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국세청 망나니-107화 (107/500)

107화. 사냥은 상대를 가리지 않는다(3)

“정치인?”

“결국 선을 넘네.”

직원들이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그러나 신재현의 폭탄 발언은 끝나지 않았다.

바로 옆 팀인 체납추적2팀은 대놓고 1팀 자리까지 와서 이어질 말을 기다리고 있었다.

신재현은 직원들을 둘러보며 담담하게 덧붙였다.

“현직 국회의원이구요.”

“흐어억!”

“나, 난 못 들은 거로 할게.”

“미쳤습니까? 정신이 나갔어요? 연예인이랑 국회의원이랑 급이 같은 줄 알아요?”

직원들의 반응은 다양했다.

못 들은 척하는 사람에서부터 기겁하며 소리를 지르는 사람까지.

개중에는 듣지 말아야 할 것을 들었다는 듯 덜덜 떠는 사람도 있었다.

끔벅거리는 눈동자들이 갈 곳을 잃고 정처 없이 헤맸다.

“신재현 씨, 다시 생각해 보세요. 물론 그동안 신재현 씨가 해 온 일들 대단해요. 상대를 가리지 않는다는 것도 잘 알겠어요. 그래도 선이 있는 거예요.”

“마, 맞아요. 기분 나쁘게 생각하지 마시고요. 신재현 씨 혼자 날아가는 게 아니에요. 우리 팀, 아니 팀이 뭐야. 과가 폭파된다니까요!”

“……다른 사람들도 많잖아요. 굳이 국회의원이어야 해요?”

조용히 지켜보던 팀장이 끼어들었다.

그동안 신재현이 무슨 일을 하든 믿고 지켜보던 팀장이다.

그녀는 이선균이 어련히 잘 알아서 하겠지, 하고 방임하는 느낌이 강했다.

‘과장님이랑 셋이 나가서 회의하고 왔다는 건 서로 얘기가 끝났다는 소리잖아. 이선균 과장님, 이번엔 실수한 게 분명해. 일이 너무 잘 풀리니까 과신한 거야.’

팀장은 비장한 마음으로 일어났다.

직원들이 제발 말려 달라는 간절한 눈길을 보냈다.

“정치인을 치고 싶나요? 치세요. 대신 그럴 만한 힘을 가진 후에요.”

“팀장님 말씀이 맞습니다.”

누군가의 맞장구에 힘을 얻은 팀장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왜 하필 현직 국회의원인가요? 높으신 분을 치고 싶은 건지, 공명심 때문인지 저는 몰라요. 그래도 현직 말고 다른 사람 많잖아요.”

신재현은 조용히 듣고만 있었다.

이야기의 중심이 되는 청년이 조용히 있자 자연히 황민우와 장세훈 등, 그를 따르는 사람들도 조용했다.

팀장은 이제 달래듯 나지막이 말했다.

“조금만 참아요. 언젠가는 건드려도 되는 날이 올 거예요. 만용은 용기가 아닙니다.”

신재현이 여전히 가만히 듣고만 있자 팀장이 뒤를 돌았다.

“과장님도 보고만 있지 말고 좀 말려주세요. 과장님 말씀을 들을 것 아니에요!”

이선균 과장은 사무실 안이 난리가 나든 말든 서류를 들춰보고 있다가 팀장의 지적에 고개를 들었다.

“한 팀장. 보고 있지도 않았습니다. 그리고 일하겠다는데 뭐가 문제인가요?”

“과장님! 무슨 말씀이세요! 과 날아가는 게 어디 하루 이틀 일인가요? 높으신 분은 발밑에서 어떤 일이 오고 갔는지 신경도 쓰지 않아요. 그저 같은 과에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체납징세과 30명이 앞길이 막힐 수도 있다고요!”

이선균은 바쁘게 놀리던 손을 멈추고 펜을 들어 올렸다.

