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3화. 잘 가라, 사랑했다
[유명 뉴튜버 절세, 아니 탈세?]
[뉴튜버 진예슬, 고액 체납자에 마약 혐의까지]
[뉴튜버가 또? 마약 투여 논란, “정신 차려라”]
-실시간 검색어
1. 진예슬
2. 유명 뉴튜버
3. 예슬튜브 마약
4. 진예슬 탈세
5. 고액체납자 지도
진예슬의 열렬한 구독자 ‘이슬맛쿠키’는 일어나서 습관적으로 인터넷을 열었다가 기겁했다.
실시간 검색어가 전부 진예슬로 도배되어 있었다.
그것도 좋은 방향이 아니다.
마약에 탈세라니.
“아니야, 이럴 리 없어! 이 기레기들, 우리 예슬이를!”
‘이슬맛쿠키’는 분노에 키보드를 쾅 내리쳤다.
진예슬이 대체 무슨 잘못을 했다고 인터넷이 이렇게 들끓는단 말인가.
설령 잘못을 했다 해도 겨우 이 정도로 몰매를 맞는다는 건 이해가 안 된다.
진예슬이라면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이슬맛쿠키’는 검색어를 눌러 인터넷 뉴스를 하나하나 읽기 시작했다.
-유명 뉴튜버 진예슬이 마약 투여 혐의로 체포되었다. 놀랍게도 당시 현장 영상은 뉴튜브를 통해 생중계 되었는데 뉴튜버 진예슬 본인이 직접 핸드폰을 통해 실시간으로 중계하였다. 일각에서는 진예슬이 체포되지 않기 위해 ‘꼼수’를 쓴 것이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탑뉴스의 기자 나학진에 의하면 진예슬은 이미 일주일 전 강남의 모 클럽에서 마약 투여를 한 것이 목격되었으며, 진예슬의 주장과는 다르게 당시 공무원의 공무 집행에는 일말의 잘못도 없었다고 밝혔다. 현재 나학진은 목격자로 검찰에서 진술하고 있으며…….
이미 대부분의 뉴스는 진예슬의 범죄 행위에 대해 성토하는 분위기였다.
“이 기레기 새끼들! 이러니까 쓰레기 소리를 듣는 거야! 얼마나 힘들면 예슬이가 이런 짓까지 손댔겠냐고. 다 너희들 때문이야. 그리고 좀 하면 어때!”
‘이슬맛쿠키’는 아무 뉴스나 켰다.
[BEST] deduf: 징역 좀 세게 때려라. 자꾸 솜방망이 처벌하니까 이런 일이 생기지. 얼마를 체납해? 10억? 장난하냐?
[BEST] 이웃집사장: 뉴튜버 싹 다 전수 조사해야 함. 국세청 뭐하냐?
└국세청은 욕 ㄴㄴ 이번에 집까지 쳐들어간 게 국세청이랑 검찰청이잖아. 걔네는 밥값 했음.
└지금까지 가만히 냅둔 게 잘못이지. 겨우 한 명 잡았다고 면죄부 줌?
[BEST] 행복하세요: 고액 체납자 지도 보고 왔는데 심각하네요. 우리나라에 이렇게나 체납자가 많을 줄은 몰랐어요. 세금 안 내도 되는 거면 저는 왜 꼬박꼬박 세금 내고 사나요?
이미 베스트 댓글은 진예슬을 성토하는 댓글로 도배되어 있었다.
그 모든 댓글에 신고를 넣은 그는 즉시 악플을 달았다.
-인간적으로 너무하네요. 사람이 실수 좀 할 수 있는 건데 이렇게 물어뜯어야겠어요? 당신들은 실수 안 해요?
모든 ‘악성적인’ 댓글에 싫어요를 누르고 새로고침을 하자 그사이 그가 쓴 댓글 밑에 새로운 댓글들이 주르륵 달려 있었다.
└옹호할 걸 해라. 미친놈아. 너 같은 놈들 때문에 더 저 지랄이 나는 거야.
