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화. 사냥은 상대를 가리지 않는다(7)
나는 잠시 말을 멈추고 기다렸다.
그들에게 있어선 받아들이기 힘든 말일 테니, 기자들이 내 말을 온전히 이해하도록 시간을 준 것이다.
굳이 길게 설명하지 않아도 내가 던진 폭탄은 무겁고도 조용하게 그 존재감을 불렸다.
처음에는 잘못 들었나 귀를 의심하는 표정의 기자들이 멍하니 입을 벌렸고.
이어 기자들의 아우성이 봇물 터지듯 강당을 채웠다.
“씨발, 말이 돼? 말이 되냐고!”
“거짓말 아니야?”
“증거 있습니까?”
부정하는 사람, 의심하는 사람, 하나라도 더 정보를 캐내기 위해 내게 질문하는 사람…….
그러나 수십 명의 기자들이 한꺼번에 쏟아내는 말은 허공에서 뭉쳐 웅웅대는 소음이 되었다.
나는 다시 마이크를 내렸다.
“대답해 주십시오!”
“조사 결과 나온 결론입니까?”
“류석호 의원의 비리를 알게 된 것은 언제입니까!”
이번엔 쉽게 수그러들지 않았다.
기자들은 먹이를 바라는 아기 새처럼 저마다 목소리를 높였다.
나는 조용히 연단 아래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딸칵.
강당의 불이 꺼졌다.
“뭐, 뭐야!”
“폭탄 발언만 하고 도망가는 겁니까!”
“불 켜!”
기자들의 아우성이 점점 고함이 되어갈 무렵, 정면의 스크린에 빛이 들어왔다.
프로젝터 빔이다.
내가 옆으로 비켜서자 천장에 달린 프로젝터가 스크린 위에 간략한 도식을 그려냈다.
황민우와 내가 직접 뛰어 명단을 추려내고, 나머지 셋이 사무실에서 맞추어 낸 그림이다.
류석호 본인은 손댈 것도 없을 정도로 깨끗했지만, 그 뒤에 펼쳐진 장막을 한 겹만 들추어내자 드러난 것은 진흙탕이었다.
“류석호 의원이 당선되기 전에 행복나눔의 집을 운영했다는 건 다들 아실 겁니다. 그 시설에서 총무로 일하던 백 모 씨는 현재 인천의 모 무역회사의 대표로 있습니다.”
나는 그동안 우리가 맞춰온 퍼즐을 하나하나 풀어서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에 맞추어 스크린이 한 장씩 도식을 비췄다.
기자들이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내가 던져주는 것들을 받아 적느라 바쁜 것이다.
“백 모 씨는 노숙인의 주민등록번호 수십 개를 이용해, 자신의 회사에 가짜 직원 또는 가짜 일용직으로 등록한 후 그 명의의 계좌에 월급 명목으로 돈을 입금했습니다.”
새카만 공간에 플래시가 번쩍이며 스크린을 수놓았다.
기자들은 당장이라도 앞으로 튀어나올 듯 온몸을 들썩였다.
스크린을 찍으려고 다가오다가 뒷사람에게 잔소리를 듣는 사람도 있었다.
“그리고 그 빌린 명의로 정치 후원금을 송금했습니다. 1명당 연간 후원 한도는 500만 원입니다. 10명이면 5천만 원이고 100명이면 5억이죠. 그 규모가 얼마나 될지는 상세한 조사가 필요하겠지만, 여기 계신 분들은 다들 감이 오실 겁니다.”
예를 들어 홍길동이라는 노숙자의 주민등록번호를 빌려 회사에 직원으로 등록한다.
이 홍길동은 실제로 회사에서 일하는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서류상은 직원이다.
회사 통장에서 홍길동이라는 사람에게 매달 월급과 상여금이 나가도 문제가 없는 것이다.
그렇게 모은 돈은 류석호 의원 후원회로 들어간다.
실제 홍길동이라는 사람은 서울역 어딘가에서 소주 두 병을 마시고 자고 있지만, 아무도 그 사실을 모른다.
서류상 홍길동은 류석호 의원의 정책을 흠모해 후원금으로 그 뜻을 나타내는 선량한 유권자일 뿐이다.
그런 홍길동이 과연 한 명만 있었을까?
기자들이 타자를 두드리는 속도가 빨라졌다.
사방에서 셔터음과 타자 소리가 섞여 들렸다.
오늘 모인 것은 대부분 정치부 기자일 것이다.
수 싸움에도 조예가 깊을뿐더러 눈치도 빠르다.
이 정도만 설명해도 대충 알아들었을 것이다.
“증거는 있습니까!”
앞줄의 기자 하나가 손을 번쩍 들고 소리쳤다.
표정을 관리할 생각도 없는지 두 눈을 부릅뜨고 있었다.
나는 연단 아래를 향해 가볍게 손짓했다.
