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국세청 망나니-110화 (110/500)

110화. 사냥은 상대를 가리지 않는다(6)

-웅성웅성.

세 개의 세무서가 오손도손 입주해 있는 강남 역삼 빌딩의 2층.

거기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발 디딜 틈도 없이 들어차 있었다.

보통은 새 서장 취임식이나 관할 지역의 세무 대리인 간담회 때나 외부인에게 개방되는 공간.

그런 세무서 2층은 지금, 강당의 목적으로 사용된 이래 역대 최고로 많은 수의 손님으로 몸살을 앓고 있었다.

“어허, 밀지 말아요.”

“당신 어디 신문사야? 우린 호원일보거든?”

“사옥도 없는 인터넷 신문사가 어딜 들어오려고! 자리 없으니까 복도로 나가, 복도로!”

“여기 자리 있습니다. 자리 있어요! 아, 비집고 들어오지 마세요!”

세무서가 생긴 이래 이 정도의 난리가 있었을까.

외부 손님을 통제하기 위해 차출된 민원실의 직원들이 기겁하고 손을 뗄 정도였다.

“이건 우리 선에서 정리가 안 되는데 어떡해…….”

강당으로 사람들을 안내하던 직원 하나가 탄식했다.

민원실에서 급하게 안내하러 지원 나온 직원은 단 셋.

셋만으로 이 많은 인원을 감당하는 것은 무리였다.

“조금만 안으로 들어가 주세요! 문을 막으시면 안 됩니다!”

상황을 정리하기 위해 애썼지만, 직원의 외침은 기자들의 고성 속에 허무하게 묻혔다.

직원이 낙담하고 있을 때 뒤에서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렸다.

“기자회견을 2층에서 한다는 것만 안내하세요. 굳이 정돈하지 않아도 됩니다.”

“아, 이선균 과장님!”

강당으로 올라가는 계단 앞에 서 있던 직원은 이선균을 보자 반가워했다.

감당을 못해 쩔쩔매고 있었는데 과장의 말은 사막의 단비 같았다.

“그런데 저대로 내버려 두면 충돌이 일어나지 않을까요?”

직원이 손끝으로 강당 입구를 가리켰다.

좋은 자리를 잡으려고 꾸역꾸역 밀고 들어가는 자들과, 애써 잡은 자리를 빼앗기지 않으려고 버티는 자들이 기 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저들은 이런 현장을 하루 이틀 다닌 게 아닙니다. 머지않아 알아서 정돈될 거예요.”

“아, 넵!”

이선균은 직원들을 다독인 후 복도 벽에 등을 기댔다.

강당 안에 들어가지 못한 자들이 하나둘 포기하고 밖에서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래도 많이 오긴 했네…….’

이선균은 겉으로 평온한 표정을 지었지만, 식은땀이 목을 타고 흐르는 것은 막을 수 없었다.

열띤 취재 경쟁?

말이 좋아서 경쟁이지 이자들은 전부 하이에나나 다름없다는 것을 이선균도 잘 알았다.

기자가 이렇게 많이 몰렸다는 것은 좋은 뜻이 아니다.

무언가 뜯어갈 게 있다는 뜻이었다.

아마 기자들은 대부분 세무서의 치부를 들추길 기대하고 있을 것이다.

‘누구의 살점을 물고 돌아가게 될지는 두고 봐야 알 거다…….’

이선균은 긴장과 기대감으로 연신 마른침을 삼켰다.

그리고 강당 안에도 누구보다 기대감에 부푼 기자가 하나 있었다.

한대일보의 김호섭.

그는 편집부를 조르다시피 하여 스트리밍 권한을 얻어냈다.

때문에 영상 송출용 카메라에 카메라 담당 취재 기자까지 끌고 나온 참이었다.

“호섭아. 스트리밍은 너무 오버 아니야?”

맨 뒷줄에 장비를 세팅하고 미세조정을 마친 카메라 담당 기자가 미심쩍은 눈을 하고 물었다.

“저도 처음엔 긴가민가했는데 와 보니까 알겠네요. 뭔가 터질 것 같아요.”

기자에게 있어 감은 중요한 것이다.

흔히 냄새를 맡았다는 표현을 쓰곤 하는데, 어떤 소재를 찾았을 때 이것이 꽝일지 신문 1면을 장식할 특종일지 판단하는 것은 기자의 중요한 능력이었다.

“그야 쓸 만한 기사는 나오겠지. 기자회견 주체가 7급 주사보잖아. 소문의 그 공무원. 실검 1위도 오르내리는 상황이니 무슨 말을 하든 조회수 폭발일걸.”

사실 강당 안의 분위기는 그랬다.

실제로 국회의원을 털 거라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번 기자회견 역시 여론의 압박을 못 이긴 공무원이 사죄하는 자리를 만든 것이라 생각했다.

매일 같이 세무서 앞에 기자들이 진을 치고 있었기에 출퇴근하는 공무원은 물론, 민원인까지 곤욕을 치렀다.

