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화. 찍어보세요(2)
도곡동의 고급 빌라.
고급 정도가 아니다.
나는 이런 집은 처음 보았다.
아니 지나가면서 이런 비슷한 건물을 보긴 했는데 그냥 건축물인 줄 알고 지나쳤던 것 같다.
왜냐면 빌라처럼 생기지 않았으니까.
펜트하우스라는 건 말만 들어보았다.
드라마에서 보긴 했지만 거기서 보여주는 건 안의 모습뿐이었으니까.
카메라로 찍으면 뭐든 좋아 보이는 법이니, 흔한 연출적 왜곡인 줄 알았다.
사실 펜트하우스라는 말만 듣고는 단독 주택의 한 종류인 줄 알았다.
80평, 100평이라는 게 고층에서 나올 수 있는 거라는 생각을 못 했으니까.
그런데 여기 있네?
대리석으로 담장을 둘러싸고 출입문은 검은 철문으로 막아 두었다.
철문 사이에 조그만 틈도 없어 안이 보이지도 않았다.
철문 바로 옆엔 짙게 썬팅된 경비실이 있고 담장 밖 곳곳에 CCTV가 달려 있었다.
엄중한 경비였다.
평생을 단독 주택의 10평짜리 1층과 지층에서만 살아온 내게는 머리를 얻어맞은 듯한 충격이었다.
“어우, 이런 데 살려면 돈이 얼마나 드는 거지.”
그것은 직원들도 마찬가지였는지 길에 우두커니 서서 건물을 올려다보았다.
연한 파스텔 톤의 빌라 외관은 화려함보다는 포근함을 우선으로 하는 듯 수수한 모습이었다.
그러나 밖은 그렇지 않다.
두텁게 쌓인 담장과 경비실, 물샐 틈 없는 CCTV에 뜬금없이 출입문 근처에 박혀 있는 사자 머리 조각상까지.
외부인의 접근을 금하는 정도가 아니라 배척하는 분위기가 느껴졌다.
“거래된 금액 보고 왔는데 100평에 80억이더라고요.”
“100평? 80억? 숫자가 잘못된 거 아냐?”
“맞아요. 100평, 334제곱미터. 80억. 0이 하나, 둘, 셋, 넷…….”
“80억이 어떻게 생긴 숫자인지는 나도 알아. 내 말은 대체 몇 명이나 사는데 100평이 필요해?”
장세훈이 줄기차게 따져댔지만, 강혜원은 시큰둥했다.
“그거야 제가 안 살아봐서 모르겠네요. 앞으로 살 수 있을 것 같지도 않고요. 세공 일 하면서 남의 재산에 질투해 봤자 내 손해입니다. 징세 준비나 하세요.”
“질투한다는 게 아니고! 이런 집에서 살면서 세금 안 낸다니까 화나서 그렇지!”
“네에. 자료는 다 챙기셨죠?”
“그건 제가 챙겼습니다.”
황민우가 들고 있던 서류가방을 툭툭 쳤다.
“근데 이거 만만치 않겠는데. 들어갈 수나 있으려나?”
다혈질인 장세훈도 현실의 벽 앞에서는 걱정스러웠나 보다.
하긴 그냥 주택이라면 죽어라 현관문 두드리고 세금 내세요, 하고 고래고래 소리 지르다 보면 이웃에게 쪽팔려서라도 나와 보는데.
여긴 뭐 길가에서 소리 질러도 꼭대기 층에 들리기나 하려나.
방음도 잘되어 있을 것 같다.
“그……렇죠. 일단 들어가야 드러눕든 뭘 하든 할 텐데.”
강혜원이 한숨을 내쉬었다.
“근데 왜 이렇게 겁먹은 거야? 요즘은 세상이 바뀌었어. 연예인이라도 탈세를 저지르면 대중들도 감싸주지 않는다니까?”
장세훈이 답답하다는 듯 소리쳤다.
강혜원이 팔짱을 끼고 생각에 잠겼다.
“그 말이 맞긴 한데요, 연예인하고 좀 사정이 달라요. 인기 있는 사람은 뭘 해도 추종자가 감싸 주거든요. 일명 실드라고 하는데 제가 어제 집에 가서 좀 알아봤어요.”
강혜원이 핸드폰을 꺼내더니 미리 찍어둔 스크린샷을 보여 주었다.
-언니, 찌라시에 지지 말고 힘내세요!
-마약 같은 소리 하고 있네. 의혹만 가지고 멀쩡한 사람 물어뜯는 건 종특이냐?
