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화. 찍어보세요(4)
빌라 밖에서 한창 실랑이가 벌어지고 있을 무렵, 진예슬은 일생일대의 고민에 빠져 있었다.
-탁, 데구르르.
테이블 위에 놓인 작은 알약 하나가 손길 닿는 대로 굴러다녔다.
진예슬은 분홍빛을 띠는 알약을 잡아먹을 듯 바라보았다.
실제로 그녀는 의자에 앉아 있는 짧은 시간 동안 저 알약을 입에 넣는 상상을 수백 번도 더 했다.
-데구르르.
진예슬의 손아귀에서 빠져나간 알약이 굴러 떨어질 듯 거세게 밀려나자 진예슬은 얼른 테이블 위로 몸을 뻗었다.
“하, 미치겠네.”
현재 진예슬을 잡아 주는 한 줄기 이성은 공교롭게도 밖에서 기다리고 있을 기자 때문이었다.
자신이 ‘노는’ 모습을 들켜 소란이 일어난 후, 기자는 집 앞까지 찾아와 맴돌았다.
본인은 숨었다고 숨었는지 몰라도 이미 경비들이 그의 존재를 알려 준 후였다.
그것이 바로 이 값비싼 빌라의 최상층에서 사는 입주민에 대한 서비스 중 하나이기도 했다.
빌라에 사는 사람들, 그중에서도 층수가 높은 사람일수록 철저한 사생활 보호를 원하는 사람들이다.
때문에 빌라 주변에 수상한 자가 나타나면 입주민에게 알려 주의를 주곤 했다.
간간이 입주민의 ‘전 남친’이라거나 ‘복권 당첨자님, 기부 좀 해 주세요’ 같은 사람들이 나타나긴 했으나 지금껏 빌라의 출입문을 지난 사람은 없었다.
문제는 진예슬이 지금 밖으로 나갈 수 없다는 것이었다.
저번에는 다행히도 조용히 넘어갔다.
그러나 이번에도 그럴까?
클럽의 위치를 아는 기자는 바로 뒤따라 올 테고 어떻게든 숨어들 것이다.
클럽 경호원이 막아 준다고는 했지만 이미 한 번 뚫리지 않았는가.
게다가 돌아오는 길에 급습당하면?
특종을 노리는 기자라는 족속이 얼마나 집요한지 그녀는 알았다.
물론 조금만 정상적으로 생각해 본다면 과한 걱정이라는 걸 알 것이다.
그러나 이미 금단증상으로 손발이 떨리고 머리가 어지러웠다.
정상적인 사고가 불가능했다.
작은 사물이 크게 보이고, 소리에 예민해져 있었다.
모든 것이 불안해서 자꾸만 상상이 최악으로 치달았다.
‘먹으면 편해질 텐데.’
진예슬은 지금 당장이라도 저 알약을 입안에 넣고 굴리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까짓 거 클럽 갔다 오면 되지!’
진예슬이 결심을 굳힌 순간이었다.
-뚜르르.
인터폰이 울렸다.
중요한 순간을 앞두고 받을까 말까 고민했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인터폰의 벨소리가 너무나도 신경을 긁었기 때문이다.
결국 진예슬은 인터폰을 누르고 신경질적으로 물었다.
“누구신데요.”
-경비실입니다. 급박합니다. 지금 국세청이랑 검사가 올라갔어요.
그 말만 하고서 전화는 뚝 끊겼다.
순간 진예슬의 머릿속이 폭주했다.
‘국세청? 검사? 뭔데? 왜? 대체 왜?’
제대로 된 문장이 떠오르지 않았다.
명멸하듯 단어가 떠올랐다가 심해에 가라앉듯 떠내려갔다.
사고가 이어지지 않았다.
“아, 안 돼! 약!”
가장 먼저 진예슬이 한 행동은 손에 들고 있던 약을 숨기는 것이었다.
가장 쉬운 방법은 변기에 넣고 물을 내리는 것이었지만 그러기엔 너무나도 아까웠다.
앞으로 언제 약을 구할 수 있을지 모르는 것이다.
‘어디, 어디다 숨기지? 숨겨야 돼.’
집안을 헤집고 다녔지만 마땅한 장소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80평에 달하는 넓은 공간은 지금 와서는 방해물일 뿐이었다.
소파 틈바구니, 서랍 뒤쪽, 환풍구…….
어딜 둘러봐도 불안했다.
그렇게 시간이 덧없이 흘렀다.
-똑똑똑.
“진예슬 씨, 세무서에서 나왔습니다.”
그 순간 진예슬은 가장 어리석은 선택을 하고 말았다.
***
“땁시다.”
문짝 하나에 몇 십일까, 몇 백일까.
사무관이 손에 빠루를 쥐고 기세등등하게 나오자 문짝에 대한 걱정이 머릿속에 스쳤다.
비싸 보이는 문짝을 막상 파손하려니 본능적인 부담감이 든 것이다.