“흐음, 그러니까 앞길 막지 말아라. 이런 말이 하고 싶은 겁니까? 아니지, 죽으려면 혼자 죽어라. 이런 뜻인 거죠?”

“말씀이 지나치십니다…….”

“한 팀장. 서장님과 제 모가지가 가장 먼저 날아갈 테니 걱정 마세요. 팀장이 말했던 대로 높으신 분은 한 팀장에게 관심이 없습니다.”

팀장은 말문이 막힌 듯 입술만 벙긋거렸다.

이선균이 도로 책상 위로 시선을 옮겼다.

정말 아무런 관심도 없다는 것처럼 평온해서 팀장은 순간 자신이 무슨 이상한 말이라도 했는지 헷갈릴 정도였다.

“팀장님.”

드디어 신재현이 입을 열었다.

팀장을 포함해 사무실에 있던 인원 전원의 고개가 휙 돌아갔다.

“언젠가 건드려도 되는 날이 올 거라구요? 그런 날이 언제인데요? 지금 하지 않으면 나중에 누가 하게 해준답니까?”

“그래도 그건 만용…….”

“할 수 있는 거면 만용이라고 안 합니다.”

신재현의 말에 팀장의 눈빛이 바뀌었다.

“할 수 있다고요? 진짜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아까도 말했지만, 유명인 몇 건드렸다고 국회의원도 쉬울 거라 생각하면 착각입니다.”

“좀 다른 얘기를 해도 되겠습니까?”

이 상황에 갑자기 화제를 돌리나?

팀장이 어리둥절했지만, 신재현은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정부 기관은 사람들이 입사하고 각자 맡은 일을 하는 회사나 다름이 없잖습니까. 그런데 사기업과 결정적으로 다른 점이 무엇일까 곰곰이 생각해 봤어요.”

신재현은 테이블 앞에 있던 의자를 끌어다 털썩 앉았다.

“정부 기관은 말입니다. 판단의 기준은 오로지 법과 행정 명령, 행정 규칙뿐이어야 합니다. 단순히 질서를 지키고 어쩌고 하는 이야기가 아니에요. 공무원은 국가라는 거대한 기관의 일부일 뿐이고, 거기에 사적인 감정이 개입할 여지는 전혀 없습니다.”

신재현의 눈빛이 점점 강렬해졌다.

눈이 마주치자마자 절로 주눅 들게 하는 눈빛이었다.

오랜 기간 세무서에서 일해 오며 온갖 종류의 사람을 상대해 본 팀장조차 일순 눈을 돌릴 뻔했다.

“하지만 전 팀장입니다. 팀, 그리고 과를 생각해야 해요.”

일반 직원 때는 사고를 치던 사람도 팀장이나 과장을 달면 얌전해지곤 했다.

이유는 별것 아니다.

자신의 결정에 다른 사람의 인생이 달릴 수 있음을, 그 무게가 어떤지를 깨달았을 뿐이다.

한층 목소리가 작아진 팀장을 지긋이 바라보던 신재현이 세 명의 이름을 호명했다.

“장세훈 조사관님, 강혜원 조사관님, 안길진 조사관님.”

세무서에 들어온 공무원이라면 부여받는 직함, 국세 조사관.

그러나 지금 굳이 일부러 조사관이라 부르는 이유를 모르는 사람은 여기에 없었다.

“하실 겁니까?”

설득은 없었다.

하려면 하고 말려면 말아라.

그런 말이 들린 것만 같았다.

안전을 보장해 주겠다는 그 어떤 말도 없었다.

그동안 신재현이 보여 준 것만 갖고 따라갈지 말지를 결정해야 한다.

높은 둥지에서 막 뛰어내릴지 말지 고민하는 새끼 새처럼, 셋은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

저 밑에 무엇이 있을지 아무도 모른다.

어미 새가 시범을 보여 주었다 해도 자신이 무사할지, 고양이의 한 끼 식사 거리가 되어 의미도 없이 사라질지.

