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6화. 사냥은 상대를 가리지 않는다(2)
삼성, 서초, 역삼의 통합 세무서 앞을 메운 기자들의 수는 족히 30명.
그 안에는 나학진도 있었다.
원래라면 연예인 뒤꽁무니나 쫓아다니던 그가 국회의원 행차에 이렇게 관심을 가질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류석호의 갑작스러운 일정이 기자들에게 공유된 순간, 나학진은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삼성 세무서라니! 냄새가 난다!’
당장 어제 함께 진예슬의 집에 쳐들어간 세무 공무원들이 삼성 세무서 소속이라고 했다.
특히 그 청년.
20대 중반밖에 되지 않은 젊은 청년이었지만 피어오르는 관록은 절대 무시할 것이 아니었다.
진예슬을 상대하던 모습에서 이런 일을 한두 번 겪은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검사실에서는 또 어땠는가.
일부러 옆 검사실의 검사가 찾아올 정도였다.
게다가 말하는 것을 보면 검사뿐 아니라 검찰 공무원들도 청년을 알고 있는 눈치였다.
‘하루 이틀 함께 한 사이가 아니야. 서부지검에서 신재현이라는 세무 공무원은 여러 번 힘을 합쳐 본 협력자다.’
청년이 뭘 하려는지는 모른다.
뭔가 큰 그림을 그리고 있다는 것은 알았다.
그리고 잘못하면 자신의 목이 날아갈 수 있다는 것도.
‘사수가 정치인 파다 훅 갔는데.’
청년이 파려는 대상이 뭔지 모르는 이상 나학진 자신도 그렇게 될 수 있다는 생각은 있었다.
그러나 아직은 괜찮다.
지금은 서로 능력을 시험하고 신뢰를 쌓아나가는 단계다.
청년이 자신을 시험하듯 나학진도 청년을 지켜볼 생각이었다.
정말 자신의 인생을 걸어도 되는 사람인지.
-너는 나처럼 되지 마라. 그냥 남들처럼 기사 받아쓰면서 편하게 살아.
머릿속에 사수의 힘없는 목소리가 되살아났다.
패배자처럼 신문사를 떠나가던 뒷모습도.
그리고 사수의 충고를 무시하고 취재를 강행하다 신문사를 떠나야 했던 날의 푸른 하늘도.
나학진은 하늘을 올려보았다가 괜히 감상적이 되어 코를 훌쩍였다.
‘다 큰 남자 새끼가 겨울 타는 것도 아니고…….’
나학진은 고개를 내려 바글바글한 기자 무리를 바라보았다.
오늘은 취재를 할 생각은 아니라서 손에 카메라를 들고 있지는 않았다.
그저 멀리서 신재현이라는 세무 공무원을 바라보고 싶었다.
멀리서 보면 보이는 것이 있다고들 하지 않는가.
더불어서 국회의원 앞에서 어떤 식으로 나올지 궁금하기도 했다.
대한민국 권력층의 가장 상위 부분을 이루는 국회의원 앞에서도 의연할 수 있을까?
권력 앞에 선 청년을 보고 싶었다.
“저는 여기 있는 세무서 공무원들이 제대로 일을 할 수 있도록, 그리고 국민 여러분을 위해 온 힘을 다하겠습니다!”
류석호가 세무서 문을 활짝 열어젖히며 안쪽으로 손을 내밀었다.
카메라 플래시가 1초에도 십수 번씩 터져 나왔다.
그 빛에 반사적으로 눈을 감는 직원들도 보였다.
기자들의 취재 경쟁은 처음 보는 사람은 기겁할 정도로 강렬하다.
지금은 다행히 국회의원 앞이라 건물 안까지 밀고 들어가진 않았지만, 수십 명이 카메라를 들이밀고 있으면 무섭게 마련이다.
‘신재현. 거기 있지?’
나학진은 속으로 청년의 이름을 불렀다.
국회의원이 자그마한 화제도 이용해 보겠답시고 일부러 행차한 일이다.
반드시 신재현을 언급할 것이다.
역시나 국회의원은 어제의 영상을 언급했다.
“어제 영상의 주인공분 계십니까? 갑작스러우시겠지만 악수라도 나누고 격려 드리고 싶습니다. 하하, 영상 보자마자 팬이 되었거든요.”
국회의원의 말에 기자들의 몸에서 열기가 느껴지는 듯했다.
최근 이슈가 되는 공무원과 국회의원이 나란히 세무서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다?
꽤 괜찮은 그림이 될 것이다.
“하하, 부끄러움 타지 마시고 나오세요. 제가 꼭 뵙고 싶어서 그렇습니다.”
설마 그 청년이 부끄러움을 탄다고?
인도에서 그 광경을 지켜보던 나학진은 고개를 갸웃했다.
자신이 본 그 청년이라면 낯설다고 국회의원을 꺼릴 것 같지는 않은데.