시끄러운 것을 싫어하는 공무원의 특성상 국세청 고위 공무원 회의에서 좋은 소리가 나왔을 리 없다.

빠른 수습을 위해 국세청이 취할 수 있는 행동은 둘이다.

전력을 다해 조사해서 본인들이 맞았음을 증명하거나, 대국민 사과로 여론을 진정시키거나.

그런데 조사를 했다기엔 시간이 너무 부족했다.

하다못해 검찰 조사도 한 달을 기본으로 먹고 들어가는데, 이제 겨우 일주일이 지났다.

수사권 없는 세무서에서 일주일간 무엇을 했겠는가.

무엇을 할 수 있었겠는가.

카메라 기자는 피식 비웃음을 흘렸다.

“서장도 아니고, 과장도 아니고, 실무 뛰는 7급이 나와서 기자회견 하는 거 본 적 있어? 이건 그거야. 국세청 위쪽에서는 저놈을 버리기로 마음먹은 거라고. 지금 국민들이 얼마나 화났는지 너도 알잖아.”

“그렇긴 하죠. 관련 기사는 새로운 내용 없이 상황 정리만 해서 올려도 조회수가 기본 십만 단위를 기록하잖아요.”

“그래. 대중은 굶주려 있어. 피를 보길 원한다고. 먹잇감만 들려주면 흔적도 남지 않을 정도로 갉아 버릴걸.”

김호섭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안 그래도 요즘 네티즌은 무섭다.

벌써 공무원들의 이름과 나이를 포함해 신상까지 터는 사람이 나올 정도였다.

“그러니까 성난 대중을 잠재우기 위해서 희생양을 내세우는 거라고. 미담의 주인공이었다가 대형 사고를 친 장본인이 직접 나와서 고개를 숙이는 것만큼 좋은 그림도 없지.”

카메라 기자의 말에 김호섭은 주위를 바라보았다.

다들 가벼운 흥분감으로 들떠 있었다.

물론 그 흥분은 곧 처참히 물어뜯길 세무공무원의 기사를 쓸 수 있다는 것에서 온 고양감일 것이다.

이들 중 그 누구도 국회의원 류석호의 실각을 예상하는 사람은 없었다.

“제 생각은 좀 다른데요.”

김호섭은 손에 든 노트북에 시선을 내렸다.

화면에는 기사를 쓰기 위한 백지 외에도 메일함이 띄워져 있었다.

카메라 기자와 잡담을 하면서도 그의 한 손은 계속 메일함을 새로고침하고 있었다.

“설마 나학진 얘기를 믿는 거야?”

한대일보에 있어 나학진의 이름은 몰락의 상징이었다.

한대일보를 거쳐 다른 곳으로 간 기자야 수도 없이 많다.

그러나 메이저 신문사에 발도 못 붙일 정도로 아예 업계에서 쫓겨나다시피 한 나학진은 두고두고 놀림거리였다.

게다가 지금은 삼류 인터넷 찌라시에서 연예인 뒤꽁무니나 쫓아다닌다던가.

“나학진 선배를 전적으로 믿어서가 아니에요. 냄새가 납니다.”

나학진이 그렇게 자신하며 스트리밍을 준비시켰다.

나학진은 기자회견이 끝나자마자 정치부를 총동원하라는 당부까지 했다.

그렇게 초라한 꼴로 도망치듯 한대일보를 떠났던 나학진이 웬만한 걸로 큰소리를 쳤을 리가 없다.

“아마 오늘은 굉장히 재밌을 것 같아요.”

김호섭이 손가락을 뚜둑거리며 타자를 칠 준비를 했다.

약속된 시각이 다가오고 있었다.

이윽고 정각이 되자 강당이 고요해졌다.

아까 그렇게 소란을 피우던 사람들도 지금은 숨소리조차 내지 않고 있었다.

곧 문이 드르륵 열리고 한 청년이 모습을 드러냈다.

-찰칵찰칵!

‘생각보다 젊네.’

등장한 청년은 기자로서는 굉장히 익숙한 얼굴이다.

언제 어디서 마주쳐도 바로 쫓아갈 수 있도록 사진을 수십 번 봤으니까.

그러나 소문의 주인공인 청년을 이렇게 가까이에서 본 것은 처음이었다.

이제 막 20대 후반쯤 되었을까.

지난 일주일간 전국을 떠들썩하게 한 것 치곤 굉장히 젊었다.

그는 강당을 가득 메운 기자들을 보고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오히려 앞을 가로막은 기자들을 가만히 쳐다보고는 나직하게 말했다.

“죄송한데 지나가겠습니다. 잠시만 비켜 주세요.”

쏟아지는 플래시 때문에 눈을 뜨기 힘들 텐데도 청년은 침착하게 길을 뚫었다.

청년의 뒤로 네 명의 남녀가 따라 들어왔지만, 기자들은 본능적으로 알았다.

지금 카메라가 쫓아야 하는 것은 이 청년이었다.

역시나 기자들의 무리를 헤치고 연단 위로 걸어가는 것은 청년 한 사람뿐이었다.

