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국세청 망나니-109화 (109/500)

109화. 사냥은 상대를 가리지 않는다(5)

밑에 기자들이 와 있다고 했지.

나는 뉴스 온에어를 켰다.

저녁 뉴스인데도 실시간으로 현장을 연결해 중계하고 있었다.

뉴스 화면에 익숙한 세 명의 얼굴이 찍혔다.

안길진과 강혜원은 어찌할 바 모르고 세무서 안쪽으로 뒷걸음질 치고 있고, 장세훈은 그런 둘을 자기 뒤로 보내며 전화를 하고 있었다.

전화 대상은 물론 나다.

나는 아직 끊기지 않은 전화를 들어 외쳤다.

“아무런 말도 하지 마세요! 절대 한 마디도 해선 안 됩니다!”

-알고 있어!

나도 그렇지만, 지금 밑에 있는 셋은 기자에게 익숙하지 못하다.

가뜩이나 당황한 상태에서 기습적인 질문을 받으면 어떤 헛소리가 튀어나갈지 몰랐다.

게다가 생방송이니 수습할 틈도 없이 전국에 퍼질 것이고.

“예, 아니오도 해선 안 됩니다. 무조건 묵비권 하세요!”

-알고 있다고!

더 이상의 통화도 위험했다.

나는 전화를 끊고 화면 속의 장세훈에게 집중했다.

그는 몰려드는 기자들 틈새를 뚫고 비교적 침착하게 계단을 내려서고 있었다.

뒤따르는 강혜원은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 있었지만, 장세훈이 뚫어 놓은 길로 성큼성큼 발을 내디뎠다.

술 마실 때부터 알아보긴 했는데 강혜원은 제법 강단이 있다.

문제는 안길진이었다.

-신재현 씨는 아직 세무서에 있습니까? 지금 류석호 의원을 캐고 있는 것 맞죠?

-아…….

-이유가 뭡니까? 정당한 근거가 있습니까?

기자의 질문에 안길진이 흔들렸다.

그것이 화면 너머로도 보였다.

“안길진 씨는 주사보님이 어떤 사람인지 모릅니다. 어떤 확신도 갖고 있지 않아요. 흔들면 무너질 겁니다.”

옆에서 함께 화면을 지켜보던 황민우가 나직하게 말했다.

나도 동감이었다.

그리고 안길진이 위태로운 것을 느낀 건 나와 황민우만이 아니었다.

눈썰미로 먹고사는 기자들은 더했다.

-설마 근거 없이 무작정 밀어붙이는 겁니까? 류석호 의원에 대한 조사는 진척이 있습니까?

안길진이 구멍임을 안 순간, 기자들은 단숨에 그에게 달려들었다.

빈틈을 찾아낸 하이에나처럼.

앞서가던 강혜원이 어어, 하고 돌아보는 것이 보였다.

-대답해 주세요!

안길진이 뒤처지고 그 사이로 기자들이 들어와 틈을 메꿨다.

장세훈, 강혜원과 떨어지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사방에서 쏟아지는 질문 공세에 안길진이 입을 열려는 순간, 장세훈의 우렁찬 고함 소리가 들렸다.

-야! 얼 타지 마!

장세훈은 일부러 안길진의 이름을 부르지 않았다.

이름이 전국에 퍼지게 되면 더욱 정신 상태가 구석에 몰릴 것을 걱정한 것이다.

장세훈 나름의 배려였다.

-빨리 안 와?

동아줄을 본 사람처럼, 안길진이 후다닥 계단을 뛰어 내려왔다.

셋이 화면에서 사라져 지하철 입구 쪽으로 향하자 나와 황민우는 동시에 한숨을 내쉬었다.

“위험했습니다.”

“기자들을 움직인 건 류석호겠죠?”

“그럴 겁니다. 직접 손을 쓰지 않고 치다니 치사하네요. 원래 정치인은 다 방식이 이렇게 치졸한가?”

입에서 쓴맛이 났다.

차라리 나한테 따지러 왔다면 아무런 소동 없이 돌려보낼 자신이 있었다.

그렇기에 다른 팀원에겐 별다른 준비를 시키지 않았고.

그런데 이런 식으로 나올 줄은 몰랐다.

뭔가 내가 아는 상식선 밖에서 움직이는 기분이었다.

“저쪽은 이런 싸움에 익숙한 것 같습니다.”

황민우가 우려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이 이상 또 무슨 공격이 올까.

지현석 검사는 시간 싸움, 명분 싸움이라고 했다.

눈에 보이는 것은 막을 수 있다.

하지만 사각에서 들어오는 것은 예상하고 있어도 막을 수 없다.

분명 내일은 또 다른 공격이 사각에서 날아들 것이다.

“시간 싸움이라…… 내일은 빨리 움직여야겠군요.”

황민우가 각오한 얼굴로 굳게 고개를 끄덕였다.

***

명분 싸움.

그것 또한 생각지도 못한 사각에서 날아왔다.

일부러 새벽같이 눈을 떴는데도 밤사이 올라온 뉴스는 한 층 더 기괴한 방향으로 진화해 있었다.