판단할 수 없었다.

그리고 그 두려움 속에서 사람의 진가가 발휘된다.

‘내디뎌라. 한 발만 내디뎌. 이쪽으로 와.’

신재현은 속으로는 어떨지언정 재촉하지 않았다.

사무실에 사람은 많았지만 그중 아무도 입을 여는 사람은 없었다.

어떤 결정을 내릴지 다들 숨을 죽이며 지켜보고 있었다.

‘장세훈이 가장 먼저 나설 줄 알았는데. 아무리 그래도 현직 국회의원은 버거운가?’

별문제 없을 것이라고 확답해 주기는 쉽다.

하지만 그래선 의미가 없다.

스스로 뛰어내리기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정작 입을 연 것은 안길진이었다.

“저는…….”

떨리는 목소리였다.

막상 운을 띄워 놓고도 말을 꺼내기가 쉽지 않은지 머뭇거렸다.

-쾅!

건너편 자리에서 난데없이 책상을 후려치는 소리가 났다.

“내가 병신이지! 장세훈, 할 수 있다! 이건 기다려왔던 기회잖아! 지금 아니면 언제 할래!”

장세훈이 두 손을 불끈 쥐더니 성큼성큼 걸어 나왔다.

철이라도 씹어 먹을 듯 기세가 흉흉했다.

“국회의원이고 나발이고 세금은 내야지! 다 조질란다!”

이어서 강혜원이 또각또각 구두 소리를 내며 그 옆에 섰다.

“평소의 장세훈 주사보님으로 돌아왔네요. 먼저 나가려다 기다려 드린 거예요. 아셨죠?”

“기다리긴 뭘 기다려. 옆에서 손톱 물어뜯는 거 다 보였거든?”

“저도 이 사무실에서 일하는 게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데 고민은 깊게 해봐야 하지 않겠어요?”

강혜원의 말도 맞다.

오히려 쉽게 오케이 했다면 무슨 꿍꿍이라도 있는 것 아닌가 의심했을 것이다.

이제 남은 건 한 명이었다.

안길진.

100억짜리 징세하면서 몇 번 말을 나눠 본 적은 있지만, 장세훈이나 강혜원처럼 머리를 맞대고 일해 본 적은 없는 사람이었다.

어떤 사람인지 성격도 아직 모른다.

장세훈이 눈을 부라렸지만, 강혜원이 옆에서 적절히 막았다.

이번 일은 억지로 밀어서 떨어뜨리면 결과가 좋지 않을 것이다.

강혜원도 그것을 아는 것이다.

신재현이 감사의 뜻으로 짧게 목례해 보였다.

모두의 주목 속에서 안길진이 질끈 눈을 감았다가 떴다.

그리고 한 걸음 앞으로 내디뎠다.

“후회는 하고 싶지 않습니다. 나중에 일이 잘못되었다고 주사보님을 원망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이 결정이 제 객기가 아니길 바랍니다.”

안길진은 오래 고민한 것 치곤 후련한 얼굴이었다.

안길진까지 결정을 마치자 일련의 소동에도 눈 하나 꿈쩍 않고 자리에 앉아 업무를 처리하던 황민우가 천천히 일어나 신재현 옆에 다가와 섰다.

신재현은 자신의 앞에 선 이들과 천천히 눈을 맞추며 웃었다.

“팀 완성이네요. 어서 오세요. 환영합니다.”

-짝짝짝.

기다렸다는 듯이 어디선가 자그마한 박수 소리가 났다.

고개를 돌려 보니 징세팀 쪽이었다.

유달리 키가 작은 한 남자, 윤지성이었다.

***

반장은 나.

나와 항상 함께 다닐 보좌는 8급 황민우.

자료 조사를 할 7급 장세훈과 8급 강혜원.

그리고 자료 정리에는 9급 안길진.

구색이 갖춰졌다.

