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국세청 망나니-102화 (102/500)

102화. 찍어보세요(5)

아까보다 한층 얌전해진 진예슬이 움찔했다.

기자와 누구 목소리가 더 크나 대결이라도 하는 것처럼 소리를 질러대더니, 지금은 힘에 부쳤는지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시트 끝에 드러난 손과 발이 미세하게 떨렸다.

“다, 당신 이렇게 연약한 여자를 몰아붙여도 되는 거예요? 국민을 위해 있는 게 공무원 아닌가?”

진예슬의 목소리에서는 독기가 많이 빠져 있었다.

기자가 그렇게 심하게 압박했나?

나는 갸웃하면서도 해야 할 말을 꺼냈다.

“삼성세무서 체납징세과 7급 주사보 신재현입니다. 진예슬 씨는 세금을 낼 돈이 없다는 이유로 지금껏 10억에 이르는 세금을 체납하셨습니다.”

진예슬이 잠시 움찔했다가 다시 목소리를 높였다.

“진짜로 낼 돈이 없어요. 회사에서 월급도 안 받는다고요. 무보수라니까요.”

그야 압류당해서 세금 내기 싫으니까 월급과 배당을 보류한 거겠지.

발끈한 장세훈이 다가왔다.

“그럼 이 집은 대체 뭡니까? 자기 집 아니에요?”

“공무원이면 다 조사하고 나온 거 아니에요? 이 집은 제 집이 아니고 회사 집이에요.”

“회사 재산인데 혼자서 이렇게 제집처럼 쓴다고요?”

장세훈의 목소리가 높아지자 나는 얼른 그를 제지했다.

당장 카메라 두 대가 돌아가고 있었다.

다혈질인 그가 욱해서 달려들면 곤란했다.

딱 봐도 세금이 싼 법인 명의로 재산을 돌려 편법 절세를 하는 것 같았지만, 이건 지금 우리가 건드릴 수는 없다.

우리는 징세, 즉 숨겨진 재산을 파헤쳐서 세금을 거두러 나온 거니까.

법인 재산에 탈세가 있었는지는 조사과가 알아볼 일이었다.

물론 우리가 징세 자료를 준비하면서 알아낸 것들은 이미 조사과에 넘겼다.

조만간 법인에 세무 조사가 들어가겠지.

“회사 재산이라고 하셨으니 여쭙겠습니다. 그 회사는 진예슬 씨의 활동을 관리 및 보좌해 주는 매니지먼트를 말하는 거죠? 뉴튜브 촬영을 돕기도 하고 편집도 하고.”

“잘 아시네요. 그러니까 여긴 그 회사의 사택이에요. 회사의 유력 뉴튜버이자 사원인 내가 여기 있는 건 당연하다고요.”

진예슬의 목소리 끝이 갈라졌다.

핸드폰을 든 손끝이 눈에 보이게 떨렸다.

약간 과민반응을 하는 것 같기도 한데…….

체납자가 징세하러 온 공무원에게 반응하는 건 당연한가?

나는 약간의 의구심을 품었지만 쉴 틈을 주지 않고 몰아붙였다.

“잘 말씀하셨습니다. 사택이라 함은 회사에 소속된 불특정 다수의 근로자에게 제공하는 집을 말합니다. 그런데 지금 이곳은 누가 봐도 진예슬 씨 혼자만을 위한 집인 것 같군요.”

“그야 우리 회사에 직원은 1인 뉴튜버인 나밖에 없으니까요. 애초에 그 회사는 나를 위해 세워진 거예요. 나를 위해 쓰는 건 당연하지 않나요? 그리고 이 집 안에는 방송 장비도 있어요. 엄연히 일하는 장소라고요.”

말은 그럴듯했다.

그래서 나는 서류 뭉치 하나를 꺼냈다.

“그, 그게 뭐예요?”

“진예슬 씨, 법인세 신고가 원래 3월인 건 아시죠?”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예요?”

나는 두꺼운 서류 뭉치를 들어 표지를 진예슬에게 보여 주었다.

