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4화. 믿고 싶은 사람들
기자의 표정은 시시각각 변하고 있었다.
서류에 눈을 박고 있는 와중에도 기자가 꿈틀거리는 것이 시야 끝에 걸릴 정도였다.
뭐라 말할까 궁금해서 기다리고 있는데 의외로 기자는 한참을 꾸물거렸다.
어떻게든 질문을 쏟아내는 삼류 신문사의 기자답지 않은 행동이었다.
그러다 결심을 굳힌 기자가 입을 열었다.
“조사관님. 저는 쓸 만했습니까?”
이 질문에는 나도 서류를 보던 것을 멈추고 고개를 들 수밖에 없었다.
생각지도 못한 질문이다.
“……왜 그런 질문을 하시죠?”
이에 기다렸다는 듯이 기자가 답변을 쏟아냈다.
“조사관님은 처음부터 기자를 원했던 건 아니었습니다. 현장에 제가 있었고, 상대가 카메라로 힘을 가지는 뉴튜버였으니 기자는 옵션으로서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을 겁니다.”
아까 고민하던 것과는 정반대의 모습이다.
막상 방향을 잡자 기자는 본성을 드러내며 생각했던 것을 늘어놓았다.
증거도 없는 소설일 뿐이다.
그러나 원래 기자의 일은 가진 정보만 가지고 진실을 도출해내는 것.
현재 그의 말은 나쁘지 않은 추측이었다.
“빌라에 들어가기 전 말씀하신 대로 진예슬은 거물이 아닙니다. 그저 몸 풀기에 불과하죠. 굳이 제가 없어도 되는 상황이었습니다. 그야말로 몸 풀기에 불과하죠. 처음 보는 사람에게 몸 풀기를 맡겼다는 것은 절 시험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저는 최선을 다했습니다.”
숨은 쉬는지 모르겠다.
내가 끼어들 틈도 없었다.
그간 입 다물고 있던 것을 만회라도 하려는 듯이 기자는 쉬지도 않고 말을 이었다.
“제가 카메라를 들이밀면서 노린 것은 공무원분들이 욕먹지 않도록 하는 것, 거기에 더해서 좋은 이미지를 얻도록 하는 것이었습니다. 진예슬 씨가 극악한 범죄자가 되는 것이 가장 모양새가 좋죠. 그래서 그렇게 연출했습니다. 뭐, 극악하진 않더라도 범죄자인 건 맞으니까. 당시로선 그게 제가 파악한 최선이었습니다. 이 모든 것이 제가 맞게 해석한 것입니까? 또 그 결과가 의도에 맞게 나왔습니까?”
나는 기자의 말에 멍하니 입을 벌리려다가 다급히 수습했다.
괜히 멍청한 표정을 지어서 현재 내가 쥐고 있는 우위를 놓치고 싶지는 않았다.
솔직히 이 기자를 얕보고 있었다.
대배우의 스캔들도 아니고 인터넷에서나 유명한 뉴튜버를 쫓기에 그저 그런 그릇인 줄 알았다.
그런데 순간적인 추리력, 상황 판단력 등 모든 것이 삼류 기자라 보기엔 아까웠다.
옆에서 황민우가 의외라는 듯 기자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깨달았다.
이 기자가 자신의 모든 것을 보여주었다는 것을.
철저하게 아래를 자처하며 내게 모든 판단을 맡겼다는 것도.
문득 기시감이 들었다.
슬쩍 옆에 앉아 있는 황민우를 보자 그가 시선을 돌려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황민우와 마음을 텄을 때와 같다.
그렇다면 두 번째는 쉽다.
나야 나이도 어리고 경험도 부족하지만, 그간 이선균 과장이나 민치호 국장 등 다른 상사들이 하는 것을 보고 배운 것이 있다.
상대가 솔직하게 나왔을 때는 나도 솔직함을 보여 주어야 한다.
그때 비로소 신뢰를 얻는 것이다.