-기자 찾아냈음. 쓰레기 기사만 써재끼는 기레기 색기임. 항의 메일 ㄱㄱ
-기레기는 조져야 제맛이지. 데이터 낭비할 시간에 생산적인 걸 해라.
-근데 의혹 나올 정도면 뭔가 있긴 있다는 거 아닌가? 본인이 해명은 해야지.
-해명했잖아. 아니라고. 너 기레기 가족이지?
“뭐 이런 식으로 흐지부지됐네요.”
“요즘 인터넷 무섭네. 이거 댓글 뭐야?”
장세훈이 어느 한 댓글을 가리켰다.
기자의 이름과 나이, 출신 학교와 그간 거쳐 온 신문사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아, 신상 털기요? 메일 주소 앞자리로 검색해서 찾았나 보더라고요. 요즘 세상 참 무섭죠?”
“무서운 정도가 아닌데.”
장세훈이 답지 않게 위축되었다.
“그래도 우리는 잘 준비해 왔잖아. 괜찮지 않을까?”
“괜찮도록 해야죠.”
나는 쑥덕거리는 둘을 조용히 지켜보았다.
이번엔 한발 물러서서 둘이 어떻게 일하는지 지켜보고 싶었다.
황민우는 당연히 이런 일이 하루 이틀이 아니라 그런지 별걱정 없는 얼굴이었고.
그러고 보니 김명중 과장님이 말했던 황민우의 집안 얘기는 대체 뭘까.
자꾸 의식이 눈앞의 징세보다는 황민우에게 쏠렸다.
남의 사정을 섣불리 묻는 건 예의가 아니지만 궁금한 건 어쩔 수가 없었다.
그렇게 각자 다른 걱정으로 고민에 잠겨 있을 때 경비실 문이 덜컥 열리고 건장한 체격의 남자가 둘 나왔다.
24시간 상주한다고 들었는데, 한 명도 아니고 둘이나?
게다가 아파트 같은 곳에서 보던 고령의 경비원 아저씨도 아니다.
진짜로 빌라를 지키는 의미의 경비였다.
“거기 네 분, 어디서 오셨습니까?”
딱 봐도 우리가 수상해 보이긴 하지.
나는 일부러 앞으로 나서지 않았다.
장세훈과 강혜원이 목소리를 낮추고 속삭였다.
“어떻게 생각하세요? 세무서에서 왔다고 하면 들여보내 줄까요?”
“내 경험상 이런 데는 경비가 시간 끌고 막던데. 체납자한테 연락해서 빼돌릴 시간 주고.”
“그렇죠? 아이 씨, 어떡하지. 그러면 기습적으로 나온 의미가 없는데.”
둘 다 현장에 나가 본 경험이 있어서 그런지 함부로 공무원이라고 밝히지는 않았다.
그들 말대로 괜히 집을 정리할 시간을 줬다간 다음엔 오히려 징세하기 힘들어질 수도 있다.
“그렇다고 담 넘어 들어갈 수도 없잖아요. 저게 씨콤 안 보여요?”
“담을 넘긴 왜 넘어. 여긴 주차장만 들어가도 불법 침입이야.”
“아 진짜 우리가 잘못하는 것도 아닌데 징세하기 너무 어렵다.”
“나라 탓하지 말고 현실적인 방법을 찾아봐, 혜원 씨. 어쩔 수 없잖아.”
“그럼 이렇게 해요. 저번에 써먹었던 방법인데, 우리가 쪽수가 많잖아요? 일단 내가 여자니까 경비 둘 붙잡고 드러누울게요. 그사이에 들어가요. 오케이?”
“좋아. 해 보자.”
둘은 열심히 작전을 짰다.
그러나 그것이 경비원 눈에는 수상해 보였을 것이다.
“네 분 뭐 하는 분입니까? 기자예요? 여긴 사유지입니다.”
“어, 잠시만요.”
강혜원이 만반의 준비를 마치고 쓰러지려는 순간 안에서 한 명이 더 나왔다.
“으, 응?”
한 발을 뗀 엉거주춤한 자세로 강혜원이 굳었다.
아무리 그래도 강혜원 혼자 드러눕는 것으로 세 명을 감당하긴 힘들다.
“거기 수상한 사람들, 잠시 거기 계십쇼. 경찰 부르겠습니다.”
강혜원과 장세훈이 당황스러운 얼굴로 서로를 마주 보았다.
이쯤 되면 포기하고 돌아갔다가 다른 방법을 찾든가 공무원임을 밝히고 들어가든가 둘 중 하나다.