정확히는 그녀가 찍는 카메라를 향해서다.

“주식회사 제이엔디, 그러니까 진예슬 씨가 말하는 ‘회사’의 주식을 증여받으셨죠?”

“그게 어때서요? 아까 말했듯이 제가 없으면 이 회사가 안 돌아가서요. 아, 혹시 주식을 압류하겠다 이건가요? 저번에 통지서 왔던데.”

징세과 직원이 나름 제 일은 했나 보다.

“난 어차피 현금 없어요. 주식 쪼가리 압류하려면 압류하든가.”

진예슬의 말투가 예민해졌다.

불안해져서인지 아니면 속옷 위에 시트만 두른 채 낯선 사람들을 상대하고 있어서인지는 모르겠다.

어찌 되었든 견고하던 방어가 무너지는 건 좋은 일이다.

“주식은 압류할 겁니다. 그게 문제가 아니고, 이게 바로 증여세 신고하실 때 첨부한 비상장 주식 평가 조서라는 겁니다. 회사의 가치를 평가한 것이죠.”

-팔락팔락.

나는 평가 조서의 페이지를 천천히 넘겼다.

“회사의 가치라 함은 결국 자산과 부채입니다. 즉, 여기엔 재무제표가 첨부되어 있죠.”

“그, 그래서요.”

“법인세 신고는 3월이고 지금은 2월 말이니 세무서에는 재작년의 재무제표만 있습니다. 그런데 다행히도 이렇게 작년 11월 말 재무제표가 있네요?”

증여가 이루어진 게 11월 말이다.

자연히 비상장 주식 평가도 11월 말을 기준으로 이루어졌다.

이 정도면 재무제표도 비교적 최신판이다.

“어디 회사 자산에 뭐가 있는지 보겠습니다. 현금은 25만 원이 있고, 건물과 토지가 100억, 장비와 비품이 700만 원. 차량이 1억 원. 끝이군요.”

무슨 일인가 불안해하며 듣던 진예슬이 활짝 웃었다.

“제 말이 맞죠? 이 집이 회사 자산이라니까요? 내 집이 아닌데 막 세금 가져가겠다고 이렇게 나오시면 안 돼요.”

평소의 모습을 되찾은 진예슬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나는 짐짓 안타까운 듯 고개를 흔들었다.

“진예슬 씨 말씀이 맞습니다. 진예슬 씨의 것도 아닌 회사 자산을 저희가 손댈 순 없죠.”

“휴, 정말 무서웠어요. 그래도 공무원 아저씨들이 제 힘든 상황을 알아주시니 정말 다행이에요.”

아까와는 말투가 확연히 달라졌다.

진예슬은 어느새 방송 모드로 돌아가 있었다.

그보다 아저씨라니.

나랑 나이 차이도 많이 안 나면서.

나는 울컥하는 기분을 억누르며 애써 웃었다.

표정 관리를 해야 한다!

“저희가 무섭게 할 생각은 아니었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오해가 풀린 것 같으니 다행이라고 생각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나는 일부러 시무룩한 얼굴로 가방에 서류를 집어넣었다.

조사가 끝나 철수하는 것처럼 받아들여 주면 좋을 텐데.

진예슬이 한참 카메라를 보고 떠들었다.

무섭다느니 요즘 공무원은 제대로 조사도 안 하고 자기를 괴롭힌다느니 하는 식의 비난이었다.

나는 자료를 정리해 돌아가는 척하다 툭 질문을 던졌다.

“부럽습니다, 진예슬 씨. 이렇게 넓은 집에 혼자 사시고.”

“공무원 아저씨가 물어보시네요. 이 집이요? 열심히 노력하면 아저씨도 장만할 수 있어요!”

노력이라.

나는 쓴웃음을 지었다.

“그러면 이 집은 혼자 쓰시는 거 맞습니까? 다른 집은 없고요?”

“회사에서 제공한 사택이라니까요. 다른 사람은 가끔 합방할 때만 들여보낸다고요. 그러니까 아저씨가 얼마나 무례했는지 아시겠어요?”