나학진과 진예슬이 앞뒤로 카메라를 들이밀고 현장을 찍는 와중에도 의연하게 일하던 사람 아닌가.
그러나 아무리 기다려도 소문의 주인공은 나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가장 앞줄에 있던 세무서 직원 하나가 주변 직원들에게 떠밀리듯 한 발짝 앞으로 나왔다.
엉거주춤 선 직원이 더듬더듬 입을 열었다.
“아, 아까까지만 해도 있었는데…… 방금 올라간 것 같습니다.”
무려 ‘국회의원’의 지명이었다.
여의도로 부른 것도 아니고 일부러 세무서까지 찾아왔는데.
게다가 입법하겠다는 법안은 세무서 공무원들에게 반가운 것 아닌가.
“좀 건방지지 않나?”
“국회의원을 무시하고 들어갔다고?”
“아니, 설마 그랬겠어? 카메라도 많고 부담스러우니까 도망간 거겠지.”
“아, 의원님이 좀 너무하긴 했네.”
기자들이 술렁거렸다.
그들 중 누구도 신재현이 ‘진심으로’ 국회의원을 바람맞혔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었다.
어느 누가 국회의원의 호명을 무시하고 돌아갈 수 있겠는가.
그저 갑작스러워서 카메라 앞에 나서지 못한 것이라 생각했다.
단 한 사람만 빼고.
‘이건 확실히 난 놈이네.’
나학진은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열기를 감출 수 없었다.
흥분으로 콧김이 거세졌다.
신재현이라는 사람을 잘 아는 건 아니다.
하지만 그의 바로 옆에서 현장을 찍어본 나학진은 알 수 있었다.
그 청년은 결코 상대에 따라 태도가 달라질 사람이 아니었다.
하물며 국회의원이 왔다고 도망간다?
말도 안 된다.
차라리 상대를 파악한답시고 도발을 했으면 했지.
그래서 재밌는 그림이 나오지 않을까 기대했던 것인데 아예 무시할 줄이야!
‘어쩌면…… 어쩌면!’
나학진은 심장이 튀어나올 듯 두근거리는 것을 느꼈다.
‘아니 신중해야 해. 정말 난 놈인지, 아니면 그저 그런 놈인지.’
나학진은 서둘러 차를 세워 둔 곳으로 달려갔다.
애써 당혹감을 감추며 허허 웃는 국회의원도, 그 모습마저 좋다고 카메라를 들이미는 기자도.
이미 나학진의 관심 밖으로 밀려났다.
“우선은 언제 공무원이 되고 뭘 맡았는지부터 캐 보자!”
나학진은 설레는 마음으로 차를 출발시켰다.
***
체납징세과는 혼돈의 도가니였다.
당장 어제 실시간으로 송출된 영상도 그러했고, 같은 과 동료가 9시 뉴스에 등극한 것도 그러했다.
그리고 가장 기겁할 일은 국회의원이 찾아왔다는 사실이다.
세무서에서 일하다 보면 유명인사를 마주칠 일이 종종 생기곤 한다.
유명인도 일반인과 똑같이 납세의 의무가 있으니까.
연예인 누구한테 세금 얼마 나왔더라, 하는 이야기는 심심하면 돌곤 했다.
당연히 개인정보라 과 내부에서 조심스럽게 하는 이야기다.
하지만 국회의원은 차원이 달랐다.
“나 류석호 사진 찍었다?”
“저는 기자한테 사진 찍힌 것 같아요. 이따 뉴스에 나오려나?”
“나와도 병풍일 텐데.”
“그래도 공중파인데 친구들한테 자랑해야죠.”
“우와! 인터넷에는 벌써 떴어요!”
직원들은 기사를 소리 내어 읽기도 했다.
“결국 류석호 의원과 소문의 주인공인 세무 공무원의 만남은 성사되지 않았지만, 류석호 의원은 후일을 기약하며 세법 강화를 약속했다.”
“어, 잠깐만. 그러고 보니까 신재현 씨는 어디 있어요? 아까 먼저 들어온 거 아니었나?”
직원들이 뒤늦게 두리번거렸지만, 신재현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항상 그의 곁을 지키는 황민우와 이선균 과장도 자리를 비운 상태였다.
“뭔가 이상한데.”
“그러게요. 왜 세 분이 같이 사라지셨지?”
“어디 계실지는 알 것 같은데…….”
“소회의실에 계시는 건 다 알아. 그래도 거긴 가지 마.”
직원들은 일제히 복도 쪽을 바라보았다가 약속한 듯 고개를 돌렸다.
신나서 떠들던 때와는 다르게 기묘한 공기가 흘렀다.
“세 분이 소회의실 갔다 오면 꼭 큰 건을 가져오시더라고요.”
“거긴 건들면 안 돼…….”
“오늘은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려나.”
