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8화. 사냥은 상대를 가리지 않는다(4)
서울서부지검 차장검사실.
두 명의 남자가 조용히 앉아 있었다.
이 방의 주인인 차장검사 송대희.
그리고 형사 3부의 부장검사인 곽정욱.
3부장이 차장실을 들락거리는 거야 자주 있는 일이지만 오늘은 평소와 분위기가 달랐다.
둘은 같은 방에 앉아 있으면서도 쉽사리 입을 열지 않았다.
그렇다고 할 말이 없어 어색한 침묵이 내려앉은 것도 아니다.
둘은 각자 깊은 생각에 잠긴 채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똑똑똑.
“들어와.”
그리고 기다리던 사람이 왔다.
문을 열고 들어온 남자는 급하게 달려온 듯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큰일입니다.”
“무슨 일인지 알고 있어. 일단 앉아, 지현석.”
지현석은 평소 풀어헤치고 다니던 것과는 다르게 정장 재킷의 단추까지 꽉 잠근 빈틈없는 모습이었다.
그는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부장검사의 건너편 자리에 덥석 앉았다.
그 또한 지현석의 평소 행동과는 거리가 먼 모습이었지만, 아무도 지적하지 않았다.
왜 지현석이 헐레벌떡 달려왔는지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세무서의 신재현 씨가 국회의원 류석호에 대한 자료를 요청해 왔습니다.”
인사말도 서론도 없이, 다짜고짜 본론이었다.
“그래, 그것 때문에 지금 이러고 있는 거야.”
곽정욱 부장이 자못 심각한 얼굴로 옆을 가리켰다.
1인석 소파에 앉은 차장검사가 소파에 깊숙이 몸을 묻은 채 생각에 잠겨 있었다.
“이미 알고 계신 거라면 제가 아닌 다른 쪽에서 들으셨다는 얘긴데. 그러면 국세청 라인에서는 이 건 허가가 떨어졌다는 얘기군요? 저쪽에서 묵인했으니까 신재현 씨가 제게 자료 요청을 한 것 아닙니까.”
“그쪽 회의로는 신재현을 믿겠다는 결론이 났어.”
차장이 눈을 꾹 감은 채 묵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지현석은 고개를 끄덕였지만, 부장은 반대였다.
부장검사는 아예 차장 쪽으로 돌아앉으며 열변을 토했다.
“왜 하필 류석호입니까? 현직 2선 의원에 국민의 호감도는 하늘을 찌르고 있습니다. 게다가 여당이에요! 당장 지금 TV만 틀어도 뉴스 채널에 류석호 얼굴이 나오는 판국입니다!”
“류석호가 정치적 감각은 대단하긴 하지. 시류를 탈 줄도 알고. 신재현이 공중파 뜬 바로 다음 날 아침에 세무서로 들이닥쳤잖아. 그 생각은 누구 머리에서 나왔을까. 류석호 본인?”
“차장님!”
부장이 답답하다는 듯 외쳤다.
“지금 건드리기엔 너무 큽니다. 적어도 발 디딜 기반은 닦아 놓고 거물들 치기로 하신 것 아니었습니까? 국세청 쪽 칼은 아직 세무서를 전전하고 있고, 우리 쪽도 세력이 부족합니다. 감당할 수 있으리라 보십니까?”
부장의 지적은 현실적이었다.
그는 국세청 라인이 무언가 단단히 착각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지현석. 너도 그렇게 생각하나?”
차장의 질문에 지현석이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말했다.
“저쪽에도 나름 생각이 있을 겁니다. 신재현이 막 나가는 성향은 있어도 아무나 걸리라는 식으로 찔러보는 사람은 아닙니다. 무언가 확신이 있었으니 위험을 무릅쓰고 타깃으로 잡은 거겠죠.”
“확신? 증거라도 잡은 걸까?”
“그랬으면 자료 요청을 하진 않을걸요.”
차장과 지현석의 문답에 부장이 무릎을 탁 쳤다.