물론 둘 다 체납자에게 시간 여유를 주게 되는 것은 확실하다.
그러나 둘은 서로 시선을 교환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의지가 가득 찬 눈빛을 보아하니 강제로 돌파할 생각인 것 같았다.
이거 내가 시험하고 자시고 할 것도 없었던 것 아닌가?
나한테 묻어가거나 도움을 청할 생각은 눈곱만큼도 안 보이는데.
“으아악!”
결국 강혜원이 요란하게 넘어졌다.
“어이구, 혜원 씨! 이봐요, 가만히 보고만 있을 거예요? 아, 많이 다쳤나 보네. 얼른 좀 도와줘요. 사람이 매정하네!”
장세훈도 골목이 떠나가라 소리쳤다.
발이 삐었냐, 와서 좀 도와 달라, 119를 불러 달라, 야단법석이었다.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바닥을 뒹구는 둘의 모습이 짠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경비원들은 눈 하나 꿈쩍하지 않았다.
“여러분 같은 사람이 한둘인 줄 아십니까? 어디 신문사에서 왔어요? 절대 이 문 못 넘어갑니다.”
아, 하긴 이런 일이 몇 번 있었을 법하다.
강혜원과 장세훈이 어쩔 줄 몰라 했다.
안 되겠다.
이 이상 난감해하는 모습은 동료로서 보기 힘들다.
내가 황민우에게 눈짓하고 둘 앞으로 나서려고 다가갈 때였다.
“잠깐잠깐!”
경비원과 둘 사이에 허름한 차림새의 남자 하나가 끼어들었다.
***
탑뉴스의 기자, 나학진은 잠복에 자신 있었다.
비록 이름만 들으면 아는 거대 체급의 신문사가 아닌 작은 신문사에서 일하고 있어도 나름 베테랑이라고 자부했다.
단적인 예로 몇 달 전 강남 클럽에 창고에서 물건 나르는 아르바이트로 들어간 적이 있었다.
원래 목표는 유명한 톱급 연예인이었지만 우연히 발견한 연예인 지망생을 발견하고 그녀의 일탈 행위를 기사화한 적도 있다.
너무 가까이 다가갔다가 들켜서 얻어맞고 쫓겨났지만…….
‘그때 사진만 잘 찍어 놨으면 특종인데.’
기자 일을 하다 보면 물리적으로도 얻어맞고 댓글로도 얻어맞기 일쑤다.
요즘 기자 같지 않은 기자 놈들이 설쳐대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번엔 자신이 옳았다.
분명 마약 하는 걸 봤다.
‘내가 절대 포기 못 하지. 반드시 까발리고 만다.’
그런 일념으로 빌라 옆 골목에 잠복한 지 일주일이었다.
다른 곳 같으면 노숙자처럼 길에다 살림을 차리고 버티겠는데 이 동네는 노숙자가 보일라치면 경비들이 내쫓았다.
때문에 골목에 차를 세워 놓고 메뚜기처럼 여기저기 이동하며 감시하는 중이었다.
“어으으, 오늘쯤이면 클럽 갈 때가 됐는데.”
나학진은 오랫동안 씻지 않아 떡 진 머리를 빗으며 멍하니 빌라 입구를 응시했다.
오랜 기자의 감이 말하고 있었다.
오늘은 뭔가 걸릴 거라고!
그런데 그의 레이더에 걸린 것은 목표했던 연예인 지망생이 아니라 웬 어설픈 양복쟁이들이었다.
고급 주택을 처음 본 놈들은 분위기에 압도되어 얼 타게 된다.
멀리서 봐도 딱 알 수 있을 정도의 얼치기들이었다.
대놓고 담장 근처에 서서 빌라를 올려다보더니 출입문 쪽으로 걸어와 쑥덕거렸다.
나학진은 어이가 없었다.
“아니, 여긴 내 구역인데? 쟤들은 어디 놈들이야?”
기자인가?
그런데 기자치고는 장비가 조악했다.
흔히 대포라 불리는 망원 카메라까지는 아니더라도 찍을 무언가는 갖고 있을 텐데.
들킬까 봐 숨겼나?
그때 경비가 나와서 네 남녀를 불러 세웠다.
‘그럼 그렇지, 어설플 때부터 알아봤어.’
차라리 빨리 쫓겨나는 것이 일하기 편하다.
어차피 저 정도 얼치기면 금방 혼쭐나서 쫓겨날 것이었다.
그런데 여자가 냅다 바닥에 드러누워 버렸다.
“어어? 저 쪼다들 뭐 해?”
