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4화. 황민우의 가족들(1)
삼성 세무서, 체납추적1팀의 안길진은 오늘도 습관처럼 일찌감치 출근해서 시간을 죽이는 중이었다.
지난 일주일 동안 기자들에게 시달리다 보니 남들 없는 새벽에 일어나 출근하는 것이 습관이 된 것이다.
그런다고 세무서 앞에 있는 기자를 안 만나는 건 아니지만, 출근 시간에 붙잡혀 다른 직원들에게 민폐를 끼치는 것보단 나았다.
모두 출근하고 나면 기자들이 철수하기 때문이다.
그러면 적어도 출근 시간에 지나가는 다른 과 직원까지 붙잡히는 일은 없었다.
‘너무 일찍 왔네…….’
업무 시작까지는 아직도 시간이 많이 남았다.
안길진은 뉴스 란을 열었다.
[류석호 국회의원, 수상쩍은 돈거래 파문]
[현직 국회의원의 정치 후원금을 이용한 뇌물수수]
[여당, 류석호 제명 처리]
[류석호 전 의원 구속 기소]
[속보] 류석호, 장애 아동 착취까지?]
[류석호 엄벌 청원, 하루만에 50만 돌파]
정치, 경제, 사회면 모조리 류석호에 대한 기사로 도배가 되다시피 했다.
그리고 그중 한 기사의 구절이 눈에 들어왔다.
-기자회견 당시 신재현 씨는 자세한 증거를 제시하지는 않았지만, 직후 한대일보가 공개한 영상에 따르면 류석호 의원이 무역회사를 이용한 것은 사실인 것으로 판단된다.
어제까지만 해도 세무서와 팀을 공격하는 논조였는데 이렇게 하루아침에 방향이 바뀐 것이다.
‘끝까지 믿길 잘했어.’
안길진 역시 흔들린 적이 하루 이틀이 아니다.
9급 말단인 안길진의 집에도 기자들이 초인종을 누를 정도였으니까.
이상하게도 기자는 팀원들의 신상을 매우 속속들이 알고 있었다.
가족들이 시달리는 것을 보자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때 이 팀의 첫 사건이 떠올랐다.
1팀의 모두가 들러붙어 한 달을 고생했고, 결국 징세를 해냈다.
성공했을 때의 그 짜릿함과 성취감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머리가 빠개져라 서류를 들여다본 고생이 이제는 그냥 추억으로 느껴질 정도니까.
만약 자신이 중간에 포기했더라면 이런 성취감은커녕, 중간에 빠진 사람처럼 후회를 하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역시 믿길 잘했어.’
신재현은 끊임없이 자신의 선택을 증명해 왔다.
안길진도 믿음으로서 증명하고 싶었다.
실력은 걸음마 단계더라도 의욕만큼은 진짜라고.
탈세범이 누구든 가리지 않고 들이받고 싶다고.
기회만 주면 자신도 잘해 보겠다고.
‘조금은 증명이 됐을까.’
자신은 그저 자료를 정리한 것뿐이었지만 언젠가는 인정받고 싶었다.
그 신재현에게.
-다음은 해당 사건을 단독으로 파헤친 나학진 기자의 영상입니다.
생각에 잠긴 사이 뉴스의 화면이 전환되었다.
자료화면에 내레이션을 넣는 뉴스의 방식과 비슷하면서도 달랐다.
화면은 흔들리고 곳곳에 모자이크가 들어가 있었다.
날 것 그대로의 느낌 때문에 현장감이 생생했다.
-류석호 의원이 운영했다고 알려진 무역회사의 직원 K씨의 말을 들어보겠습니다.
K씨 : 직원이요? 제가 거기서 3년 넘게 일했었는데, 직원이 3명밖에 없어요. 주민등록번호만 넣는 거예요. 절대 10명씩 일하고 그럴 규모가 아니에요.
기자 : 혹시 거래처 말고 다른 사람 오가는 건 본 적 있습니까?