“혹시 다른 세력과 손잡은 건 아닐까요? 정치적인 의도를 가진 누군가가 접근해 류석호를 끌어내리라는 제안을 한 겁니다. 어떻습니까?”
부장이 눈을 빛내며 물었지만, 차장과 지현석의 반응은 떨떠름했다.
“그랬으면 우리가 먼저 알았을걸.”
“부장님. 신재현 씨는 그런 이유로 상대를 고르지 않아요. 누군가 의도를 가지고 접근해 왔다면 그 인간부터 쳤을걸요.”
지현석이 오른손을 들어 자신의 목을 치는 시늉을 했다.
“곽 부장, 그거 직업병이야. 모든 것을 의심하는 그 자세는 검사의 귀감이긴 한데.”
자신의 의견이 단칼에 기각되자 부장이 시무룩해졌다.
“어찌 되었든 우리 중 가장 신재현을 잘 파악하고 있는 건 지현석, 너야. 바로 옆에서 본 네 의견을 말해. 네가 류석호를 조회하는 순간 기록에 남는다. 그러니 네 목을 걸 수 있는지 잘 생각해 봐.”
“걸죠.”
“대충 말고! 진지하게!”
“진지한데요.”
1초의 망설임도 없는 대답에 부장이 한숨을 내쉬었다.
“근거라도 좀 말해라. 너만 목을 거는 게 아니니까. 우리도 판단 좀 하자.”
“첫째, 신재현은 상대가 반드시 탈세범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움직입니다. 그동안 행적을 보면 알 수 있죠. 대체 어떻게 아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상대가 탈세범인지 아닌지 확인하는 과정이 없습니다. 대상을 특정하면 바로 증거를 잡기 위한 조사에 들어가요.”
지현석은 미리 준비라도 해 온 것처럼 막힘이 없었다.
그 역시 지금 이 자리에서는 괜찮은 척하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 많은 고민을 했던 것이다.
앞으로 위험한 다리를 건널 일이 많으니 분석은 당연한 일이기도 했다.
“잠깐, 이의 있는데. 그럼 더더욱 누군가에게서 정보를 받고 있다는 뜻 아니야?”
“그럴 수도 있죠. 하지만 신재현 씨가 어느 한쪽의 세력을 편든 적은 없어요. 이게 곧 두 번째 이유기도 한데, 아무리 캐 봐도 신재현 씨는 세무서 이외의 그 어떤 것과도 이해관계가 없습니다.”
“저번에 사촌이 한울 며느리로 들어갔다며.”
“그것도 검증 끝났습니다. 신재현 씨가 세무서 들어오기 전부터 사촌은 연애 중이었습니다. 상대가 재벌 3세인 건 모르는 상태로요.”
“한울을 위해 류석호를 칠 가능성은?”
부장은 빈틈이라 생각되는 부분은 가차 없이 공격해 들어왔다.
그러나 지현석 역시 한 치도 밀리지 않았다.
“한울이 집권 여당의 국회의원을 친다고요? 한울이 파산 직전입니까? 회장이 사고를 쳐서 국회의원을 인질로 잡아야 하는 위기상황입니까?”
“끄응…….”
부장이 반박하지 못하고 끙끙 앓는 소리를 냈다.
“셋째로 신재현 씨는 상대가 누구든 가리지 않는 성향을 가졌습니다. 그가 맡은 건을 보면 제1야당의 비상 대책 위원도 있어요. 이건 본인의 성격입니다. 칼은 상대를 가리지 않는다고 하잖아요.”
부장의 어처구니없어하는 표정을 본 지현석이 씨익 웃었다.
“이게 마음에 드는 부분이기도 하고요.”
“좋아. 네 말은 알겠어. 믿을 만하다는 것도 알겠고. 그래도 한 가지 걸리는데. 정보를 어디서 얻는 거지?”
“글쎄요. 국세청 쪽 라인 아니겠어요?”
부장과 지현석의 대화를 조용히 듣고 있던 차장 검사가 끼어들었다.
“더 위에서 나왔을 수도 있지.”
“위…… 예? 위요?”
