞에 놓였다.
“서울청 막 올라온 병아리들이 뭐 조사할지 몰라 청을 헤집고 다니는 건 보기 싫어서. 정 할 거 없으면 조사해 봐.”
내가 서류를 집어 들자 청장이 소파에서 일어나 창가로 다가갔다.
명백한 축객령이다.
“감사합니다.”
고개를 숙이고 청장실을 나왔다.
복도에 멈춰선 나는 잠시 서류를 어루만졌다.
잊은 걸 주는 것처럼 가볍게 툭 던졌다 해도 만만하게 볼 건은 아닐 것이다.
잠깐의 대화였지만 청장은 생각 없이 일을 줄 사람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그가 말한 대로 ‘헤집고 다니는 건 보기 싫어서’라는 이유를 순수하게 믿을 상황도 아니다.
어차피 서울청에 들어온 이상 나는 헤집고 다닐 수밖에 없다.
그것도 감수하고 날 불렀을 테고.
그러니 이것도 무언가의 시험이겠지.
할 거 없으면 해 보라고 하긴 했지만 어떤 꿍꿍이가 도사리고 있을지 모르는데 한편에 박아 둘 수도 없다.
“하…….”
나는 깊은숨을 내뱉었다.
시작부터 빡세겠군.
하지만 바라는 바다.
무엇보다 나만의 팀을 얻어냈으니까.
이제 시작이다.
나를 여기까지 밀어준 민치호 국장과 이선균 과장을 위해서라도, 겨우 3년 차밖에 안 된 나를 믿고 서울청까지 따라온 팀원들을 위해서라도.
“해보자!”
가볍게 외친 나는 의욕 넘치게 사무실의 문을 열었다.
“어, 이제 왔어요? 반갑습니다. 특수1팀의 팀장 권현아예요.”
그리고 사무실로 들어가자마자 한 낯선 여성과 마주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