K씨 : 가끔 비싼 차 타고 와서 사장이랑 얘기하는 건 봤는데 누군지는 몰라요. 어디 기업 회장님인가 했지.
음성 변조도 있었지만 친절하게도 자막이 들어가 있었기 때문에 듣는 데 어려움은 없었다.
영상은 항상 1인칭의 시점으로 진행되었다.
기자 혼자서 찍고 질문하기 때문인지 기자의 모습이 보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래서인지 더욱 생생함이 넘쳤다.
-기자 : 잠시만요!
누군가는 카메라를 보자마자 도망치기도 했다.
카메라가 위아래로 거칠게 흔들리고 기자의 숨소리가 들렸다.
긴박함이 흘렀다.
손에 땀을 쥐고 영상을 보고 있자니 저 앞에서 누군가 나타났다.
신재현이다.
-기자 : 그 사람! 그 사람이요!
기자는 숨이 차서인지 제대로 말을 하지 못했다.
그러나 용케 신재현은 그 말을 알아듣고 도망치는 남자를 쫓기 시작했다.
-세무공무원 : 선생님! 얘기 좀 하시죠! 선생님!!!
저 앞에서 황민우도 나타나 둘이 함께 남자를 쫓기 시작했다.
아직 젊은 나이라 그런지 둘은 빨랐다.
기자가 헉헉거리며 쫓아가는 동안 세 남자가 골목 너머로 사라졌다.
기자의 숨소리는 이제 선명하게 들릴 정도로 거세졌다.
한결 느릿해진 걸음으로 골목을 돌자 세 남자가 허리를 구부린 채 벽을 붙잡고 있었다.
-세무공무원 : 선생님, 왜…… 왜 도망치세요.
-L씨 : 쫓아오니까…… 그렇지…….
-세무공무원 : 저희, 경찰, 아니거든요, 질문만 좀…….
-L 씨 : 아, 뭔데요.
-세무공무원 : 1년 전에, □□무역회사 총무로 계셨잖아요…….
신재현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남자가 후다닥 달려 나갔다.
-세무공무원 : 으악!
신재현의 단말마와 함께 또다시 달리기가 시작되었다.
기자의 ‘아.’하는 깊은 탄식이 들렸다.
이건 숫제 수사 드라마를 보는 듯한 박진감이다.
어느 세무공무원이 저러고 다니겠는가.
곧 방송국에서 주요장면만 편집했는지 몇몇 장면이 스킵된 후 기자의 내레이션이 나왔다.
화면에는 책상 위에 늘어진 서류가 보였는데 다 모자이크된 상태였다.
아마 진짜 서류가 아니라 그럴듯한 자료화면일 것이다.
-우리는 □□무역회사의 직원들을 만나 여러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과연 무역회사에 등록된 유령 직원들은 실존하는 걸까요? 그 직원들의 이름으로 기부된 정치 후원금은 과연 어떻게 된 일일까요? 그 국회의원은 이 모든 사실을 알고 있었을까요? 정답을 밝히는 일은, 이제 검찰의 몫이 되었습니다.
안길진은 다시 한번 감탄했다.
결정적인 증거는 없지만, 꽤 잘 짜 놓았다.
애초에 증거를 잡았다 해도 기자에게 취재하라고 보여 줄 수는 없는 일이다.
기자는 정황뿐이었지만, 누가 봐도 합리적 의심이 가능하도록 영상을 짜 놓았다.
고가의 전문 장비를 쓰지 않아서인지 화질이 떨어지는 부분도 있고 편집이 튀기도 했지만, 그것이 오히려 현장감을 높여 주었다.
아마 이 영상이 몰고 온 폭풍은 장난이 아니었을 것이다.
스크롤을 내리자 과연 댓글창은 폭발적이었다.
