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5화. 사냥은 상대를 가리지 않는다(1)
-뚜르르르.
나는 질린 표정으로 액정을 바라보았다.
[외삼촌]
벌써 5명째다.
사촌 동생 수영이, 사촌 누나, 작은 아버지, 작은 외숙모까지.
다들 하는 말은 똑같았다.
아마 외삼촌도 같은 말을 할 것이다.
그러나 안 받을 수도 없었다.
왜냐하면 내가 받지 않으면 바로 어머니에게 전화할 것이기 때문이다.
“언니, 오랜만이네요. 아, 재현이요? 그럼요. 언니도 뉴스 봤구나. 네네, 재현이 맞아요.”
당장 지금만 해도 몰려드는 친척들의 전화에 대답하는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우리 가족한테 이렇게 많은 친척이 있는 줄은 처음 알았다.
몇 년간 연락 한번 없던 먼 친척마저 전화해 대고 있었다.
어머니가 전화를 끊으면 또 새로운 전화가 걸려왔다.
“고마워요, 언니. 아, 재현이 바쁜데. 네, 나랏일 하는데 쉴 틈이 있나요. 호호호.”
그러나 어머니의 목소리는 질린 기색도 없었다.
오히려 즐거워 보였다.
“응? 세금요? 그건 청탁인데. 에이, 농담이에요.”
뭐, 어머니가 즐거워하시니 됐다.
나는 끈질기게 울려대는 전화를 받았다.
-재현아! TV 봤다!
“외삼촌, 오랜만이네요.”
-그래, 인마! 너 맞지!
“네. 9시 뉴스에 나온 건 모자이크 되어 있을 텐데 용케 알고 전화 주셨네요.”
-뉴스 봤을 땐 긴가민가했는데 말이야. 진예슬인가 하는 처자가 찍은 영상에는 네가 그대로 나오더라고.
진예슬의 뉴튜브 계정으로 올라간 영상은 지현석 검사가 내렸을 텐데, 그사이 퍼간 사람이 꽤 있었나 보다.
없어지려면 한참 걸리겠지.
생각보다 귀찮아질 것 같은 예감을 느꼈다.
-아이고, 우리 재현이가 뉴스도 다 나오고. 외삼촌은 언젠가 이런 날이 올 줄 알았다. 누나가 기뻐하시겠어…….
외삼촌에게 누나라면 어머니를 말하는 거겠지.
외삼촌의 목소리에 물기가 어렸다.
-매형도 기뻐하실 거야. 재현아, 네가 누나의 자랑이고 내 자랑이다.
귀찮아서 안 받으려고 했던 전화인데, 외삼촌은 생각보다 더 절절했다.
-고맙다. 정말 고마워. 잘 자라줘서 고맙다.
“……제가 뭘요.”
50살 넘은 외삼촌이 우는 모습은 잘 상상이 가지 않았다.
하지만 물기 섞인 목소리를 듣고 있자니 괜히 나도 목이 메어 왔다.
-바쁠 텐데 전화해서 미안하다. 이제 네 엄마한테 전화할게. 아, 잊어버릴 뻔했네.
전화를 끊으려던 외삼촌이 다급하게 덧붙였다.
-짜식, 멋있더라! 그럼 끊는다!
뚝 끊긴 전화를 잠시 바라보고 있자 밖에서 TV 소리에 섞여 어머니의 핸드폰이 울렸다.
“으잉, 너도 뉴스 봤냐. 온 친척들이 다 전화가 온다야. 귀찮아 죽겠네.”
말은 저렇게 해도 오는 전화 거절하지 않고 받는 걸 보면 즐기는 게 분명하다.
나는 피식 웃으며 핸드폰을 켰다.
받을 사람 전화만 받고 나머지는 무시했더니 메시지가 꽤 쌓여 있었다.
[야! 나 고등학교 같은 반이었는데 혹시 뉴튜브 뜬 거 너 맞냐?]
[전화 됨?]
[뭐야뭐야 너 공무원 됐어?]
[결혼하자.]