곧 프로젝터가 꺼지고 강당에 다시 빛이 돌아왔다.
“증거야 있죠. 하지만 여기서 밝히기엔 부적절합니다.”
“이유가 뭡니까!”
“조사 중인 사안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이유는 따로 있었다.
내 조사의 기반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과정 없이 정답만 콕 짚어 알 수 있는 내 눈.
또 다른 하나는 지현석 검사가 넘겨준 정보다.
검사가 준 정보와 내 눈에 보이는 것을 바탕으로 자료를 추린 후 금융 기록을 끼워 맞췄다.
그 결과를 지현석 검사에게 알려줬더니 그가 마늘밭 사건과의 연관성을 찾아냈다.
문제는 그 과정이다.
-검찰에서 류석호 의원과 백 모 씨, 그리고 측근들의 통화기록을 조회해 줬습니다. 회사에 고용된 직원들도 모조리 팠지요. 제 눈으로 직접 보고 추렸습니다.
이런 말을 어떻게 한단 말인가.
좋게 말하면 공조지만, 잘못하면 검찰이 스스로 수사 정보를 외부인인 나에게 흘렸다는 비난을 받을 수 있었다.
지금은 공격의 빌미를 주면 안 된다.
온 힘을 다해 류석호를 물어뜯어 아래로 추락시켜야 했다.
현직 국회의원을 건드린다는 것은 그런 것이다.
기회가 왔을 때 떨어뜨리지 못할 경우 상대는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고, 나는 역공을 당할 것이다.
“그러면 검찰에서 수사 중이라는 말씀입니까?”
“단순 탈세를 넘어선 사안이니 당연히 검찰이 착수를 했지요.”
“그럼 지금 이 기자회견에서 하는 말은 엠바고입니까?”
엠바고.
어느 시점까지 보도하지 말 것을 뜻하는 용어다.
수사 중인 데다 증거까지 밝힐 수 없다고 하니 기자가 엠바고를 떠올리는 것도 과언은 아니다.
하지만 정말 말하면 안 되는 일이었다면 기자회견을 열지도 않았다.
게다가 지금 저 뒤에서는 생방송 중계도 하고 있는 상황이고.
“그렇게까진 안 해도 됩니다. 제가 오늘 말씀드린 것은 이미 어느 정도 증거를 확보한 사안이니까요. 허락도 받고 나온 겁니다.”
머지않아 검찰이 수사 결과를 대대적으로 발표할 것이고 그때 증거도 함께 발표할 것이다.
그것은 검찰 쪽으로 넘기기로 이미 얘기도 끝난 상태였다.
“저희 삼성 세무서는 검찰 조사에 협조하여 세무 조사 내용을 제공하고, 류석호 의원이 탈세한 것이 있으면 철저히 조사하여 세금을 부과할 방침입니다.”
다시 한번 플래시 세례가 쏟아지고 한 기자가 물었다.
“그런데 왜 류석호 의원을 조사하기로 마음먹으신 겁니까? 항간의 소문으로는 다른 목적이 있었던 것이 아닌가 하는 말이 있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중간에 앉은 기자였다.
그는 적대감 가득한 눈빛을 내게 보내고 있었다.
류석호에게 뭐라도 받아먹었나?
너 얼굴 내가 기억했다.
“정치 공작이요? 제가요? 기자님은 이제 막 2년 차에 올라선 7급 주사보가 현직 국회의원에게 정치 공작한다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싸움이라는 건 상대가 대등할 때나 성립되는 것이다.
정치 공작?
내가 평범한 세무직 공무원이었으면 정치인의 ‘정’만 꺼내도 바로 얻어맞고 지방으로 날아갔을 것이다.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데 그걸 공작이라고 하진 않는다.
자살행위라고 하지.
즉, 일반적인 상식이 있다면 내가 정치 공무원이니 뭐니 하는 말은 나오지도 말았어야 한다.
“미친, 어디 기자야! 저런 것도 질문이라고 해?”
“당신도 정치 공무원의 수작이라는 기사 썼던 주제에 뭔 말이 그렇게 많아!”
“시간 아까우니까 쓸데없는 질문은 하지 맙시다!”
주위의 기자들이 아웅다웅했다.
이런 일도 생각보다 흔한지 다툼은 금방 진화되었다.
나는 기자들이 진정하기를 기다려 다시 마이크를 들었다.
“그리고 왜 류석호 의원이냐고 물으셨는데…….”
나는 깊게 심호흡을 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나도 좀처럼 마음을 가라앉힐 수가 없었다.
일반 영세 상인들을 조사하는 것은 뉴스에 나올 건덕지도 안 된다.
그런데 국회의원을 건드렸다고 9시 뉴스에 나오고 온 TV와 신문을 도배하다시피 해?
나는 화를 꾹꾹 눌러 참으며 낮게 말했다.