저런 수법이 통할 놈들이 아닌데.
어디 아파트나 빌딩 같으면 통할 수도 있다.
하지만 여기는 단련될 대로 단련된 경비들이 지키는 곳이다.
기자들이 얼마나 기상천외한 수법으로 스토킹, 아니 취재를 하는데.
나학진은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아이고, 안 된다니까. 그냥 일어나서 가.”
역시나 경비들이 꿈쩍도 하지 않자 당황한 남녀의 얼굴이 선히 보였다.
저러다 험한 꼴 당하면 어쩌려고…….
설마 대낮의 주택가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진 않겠지.
나학진은 신경을 끄려 했다.
그러나 건장한 체격의 경비들이 슬슬 다가가자 저도 모르게 차 문을 열고 뛰쳐나가고 있었다.
‘내가 미쳤지, 나도 경비 눈에 띄면 안 되는데.’
후회하면서도 나학진은 달렸다.
경비와 남녀 사이에 끼어든 그는 최대한 밝고 멍청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아이고, 제 후배들인데 잘 몰라서 그래요.”
“아저씨. 또 아저씨예요? 제가 말했을 텐데요. 한 번만 더 오면 어떻게 되는지.”
“죄송합니다. 한 번만 봐주세요. 얘들이 어려서 의욕만 앞서서 그렇습니다. 제가 데려가서 잘 타이르겠습니다.”
나학진은 자신보다 한참 어린 경비들에게 싹싹 빌다시피 했다.
생전 처음 보는 남녀를 위해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나 싶었지만, 어쩐지 동질감이 느껴졌다.
자신도 진실을 알리겠답시고 몸 던져 바닥을 구르던 때가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비록 삼류 인터넷 뉴스에서 연예부 찌라시나 쓰고 다니지만.
“진짜 한 번만 더 봐 드립니다. 다음엔 어떻게 될지 아시죠?”
“그럼요. 예예, 감사합니다. 이 은혜 잊지 않겠습니다.”
몇 번을 거듭해 꾸벅 고개를 숙인 나학진은 얼른 네 남녀를 이끌고 골목 너머로 갔다.
“어디에서 왔어? 신문사? 경쟁사? 타겟이 누군지는 안 물어볼게. 이러다 몸 상해. 상대를 봐 가면서 누워야지.”
네 남녀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나학진을 보았다.
아직 상황 파악이 덜 된 모양이다.
그럴 수도 있지.
뭣 모르는 애들한테 무슨 말을 하겠는가.
다 소재 물어오라고 보낸 윗대가리들이 나쁜 놈이지.
나학진은 가장 어려 보이는 남자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신입이지? 어떤 심정인지 이해는 하는데 너무 애쓰지 마. 내가 선배로써 하는 말인데 이런 종류의 집은 들어가기가 힘들어. 차라리 길바닥에서 기다리는 게 나아. 누가 타겟인지는 모르겠지만 괜히 그러다 골병들어.”
예전의 자신이 생각나서인지 길게 말해 버렸다.
문득 이게 꼰대 짓일 수도 있겠다 생각한 나학진은 급히 마무리를 지었다.
“흠흠, 그러니까 다른 기회를 노려. 스케줄이라든지 밖에 나갈 때.”
그런데 네 남녀의 표정이 이상했다.
구해 줘서 고맙다는 말은 듣지 못해도 겁먹은 표정은 지을 줄 알았는데.
간덩이가 너무 부어도 이 업계에서 살아남기 힘들다.
한 마디 더 입을 열려던 나학진은 문득 자신이 어깨를 잡은 어린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 것도, 어려서 어리바리한 것도 아니다.
모든 것을 알면서도 이 모든 것을 즐기는 모습이었다.
이 비슷한 것을 본 적 있다.
예전에 자신을 이끌어 주던 정치부 선배 기자가 이런 눈빛을 한 적이 있다.
지상에 그려진 그림을 위에서 내려다보며 웃는 모습.
남들보다 한 발짝 앞서나가는 자의 여유.
‘말도 안 돼.’
나학진이 고개를 저으며 생각을 털어냈다.
아무리 그래도 20대 중반짜리가 뭘 알겠는가.
“자, 이제 돌아가. 나는 바빠서 이만. 다음에 기회 되면 현장에서 보자고.”
나학진이 도망치듯 차에 타려고 했을 때였다.
어깨를 잡혔던 청년이 웃으며 그를 불러 세웠다.
“기자님. 이제 더 재밌는 일이 생길 텐데요. 찍어 보실 생각 없으세요?”