국회의원의 방문 직후에 사라진 세 명.
직원들은 서로의 눈치를 보며 침을 꿀꺽 삼켰다.
기묘한 침묵을 깬 것은 장세훈의 호통이었다.
“신재현이 헛발질하는 거 봤어? 걔가 가져온 건 때려 팰 만하니까 가져온 거야! 항상 그랬잖아!”
“그건 아는데요. 조사 대상으로 삼으시는 게 항상 감당하기 어려우니까 그렇죠. 작년부터 쭉 그랬잖아요.”
“그래서 한 번이라도 신재현이 실패한 적 있어?”
장세훈이 사무실이 떠나가라 소리치자 체납징세과가 숙연해졌다.
파티션 너머로 고개를 들었던 2팀의 직원들은 괜히 불똥이 튈까 봐 거북이처럼 목을 움츠렸다.
“저번에 같이 일해 보고도 못 느꼈어? 저런 놈은 백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놈이라고! 어떻게든 밀어줘야지! 걔가 아무리 막 나가는 놈이라고 해도 혼자서 이겨나갈 것 같아?”
“장세훈 주사보님, 왜 흥분하고 그러십니까. 저희도 열심히 하려고 노력합니다.”
“노력한다는 놈들이 도로 몸을 사려? 야, 100억짜리 징세했다고 신나서 날뛰던 게 엊그제야!”
장세훈이 펄펄 뛰자 강혜원이 성큼성큼 다가가 팔뚝을 후려쳤다.
“장세훈 주사보님만 열심인 거 아니거든요? 다들 ‘맛’을 봤다고요. 상대 눈치 안 보고 과세한다는 게 얼마나 좋은 건지 느꼈다고요. 그러니까 재촉하지 말고 좀 지켜보시란 말이에요.”
“아, 아! 그만 때려!”
강혜원의 물리적 효과는 굉장했다.
그 시끄럽던 장세훈의 입이 막히자 직원들이 슬금슬금 제자리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대놓고 소리를 내어 말할 수 없게 되자 직원들은 핸드폰을 들었다.
-알고 있는 걸 찌르니까 아프잖아요.
-이 방에 장세훈 있는데.
-알거든요? 얼굴 보고 말하면 밀리니까 여기서 말하는 거거든요?
-내가 틀린 말 했냐?
-틀린 말 아니니까 아프다고요. 저희도 노력 중이에요. 신재현 주사보님 어떤 분인지 아니까.
-그럼 잠시 후에 신재현이 물고 오는 건 같이 하기로. 콜?
채팅방에 잠시간의 침묵이 흘렀다.
사무실이 조용해지자 결국 한 직원이 한숨과 함께 일어섰다.
장세훈과 채팅으로 티격태격한 직원은 아니었다.
아까부터 생각이 많아 보이던 남자였다.
“채팅으로 말하나 입으로 말하나 똑같은 것 같은데요. 콜 합니다.”
“진짜지? 여기 있는 모두가 들었으니까 구라 치다 걸리면 피 본다.”
“장세훈 주사보님이야말로 쫄지나 마시죠. 신재현 주사보님이 뭘 가져오실지 저도 기대되니까.”
“안길진 많이 컸네?”
둘의 눈싸움이 시작되려 하자 강혜원이 벌떡 일어나 박수를 딱 쳤다.
“오십니다.”
강혜원이 정중하게 손바닥을 펴서 복도 쪽을 가리켰다.
잠긴 문 옆의 터치패드에 카드를 갖다 댄 이선균이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오고 있었다.
모두가 주목하는 가운데 이선균은 말없이 자리로 돌아가 앉았다.
평소처럼 온화한 얼굴이긴 하지만 어쩐지 분위기가 심각했다.
이제 직원들은 마른침을 삼키며 사무실 입구에 선 청년이 입을 열기를 기다렸다.
어떤 폭탄 발언이 떨어질지 내심 기대하는 사람도 있었다.
“도와주셨으면 하는 일이 있습니다.”
“내가 간다!”
내용을 듣지도 않고 장세훈이 번쩍 손을 들었다.
강혜원이 흘겨보다가 뒤늦게 손을 들었다.
“저도 합니다!”
직원들의 시선이 아까 장세훈과 티격태격한 안길진에게 향했다.
과연 말했던 대로 신재현을 도우러 갈 것인가.
안길진은 사방에서 꽂히는 시선을 느끼면서 침착하게 입을 열었다.
“상대가 누군지 알 수 있습니까?”
“누구면 안 하게? 안길진, 그건 반칙이지!”
장세훈이 다시 소리쳤지만, 강혜원이 발을 밟아 그의 입을 막았다.
신재현은 일련의 소동을 보고 무언가를 짐작했는지 굳은 얼굴로 짤막하게 대답했다.
“정치인입니다.”
“허업!”
“흡!”
곳곳에서 숨을 들이켜는 소리가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