“생각한 것 이상으로 도움이 되었습니다. 계속 연예부에 계셨나요? 연예인 쫓던 솜씨는 아니던데요.”
나의 평가는 짧았지만 나학진은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인정받았다는 것에 자신감이 붙은 것이다.
“이래 봬도 5년 전에는 정치부에 있었습니다. 이름 들으면 다들 알법한 메이저 신문사에 있었죠.”
“그럼 지금은 왜 탑뉴스에 계시죠?”
메이저에서 인터넷뉴스로, 정치부에서 연예부로.
굳이 묻지 않아도 추측이 가능했지만, 그의 입으로 직접 듣고 싶었다.
역시나 나학진은 단숨에 얼굴이 흐려졌다.
그래도 대답을 회피하지는 않았다.
그는 끙끙대더니 어렵사리 입을 열었다.
“어차피 조사해보면 다 나올 테니 그 전에 제 입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정치계와 재계의 유착을 취재했다가 바로 잘렸어요. 그 후로는 메이저 쪽엔 발도 디딜 수 없었습니다. 갈 곳이 없는데 별 수 있나요.”
그렇게 말하며 기자가 한숨을 내쉬었다.
과거에 정의감이 강했다는 것은 알겠다.
적어도 편집부에서 한 번은 뭉갰을 텐데, 잘렸다는 것은 굴하지 않고 취재했다는 뜻이니까.
그런데 과연 지금도 그 정의감이 그대로 있을까?
한 번 좌절해 본 사람이다.
꺾여 본 사람이 다음에 또 벽을 만났을 때 똑같이 행동할 수 있을까?
내가 고민하고 있자 나학진이 재차 입을 열었다.
“누구를 치려고 하시는 겁니까?”
“누구랄 것도 없습니다.”
누구를 콕 짚어 치려는 것이 아니다.
내 눈에 걸리는 모두를 치려는 것이다.
앞으로 누가 걸리든 가리지 않고, 칼을 휘두를 때에 이 기자가 상대에게 정보를 흘리지 않고 내 곁에 남을 수 있을까.
“물론 오늘 처음 본 제게 말하긴 어려운 일이겠죠. 이해합니다. 방금 질문은 잊어주세요.”
나학진은 눈치가 빨랐다.
잘못 짚었다는 것이 문제지만.
“그런 게 아니라…….”
“정말 괜찮습니다. 원래 신뢰는 하루 이틀 사이에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조금씩 조금씩 능력을 보여 주고 그것이 증거가 되어 쌓이면, 믿을 수 있겠다 싶으면 그때 알려 주십시오.”
나학진은 시원하게 물러났다.
그 오해를 굳이 바로잡을 생각도 없어서 나는 입을 다물었다.
잠시간의 침묵이 흐르고 검사실 문이 벌컥 열린 것은 그때였다.
“아, 검사님. 조사는 다 끝났습니까?”
마약 유통책을 수사하고 있다던 검사에게 진예슬을 넘기고 금방 돌아온다더니.
왠지 길어져서 무슨 일이 있나 의아해하던 참이었다.
그런데 들어온 검사는 혼자가 아니었다.
“아, 소문의 세무 공무원이시군요. 반갑습니다.”
셔츠 단추도 하나씩 풀고 다니는 지현석 검사와는 딴판인 사람이었다.
나이는 지현석과 비슷했지만, 재킷 단추까지 꼬박꼬박 잠그고 틈 없이 넥타이를 조인 전형적인 검사다.
“이번 마약 건 담당하고 있는 형사 3부 검사 유동준입니다.”
날카로운 인상의 검사는 오른손을 내밀었다.
내가 그 손을 잡으려 하기도 전에 유동준이 덥석 손을 붙잡았다.
성격이 급한 사람이었다.
“현석이 바쁜 건 아는데 제가 일부러 같이 오고 싶다고 졸랐습니다.”
“저를요?”
“신재현 씨는 우리 지검에서도 유명합니다. 전 지검장도 치고 몇 년간 고생하던 도박장주도 잡고. 어느 세무 공무원이 그런 짓을 하겠어요?”