“곽 부장. 이건 덮어두자고. 자, 그럼 돕는 거로 결정하고.”
“차장님. 결정 내리신 겁니까?”
부장이 얼굴을 굳혔다.
“지 검사가 세무서의 조사관을 믿듯 나도 민치호, 그 작자를 믿거든. 그럼 지 검사는 저쪽에서 요청 온 거 처리해 주고, 곽 부장은 할 일이 좀 있어.”
“류석호 뒷조사 말씀이십니까?”
부장 역시 닳고 닳은 검사다.
차장의 말이 무슨 뜻인지 단번에 알아들었다.
“저쪽에서 실패했을 때를 위한 보험을 만들어 두면 되겠습니까? 다 같이 살아남을 수 있는 방향으로.”
“그래. 국세청 라인에서 대상으로 잡았으니 분명 구린 데가 있어. 파면 나올 거야. 곽 부장 그런 거 잘 하잖아.”
차장의 칭찬 아닌 칭찬에 부장이 눈빛을 반짝였다.
“오, 부장님 오랜만에 실력 발휘 좀 하십니까?”
“인마, 저쪽 라인이 막 나간다고 너까지 따라가면 안 돼. 몸 좀 사려.”
“어차피 부장님이 지켜 주실 텐데요, 뭐.”
“아…… 말이나 못 하면. 이러면 내가 몸이 부서져라 일해야 되잖아. 귀찮은 놈아!”
부장은 지현석을 타박하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정장 재킷을 잠갔다.
“이놈 때문에 바빠질 것 같으니 먼저 일어나 보겠습니다.”
“수고해.”
부장이 지현석을 때리는 시늉을 하며 나가자 차장이 너털웃음을 지었다.
“부장 너무 놀리지 마라. 곽 부장 저래 봬도 정치인 건들다가 충청도까지 내려갔던 양반이다.”
“시동이 늦게 걸리는 분이라 조금 도와드린 것뿐입니다. 존경하고 있습니다.”
지현석이 의뭉을 떨자 차장은 피식 웃었다.
국세청 쪽 직원이 난리라고 남 말 할 때가 아니었다.
차장검사 자신이 직접 고른 검사 역시 국세청 라인에 뒤지지 않을 인재였으니.
“그래. 어디 한번 해 보자.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알지?”
“예!”
지현석은 강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
류석호를 파기 시작한 지 3일이 지났다.
사무실 책상 위에는 계좌 내역과 친인척의 재산 변동 내역이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국세청에서도 금융 정보는 조회가 가능하지만, 이 정도로 디테일한 자료는 역시 검사가 아니면 조회하기 어렵다.
“처음 국회의원이 된 것은 6년 전이에요. 지난 6년간의 기록을 살펴본 바로는 깔끔합니다.”
“류석호는 정말로 깨끗해 보이는데…… 정말 뭐가 있긴 있는 건가요?”
그리고 류석호는 그 모든 자료가 무색하게 깔끔했다.
일반인이나 사업가들과는 수준이 다를 거라 생각했지만, 이쯤 되면 감탄이 나올 지경이다.
-이 건은 시간 싸움과 명분 싸움이 될 겁니다. 국회의원은 일반인을 상대할 때와 궤가 달라요. 어떻게 다른지는 직접 겪어 보면 알게 될 겁니다. 좋은 경험이 될 거예요.
지현석 검사가 자료를 넘겨 주며 한 말이 생각났다.
다른 충고는 아직도 이해하지 못했지만 하나는 알겠다.
정말로 궤가 다르다.
“신재현 주사보님. 혹시 다른 정보가 있다면 공유해 줄 수 있습니까? 아무리 봐도 깨끗한데요.”
가장 바깥 자리에 앉아 자료를 맞춰보던 안길진이 지친 목소리로 말했다.
“류석호와 그 가족의 통장은 사용처가 명백합니다. 500만 원 이상의 출금액을 기준으로 따져 봤는데 한쪽에서 나가면 다른 쪽에서 들어오고, 수표 배서 내역도 명확해요.”