왜 자꾸 아저씨래.

힐난하듯 말하는 진예슬에게 나는 함박웃음을 지으며 돌아섰다.

“그러니까 혼자 점용하고 쓰신다 이거죠? 잘 들었습니다. 자, 여러분!”

기다리던 시간이다.

나는 크게 소리쳐 세무서 직원들을 불렀다.

그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장갑을 꼈다.

“저 방은 내가 뒤질게. 강혜원 씨는 침실 부탁해.”

“속옷 있는 옷 방을 제가 가야죠.”

“침실에 속옷 있는 거 아냐?”

“저도 80평짜리 펜트하우스는 처음이니까 그냥 다 뒤져요. 갑시다!”

“오케이!”

장세훈과 강혜원이 신나서 출발하자 진예슬이 당황해서 그들을 쫓아가려고 했다.

“끝난 거 아니었어요? 오해는 다 풀렸다면서요!”

“진예슬 씨는 회사에서 제공한 집에 거주하고 계시죠. 그러나 회사의 재무제표에 올라와 있는 회사의 재산은 이 집과 장비뿐입니다. 즉, 집 안에 있는 것들은 진예슬 씨 개인의 소유라는 뜻이죠.”

“자, 잠깐!”

“회사 자산은 건드리지 않겠습니다. 집과 장비, 비품을 제외한 것들은 수거하죠.”

“예.”

황민우가 끄덕이며 고정자산 대장을 내밀었다.

비품의 세세한 종류가 쓰여 있는 관리대장이다.

이름 모를 카메라 장비부터 컴퓨터에 이르기까지.

가져가지 말아야 할 ‘회사 소유 재산’을 눈으로 확인한 후 곧장 주방으로 향했다.

“안 돼! 당신들 뭔데 이러는 거야. 왜 함부로 가져가겠다는 건데요! 이거 지금 구독자 여러분들이 보고 있어요!”

진예슬이 핸드폰을 가까이 들이밀었다.

정말 라이브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카메라를 향해 차갑게 말했다.

“고지서가 댁에 몇 번이나 왔습니까? 직장인들은, 사업자들은 바보라서 세금 냅니까?”

“돈이 없으니까 세금 안 내는 거라고 했잖아요!”

“그럼 저건 뭔가요?”

내가 가리킨 끝에는 황민우가 어느새 찾아낸 5만 원권 다발을 들고 있었다.

체납자는 항상 이렇다.

통장에 넣어 두면 압류되니까 현금이든 뭐든 집안에 보관해 둔다.

“아악! 그건 내 생활비야!”

“세법상 생활비는 150만 원만 남겨 드립니다. 그 외엔 가져가겠습니다.”

강혜원이 어느새 투명한 봉투 안에 목걸이와 귀걸이를 쓸어 담아 내게 건넸다.

그리고 곧바로 옆방으로 향했다.

나야 이게 고가인지 가짜인지 모르지만, 어차피 가져가서 감정을 맡기면 해결될 일이다.

“안 돼! 150만 원 갖고 어떻게 살라고!”

나는 50만 원 갖고도 살아봤는데.

쓰게 웃으며 대신 다른 말을 꺼냈다.

“어리광 피우지 마세요! 탈세에 마약까지, 어디까지 떨어질 겁니까! 그런 짓 하기엔 진예슬 씨 인생이 너무 아깝잖아요.”

온몸을 덜덜 떨고 있는 진예슬을 안타깝게 바라보았다.

체납액이 10억 규모면 가산세만 해도 몇 천인데.

정말 사정이 힘들었으면 조금씩이라도 내지.

그러나 그녀에게 주어진 기회는 이미 다 지나갔다.

“주사보님! 이쪽 방은 저희가 뒤질 테니까 반대쪽 방 좀 뒤져 주실래요?”

옷 방에서 강혜원이 빼꼼 고개를 내밀었다.

집이 워낙 넓다 보니 나도 서둘러 움직여야 했다.

“아, 옙.”

내가 반대쪽으로 움직이려 하자 안쪽 방에서 지현석 검사와 수사관들이 우르르 몰려나왔다.