마지막 문자는 고등학교 친구였는데 보자마자 딱 두 마디만 보냈다.
[꺼져.]
참고로 우리 학교는 남고다.
메시지를 정리하던 중 가장 눈길을 끈 것은 혜진 누나의 문자였다.
이번에 한울의 며느리로 들어간 사촌 누나다.
[아버님이 안부 전해 달라시더라. 공무원이라 처신에 조심해야 하니 문자로 대신한다고. 근데 오늘 좀 대단하더라. 자랑해도 됨?]
혜진 누나의 입을 빌린 한울 회장의 인사였다.
아무래도 직접 통화나 문자를 하기엔 서로 간에 부담스러울 테니까.
관심을 갖고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에둘러 표현하는 것이다.
-뚜르르르.
[1팀 장세훈]
늦은 시간인데 전화가 끊임없이 울렸다.
아무래도 편하게 자기는 그른 것 같았다.
내일 출근하면 쏟아질 질문 공세가 두렵다.
“재현아. 자니? 피곤할 텐데 시끄러웠지? 미안하다.”
내가 조용해지자 어머니가 전화를 끊고 들어온 모양이다.
그런데 어머니의 모습이 이상했다.
“내가 너무 주책을 부렸네. 혹시 너한테 피해가 가지는 않을까?”
어머니는 겁에 질린 표정이었다.
신나서 이야기한 건 좋은데 혹시라도 말실수라도 하지 않았을까 이제 와서 덜컥 겁이 난 모양이다.
항상 최우선으로 내 걱정을 해 주는 가족이라는 존재는 이렇게 따뜻한 것이었다.
“괜찮아.”
“아니야. 엄마가 너무 떠들었나 보다.”
불안해하는 어머니를 붙잡고 침대에 앉혀드렸다.
“자랑해도 돼. 엄마 아들이 이런 사람이라고. 그동안 내가 고졸이라고 잔소리하는 친척들 때문에 엄마가 마음고생 했잖아.”
“괜찮아. 엄마는 네가 어떤 아이인지 알고 있었으니까. 부모를 잘못 만나서 지원을 못 받은 거지 네가 원 없이 공부했다면…….”
어머니의 표정이 흐려지자 나는 덥석 손을 붙잡았다.
원래는 너무 막 나간 발언은 하지 말라고 부탁하려고 했지만 이런 어머니가 섣부른 실수를 할 것 같지는 않았다.
아니, 실수할 것도 없다.
나야 캐도 나올 게 없으니까.
오히려 그동안 은근히 무시당했을 어머니에게 힘을 실어 주고 싶어졌다.
“잘난 집에서 태어났다고 잘난 건 아니지. 중요한 건 내가 떳떳하고 잘나게 산다는 거 아니겠어? 엄마가 보기에 나는 부족해 보여?”
어머니는 온 힘을 다해 양손을 흔들었다.
“그러니까 자랑하고 다녀. 나 그런다고 책잡힐 사람 아니야.”
“그럼…… 어딜 내놔도 부끄럽지 않은 우리 아들인데.”
어머니의 주름진 눈에 물기가 맺혔다.
***
출근길은 내 예상보다 더 험난했다.
일부러 평소보다 30분이나 더 일찍 출근했는데 세무서 앞은 기자들로 쫙 깔려 있었다.
경비 때문에 안에 들어가지는 못하고 통합 세무서로 들어가는 계단과 그 앞의 인도를 주르륵 점거하고 있는 기자들을 보자 절로 얼굴이 찌푸려졌다.
아, 사람들로 부대끼는 지옥의 2호선을 타고 왔는데 또 인파를 뚫어야 해?
심지어 붙잡히면 쉽게 보내 줄 것 같지도 않다.
눈에 띄기 전에 도망쳐야겠다.
슬금슬금 뒤로 피하려는데 핸드폰에서 진동이 느껴졌다.
아침 8시 반부터 전화하는 친척은 대체 어떤 놈이냐.
그러나 액정을 보자 불평은 쏙 들어갔다.
이선균 과장이었다.
“예, 과장님.”
-큰길 보세요.