[삼성 세무서의 신재현, 그는 누구인가?]

[류석호 의원은 정치적 공작에 희생당했다]

기사는 하나같이 나를 파렴치한 정치 공무원으로 몰고 있었다.

중립의 의무를 다해야 할 공무원이 일부러 멀쩡한 여당의 의원을 찍어내려 한다는 것이다.

기자들은 밤에 잠도 안 자나.

랭킹에 올라온 기사들을 보니 더 가관이었다.

[형은 대기업 사위, 사촌은 대기업 며느리]

어느새 가족 관계 파악까지 끝냈다.

이건 일반인이 쉽게 파악할 수 없는 내용인데.

-류석호 의원을 조사 중인 삼성 세무서의 공무원 신 모 조사관은 가족 중에 재벌 관계자가 둘이나 있다. 둘 다 재계 10위 안에 들어가는 거대 기업이다. 류석호 의원은 평소 친서민 정책으로 재계의 반대를 받아 왔다. 재계와 연관 있는 공무원이 반재벌 성향의 인사를 공격하는 데는 이면이 있는 것이 아닌지 의심이 든다.

의심이 든다?

이게 기사인지 칼럼인지 모를 지경이다.

대부분의 논조가 그랬다.

그들은 나를 재벌의 앞잡이로 그려놓고 있었다.

기사가 다들 이렇다 보니 댓글은 더욱 뻔했다.

[BEST] 진예슬 때 가차 없이 터는 거 보고 반할 뻔했는데…… 내 감동 돌려내라

[BEST] 알고 보니 유착된 거 실화냐? 세상에 이렇게 믿을 놈이 없어.

-나 쟤랑 같은 고등학교 나옴. 원래부터 또라이였음. 애들도 패고 다님.

-아니 여기서 학폭까지?

[신고로 인해 블라인드 된 댓글입니다]

-위에 같은 반이라는 놈 구라까지 마라. 내가 진짜 같은 반이었는데 이거 뭔가 잘못된 것 같다. 절대 저럴 놈 아님. 기사에서 나온 형도 여기에서 말하는 것처럼 그런 관계자 아님. 오히려 둘이 앙숙이라고.

-형인데 앙숙 이ㅈㄹㅋㅋㅋㅋㅋ

-실드로 맞기 전에 실드 그만 치라고ㅋㅋㅋ

이 댓글은 나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이 단 것 같았다.

누구인지 감은 잡히지 않았다.

취직하고 잘리고, 시험 공부를 하면서는 자연히 친구와도 멀리했다.

밥 먹는 시간도 아까웠으므로.

이제 와서는 가끔 문자만 주고받는 친구 몇이 있긴 한데…….

시간이 갈수록 여론은 점점 나에게 등을 돌리고 있었다.

지난 3일간 조용했던 것이 간 보기인지, 나에 대해 조사하기 위한 시간을 벌기 위한 것이었는지는 모른다.

그러나 내 신상을 터뜨리는 속도를 볼 때, 이들은 더한 것을 쥐고 있다고 봐도 무방할 듯싶었다.

아니, 지금은 여유롭게 생각에 빠져 있을 때가 아니다.

문자함을 열어 보니 어떻게 내 번호를 손에 넣었는지 인터뷰 요청 수십 개가 들어와 있었다.

당연하게도 모조리 차단했다.

그러고 남은 하나의 문자는 지현석 검사였다.

세무 공무원에게 주기엔 지극히 개인적인 정보.

통신 기록과 문자 내용, 보좌관과 측근 10여 명의 부동산 내역이 주르륵 나열되어 있었다.

보내준 자료의 내용을 보는 순간 지현석 검사 역시 이번 일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단순한 정보 제공 수준이 아니다.

이 정도면 지현석 검사의 모든 것을 총동원한 것이다.

나는 측근들의 재산 내역과 부동산 목록을 보며 눈을 가늘게 떴다.

조금만, 잘하면 보일 것 같은데.

[5--,317,0-0]

[70,81-,590]

보였다!

나는 서둘러 주소를 옮겨 적은 후 이들의 이름과 재산 내역을 장세훈에게 메일로 전달했다.

오늘 하루 이들이 조사해 짜 맞춰줄 퍼즐이다.

이것뿐만이 아니다.

-사락.

몸을 일으키자 침대 위에 널려 있던 서류들이 흩어졌다.

잠들기 직전까지 보고 있던 것이다.

[3-,6-0,--1]

[16-,4--,7--]

류석호 의원을 파고들다 보니 내 눈에 밟힌 것들이다.

실마리는 갖춰졌다.

깔끔하게 정리된 자료들 가운데서 찾아낸 실낱같은 연결고리였다.

하지만 나에겐 이 정도면 충분했다.

[아동 복지에 평생을 바친 류석호 의원의 일대기]

대놓고 띄워 주기용 기사에 온화한 미소를 짓고 있는 류석호의 얼굴을 손끝으로 툭 쳤다.

기다려라, 웃을 수 있는 날도 얼마 남지 않았으니까.