“탈세범을 조사하는 건 저희 세무 공무원의 당연한 업무입니다. 왜냐구요? 그야 조사가 필요하니까 했습니다!”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높아졌다.
다시 심호흡하고 목을 가다듬었다.
“이것이 사건의 전말입니다. 이상 기자회견을 마치겠습니다. 이것으로 모든 오해가 풀렸기를 바랍니다.”
내가 고개를 숙이자마자 사방에서 기자들이 소리쳤다.
“한 말씀만 더 해 주십시오!”
“류석호 의원에게서 이상함을 느낀 게 언제부터입니까!”
나는 입을 꾹 다물고 입구로 향했다.
기자들이 자리에서 뛰쳐나와 길을 막으며 마이크를 들이댔지만, 요리조리 피해 가며 강당을 나섰다.
“신재현 씨! 한 말씀만 더 해 주세요!”
뒤에서 처절하게까지 느껴지는 외침이 들려왔지만 돌아보지 않았다.
밥상은 차려 줬다.
떠먹는 건 기자들의 역할이었다.
복도로 나오자 벽에 기대 있던 이선균 과장과 나학진 기자가 보였다.
과장에게 가볍게 묵례한 후 나학진을 보자 그가 손으로 동그라미를 만들어 보였다.
나학진이 나를 쫓아다니며 찍은 영상, 그것은 결정적인 증거는 아니었다.
하지만 내가 보고 들은 건 다 넣었다.
말하자면 ‘저것이 알고 싶다’와 비슷한 물건이었다.
내 기자회견이 1타, 저 영상이 2타.
그리고 검찰의 조사 발표가 3타.
이 정도면 아무리 현직 국회의원이라도 빠져나가지 못할 것이다.
사냥은…… 성공적이다.
***
2선 국회의원 류석호는 사무실 소파에 앉아 TV를 켰다.
공중파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자 하나의 채널에서 원하는 것을 발견했다.
세무서의 기자회견.
아주 같잖은 짓거리다.
“어디서 되지도 않는 짓을 하고 앉았어. 국세청장이 서장하고 같이 나와서 머리를 숙여도 부족할 판에 뭐? 7급? 이것들이 단체로 미쳤나?”
류석호에게 있어 오늘 기자회견은 이미 본 것이나 다름없었다.
범을 건드린 하룻강아지가 자신의 실수를 눈치채고 어떻게든 살아보기 위해 이런 쇼를 벌인 거겠지.
기자까지 불러서 TV 화면에 대고 무릎이라도 꿇을 생각인 걸까.
하지만 이미 늦었다.
류석호는 공무원을 용서할 생각이 없었다.
“그냥 악수 좀 하고 가만히 있었으면 내가 어련히 알아서 세법 개정해줬을 텐데. 굿이나 보고 떡이나 처먹는 게 그렇게 어렵나?”
류석호가 직접 세무서까지 찾아갔다가 무시를 당했다.
세법 개정을 하겠다는 선언까지 했는데 세무서는 조사에 착수했다.
이는 배신이고 기만이었다.
감히 제 분수를 모르고 날뛰는 놈에게는 그 선택이 얼마나 어리석은 것이었는지 보여 줄 생각이었다.
“이 기자! 나예요. 공무원들이 사과문 발표하면 분위기 봐서 무릎이라도 꿇어야 되는 거 아니냐고 한소리 해줘요. 국민을 기만한 놈들이니 당연히 무릎을 꿇어야죠. 이 기자가 분위기 조성은 잘하잖아. 그럼요, 고마워요.”
아는 기자와의 통화도 마친 류석호는 한결 편안해진 마음으로 소파에 반쯤 드러누웠다.
화면에 막 익숙한 얼굴의 청년이 나타나 마이크를 잡았다.
이렇게 보니 정말 새파랗게 젊은 놈이었다.
“쯧. 세상 무서운 줄 모르고 날뛸 만은 하네.”
하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철부지 애송이라고 해도 자신에게 덤벼드는 놈을 놔둘 생각은 없었다.
류석호가 다시 마음을 굳힌 순간, 누군가 사무실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의, 의원님!”
사무실에서 잡일을 도맡아 하는 여직원의 목소리였다.
확 짜증이 난 류석호가 소리를 질렀다.
“지금 중요한 일이 있어서 방문객은 받지 않는다고 했잖아!”
“그, 그게 아니라…….”
한술 더 떠서 사무실 문이 벌컥 열렸다.
분노를 터뜨리려던 류석호는 여직원 뒤에 줄 서 있는 남자들을 보고 순간 말문이 막혔다.
안경 쓴 젊은 남자가 TV 화면을 보더니 빙긋 웃었다.
“류석호 의원님. 서울서부지검에서 나왔습니다.”
그리고 동시에 TV에서 젊은 공무원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 무역회사의 실질적 소유주가 바로 류석호 의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