-dof*** : 나 이거 풀영상 보고 왔는데 시간 개순삭됨. 안 본 놈은 빨리 보고 와라. 삭제될 수도 있다ㅋㅋㅋ 무슨 범죄 수사물 보는 줄ㅋㅋ
-lo8*** : 아 현실이 이렇게 재밌는데 영화사는 뭐 먹고 살라고! 이거 빨리 풀버전 고화질로 극장에 걸어놔라. 찍은 기자는 방송국도 차릴 수 있을 듯
-ppo*** : 댓글 단 놈들 태세전환 보소. 어제까지만 해도 공무원 다 짤라버리라고 ㅈㄹ했던 놈들이.
-mon*** : 대한민국 세무서의 중심에 신재현이 있습니다. 형! 멋있다!
-osp*** : 세무서가 사실 수사권이 없거든요. 세무조사라는 권한이 있긴 하지만 그걸로 알 수 있는 건 한계가 있어요. 그런 점에서 의혹이 있다고 저렇게 발로 뛰는 공무원은 특이한 케이스입니다.
안길진은 댓글을 읽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동안 사무실에서 셋이 산처럼 쌓인 서류작업을 하는 동안 대체 신재현과 황민우는 어딜 싸돌아다니나 했다.
그런데 영상을 보니 그런 불평들이 쏙 들어갔다.
‘나는 편한 거지.’
경찰도 아닌데 협조를 받을 수 있을 리도 없다.
즉, 오로지 발품만으로 알아냈다는 소리다.
남에게 시키지도 않고 본인이 직접.
생각하면 할수록 굉장한 사람이었다.
‘황민우 서기님이 왜 깍듯하게 상사로 모시는지 알겠네.‘
안길진은 문득 부러움을 느꼈다.
둘은 작년 용산 세무서에서 만나 함께 삼성으로 왔다고 했다.
그럼 황민우는 진작 신재현이 어떤 사람인지 알아보았다는 것이 아닌가.
작년에는 겨우 1년 차 직원이었을 테니 그리 눈에 띄는 활약을 하지 못했을 것인데.
-nhj*** : 님들 그거 앎? 작년 용산 세무서에서 유착 공무원 싹 쓸어낸 사건 있었는데, 그거 신재현이 한 거임ㅇㅇ
눈에 띄는 활약을…… 했구나.
안길진은 감탄했다.
***
오늘은 오랜만에 9시 직전이 되어서 출근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났다고 어머니와 함께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어느새 출근 시간이 임박해 있었다.
호의적인 눈길을 보내는 기자들 사이를 뚫고 사무실에 들어오자 순간 직원들의 고개가 내게 쏠렸다.
지난 일주일은 6층과 9층을 왔다 갔다 했기 때문에 이곳 사무실로 오는 것은 굉장히 오랜만처럼 느껴졌다.
“좋은 아침입니다.”
직원들과 눈이 마주치자 괜히 멋쩍어서 아침 인사를 해 보았다.
그러자 그게 신호라도 된 듯 일제히 일어나서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짝짝짝.
“고생하셨습니다!”
“신재현 주사보님! 환영합니다!”
그동안 나 때문에 귀찮아한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열렬한 환영에 순간 울컥한 마음이 들었다.
그간 피로가 싹 풀리는 느낌이다.
“믿고 있었다, 신재현!”
“신재현! 신재현! 신재현!”
내 이름을 연호하는 사람들에게 깊이 고개를 숙여 보이고는 내 자리를 찾아가 앉았다.
내가 업무 준비를 시작하고 나서야 사람들은 환호를 멈췄다.
그런데, 책상 위에 뭔가가 쌓여 있었다.
포장된 사탕과 초콜릿, 음료수 등이다.
“이게 뭡니까?”
옆자리 직원에게 물어보자 그가 눈을 반짝였다.
“며칠 전에 화이트데이였잖아요. 다른 과 여직원들이 와서 놓고 갔어요. 세무서에서 만나면 주려고 벼르고 있었나 본데 신재현 씨가 세무서에 없어서 두고 간 거예요.”
그러고 보니 9층 사무실에 못 보던 음료수 박스들이 있었던 것이 기억났다.