그러나 검사 쪽 사람들은 달랐다.
익숙한 동작으로 움직일 공간을 만들어주었다.
수사관이 문에 끝부분을 걸고 힘을 주어 밀었다.
-우드득, 캉!
요란한 소리와 함께 잠금장치가 뜯겨져 나갔다.
“우리 수사관님 깔끔하게 뜯으시네요. 이 정도면 도어락 갈고 끝부분 마감만 다시 치면 되겠다.”
“힘 좀 썼습니다.”
검사의 감탄에 수사관이 어깨를 으쓱했다.
-띠리릭.
무슨 소란인가 싶어 나와 본 옆집 입주민이 우리를 보고는 입을 떡하니 벌렸다.
“공무 집행 중입니다.”
지 검사가 시원하게 웃어 보이자 옆집 입주민은 ‘아, 예.’ 하고 중얼거리듯 말하더니 잽싸게 들어가 버렸다.
“말씀드렸듯이 주의 끌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현장에 진입하기 전 검사가 당부했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내 앞에 수사관이 섰다.
수사관은 살며시 문틈으로 안을 들여다보고는 앞에 아무것도 없는 것이 확인되자 문을 홱 열어젖혔다.
지 검사가 뒤로 물러서고 내가 앞서서 들어갔다.
지현석이 방해 없이 구석구석 뒤질 수 있도록 내가 앞에서 화려하게 날뛰어 줄 생각이었다.
“진예슬 씨! 안에 계신 것 다 알고 있습니다! 어디 계십니까!”
“어머, 이게 무슨 일이에요?”
내 외침에 거실 안쪽에서 한 젊은 여자가 걸어 나왔다.
아까부터 문을 두드리는 소리를 들었을 텐데, 아무것도 모르는 척 시치미 떼는 것은 그렇다 쳐도.
“흡!”
“허억!”
진예슬의 차림새를 보자마자 우리 쪽, 검사 쪽 할 것 없이 다들 숨을 들이켜며 고개를 돌렸다.
진예슬은 헐렁한 남방을 입었는데, 그 사이로 언뜻 속옷이 보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바지를 입지 않았다.
“혼자 사는 여자 집에 대체 무슨 짓이에요! 나가요!”
이 여자, 강하다.
우리가 문을 따고 들어오는 사이에 나름대로 세팅을 끝내 둔 것이다.
다들 할 말을 찾지 못한 채 눈동자만 굴리는 와중에 진예슬을 똑바로 주시하는 건 나와 지현석 검사뿐이었다.
[1,031,385,240]
옷차림이 어쨌건 상대는 탈세범이다.
내게 있어 구분은 성실 납세자냐, 탈세범이냐 둘 뿐.
주저할 이유가 없었다.
“진예슬 씨. 체납 세액을 집행하러 나왔습니다.”
내가 고지하며 한 발 앞으로 내디딘 순간, 난데없이 진예슬이 비명을 질렀다.
“꺄아악!”
“어지간하네, 진짜.”
“작정했구만.”
등 뒤에서 수사관들이 툴툴거리는 소리가 났다.
저런 차림새로 하고 있는 이상 섣불리 건들 수도 없었다.
그러는 동안에도 진예슬의 비명은 계속됐다.
“사람 살려! 당신들 강도야? 왜 남의 집에 함부로 들어오는 건데! 변태들이잖아! 나가라고!”
진예슬은 소리를 지르며 오히려 이쪽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어어!”
밀리면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수사관들은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반쯤 벌거벗은 여성의 몸에 손을 댄다?
딱 봐도 함정이다.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안 봐도 뻔했다.
“이렇게 나오시겠다?”
성큼성큼 다가오는 진예슬을 막아선 것은 강혜원이었다.
두 손을 허리에 얹은 강혜원은 손을 쓰지 않고 그대로 진예슬에게 다가갔다.
“안 통하니까 그만하시고요. 옷 좀 입으시죠? 장세훈 주사보님. 아무거나 옷 좀 주세요.”
다혈질이던 장세훈도 여기선 한 수 접을 수밖에 없었다.
장세훈이 어느 쪽으로 가야 할지 몰라 거실을 두리번거리다, 방으로 보이는 곳으로 무작정 들어갔다.
원하는 옷은 찾지 못했는지 침대의 시트를 대신 들고 왔다.
“이것밖에 없는데.”
“이거면 되죠.”
강혜원은 가차 없이 진예슬에게 시트를 둘렀다.
꽁꽁 싸매고 끝부분을 묶어 주자 진예슬이 드러낸 곳은 이제 얼굴과 발끝밖에 없었다.
“내가 이걸로 끝날 줄 알아?”
진예슬은 다음 수를 준비하고 있었다.
손에 들고 있던 핸드폰을 켜더니 카메라를 우리에게 향했다.
부당한 대우를 찍어 두겠다 이건가?