└마약하고 상습 체납이 실수야? 이게 팬 수준이냐?
“으아악! 으아아아악! 개새끼들!”
분노를 참지 못하고 소리를 질렀지만, 댓글은 더욱 늘어만 갔다.
그로서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진예슬을 나쁘게 보는 자가 다수다.
그렇다면 다른 식으로 인식을 바꿔보자.
그러기 위해선 그가 외면했던 영상을 봐야 할 때였다.
-띠롱.
└영상 직접 보고 와라. 극성빠들아. http://…….
마침 영상 링크가 달렸다.
그는 기세등등하게 링크를 클릭했다.
이상하게도 영상의 시작은 어느 집의 문짝이었다.
잠시 후 강제로 문을 연 정장의 남자들이 우르르 집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보였다.
마치 다큐멘터리를 보는 것 같았다.
현장의 분위기가 숨소리까지. 날것 그대로 전해져 왔다.
괜히 보는 사람까지 급박해지는 느낌이었다.
“개새끼들! 이렇게 우르르 몰려 들어가니까 예슬이가 겁먹지!”
이슬맛쿠키는 분개하며 키보드를 내리치다가 헉, 하고 숨을 들이켰다.
진예슬이 하의 실종 패션으로 남방만 걸치고 나온 것이다.
평소 후원금을 백만 단위로 써야만 볼 수 있었던 모습이었다.
“나도 몇 번 못 본 예슬이 리액션 3번을! 용서 못 해!!”
입으로는 공무원과 기자를 욕하면서도 눈으로는 그 모습을 눈에 담기 바빴다.
그러나 곧바로 영상에는 모자이크가 씌워졌다.
모자이크 없이 제대로 볼 수 있는 것은 단 1초뿐이었다.
“아악! 기자 나쁜 놈아!”
이제는 다른 의미로 기자를 욕한 그는 서둘러 뒤로 감기 했다.
스크린샷을 찍어 ‘직박구리’ 폴더 안에 고이 간직해 둔 후 재생 버튼을 눌렀다.
공무원들이 허둥지둥하며 시트를 가져와 그녀의 몸을 덮고 있었다.
기자의 내레이션은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모자이크가 사라지고 진예슬이 핸드폰을 꺼냈다.
아마 예슬튜브의 영상은 여기서부터 시작일 것이다.
-흑흑…….
진예슬이 핸드폰을 들고 우는 척하는 것을 본 이슬맛쿠키가 탄식했다.
“예슬아…… 연기 진짜 안 되는구나. 거기선 울었어야지.”
영상이 진행되고 이슬맛쿠키는 어떻게든 흠을 잡으려고 공무원의 행동 하나하나를 뜯어보기 시작했다.
“그래! 가서 만져! 만지라고!”
공무원이 손가락 하나라도 대면 바로 캡쳐해서 민원을 넣을 생각이었다.
1초마다 일시 정지를 해 가며 매의 눈으로 훑어봤지만 이렇다 할 신체접촉 없이 공무원의 통지가 시작되었다.
시트를 덮어 줄 때 약간의 접촉이 있었지만, 아쉽게도 여직원이었다.
“약아빠진 놈들.”
투덜대며 다시 재생을 눌렀다.
남자 직원이 두어 발짝 떨어져서 뭐라 뭐라 서류를 놓고 읊기 시작했다.
솔직히 무슨 말인지 전혀 모르겠지만 하나는 알아들었다.
진예슬이 체납했고 재산이 있으니 세금을 내라는 것이다.
“예슬아…… 반박을 해야 돼.”
이미 다 끝난 일이고 이것은 녹화본이다.
그걸 알면서도 안타까움에 한탄할 수밖에 없었다.
화면 속 진예슬은 평소와 달랐다.
예민해 보였고 논리적인 문장을 짜내지 못했다.
그렇다고 억울한 연기를 잘하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었다.
슬쩍 스크롤을 내려 보니 가장 위에 올라와 있는 댓글이 보였다.