***

대한민국 3대 일간지, 한대일보 정치부의 김호섭은 난감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눈앞에 상거지 꼴을 하고 앉아 있는 것은 2년 전 쫓겨난 자신의 사수, 나학진이었기 때문이다.

갑자기 카페로 불러내더니 떡하니 김호섭에게 커피를 사라고 한 것이다.

“선배, 인터넷 뉴스에 들어갔다고 하지 않았어요? 거기 월급 잘 안 줘요?”

무례한 질문이었지만 도저히 묻지 않고는 배길 수가 없었다.

씻지 않아 냄새가 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머리는 산발에 옷은 먼지가 가득했고 신발엔 흙이 잔뜩 묻어 있었다.

“이 멍청아. 내 꼴을 보고 월급 얘기가 먼저 나오냐? 기자라는 자식이.”

-타악!

나학진이 들고 있던 종이를 말아 김호섭의 머리를 때렸다.

“아, 선배. 저도 이제 중견 기자인데 취급이 너무하신 거 아니에요?”

“어디 취재 다녀오셨나요? 특종이라도 있었어요? 라고 묻는 게 먼저지. 이놈아.”

“취재라고요? 특종 있어요?”

김호섭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상체를 기울였다.

나학진은 커피를 마시다 말고 뚫어져라 김호섭을 바라보았다.

그것이 나학진 특유의 생각법이라는 걸 알고 있는 김호섭은 조용히 그가 입을 열기를 기다렸다.

“그 전에 궁금한 게 있는데. 지금 류석호 건, 어느 선에서 내려온 거냐?”

“에이, 선배. 그걸 제가 어떻게 알아요.”

“나도 거기 있어 봤으니까 둘러댈 생각은 하지 말고. 주필? 편집? 아니면 더 위야?”

김호섭은 입맛을 쩝 다시고는 주위를 휘휘 둘러보았다.

대낮의 카페는 한산했고, 김호섭은 상체를 기울이며 목소리를 낮췄다.

“꼭대기입니다.”

“사장?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아? 어떻게 2선 의원 류석호가 이렇게 일제히 거대 신문사에 손을 쓸 수 있는지. 지금 대한민국 여론이 전부 류석호 동정론으로 기울고 있어. 뒤에서 뭐가 오가지 않는 이상 어려운 일이라고.”

“류석호가 돈이라도 줘서 포섭했다는 말이에요? 선배도 알다시피 류석호는 깨끗하기로 유명하잖아요.”

“그래서 온갖 이해관계로 얽히고 엘리트 의식 충만한 3대 신문사가 하나같이 류석호 편을 드냐? 아니지, 범위를 넓혀서 10대 신문사 중에서 어떻게 류석호한테 이의를 제기하는 새끼가 한 놈도 없어?”

“그……렇게 말씀하시면 제가 할 말이 없는데요.”

김호섭은 기어들어 가는 말투로 커피를 홀짝거렸다.

그도 알고는 있었다.

반대 의견 하나 나오지 않는 지금 상황이 이상하다는 것을.

하지만 위에서 방침을 정해 준 이상 직원인 자신은 따를 수밖에 없었다.

“만약에 류석호한테 구린 구석이 있다면 어쩔래?”

“예? 그거 확실한 건가요?”

“한대일보 방침은 어떤데? 지금이야 류석호가 깨끗해 보이니까 우호 기사를 쓴다 치자. 류석호의 이면이 터지면 그때도 우호적으로 쓸 것 같냐?”

김호섭은 진지하게 생각에 잠겼다.

나학진이 뜨거운 커피를 후룩거리며 4분의 1쯤 들이켰을 무렵, 김호섭이 고개를 들었다.

“아니요, 버립니다. 국회의원이라고 해도 2선입니다. 흠집 난 의원한테 그 정도로 의리 지켜줄 관계는 아니에요.”

“좋아. 그럼 됐어.”

“예? 아니 그게 끝이에요? 특종 뭔데요, 류석호가 알고 보니 개새끼다 그런 겁니까? 말을 좀 해 주세요.”

김호섭이 안달 난 사람처럼 조급하게 재촉했다.

나학진은 등받이에 편안하게 등을 기대고 시계를 확인하더니 핸드폰을 가리켰다.

“슬슬 올 때 됐는데. 문자 확인해 봐.”

“그게 무슨 말…….”

-띠링.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김호섭의 핸드폰이 울렸다.

내용을 확인한 김호섭이 입을 떡 벌렸다.

“화제의 그 세무서 공무원이 직접 기자회견을 하겠답니다. 선배가 말한 게 이거 맞죠? 뭔데요. 정말로 사주를 받고 류석호를 캤다는 자기 고백? 아니면 류석호가 개새끼라는 증거?”

다급한 김호섭과 달리 여유를 만끽한 나학진이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요즘엔 너희도 인터넷 스트리밍 하지? 가서 기자회견 스트리밍 해. 그리고 정치부 총동원해서 기사 쓸 준비하고 기다려. 기자회견 끝나는 순간 너한테 보내줄 게 있으니까.”

“설마…….”

“한대일보는 오늘 하루 종일 실검에 오르게 될 거다.”

나학진의 눈빛은 2년 전처럼 또렷이 빛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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