그러나 진예슬의 입에서 나온 것은 예상외의 멘트였다.
“구독자 여러분! 오늘은 파렴치한 공무원들을 찍어 볼 거예요. 여기 바로 이 사람들인데요! 제가 자고 있는 동안 강제로 문을 열고 들어왔어요.”
진예슬이 흑흑 우는 소리를 냈다.
정작 눈에는 눈물도 고여 있지 않은데.
“쉽게 움직일 수는 없겠네요.”
지현석 검사가 슬쩍 내게 와서 중얼거렸다.
그의 말대로다.
어떻게든 영상을 찍겠다고 들이민 이상 이제부터는 그 어떤 신체적 접촉도 해선 안 된다.
말도 조심해야 했다.
이것이 라이브라면 더욱더.
평소라면 압박을 가해서 상대를 무너뜨리겠는데, 이번엔 내가 가진 패를 먼저 까 보여야 하나.
손에 쥔 서류를 만지작거리며 고민하고 있을 때, 뒤에서 한 중년 남자가 걸어 나왔다.
빌라 앞에서 만난 기자다.
그의 손에는 카메라가 들려 있었다.
“진예슬 씨! 우리 어디서 많이 봤죠? 어디서 봤을까요?”
“아저씨는 뭐예요! 꺄악!”
진예슬이 또 비명을 질렀다.
기자는 침착하게 우리 앞에 서서 카메라를 들이밀었다.
화면을 보니 녹화 중이었다.
길거리에서 인터뷰하듯, 기자는 자기 페이스대로 질문을 던졌다.
“일전에 강남의 모 클럽에서 만난 적이 있는데요. 그때 제 머리채 쥐어 뽑으셨잖습니까. 기억 안 나십니까?”
“여러분, 이것 보세요! 공무원들이 아무 상관도 없는 이상한 아저씨를 데리고 들어왔잖아요! 세상에 이래도 되는 거예요?”
“제가 거길 왜 들어간 줄 아십니까? 클럽에 이상한 약이 돌고 있다는 소문이 있어서예요. 근데 마침 진예슬 씨가 있지 뭡니까.”
서로의 말을 듣지 않는 일방적인 독백이 계속되었다.
카메라와 카메라.
두 남녀가 손에 든 것은 그저 일상에서 볼 수 있는 물건들이었다.
그것이 지금 내 눈엔 그 어떤 날붙이보다도 위험하게 보였다.
“2월 25일 오후 3시 25분. 연예 지망생이자 뉴튜버인 진예슬 씨는 마약류 투약 혐의와 세금 체납 혐의로 가택 조사를 받고 있다. 진예슬 씨는 검사와 세무서 조사관의 조사에 완강히 불응했다.”
“지금 뭐 하시는 거예요? 어딜 찍는 거야!”
기자는 다큐멘터리를 찍듯 천천히 현재 상황을 담은 내레이션을 읊조렸다.
둘은 한 치도 밀리지 않고 치열했다.
“그런데 저 기자가 마약 얘기를 어떻게 알고 있는 거죠?”
검사가 목소리를 낮춰 물었다.
“밖에서 일주일간 진예슬 씨를 기다렸다고 하더군요. 예전에 진예슬 씨가 클럽에서 마약했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어요. 혹시 저 기자가 아닐까 합니다.”
“기사를 썼어요?”
“예. 증거는 없어서 신고는 못 한 것 같구요.”
검사가 흥미로운 눈으로 기자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기자는 물 만난 물고기가 따로 없었다.
나와 검사가 했던 말을 바탕으로 탈세범과 마약사범이라는 단어까지 언급했다.
기자의 내레이션에 의하면 진예슬은 극악무도한 범죄자가 되어 있었다.
“당당하다면 공무 집행에 응하고 수색을 도와주면 될 일이다. 그러나 진예슬은 옷을 벗어 던지고 맨몸으로 공무원을 막아섰다. 무엇이 그녀를 필사적으로 만든 것일까.”
“그만해!!”
이때를 기다려왔던 것 같다.
기자가 몰아붙이는 것을 본 나는 검사를 툭툭 두드려 슬며시 양쪽 방을 가리켰다.
“슬슬 낚아 볼까 합니다. 검사님은 필요한 걸 찾으세요.”
검사가 끄덕이는 순간 나는 기자를 스치며 앞으로 나갔다.
진예슬의 시선이 기자에게서 나로 옮겨오는 것이 보였다.
등 뒤로 손을 돌려 황민우와 강혜원을 불렀다.
진예슬의 정면에 내가 서자 황민우는 내 왼쪽, 강혜원은 오른쪽에 자리 잡았다.
진예슬의 시야를 가린 것이다.
“진예슬 씨, 어디 찍어 볼 테면 찍어보세요. 저는 지금 정당한 근거를 갖고 나와 있습니다.”
흠 잡힐 일 없는 정중한 자세로 손에 든 서류를 흔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