[BEST] 핑높으면겜하지마: 아 저거 마약 금단 증상 맞네. 지금 손발 보임? 눈도 초점이 안 잡히잖아. 평소에 방송 보던 놈들은 이걸 몰랐음?
평소의 예슬이는 안 그래!
이슬맛쿠키는 울컥해서 싫어요를 눌렀다.
그러나 좋아요가 늘어나는 숫자가 더 빨랐다.
그사이 영상에서는 가장 어린 공무원이 박수를 짝, 쳐서 주의를 모으고 있었다.
놀라서 화면을 올려보자 다른 공무원들이 그의 명령을 기다리는 것이 보였다.
뭐야, 제일 어려 보이는데 제일 높은 놈이야?
놀랍게도 남자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방향에 따라 공무원들이 일사불란하게 흩어졌다.
그러고 보니 아까 서류를 들이밀고 설명한 것도 그렇고 이 남자가 대표인 듯싶었다.
“나랑 몇 살 차이도 안 나 보이는데.”
겨우 20대 후반 정도.
이런 일을 지휘하기에는 지나치게 젊어 보였다.
방금도 뭔가, 뭔가가 일어났다.
진예슬이 무슨 말실수를 한 것 같았는데 잘 모르겠다.
저 안에서 공방이 일어난 건 분명했다.
그 결과로 공무원들이 집안을 뒤지기 시작했고.
이런 거 보면 누가 설명 댓글 하나쯤 달아놓았을 텐데.
이슬맛쿠키는 흠잡으려 했던 것도 잊고 스크롤을 아래로 내렸다.
과연 아래쪽에 댓글 하나가 있었다.
-진예슬이 다른 집 없이 저기 회사 집에서만 생활했댔죠? 그럼 저 집 안의 물건이 다 진예슬 거잖아요. 회사 자산에는 집만 잡혀 있으니까 회사 거라는 변명도 안 통하는 거지. 남의 거라고 하기엔 너무 개인 물품 티가 나고, 귀속자 밝히기도 어렵잖. 귀금속 나오면 다 징세 가능한 거임.
“예슬아아아아!”
이건 뭐라 반박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해당 내용을 잘 모르기도 하고 합리적인 반박 글이 떠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무작정 옹호해 봐야 더 큰 비난이 돌아올 것은 일명 ‘빠’인 그도 알았다.
-어리광 피우지 마세요! 탈세에 마약까지, 어디까지 떨어질 겁니까! 그런 짓 하기엔 진예슬 씨 인생이 너무 아깝잖아요.
언뜻 보면 질책하는 것 같았지만 잘 들어보면 안타까움이 가득 담긴 목소리였다.
“하…… 새끼 멋있네.”
이젠 반쯤 포기했다.
이슬맛쿠키는 담배를 한 개비 빼 물고 불을 붙였다.
체납자에게 들이닥쳐 조목조목 따져가며 반박할 수 없게 만들고, 자기보다 나이 많은 사람을 지휘해 결과를 만들어내는 모습.
게다가 무작정 진예슬을 적으로 취급하지도 않았다.
정중했고 또한 안타까워했다.
자기가 되고 싶었던 이상적인 사회인의 모습이 거기 있었다.
-이렇게 공무원들의 조사가 끝났다. 이제 나는 목격자로 진술하러 함께 검찰청에 갈 것이다. 이 영상을 본 모든 사람이 ‘이러면 안 걸리겠지, 뭐 어때’ 하는 마음을 버렸으면 하는 바람이다. 아주 단순한 원리지만 나쁜 짓을 하면 다 걸리게 되어 있다. 특히 사명감 있는 공무원 앞에서라면 더더욱.
당시 분위기에 취했는지 기자의 내레이션이 한층 오글거렸다.
그러나 영상을 보는 그 역시 그 심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
이슬맛쿠키는 영상에 좋아요를 누른 후 작게 읊조렸다.