“상대가 상대이니만큼 보안은 필수입니다. 앞으로는 이 사무실에서 업무를 처리하지 않을 겁니다.”

현직 국회의원을 치겠다고 말해놨으니 아마 소문은 순식간에 퍼질 것이다.

어떻게 돌아가는 상황인지 염탐하려 고개를 들이미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자연히 소용돌이의 눈이 될 테고 쓸데없는 관심을 받을 것이 분명했다.

원래는 거물을 칠 때는 함부로 조사 대상을 떠들지 않는 법인데.

그래도 오늘은 상대가 국회의원이라는 것을 밝힐 필요가 있었다.

서울청에 가기 전에 나만의 팀을 만들어 두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를 위해선 지금부터 팀원이 될 사람들을 물색함과 동시에 손발을 맞춰봐야 했다.

거물도 쳐 봐야 하고.

그래야 나중에 누구를 치든 쫄지 않을 테니까.

“조사 대상은 말씀하지 않으실 겁니까?”

안길진이 질문을 던지자 장세훈이 면박을 줬다.

“지금 듣는 귀가 많은데 어떻게 말하냐. 이런 경우엔 따로 사무실이나 창고 받아서 하는 거야. 조사과 안 가봤지?”

“저야 얼마 안 했는데 조사과 가 볼 일이 있나요.”

“몇 년 차야?”

“3년 차입니다. 8급 승진 시험 준비하고 있어요.”

안길진은 내 생각보다 경력이 짧았다.

혹시 잠깐의 호기심으로 손을 뻗은 건 아닌가 의심도 들었지만 그야 차차 일해 보면 알 일이다.

-짤랑.

나는 사무실 열쇠를 흔들었다.

“소회의실 열쇠입니다. 이미 상부의 허락 다 받은 상태고 정리해서 우리 사무실로 쓰면 돼요. 자세한 얘기는 가서 하시죠.”

내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황민우가 자잘한 서류를 챙겼다.

“진짜 소회의실 멤버 됐네.”

언뜻 뒤에서 직원들의 수군거림이 들려왔다.

소회의실 멤버라.

너무 자주 이용하긴 했다.

가깝기도 하고 무엇보다 정수기와 믹스 커피가 갖추어져 있는 게 좋다.

직원들 사이에 소회의실 얘기가 퍼져주면 더욱더 좋고.

나는 복도로 나가 방향을 꺾었다.

“어? 소회의실 쓰는 거 아니었어요?”

“이 건물에 소회의실이 한 군데인가요.”

나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9층으로 향했다.

9층.

조사과가 모여 있는 곳이다.

과의 특성상 자그마한 사무실이 많았다.

그중 가장 중간 즈음에 있는 문 하나에 엄지손가락을 댔다.

안에는 5평 남짓한 작은 사무실이 있었다.

사무실이라기보다 비품실이나 소회의실 같다.

“나중에 지문 인식 등록하시고 모든 자료는 여기에서만 볼 겁니다. 6층의 소회의실과 이곳을 왔다 갔다 하겠지만, 자료를 거기로 가져가시면 안 됩니다. 외부에는 6층 소회의실이 본진인 것처럼 말하십시오.”

사무실로 들어가자 황민우가 노트북 세팅을 시작했다.

“핸드폰 끄세요.”

내가 가장 먼저 핸드폰을 꺼내 전원을 끄자 나머지 팀원들도 긴장된 얼굴로 핸드폰 전원을 끈 후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

“누굴 치려는지 궁금하실 겁니다.”

안길진이 적극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황민우가 가져온 파일을 들추고 오려 둔 신문기사를 꺼냈다.

[류석호 국회의원, 침수 피해 현장 방문]

화이트보드에 자석으로 신문기사를 붙인 뒤 그 이름을 툭 쳤다.

“류석호. 이번 목표입니다.”

세 명의 얼굴이 일제히 경악에 휩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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