내가 여러 군데 머리를 들이민 것은 맞지만 처음 보는 검사마저 나를 알아볼 줄은 몰랐다.
“눈에 보이는데 놔둘 수가 있어야죠.”
“크흐. 역시 말이 통하시네요. 그래도 머리로 아는 거랑 실제로 조지는 건 다른 거거든요. 저희 지검이야 차장검사님이 워낙에 한 성질, 크흠…… 불의를 덮지 않으시는 분이라 일하기 편하다지만 보통은 윗분 상대로 함부로 운신하기도 힘들잖아요.”
유동준은 성격만 아니라, 말도 급했다.
내가 뭐라 대꾸할 틈도 없이 속사포처럼 얘기하더니 곧바로 다음 화제로 넘어갔다.
“진예슬 씨 건도 잘 끝날 것 같습니다.”
“조용히 수사하실 계획이었다고 들었습니다. 제가 쳐들어간 바람에 혹시 계획이 틀어진 건 아니었습니까?”
유통업자들이 진예슬 검거 소식을 알게 되는 건 시간문제다.
진예슬이 생방송을 하는 바람에 더욱 그랬다.
핸드폰을 꺼내 방송을 켠 순간, 나는 시간 벌기를 포기했다.
그런데 유동준 검사는 고개를 저었다.
“굳이 시간 벌 필요도 없게 됐습니다. 진예슬 씨가 굉장히 협조적이에요. 어디서 누구에게 샀는지, 은어까지 전부 말해 주고 있습니다.”
“자포자기해서일까요?”
“그럴 리가요. 범죄를 저지른 사람은 쉽게 자기 죄를 인정하지 않는 법입니다. 이 경우엔 신재현 씨의 공이 컸어요.”
나야 쳐들어가서 뒤진 것밖에 없는데.
내가 어리둥절해하자 지현석 검사가 피식 웃었다.
“보통은 무작정 부인하고 보거든요. 시인하면 끝장난다고 생각하니까. 시간이 걸릴 뿐이지 어차피 우리가 조사하면 다 나오는데. 그런데 진예슬 씨는 앉자마자 전부 말했습니다.”
“밀당 없이 바로 냅다 유통책 이름 불어서 그 얘기 듣느라 늦었습니다. 나중에 언제 마음이 바뀔지 몰라서요.”
설명을 듣자 더더욱 아리송했다.
“진예슬 씨가 전해 달랍니다. ‘오빠, 나중에 같이 술이나 먹자.’라고요.”
“예에?”
나는 기겁해서 두 검사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마지막에 한 말이 마음에 남았나 봅니다. 그 누구도 자기한테 진심으로 걱정해 주는 말을 한 적이 없었다고요. 항상 돈에만 매달리는 사람뿐이었다고…….”
아직 한창 나이인 사람이 탈세에 마약까지 찌들어 사는 걸 보니 안타까운 마음에 한 마디 한 것이 그렇게 마음에 남았는 줄은 몰랐다.
무심코 던진 돌에 청개구리가 맞는다더니, 가볍게 한 말에 개심하는 사람도 있는 거구나.
어찌 되었든 고마운 일이다.
앞으로 납세의 의무를 다해 주면 더 고맙고.
“술은 됐고. 앞으론 저나 검사님 만날 일 없이 살았으면 좋겠네요.”
“그렇게 전하죠. 기뻐할 겁니다.”
쓸데없는 오지랖이라고 욕하지 않으려나?
뭐, 검사가 직접 보고 와서 해 준 말이니 맞을 것이다.
어떤 심경의 변화가 있었든 앞으론 이런 일로 만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자, 이제 거기 기자님 차례네요. 제 방 가셔서 얘기해도 되겠습니까?”
“아, 그럼요. 아는 대로 다 말씀드리겠습니다.”
“예. 그럼 신재현 씨, 오늘 정말 감사했습니다. 기회 되면 다음에 봅시다!”