“잘 가라, 씨발년아. 사랑했다…….”
남자는 담배 연기에 순정을 실어 창밖으로 날려 보냈다.
***
“커피 드세요.”
“아, 예. 감사합니다.”
나학진은 검사실을 두리번거리며 여직원에게 꾸벅 인사했다.
여느 회사와 별다를 것 없어 보이는 소박한 사무실이다.
그러나 이곳은 서울서부지검이고 나학진은 검사실에 앉아 있는 것이다.
평온한 분위기에 긴장을 풀었다가도, 자신이 어디 있는지 떠올리고 자세를 바로 했다.
그 모습을 본 여직원이 부드럽게 웃으며 종이컵을 마저 내려놓았다.
나학진의 건너편에는 세무공무원 둘이 앉아 있었다.
하나는 제집처럼 편안하게 서류를 보고 있었고, 나머지 하나는 펜을 들고 무언가를 체크해 나갔다.
둘 다 긴장감은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 없었다.
“되게 오랜만에 오셨네요. 작년 하성필 검사 때 이후 저희 검사님 뵈러 온 건 처음이죠?”
여직원이 살갑게 묻자 7급 주사보, 신재현이 고개를 들었다.
세무서에 들어가면 다들 국세조사관의 직함을 단다지만, 1년 전과 지금은 비교도 할 수 없었다.
이 짧은 시간에 그는 어엿한 한 사람의 조사관이 되어 있었다.
“벌써 그렇게 됐네요. 그간 지 검사님 많이 바쁘셨나요?”
“어휴, 말도 마세요. 일을 만들어서 하시는 분이라니까요. 그래도 조사관님 덕분에 점수를 많이 따셔서 곧…….”
여직원은 나학진을 흘끔 보더니 뒷말을 흐렸다.
“곧 승진하시나요?”
“들으셨나요?”
“그건 아니지만 유추해 보니 그런 결과가 나오네요.”
“어우, 조사관님 진짜 공무원 시험 다시 볼 생각 없어요? 검찰 공무원 괜찮은데.”
“말씀만으로도 감사합니다. 저는 이미 만족하고 있어서요.”
“네에.”
여직원이 빙긋 웃으며 물러났다.
나학진은 눈앞의 청년에게 궁금증이 치솟는 것을 느꼈다.
당신은 뭐 하는 사람이냐, 어떻게 검사랑 알고 지내냐, 날 선택한 것은 왜냐 등등.
그러나 한마디도 꺼낼 수가 없었다.
검사실의 분위기에 눌렸기 때문이 아니다.
눈앞의 청년에게서는 함부로 대할 수 없는 아우라가 드러났다.
지금은 비록 삼류 기자지만 과거 온갖 기업들의 뒤를 쫓아다녔던 그는 알았다.
절대 연예인에게 하듯 개소리를 던지면 안 된다.
관심을 받지 못하는 삼류 기자가 연예인에게 던지는 질문은 대부분 ‘대답 안 할 거 아니까 발끈해서 대꾸라도 해 줘라’하는 헛소리가 대부분이었다.
그렇게 관심을 끈 후에 진짜 질문을 던지는 것이고.
-후룹.
나학진은 조용히 커피를 마시며 틈을 노렸다.
무슨 질문을 먼저 던져볼까.
나학진의 머리가 팽팽 돌아갔다.
상대가 어리다고 해서 얕보는 것은 하수나 하는 짓이다.
이미 특종은 잡았지만, 그와 함께하면 더한 것을 볼 수 있으리란 감이 왔다.
그러니 카메라를 들이밀고 자신의 가치를 증명한 것이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은 그것뿐이니.
나학진은 고민 끝에 결국 하나의 질문을 택했다.
아니, 질문이라기 보단 확인이었다.
“조사관님. 저는 쓸 만했습니까?”
서류를 들여다보던 두 조사관의 고개가 휙 들렸다.
젊은 청년의 눈에 이채가 깃들어 있었다.
‘좋아. 흥미를 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