뒤로 돌자 익숙한 차량이 보였다.
-오세요.
“예.”
긴 대화는 필요 없었다.
나는 얼른 달려가 과장의 차에 올라탔다.
“안녕하십니까, 과장님. 언제부터 계셨습니까?”
“어제 9시 뉴스에서 떠들었잖습니까. 이럴 것 같아서 좀 일찍 와서 기다렸습니다. 저 앞에서 잡히면 끝장이에요.”
과장의 표정은 매우 비장했다.
세무 조사하러 나가기 직전의 조사관을 보는 느낌이었다.
“뒤쪽으로 돌아서 주차장으로 갑시다. 미리 말해 둬서 주차장엔 외부인 못 들어오게 했어요. 어차피 이 시간에 오는 민원인은 없을 테니.”
“아, 제가 운전하겠습니다.”
“괜찮습니다. 저는 운전대는 남에게 넘기지 않거든요.”
졸지에 과장이 운전하는 차를 타게 되었다.
검사장 앞에 서도 불안감을 느껴 본 적 없었는데.
상사가 운전하는 차를 탄다는 것이 이렇게 불편할 줄이야.
다행히 주차장은 코앞이다.
과장은 지하 주차장 깊숙이 차를 세웠다.
내가 먼저 엘리베이터로 달려가 버튼을 누르자 과장이 핸드폰을 열심히 확인하며 다가오고 있었다.
“당분간은 시끄럽겠네요. 제가 좀 과했나 봅니다.”
핸드폰을 뚫어져라 바라보던 과장이 흘끔 고개를 들었다.
“무슨 말씀을. 이 정도로 시끄럽다고 하면 되나요. 앞으로 더 떠들썩하게 만들 것 아니었습니까?”
“그건 그렇네요.”
가볍게 웃으며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나란히 징세과로 출근하자 텅 빈 사무실에 황민우 혼자 지키고 있었다.
“일찍 오셨네요.”
“사람 몰리기 전에 오려고 했는데 벌써 저 난리더군요. 새벽부터 있었던 것 같습니다.”
“형은 무사히 통과했어요?”
“주차장으로 피해 왔습니다. 과장님이 알려 주셔서요.”
이선균 과장의 대처는 빨랐다.
“당분간은 사무실 문 잠글 겁니다. 업무상 외부인이 올 일은 흔치 않을 테니까요. 이따 서장님이 기자회견 하실 거니까 기자들의 관심이 식길 기다려야겠군요.”
기자도 문제지만 곧 출근할 직원들의 질문 공세도 골치 아팠다.
방법이 있나, 철저하게 무시로 일관해야지.
-달칵.
“신재현 씨! 큰일, 큰일 났어요!”
역시나 예상을 빗나가지 않는다.
강혜원은 문을 열자마자 사무실이 떠나가라 외쳤다.
일찌감치 출근한 다른 팀의 직원들도 고개를 내밀 정도였다.
그런데 강혜원이 저렇게까지 당황할 위인인가?
연기한답시고 경비들 앞에서 드러눕던 사람인데.
강혜원은 그야말로 숨이 넘어갈 것처럼 헐떡이며 소리쳤다.
“밖에! 국회의원 와 있어요!”
“뭐라고요!!”
“뭐야!”
이건 인정해야겠다.
나를 포함해 사무실에 있던 직원들은 일제히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
내가 예상한 건 별것 없었다.
기껏해야 기자가 귀찮게 하겠다 정도?
그거야 용산 세무서에서 겪어 봤으니 잠시 눈에 띄지 않으면 알아서 돌아갈 것이라 생각했다.
어차피 반짝 뜨는 미담일 뿐이니까.
세상에 얼마나 기삿거리가 많은가.
그런데 이건 솔직히 예상 못 했다.
“류동준 의원님께서 직접 찾아오신 이유가 뭡니까.”
“저는 어제 한 영상을 보고 감탄을 금치 못했습니다. 일선에는 항상 국민의 손발이 되기 위해 발로 뛰는 공무원이 있죠. 그런데 저는 어제 열과 성을 다해 진심으로 국민과 마주하는 공무원을 보았습니다.”