내가 고개를 숙였다가 들자 어느새 쌩하니 지현석 검사실을 빠져나가는 유동준의 모습이 보였다.
한 손을 흔들며 나학진 기자를 재촉하고 있었다.
굉장히 정신없는 사람이다.
“건수 잡았다고 신나서 저렇습니다. 이해해 주세요.”
“제가 도움이 돼서 다행입니다. 괜히 수사 방해나 하는 거 아닌가 걱정했습니다.”
“방해는요. 줄줄이 엮어서 넣을 생각에 싱글벙글하던데.”
지현석이 의자에 대충 걸터앉으며 넥타이를 풀었다.
일에 치여 후줄근한 것도 이제는 꽤 익숙한 모습이다.
지현석은 테이블 위에 놓인 믹스커피를 보더니 반가워하며 마셨다.
“아, 신재현 씨. 그러고 보니 저 기자 말입니다. 써먹을 생각입니까?”
지현석의 말에 황민우도 맞장구를 쳤다.
“기자를 끌어들이신 이유가 있습니까? 상황이 많이 심각한가요?”
황민우는 진지한 얼굴이었다.
나는 괜한 걱정을 살까 서둘러 고개를 저었다.
“그런 건 아닙니다. 다만 지금 윗선이 막아주는 것에만 의지하면 안 될 것 같아서요.”
“국장님과 검사님이 같은 편인데도 부족하다는 말씀인가요?”
“그런 뜻이 아니에요. 지금도 충분히 제게 힘이 되어주시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건 주어진 힘이에요. 제가 스스로 쥔 것은 하나도 없죠. 지난번 이선균 과장님이 제게 팀을 만들어보라고 하셨습니다. 제 사람을 만들어보라는 얘기죠.”
황민우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 뜻은 곧 제 자신의 힘이 필요할 때가 온다는 뜻입니다. 위에서 막아줄 수 없는 큰 파도가 올 수도 있다는 뜻이죠. 그렇다면 무엇이든 패를 쥐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이해했습니다. 멀리까지 보고 계셨군요.”
황민우는 감탄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커피를 홀짝이던 검사가 흐뭇한 표정을 했다.
“그런 거라면 걱정은 안 해도 되겠군요. 제가 좀 도와드리죠.”
“검사님이요?”
“나학진,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고 싶을 것 아닙니까? 과거에 어떤 일을 했고 인간관계는 어떻게 되는지. 믿고 맡겨도 되는 사람인지.”
그 말을 듣자 떠올랐다.
나도 검증해 보고 싶은 사람이 있었다.
이선균이 팀을 꾸리라고 말했을 때 조사하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알려달라고 했었지.
나는 두 명의 직원의 신상을 지현석 검사에게 맡기기로 했다.
“죄송하지만 혹시 추가로 두 명 더 부탁드릴 수 있습니까? 믿고 싶은 사람들입니다.”
“믿고 싶은 사람들이라…….”
지현석 검사가 지체 없이 메모지와 펜을 내밀었다.
“위로 갈 준비를 하는 거군요. 그럼 더더욱 철저하게 조사해야 합니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르는 법이에요. 사정없는 사람은 없으니까요.”
지현석의 말도 맞다.
사람이야 제각기 자신만의 어려움과 고통이 있는 법이니까.
누구의 고통이 더 크다고 비교할 생각은 없다.
다만 믿을 수 있는 사람이길 바랐다.
“삼성 세무서 체납징세과 체납추적1팀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이름은 장세훈, 강혜원.”
미리 핸드폰에 메모해 두었던 주민등록번호를 써서 내밀었다.
“걱정 마세요. 깨끗한 사람이라는 걸 증명해 드리겠습니다.”
지현석 검사는 나를 안심시키려는 듯 가볍게 웃으며 메모를 툭 쳤다.
그의 말 대로였으면 좋겠다.
황민우처럼 오랜 시간 증명할 수 없으니 검사의 손에 걸리는 게 없길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