나는 팀원들이 간식으로 사다 먹은 줄 알았더니 어디서 받아 온 것이었나 보다.
“봐요. 황민우 씨도 받았잖아요. 신재현 씨 것이 훨씬 많긴 하지만. 우리가 몰래 까먹으려다 하나씩 보태 놨어요. 저거 ABC 초콜릿은 내가 놓은 거예요.”
직원이 씨익 웃었다.
“우리 서 내에도 신재현 씨 응원하는 사람이 많다는 뜻이에요.”
대충 세 봐도 초콜릿 수는 20개를 넘었다.
언제 다 먹지 싶을 정도의 양이었다.
나는 혀를 내두르며 쇼핑백을 꺼내 책상 위에 있던 것들을 전부 집어넣었다.
그제야 책상이 깨끗해졌다.
“감사 인사를 해야겠는데 혹시 누가 두고 가신지 기억하세요?”
“기억 못 하죠. 괜찮아요. 그냥 줬다는 것만으로도 좋을 테니까.”
알 수 없는 말을 남기고 직원이 다시 일로 돌아갔다.
***
“그동안 고생하셨을 테니까 오늘은 이만 들어가시고 내일 마무리합시다.”
9층의 사무실에서 짧게 업무 정리를 마치고 직원들을 퇴근시켰다.
목표도 달성했으니 곧 이쪽 사무실을 정리하고 다시 체납징세과에서 출퇴근하게 될 것이다.
장세훈과 강혜원, 안길진이 사무실을 나가자 황민우가 말했다.
“우리 조사 과정을 말한 사람은 아무도 없나 봅니다.”
“그러네요. 일부러 6층하고 9층 왔다 갔다 하면서 다른 말을 떠들었는데.”
6층의 소회의실에서는 나와 황민우가 주로 내려가 회의했다.
세무서 내에 혹시라도 첩자가 있는지, 그리고 저 셋을 믿어도 될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만약 6층에서 한 말이 새어 나갔다면 세무서 내에 류석호의 첩자가 있다는 뜻이고, 9층에서 한 말이 새어 나갔다면 저 셋 중 하나가 배신했다는 소리다.
그런데 단 한마디도 기사화되거나 류석호의 심문 과정에서 흘러나오지 않았다.
“정말 다행입니다.”
진심이었다.
공무원이라고 다 깨끗한 건 아니라지만 적어도 이 서에 있는 사람은 다 동료라고 생각했다.
믿고 싶었다.
그리고 그들은 믿음으로 보답했다.
배신자는 아무도 없었다.
“주사보님을 보며 일하는 사람들이니까요.”
황민우가 희미하게 웃었다.
그도 안심했는지 뿌듯한 얼굴이다.
“힘들 때 친구가 친구라고 하죠? 신상까지 털린 상황에서 끝까지 남았으니 적어도 저 셋은 믿어도 되겠군요.”
한시름 놓은 기분이었다.
앞으로 더한 놈들을 칠 텐데 그때마다 조사 상황이 새어 나가면 도루묵이니까.
이번 일의 성과는 류석호를 잡았다는 것만 아니다.
믿을 수 있는 사람을 얻었다는 것도 매우 큰 성과였다.
황민우와 이런저런 잡담을 하며 세무서를 나왔다.
“오랜만에 한잔할래요?”
지하 주차장을 통해 나오며 뒤를 돌아보았다.
왜인지 황민우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오늘은 별로예요?”
피곤한 사람을 괜히 붙잡았나.
그럼 어쩔 수 없지, 하고 역으로 향하려는데 황민우의 시선 끝에 한 여자가 서 있는 것이 보였다.
나이로 치면 나와 비슷하다.
“설마 여자친구……?”
일 때문에 그렇게 바쁜 와중에도 연애할 틈이 있었나?
놀라서 묻자 황민우가 잔뜩 얼굴을 찌푸리며 나를 돌아보았다.
“여동생입니다.”
“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