내가 진예슬과 공방을 벌이고 있을 때 슬쩍 들어가더니 벌써 뒤지고 나온 듯했다.

“이쪽에서도 몇 가지 찾았습니다. 넘겨 드리죠.”

수사관이 증거 수집용 봉투에 들어있는 귀금속을 넘겼다.

그런데 표정이 영 좋지 않았다.

“혹시 원하시는 건 찾았습니까?”

“모발 검사 보낼 머리카락은 찾았는데, 정작 증거품을 못 찾았습니다. 저쪽 방에 있으면 좋을 텐데요.”

증거품.

마약을 말하는 거겠지.

장세훈과 강혜원이 열심히 뒤집어엎는 것을 본 검사가 혀를 내둘렀다.

“저쪽도 만만치 않게 구석구석 뒤지네요.”

“저희 쪽도 숨겨 둔 것 찾는 게 업무니까요.”

업무상 동질감에 한숨을 내뱉는데, 지현석 검사가 날카로운 눈으로 진예슬을 관찰하는 것이 보였다.

검사의 시선을 받은 진예슬이 움찔 몸을 떨었다.

아까 나와 말다툼하던 것과는 다른 반응이다.

검사는 진예슬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고 말했다.

“전형적인 금단 증상인데. 정작 그게 안 나온단 말이지…… 잠깐 세무서 쪽 여자 조사관님 빌릴 수 있겠습니까?”

검사는 그녀의 일거수일투족을 눈에 담고 있었다.

심상치 않음을 느낀 나는 즉시 강혜원을 불렀다.

“혜원 씨! 즉시 멈추고 나오세요!”

“네!”

강혜원은 말 그대로 하던 것을 던지고 5초도 안 되어 거실로 튀어나왔다.

검사의 지시를 받은 여자 수사관이 진예슬의 한쪽 팔을 잡았다.

“잠시 안쪽으로 가시죠.”

“어? 어어? 잠시만요. 왜, 왜요?”

진예슬이 눈에 띄게 당황했다.

그사이 검사가 강혜원에게 당부했다.

“우리 쪽 수사관이 몸수색을 할 겁니다. 혹시 수사관이 조사하는 동안 몰래 뭐 숨기지 않나 봐 주세요.”

“네. 찾는 건 잘 해요. 맡겨 주세요!”

강혜원이 수사관을 따라 방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잠시 후.

“앗! 말도 안 돼!”

강혜원의 놀란 목소리가 거실까지 들렸다.

-달칵.

문을 열고 나온 수사관의 손에는 분홍색 알약 하나가 올려져 있었다.

“속옷에 숨겨 놨습니다. MDMA. 엑스터시 종류 같습니다.”

“수사관님. 다시 들어가셔서 옷 좀 입혀 주세요. 바로 동행할 겁니다.”

수사관들의 눈빛이 변했다.

“나온 보람이 있으니 다행입니다. 모발 검사 기다려서 나오면 그사이에 판매책에 다 알려져 버리니까요.”

“그게 바로 마약입니까?”

“예. 불량식품처럼 생겼죠.”

약이라기보단 어렸을 때 문방구에서 팔던 사탕처럼 생겼다.

가루나 액체를 생각했던 내게 이렇게 친숙한 모양의 마약이 있다는 건 충격이었다.

“요즘 이런 게 늘어나고 있습니다. 누가 들여오고 파는지 아주 난리예요.”

지현석 검사가 한숨을 내쉬었다.

그 사이 진예슬이 대충 옷을 차려입고 거실로 나왔다.

그녀는 손을 물어뜯으며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그래도 동기가 좋아하겠네요. 단서 하나라도 중요하니.”

“마약, 마약이라고 하셨죠!”

지금까지 숨 쉬는 소리도 내지 않고 영상을 찍던 기자가 번뜩 끼어들었다.

“제가 봤습니다! 제가 목격자예요! 증언하겠습니다!”

검사가 그를 바라보며 씨익 웃었다.

“동기가 아주 좋아하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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