나머지 네 사람은 연단 바로 앞에서 멈춰 섰다.

김호섭은 그 다섯을 보고는 의아함을 느꼈다.

‘저렇게 다섯이 팀인 건 알겠는데, 그럼 윗대가리는? 서장, 과장…… 아무도 안 나와 본다고?’

일이 이상하게 돌아감을 느낀 것은 김호섭만이 아니었다.

아무리 희생양이라 해도 결국 책임 소재는 여기서 끝나지 않을 것이다.

위의 누군가가 옷을 벗어야 하고 대국민 사과를 해야 한다.

그런데 강당에는 코빼기도 비치지 않고 저들만 나온다고?

카메라 기자와 김호섭이 의미심장한 눈빛을 나눴다.

‘스트리밍 절대 끊기면 안 돼요.’

김호섭은 카메라에 목소리가 녹화될까 봐 입만 뻐끔거렸다.

카메라 기자는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고 촬영에 집중했다.

아까 비웃음을 짓던 여유로움은 온데간데없었다.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그도 느낀 것이다.

-찰칵찰칵.

셔터음이 강당을 가득 채운 가운데 연단에 올라선 청년이 마이크를 쥐었다.

“갑작스러운 기자회견에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삼성 세무서 체납징세과 체납추적1팀의 세무주사보 신재현입니다.”

청년의 떨림 없는 자기소개를 시작으로, 폭탄이 조용히 떨어졌다.

***

사람이 굉장히 많았다.

배려도 없이 눈앞에서 터지는 플래시는 순간적으로 눈을 아리게 했다.

그러나 나는 찡그리지도 눈을 감지도 않았다.

지금 이 모습은 생중계 중이다.

굳이 생중계가 아니더라도 녹화되어 오늘 저녁 9시 뉴스를 장식하겠지.

아니, 앞으로 최소 한 달간은 나와 류석호에 대한 이야기로 시끄러울 것이다.

-찰칵!

연단에 서자 쏟아지는 플래시에 기자들의 얼굴이 제대로 보이지도 않았다.

눈앞이 하얗게 변하는 순간, 어머니의 짧은 문자가 눈앞에 떠올랐다.

[재현아, 엄마는 믿는다. 힘내.]

뭐라고 답장했더라.

아마 ‘괜찮아. 뉴스 꼭 봐.’라고 답했던 것 같다.

이젠 물러설 수 없다.

류석호가 기자들을 이용해 자신을 억울한 피해자로 포장한 것처럼, 나도 똑같이 기자를 이용해 줄 셈이었다.

이들이 물어뜯는 대상은 곧 내가 아닌 류석호로 바뀌게 될 것이다.

“갑작스러운 기자회견에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막상 입을 열자 떨림은 가라앉았다.

짧은 인사를 마치고 앞줄의 기자와 눈을 마주쳤다.

그리고 침착하게 이야기를 꺼냈다.

담소라도 나누는 것처럼, 그저 가볍게.

“2년 전에 마늘밭에서 현금 5억 원이 발견된 것을 기억하십니까? 언론에는 그저 주인이 나타나지 않아 비밀리에 환수했다, 고만 보도되었던 사건입니다.”

저놈이 무슨 소리를 하나, 하는 표정이 보였다.

웬 쓸데없는 얘기냐는 힐난의 눈빛도 화살처럼 꽂혔다.

재촉하는 듯한 날 선 눈빛 속에서도 나는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그 후로 비밀리에 검찰은 수사를 이어갔습니다. 당연한 일이죠, 난데없이 현금 5억이 발견되었는데 적어도 어떤 범죄 조직이 거기다 파묻어 놨는지는 알아야 할 것 아닙니까.”

“그게 이번 일과 관련이 있습니까?”

“사과하기 위해 기자회견을 자청하신 것 아니었나요?”

기다림을 참다못한 앞줄의 기자 몇이 질문을 던졌다.

나는 잠시 마이크를 내리고 빤히 그들을 바라보았다.

지금은 내가 말할 시간이다.

너희는 입을 다물어라.

내가 이야기를 중단하자 질문 공세를 퍼붓던 기자들도 분위기를 파악했다.

마지막까지 질문하던 한 기자는 옆자리 기자의 ‘일단 조용히 해 봐!’라는 말에 겨우 입을 다물었다.

강당이 아까보다 훨씬 조용해졌다.

나는 다시 마이크를 들었다.

“검찰은 오랜 기간 끈질긴 수사로 결국 돈의 주인을 찾아냈습니다. 바로 인천항을 통해 마약을 밀반입하던 무역회사의 검은돈이었습니다.”

잠시 뜸을 들였지만, 이번에는 아무도 질문하는 사람이 없었다.

그저 벌겋게 충혈된 눈으로 소리 없이 재촉할 뿐이다.

그렇다면 보답해 줘야지.

“그 무역회사의 실질적 소유주가 바로 류석호 의원입니다.”

장내에 소리 없는 아우성이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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