세무서를 배경으로 국회의원 하나가 서 있었다.
로비로 들어오지는 못했지만 문 바로 앞에 서 있어서 그의 목소리가 울렸다.
기자들이 왜 저렇게 많이 왔나 했더니 국회의원 때문이었나 보다.
잠깐, 그러면 기자들한테는 미리 말해 주고 우리한테는 언질도 없었다는 건가?
주위를 둘러보자 하나같이 경악하는 세무서 직원들이 보였다.
개중에는 출근하던 과장급과 팀장급도 보였는데 그들도 당혹스런 얼굴이었다.
“저 사람 국회의원 류동준이잖아요. 여당의 2선 의원.”
“어제 뉴스 보고 온 거겠죠?”
“표 얻으려고 온 거겠지. 아오 씨, 귀찮네. 출근 시간에 저게 뭐 하는 짓이야.”
바로 뒤에서 직원들의 대화가 들려왔다.
“에이, 다른 국회의원은 꿍꿍이가 있을지 몰라도 류동준은 아니죠. 얼마나 선한 사람인데.”
“국회의원에 선함이 어딨어.”
“류동준은 다르다니까요? 국회의원 되기 전에 고아원 운영했잖아요. 번 돈은 족족 고아원 운영에 쓰기로 유명했는데.”
“아, 들어본 적 있는 것 같다. 사회의 약자를 대변하겠다면서 혜성같이 등장해서 70% 지지율 얻고 당선된 의원 말하는 거지?”
“네. 그렇다니까요. 류동준은 진짜배기라고요. 저런 사람이 대통령 되어야 하는데.”
직원들의 수군거림을 듣고 있자니 기억이 났다.
국회의원이 되기 전 숨겨진 선행이 밝혀지면서 인터넷을 떠들썩하게 했던 사람이다.
요즘 세상에 보기 드물게 좋은 사람이라 감탄했는데.
재선도 성공했구나.
그런데 정말 선한 사람이 아침부터 카메라를 잔뜩 끌고 와서 야단법석을 떠나?
이건 선행이라기보단 대놓고 보여 주기식 플레이 같다.
“굳이 류동준 의원님께서 아침부터 여기서 회견을 자처하신 이유가 있습니까?”
“물론입니다. 어제 영상을 보면서 공무원들의 일 처리에 박수를 보낸 분도 있겠지만 답답함을 느낀 분도 많았을 겁니다. 왜냐, 우리나라에는 고액 체납자가 많기 때문입니다. 솔직히 말씀드리죠. 저는 오늘 국민 여러분의 관심을 호소하러 일부러 이 자리에 섰습니다. 지금이 아니면 기회가 없기 때문입니다.”
류동준이 카메라를 바라보며 열변을 토했다.
“국민적 관심이 뜨거운 이때에 반드시 해결해야 하는 안건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탈세범과 체납자의 처벌이 더욱 강화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곧 그런 내용을 담은 조세범처벌법 개정안을 국회에 상정하겠습니다. 국민 여러분, 어제 보신 공무원들의 그런 고생이 없도록 힘을 모아 주십시오! 이렇게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나는 절로 고개를 끄덕였다.
선하다는 소문이 있어도 역시나 정치인답다.
이용하기 위한 것은 다 이용한다는 건가.
저런 내용이라면 언론 플레이도 그리 나쁘지는 않은 선택인데.
그렇게 감탄하고 있을 때 류동준이 천천히 유리문을 열었다.
안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것은 우리 세무 공무원이다.
그가 의도한 것이라면 최상의 화면이리라.
카메라 플래시의 역광을 받으며 류동준이 손을 내밀었다.
그리고 그 순간 나는 와락 얼굴을 찡그렸다.
본능적인 혐오감이 드는 익숙한 느낌.
그게 여기서 나올 줄이야.
“개새끼였잖아…….”
[2,517,413,711]
국회의원 류동준에게서 보인 숫자는 아주 간단하면서도 명료했다.
더럽게 많이도 해 처먹었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