수표는 주고받을 경우 뒤에 이름과 주민등록번호를 적게 되어 있다.
누가 은행에서 발급을 요청했는지부터 추적하면 중간에 몇 명 빠져도 알아보기 쉬웠다.
“멍청이가 아니라면 수표 사용은 깨끗하게 했겠지. 통장도 잘 관리했을 거고. 이건 우리 선에서 찾기 어려운 것 같은데.”
장세훈이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보통은 뭔가 하나라도 발견했을 때 그 줄기를 파고들어가서 맞추다 보면 전체 윤곽이 나오기 마련이다.
어디에 무엇이 숨겨져 있는지 모르는 우리로서는 실마리를 따라가는 방법밖에 없었다.
그런데 지금은 뭘 따라가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정말 뭐 있는 거 맞습니까? 잘못 짚으신 거 아니에요?”
안길진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3일간 파도 무언가 걸리는 게 없으니 그런 의심을 품을 만했다.
장세훈과 강혜원은 아직까지 잘 따라와 주고 있지만, 이 이상 실마리가 없으면 그들도 포기하게 될 것이다.
이렇게 되면 역시 내가 직접 눈으로 보고 뛰어다니는 수밖에 없다.
서류로 실마리를 찾지 못한다면 내 눈으로 답안지를 보는 수밖에.
“일단 검사 측에 추가로 자료 요청해놓은 게 있으니 기다려 봅시다. 오늘은 이만하고 들어가세요. 내일은 둘러볼 데가 있어서 좀 늦을 겁니다.”
“그럼 먼저 들어가 보겠습니다.”
장세훈과 강혜원, 안길진이 주섬주섬 일어나 사무실을 나갔다.
뭔가 소득이 없으니 뒷모습이 축 처져 있었다.
“내일 어디로 가실 겁니까? 차 렌트하겠습니다.”
황민우는 당연히 따라온다는 것을 전제로 말하고 있었다.
나도 당연하게 말을 받았다.
“류석호가 국회의원이 되기 전부터 했던 사업들 다 훑어보러 갈 겁니다. 관계자도 만나 보구요.”
“준비하겠습니다.”
황민우가 묵묵히 동선을 짜기 시작했다.
사무실 내에 침묵이 내려앉자 문득 김명중 과장의 말이 떠올랐다.
황민우에게도 뭔가 사정은 있는 것 같은데.
황민우도 나도 둘 다 암묵적으로 그 화제를 피하고 있었다.
굳이 그렇게 대단한 일도 아닌데 왜 말하기 꺼려지는지는 나도 모른다.
그래도 황민우는 끝까지 믿고 갈 사람이니 언젠가는 말해야겠지.
그리고 그 상념은 한 통의 전화로 깨졌다.
방금 퇴근한 장세훈이었다.
“뭐 놓고 간 거 있으세요?”
-야! 지금 그럴 때가 아니야! 1층에 난리 났어!
“또 기자들입니까?”
-그래, 기자들인데 3일 전하고는 차원이 달라. 뉴스! 뉴스 봐!
장세훈의 다급한 목소리에 웅성거리는 소음이 섞였다.
나는 얼른 황민우에게 손짓했다.
그의 핸드폰을 받아 들어 네이버를 켰다.
실시간검색어
1위. 신재현
2위. 류석호
3위. 국회의원 표적 수사
-며칠 전 탈세 혐의로 체포된 뉴튜버 진모 씨에게 엄격한 법 적용을 보여줌과 동시에 따뜻한 한 마디로 화제가 된 세무서 공무원을 기억하십니까? 그 공무원이 현직 국회의원 류석호를 표적으로 잡고 조사하고 있다는 제보가 들어왔습니다. 하필, 미담으로 명성 자자한 국회의원을 조사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 뒷사정에 무엇이 있을지 저희 N뉴스가 추적했습니다.
뉴스는 거의 대부분 류석호가 억울하게 조사를 받고 있다는 식의 논조로 작성되어 있었다.
나는 뉴스를 훑어보며 지현석 검사의 말을 그제야 이해했다.
확실히 궤가 다르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